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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활 1권 (16화)
4장 건달과 의뢰인 (5)
꽤나 많은 양의 크레모아를 땅에 묻은 터라, 이번 폭발은 방금 전 폭발보다 훨씬 큰 위력을 지녔다. 지반이 지진이라도 난 것마냥 흔들거렸다. 결국 전갈은 수치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폭발한 차를 지나쳐 조직원들의 뒤를 따라 멀리 뛰어갔다. 손을 떼고 물러난 것이다. 그렇게 사라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김홍진은 이내 준원의 스코프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어 보였다.
“약속하신 금액입니다.”
봉고차에 올라탄 김홍진이 흰 봉투에 담긴 돈을 건넸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준원 일행에게 고마워했다.
눈물까지 보이는 그를 보며 오봉준은 엷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을 테니 부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기름진 땅으로 만들리라 기원하겠소.”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김홍진은 봉고차 문을 닫으며 사라질 때까지, 감사 인사를 잊지 않으며 집으로 무사히 돌아갔다. 그렇게 일이 끝나고 준원 일행은 한동안 마을을 떠나 있어야 했다.
총과 폭발물의 등장으로, 한동안 마을 전체가 시끄러워졌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김홍진의 마을은 한동안 뉴스거리에도 오를 만큼 떠들썩했었다. 하지만 파견된 경찰들은 사건을 파헤치면서, 마을과 폭발물 그리고, 군용에서나 쓰일 법한 라이플 사이에서 어떤 연관 관계도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사건은 조금씩 마을 사람들과 국민들 틈에서 유야무야 묻혀 갔다.
5장 선과 악 (1)
“네 몫이다.”
사무실로 돌아온 오봉준은 준원의 몫을 떼어 주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유복이 침을 꿀꺽 삼키며 봉투를 쳐다봤다.
“유복아. 아서라. 네 몫 아니다. 네 몫은 계좌에 넣어 둘 테니까 남의 돈 좀 껄떡대지 마라. 네가 거지냐?”
“사장님이 월급을 늦게 준다. 흥.”
오봉준의 타박에 마음이 상했던지 유복이 벌떡 일어나 밖으로 사라졌다.
“망할 놈.”
사라진 유복을 쳐다보던 오봉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준원을 다시 쳐다봤다.
“됐습니다.”
앞에 놓인 흰 봉투를 본 준원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그에게 봉투를 돌려주었다. 어차피 거래였으니, 굳이 돈을 받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식으로 얽히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이제 약속을 지켜 주시죠.”
대쪽 같은 준원의 단호함에 오봉준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끄덕였다.
“단호하기는. 알았다. 내가 직접 움직이마.”
“네. 방 구조를 설명해 드리죠. 방은 수채화로 그린 그림으로 가득할 겁니다. 그중에서 남자아이 하나가 수많은 별을 올려다보고 있는 그림을 가져다주시면 됩니다.”
‘아버지가 그렸다고 한 그림.’
아주 어릴 적 어머니를 통해 들은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것을 무척 좋아하셔서 별을 보는 아이라 이름 붙인 그림을 어머니가 임신하던 날 선물로 줬다고 말이다. 또한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지키라며 언급했던 그림도 분명 별을 보는 아이였다.
물론 ‘그들’이 그간의 시간 동안 그림의 존재를 눈치챌 수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그림이 보존되어 있을 확률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준원이 떠나기 전에도 그림은 어머니의 보호에 의해 함정으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준원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림이 보존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하지만 업자 놈들은 쉽게 먹이를 놓치지 않는다. 웬만하면 그 근처에 끈을 좀 풀어놓고 24시간 감시하거든.”
가만히 듣고 있던 오봉준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준원의 말에 지적했다.
“그럼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까?”
“네가 그 집을 떠난 지 몇 해나 지났는데?”
“사 년 가까이 됩니다.”
“그럼 집세도 안 내고 세금도 안 냈겠네?”
“집이 제 명의였으니 남아는 있을 겁니다.”
“아니지. 차압당했겠지. 그럼 그 그림도 집을 비롯해서 전부 팔린 것 아니겠냐?”
오봉준의 반문에 준원은 잠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은 집을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들 명의로 바꿔 놨을 거다. 할아버지를 아직 잡지 못했을 테니까. 언젠가 할아버지가 내 집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겠지. 그렇다면 아직 집을 정리하지는 않았을 거야.’
철두철미한 계획을 세워 준원을 감시했던 그들이라면, 팔아도 그만, 팔지 않아도 그만인 집을 웬만하면 다른 쪽으로 이용하려 애를 쓸 것이다.
“그렇다면 방법이 하나 있구나.”
준원의 고심 섞인 표정을 읽은 것일까? 가만히 두고 보던 오봉준이 한 가지 계획을 제안했다. 그의 제안에 팔짱을 끼고 있던 준원도 눈을 빛냈다.
“세무사로 위장하는 것 어떻겠냐.”
“명의가 이미 바뀌었을 겁니다. 그런데 세무사로 위장한다 해도 활용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우선 집이 있고 없고가 중요하지만, 만약 집을 부수지 않고 업자 놈들이 직접 가지고 있을 시에, 우리가 그 집 안으로 의심 없이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겠지. 과세전적부심사제도를 이용하자꾸나.”
“과세전적부심사제도?”
“오냐. 대강 말해서 세금을 부과시켰을 때 납세자가 세금 금액의 정당 여부를 놓고 심사를 해달라고 요청하는 제도지. 우린 우선 네가 살던 집의 명의가 누구 이름으로 되어 있는지 확인을 한 뒤, 위조서류 하나를 만들어서 심사를 하러 왔다고 둘러대면 된다. 보통은 심의로 끝나지만, 꼭 심의로만 끝나라는 법은 없지. 세무사가 직접 발로 뛰며 재산에 관해 조사를 한다고 해서 의심할 사람은 없지 않겠느냐?”
“그걸 역이용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어떻게 말이냐?”
“앞문으로 빤히 들어가시면, 말씀하신대로 그 근처의 끄나풀들이 움직여 들어가지 못하게 하겠죠.”
“그럼?”
“최대한 시간을 끌어 주십시오. 뒤쪽에 창문이 있습니다. 그쪽으로 제가 잠입하겠습니다.”
“창문도 있냐?”
“낡은 철창이 있긴 하지만 끊을 수 있습니다.”
“괜찮구나. 너는 그림이 정확히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니, 훨씬 빨리 찾을 거고.”
“그럼 이 계획으로 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꾸나. 그 전에…….”
오봉준이 힐끗 준원을 쳐다봤다. 눈치를 보듯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 준원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마주 봤다.
“하루만 쉬면 안 되겠냐?”
덧붙여지는 오봉준의 뒷말에 준원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확실히 고단할 정도의 며칠이었다. 오봉준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기에, 준원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너는 어디로 가냐?”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준원을 보며 오봉준이 물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대답해 드려야 합니까.”
“까칠하기는.”
냉담한 준원의 대답에 오봉준은 대답 대신 얼른 잠바를 껴입으며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뭐하시는 겁니까.”
준원이 옆에 딱 붙어선 그를 보며 묻자, 오봉준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껍데기 좋아하냐?”
오봉준의 성화에 결국 함께 껍데기 집을 들어간 준원은 젓가락도 떼지 않았다. 늘 챙겨 먹었던 음식이라고는 산에서 나는 것들과 수많은 약초로 정제된 알약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충호의 밑에서 훈련을 받게 됐을 때도, 준원의 식단은 변하지 않았다. 달마다 김소흥이 문수를 통해 준원이 먹던 식단 그대로를 보내 줬기 때문이다. 이충호도 그 식단이 나쁘지 않다며 먹기를 종용했기에 어느새 준원은 철저한 채식주의자가 되어 있었다.
“껍데기 냄새 맡기도 싫냐?”
젓가락 한 번 떼지 않는 준원을 보며 오봉준이 물었다.
“별로 먹고 싶지 않습니다.”
“딱딱하기는. 어이. 여기 소주 한 병 줘. 할매!”
“지랄하고 있네. 먹고 싶으면 네가 갖다 처먹던지!”
어느새 소주를 들고 온 욕쟁이 할머니는 머리가 하얀 오봉준을 보고도, 쌍욕을 멈추지 않았다. 오봉준도 그런 할머니의 욕이 듣기 싫지 않은지 생글생글 웃으며 맞받아쳤다.
“나도 이제 나이가 육십이 넘고 칠십이 다 되어 가요. 할매. 근데 할매 욕은 언제 들어도 정겹소. 허허.”
“염병 떨기는. 술이나 처먹어. 근데 이 어린노무새끼는 뭐여.”
준원이 대답 대신 욕쟁이 할머니를 힐끗 쳐다보고는 이내 관심 없다는 듯 껍데기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준원의 표정을 살피던 욕쟁이 할머니가 준원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놈은 왜 당장 죽을상이여. 쯧쯧. 껍데기 많이 처묵고 가라. 아가.”
그 말을 끝으로 사라지는 할머니를 보며, 젓가락을 놀리던 오봉준이 고무적인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저 할매가 네가 마음에 들었나 보다. 웬만하면 저런 따뜻한 말 안 하는 양반인데. 허허.”
“죽을상이라고 하는 게 따뜻한 말입니까.”
준원이 무미건조하게 대답하자, 오봉준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녀석. 딱딱하기는. 넌 왜 매사에 그렇게 냉담한 거냐? 무슨 사연이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말이다. 혹시 복수라도 생각하는 건가?”
“제가 복수를 하건 하지 않건, 그건 오봉준 사장님께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닐 텐데요. 지금 중요한 것은 저와 사장님은 단지 거래를 했고, 아직 거래를 끝마치지 못했다는 겁니다. 단지… 그뿐이죠.”
“뭐. 그렇긴 하지.”
할 말을 잃은 오봉준이 들고 있던 소주를 단박에 들이키며, 비어 있는 잔을 흔들어 보였다.
“안 따라 줄 거냐?”
한참 동안 소주잔을 흔들던 오봉준이 서운하다는 듯 얘기하자, 준원은 아무런 대답 없이 조용히 그의 술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그러자 오봉준은 이번에도 단박에 술을 들이키고는, 마주 앉은 준원을 향해 재차 입을 열었다.
“남자아이들은 어릴 적 싸우면서 크곤 하지. 그러면서 친구도 사귀고, 싸우고 나서 화해하는 법도 알게 되는 거지. 하지만 그런 행동들에서 아이들이 가장 크게 배우는 건, 싸움을 하다가도 멈출 줄 아는 법이다. 아니, 애초에 싸움이 일어나지 않게 이야기하는 법을 배운다고나 할까? 그래야 나이 먹고 싸움질을 안 하거든. 음…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말이다.”
쿵.
말을 하다 말고 오봉준의 머리가 식탁을 찧었다. 단, 네 잔에 술이 취한 모양이었던지 그는 횡설수설하며 웃음을 보였다. 지나가던 욕쟁이 할매도 취한 그를 쳐다보고는, 혀를 차며 준원에게 들릴 만큼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게. 술도 못 처먹는 놈이 무슨 술을 먹는다고. 너도 저 미친놈처럼 들이붓지 마라.”
이어지는 할매의 당부에 준원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러고는 눈앞에 놓인 술잔에 술병을 기울여 말없이 쓰디쓴 술 한 잔을 입에 털어 넣어 갔다.
유난히 술이 썼다.
* * *
“으흐.”
자신의 주량보다 과음을 한 오봉준은 봉고차에서 내내, 배만 부여잡고 신음성을 흘려댔다.
“그래서야 움직일 수나 있겠습니까.”
차가 과거 준원이 살던 동네에 접근하기 시작하자, 준원이 쥐죽은 듯 누워 있던 오봉준을 향해 물었다.
“그… 그럼 당연하지.”
힘겹게 대답한 오봉준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쓰러워질 정도로 퀭해진 그의 눈이 준원을 마주했다.
“차라리 유복 씨를 시키는 것이 낫겠습니다.”
“넌 동남아 계 세무사도 봤냐? 내가 한다. 인마. 그러니까 염려 붙들어 매라.”
“술병 난 세무사도 못 봤습니다.”
“아무튼!”
큰소리 떵떵 친 오봉준은 마침내 차가 세워지자, 가지고 온 카메라로 주변을 쉴 새 없이 찍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각 사진 장면마다 찍힌 사람들을 확인하며 고심했다. 사채업자인지, 아닌지를 구별하는 그만의 방식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