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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부활 1권 (17화)
5장 선과 악 (2)
“이놈들인 것 같은데, 이거 사채하고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정말 업자가 맞는 거냐?”
날카로운 질문에도 준원은 당황하지 않고 덤덤하게 대답했다.
“맞습니다.”
“녀석. 끝까지 솔직히는 대답해 주지 않는구나.”
준원의 대답을 들은 오봉준은 실망한 빛을 보였지만, 이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이번 일에 임했다. 어쩌면 그는 이미 준원이 청한 이번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꼬깃꼬깃한 양복을 차려입은 오봉준은, 얼핏 보기에 꼬장꼬장한 세무사를 닮아 있었다. 그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과거 준원이 살던 방을 향해 걸어 나갔다. 주변에는 갑작스러운 재개발 때문인지 시위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보였고, 동네 분위기도 꽤나 어수선했다.
‘다가올 때가 됐지.’
골목 귀퉁이에서 지켜보는, 눈들을 이미 파악해 둔 오봉준은 건물에 다가갈수록 그들이 다가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 둘은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양, 서로 얘기를 하며 걸어왔지만 분명 끊임없이 오봉준의 행동거지를 살피고 있었다.
“저… 못 보던 동네 분이신데 누구십니까?”
그들 중 한 사람이 마치, 이곳에 동네 주민인 양 행동하며 물었다.
“세무사요.”
길을 가로막고 서며 묻는 그들의 말에 오봉준은 쓰고 있던 안경 가운데를 손가락으로 추켜올리며 대답했다. 이지적인 말투까지 곁들이자, 남자들은 잠시 서로를 보다 이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세무사가 뭣 땜에 오셨습니까?”
“그런 걸 일일이 얘기해 줘야 하오? 시에서 나왔으니 좀 비켜 줬으면 하오만.”
짜증스러운 말투로 대답한 그는 가로막고 선 그들을 밀치며 지나가려 했다.
“아직 얘기가 끝난 게 아니잖소?”
남자들은 재빨리 오봉준의 한 팔씩을 붙잡고 실실거리며 웃었다. 이내 실랑이가 벌어지기 시작한 건, 당연했다.
“쑨원. 지금이 가장 적당하겠다.”
봉고차로 밖의 상황을 지켜보던 유복이 재빨리 핸들을 틀어, 차를 집 뒤편으로 움직였다. 오봉준 때문에 신경이 쏠린 감시자들은 미끄러지듯 골목으로 사라지는 봉고차를 보지 못했다.
드르륵―!
이내 뒤편 창문으로 온 준원은 봉고차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창문을 팔꿈치를 써서 단박에 깨 버렸다. 유리창이 산산조각 나며 쇠창살이 크게 흔들렸다.
“많이 녹슬었군.”
준원은 녹이 슨 부분들을 보다, 이내 부실해 보이는 부분을 향해 주먹을 곧게 뻗었다.
펑―!
그러자 놀랍게도 지탱하고 있던 못이 찌그러지며, 벽에 부착식으로 달려 있던 쇠창살이 힘을 잃고 흘러내렸다. 운전석에서 지켜보던 유복의 눈에도 놀람이 서렸다. 사람의 주먹이 어떻게 못을 찌그러트린단 말인가? 하지만 준원은 입을 떡 벌린 유복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사람 하나 들어갈 수 있게 된 공간 안으로 곧장 뛰어들었다.
타닥―!
발부터 착지한 준원은 빠르게 어두운 방 안을 두리번거렸다. 예상대로 집은 난장판이었다. 아버지의 그림들은 곳곳에 짓밟히고 널브러져 있었고, 어머니와 함께 살던 방문을 열자, 어머니께서 그토록 아끼시던 금고가 통째로 없어진 흔적이 보였다. 아마도 ‘그들’은 금고의 아버지가 남긴 뭔가가 있을 거라 예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너희들은 잘못 짚었어.’
준원은 사라진 금고 흔적을 보며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되레 금고 옆에 있던 장롱 옆 벽을 발로 걷어찼다. 그러자 시멘트벽으로 보이던 벽이 놀랍게도 마치 스티로폼처럼 찢어져 무너져 내렸다.
그랬다. 준원의 어머니는 훗날을 기약해 아무런 의미 없는 그림을 금고 속에 집어넣어, 그들을 유인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작 아버지가 남긴 별을 보는 아이는 장롱 옆, 시멘트를 바르지 않은 벽 속에 넣어 둔 것이었다. 비닐로 잘 감싸서 그림이 상하지 않게끔 말이다.
‘역시! 있었어.’
준원은 예전 어머니가 왜 그토록 그림 보관한 곳을 일러 주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아마도 어머니는 ‘그들’이 아버지의 그림마저 빼앗아 갈까 두려워한 것이리라. 하나, 다행스럽게도 결국 그들은 그림이 어디 있는지 찾지 못했고, 애꿎은 금고 속 필요 없는 그림만 가지고 가게 됐다. 어머니의 선견지명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준원은 새삼 어머니의 깊었던 마음을 되새기며 벽 뒤편에 숨겨져 있던 그림을 품 안에 안았다.
덜컹―!
그때였다. 준원이 그림을 속에 넣은 것과 동시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인기척 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와! 쑨원.”
멀리 창 너머로 유복의 얼굴이 보인다. 하지만 이미 벗어나기에는 늦었다. 작은 방이었기에 아무리 빨리 움직인다 하더라도, 오봉준이 그들을 유인했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었다.
결국 준원은 그림을 안은 채로 급히 안방 문 쪽에 몸을 급히 붙였다. 유복도 준원의 결정을 직감한 것인지 급히 창에서 벗어나 사라졌다.
그리고 발자국 소리가 더욱 가까워졌다.
저벅―!
저벅―!
발자국 소리로 추정하건대 세 사람이었다. 오봉준을 제외하면 두 남자가 모두 따라온 셈이다. 남자 둘이 어떤 명목으로, 오봉준을 쫓아왔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으로써는 그들을 제압하는 것 말고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이내 준원은 호흡을 고르며 잠자코 그들이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한 걸음 더.’
마침내 때가 왔다. 벽에 붙은 채, 웅크리고 있던 준원의 억센 손이 바로 근처까지 다가온 남자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동시에 남자의 동작이 느릿하게 보인다.
놀란 남자가 총을 빼들려 했다.
―나는 이제 찰나의 순간을 지배한다.
그에 따라 준원의 심장이 여느 때보다 세차게 약동하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순간, 준원은 고민했다.
죽일 것인가?
말 것인가?
총을 빼앗아 들어 방아쇠를 당겨 버리고 깨끗이 끝낼까? 아니면 총을 겨누고 제압하는 것이 옳을까?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선택일까? 정의가 무엇인지 준원이 혼란에 빠지던 찰나, 문득 그는 어린 시절이 기억났다.
아주 어릴 적, 준원은 히어로가 나오는 코믹 북을 본 적이 많았다. 그리고 여타 다른 아이들마냥, 그곳에 나오는 영웅을 동경했고 그런 영웅이 되고자 했다. 왜냐면 선과 악은 공평하게 나뉘어져 있고 히어로들은 전부 선의 편에 서 있고 이분법적인 계산이 가능하다고 여겨 왔기 때문이다.
물론 나이를 먹어서도, 은연중에 그런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아무리 힘든 현실 속에서라도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아직도 선과 악이 나뉘어서,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일을 자행한 사람은 언젠가 인과관계에 의해 벌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의 준원의 머릿속에 그러한 생각들은 애초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져 가고 있었다. 현실에서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준원을 비롯한 약자들이 죽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종 매체에서는 그들이 하는 사업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선(善)한 것들의 기준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권력을 해하려는 것들은 전부 악(惡)으로 규정 되어 간다.
결국 선과 악을 나누는 이분법마저도, 기득권층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 낸 달콤한 농간일 뿐인 것이다. 이제 준원은 더 이상 어떤 것도 믿지 않았다. 선과 악이라 규정된 모든 것들마저도 모호한 기준이 되어 버렸으니, 믿을 것은 자신의 의지뿐이었다.
신? 신 또한 없는 것이 분명했다.
적어도 신이 있다면 이렇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는 없을 테니까.
준원은 이제 오직 스스로의 힘을 믿고, 나아갈 뿐이었다. 그는 반드시 단죄의 칼을 내려치리라 마음먹었다. 정해진 규칙을 유지하려, 준원에게 수많은 희생을 강요시켰던 적들을 향해 도리어 그들의 규칙을 타파하고 자신의 복수를 이뤄 갈 것이다.
준원은 더 이상 신을 믿지 않았다.
아니, 자신을 제외한 모든 것을 마음속에서 지웠다.
만약 신마저도 복수를 막겠다고 한다면.
내가 죽거나, 신을 죽이거나, 둘 중 하나다.
이윽고 준원은 결단을 내렸고 행동을 시작했다.
“흡!”
놀란 남자가 반항하려 해 봤지만 절벽을 로프 없이, 다녔던 준원의 악력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결연해진 준원의 양손이 거침없이 남자의 양손을 꺾어 버렸다. 그리고는 총이 떨어진 사이 목숨을 위협할 정도로, 강하게 그의 목덜미를 수도로 내리쳤다. 그렇게 동료가 쓰러지자, 함께 있던 남자 또한 급히 품속에서 총을 꺼내 들어 준원을 겨누려 했다. 하지만 방아쇠를 당기려 했던 그는 서류 가방을 들고 있던 오봉준에 의해 뒤통수를 얻어맞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 새끼가!”
오봉준의 기습을 예상 못한 남자가 타깃을 돌려, 총구의 방향을 바꾸자 몇 걸음 떨어져 있던 준원이 기습적으로 바닥을 박차고 날아올라 무릎으로 남자의 머리를 가격했다.
“끄학!”
무릎으로 안면을 가격당한 남자가 쓰러지자, 준원은 멈추지 않고 쓰러진 그의 안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단 일격에 남자의 눈이 뒤집어졌다. 사태 파악을 한 오봉준이 급히 손가락으로 남자의 코에 갖다 댔다. 예상대로 남자는 미약한 숨도 흘리지 못했다. 결국 절명한 것이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했느냐. 네가 가진 능력이라면 기절 정도로 끝내도 됐지 않느냐.”
맥이 풀린 듯한 오봉준의 물음에 준원은 아무 말도 않고 발길을 돌렸다. 그러자 오봉준이 그의 어깨를 잡아채 다시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며 외쳤다.
“왜 죽였냐고 묻지 않냐!”
“말했죠. 당신과 난 거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미친!”
“저들은 날 봤고 날 죽이려 했습니다. 단지 그뿐입니다. 결과는 내가 죽거나 저들이 죽거나 둘 중 하나인 거죠. 그리고 이번 판은 운 좋게 내가 살고 저들이 죽은 겁니다.”
“네게는 선악에 대한 개념도 없는 거냐? 네가 생각하기에 뭐가 옳고 그른 건지 모르냐는 거다.”
“내 신념이 옳고 내가 하는 행동이 내겐 법입니다.”
단 한마디로 준원은 자신의 행동을 정의했다. 그리고 후회하지 않았다. 아니, 그는 애초에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시킬 필요도 없었다.
이미 행동이 스스로만의 정의가 되었고 복수가 인생의 목표가 되었다. 그에게 선악의 구분 따윈 필요 없었다. 거창한 선악의 잣대 위에 복수의 탑을 세운 것이다.
‘나는 죽음이 두렵지 않다. 죽는 건 어떤 일보다 쉽다. 단지 내가 두려운 건 실패고, 승리하지 못하는 일이다. 난 결과를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 그것이… 내가 너희를 죽인 이유다. 화가 나고 두렵다면 덤벼들어라. 너희들의 위선보다 선인지, 악인지도 모를 더 큰 위선으로 대응해 주마. 그것이…….’
걸어가던 준원이 다시 뒤를 돌아서서, 시체를 향해 소음기가 달린 총을 쐈다.
“나의 정의다.”
차갑게 시체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빛은 이미, 과거 준원의 것이 아니었다.
6장 새로운 신분 (1)
흥신소를 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살인 사건에 연루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누명을 쓰기 딱 적절해서, 자칫하다간 재판장 앞에서 사형선고 또는 무기징역을 당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흥신소들과 킬러들은 저마다 전용 소각장을 이용한다.
통칭, 주정뱅이 영감이라 부르는 노인의 소각장도 그중 하나였다.
“영감. 처리해 주시오.”
디스 한 개비를 입에 문 오봉준이, 차 트렁크 안에 담긴 두 구의 시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방수포대로 감싸긴 했지만, 차 안은 벌써 냄새로 가득했다. 냄새를 빼려면 한동안 고생해야 할 것 같았다.
“선불이야.”
시체를 가만히 쳐다보던, 주정뱅이 영감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조용히 대답했다. 오봉준도 이런 일에 익숙한지 아무 대꾸도 없이 품속에서 흰 봉투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제야 가만히 앉아서 미동도 없던 영감이 슬금슬금 움직여 시체들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