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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귀 1권(5화)
2장 청성교(4)
그 시간에도 사내들의 발길질과 몽둥이질은 계속되고 있었다.
[자, 더 이상 얻어맞기 싫으면 본좌에게 몸을 맡겨라. 네놈의 몸에는 아무런 해도 가지 않을 것이다. 순식간에 이놈들의 목을 따 버리고 원상태로 돌아오게 해 주지. 어떠냐?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네놈이 좋아하는 계집 앞에서…….]
“크윽…… 싫…….”
“아직도 말할 힘이 남아 있는 거야! 더 밟아!”
“예!”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가 매몰차게 외치자 발길질은 더욱 거세졌다.
하운천은 양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감싼 상태로 단귀륭을 바라봤다. 고통스런 신음 사이로 그의 대답이 들려온다.
“커, 커억! 싫…… 큭, 소. 쿨럭.”
거절의 뜻을 담은 대답. 그것은 한 움큼의 선혈과 함께 흘러나왔다.
“하 공자!”
시뻘건 피를 본 선우초설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소리쳤다.
쇠약(衰弱).
그는 체질 탓인지 보통 사람들 보다 무척이나 허약한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아직 그녀의 짧은 의술 지식으로는 그것이 무슨 체질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저 희귀한 체질이라는 것뿐.
지금 그가 받는 고통은 남들의 두 배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괴로울 것이다.
“도대체 당신들은 누구죠? 누구기에 이런 짓을…… 읍!”
“시끄럽군. 소저는 건들지 않겠소. 그러니 조금만 조용히 계셔 주셨으면 좋겠군. 아, 저 녀석 꼬락서니 좀 보게, 크크.”
사내는 선우초설의 얼굴 크기와 비스무리한 자신의 손바닥으로 그녀의 입을 감싸 쥐며 하운천을 비웃었다.
어느새 하운천은 온몸 여기저기에 멍이 들고 흰 옷은 군데군데 새빨갛게 물든 채 찢어져 있었다. 다행히 얼굴만은 하운천이 이리저리 몸을 비틀며 막고 있었기에 작은 생채기 여럿 외에는 괜찮아 보였다.
“멈춰.”
우두머리인 장발의 사내가 나직이 말했다.
“예.”
그 한마디에 사내들은 손과 발을 멈추고는 하운천을 한 번 더 쏘아본 뒤 장발의 사내 뒤쪽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하운천은 가누기 힘든 몸을 억지로 비틀어 상체를 일으켰다. 온몸이 욱신거리고 쓰라렸다. 태어나서 이런 고통은 처음이었다.
그럼에도 겁을 먹은 기색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눈을 똑바로 뜨고 사내들을 응시했다.
“도대체 나에게 왜 이러는 것이오? 그보다, 큭…….”
말을 하다 말고 이를 악문다. 참기 힘든 고통이 온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잠시 뒤, 하운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 소저는 보내 주시오. 볼일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요? 그러니…….”
“하 공자!”
선우초설이 깜짝 놀라 외쳤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먼저 걱정하는 하운천이 야속했다.
자신은 선우세가의 여식이다. 사내들도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자신을 함부로 하지 못하고 있다.
걱정해 주는 것보다, 차라리 자신과의 친분을 사내들에게 내세웠으면 싶었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밥상의 올라갈 뒷골목 개처럼 두들겨 맞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얘기를 듣고 있던 장발의 사내의 입이 뒤틀렸다. 심기가 불편해 보였다.
“후후, 같잖게 계집년 앞이라고 아직도 주둥이가 살아 있군. 그런 태도가 마음에 안 드셨던 거다. 한 도련님께서는.”
“한…… 수광…….”
하운천은 생각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하지만 이렇게 뒷골목의 무사들을 고용할 줄은 몰랐기에 확신을 못하고 있었을 뿐.
“후우, 역시 한 공자였군. 이런 짓까지 서슴지 않고 저지를 줄이야.”
탄식이었다.
생원이라는 신분, 과거에 합격하면 곧바로 황궁에 입궐해 당금 황제를 보필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자가 이리도 비열한 짓까지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거기다 자신들은 아직 약관도 안 됐다. 벌써부터 때가 타기엔 이른 나이였건만.
“하!”
장발의 사내가 기가 차다는 듯 숨을 토해 냈다. 아직 버릇이 덜 고쳐진 모양.
“매가 부족했던 모양인데.”
사내가 손짓을 했다.
“다시 한 번 밟아. 인정사정 두지 마라!”
“예!”
몽둥이를 든 사내들이 다시금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그들을 본 선우초설의 눈에는 다급함이, 단귀륭에 얼굴에는 답답함이 어렸다.
[애송이 너 지금 뭐하자는 거냐! 저놈들이 다가오는 게 안 보이는 것이냐? 또 얻어맞고 싶지 않으면 당장 내 혼을 받아들여라!]
단귀륭이 외쳤다.
귀신이 된 령(靈)이 산 자의 몸에 빙의를 하기 위해선 그 사람의 의지력이 약해야 한다. 하운천처럼 의지가 뚜렷하고 굳건한 자에겐 령이 마음대로 빙의를 할 수가 없다. 그가 스스로의 의지로 단귀륭의 령을 받아들인다는 마음만 먹는다면, 단귀륭은 쉽게 그의 몸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억지로라도 빙의 상태로 들어갈 수 있지만 그것은 하운천에게나 단귀륭 저 자신에게나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물론 하운천의 몸 안에 내공은 없다.
하지만 내공 따윈 없어도 이딴 삼류 잡배들은 단숨에 쳐 죽일 자신이 있는 단귀륭이다.
거기다 애초에 내공을 쓰려고 하지도 않았다. 남궁 그리고 선우세가의 세력권 안에서 마교의 무공이 나타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가?
마공을 제외한 강하고 화려한 무공.
단귀륭의 머릿속에 그런 무공은 하늘에 수놓아진 별의 수만큼 많았다.
권법과 각법 그리고 보법은 내공을 사용하지 않아도 충분히 강하고 화려했다.
문제는…….
[이 자식아! 정녕 저 자식들에게 쳐 맞다가 피토하면서 죽고 싶은 것이냐!]
“설령 그렇다 해도 내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는 않소.”
하운천의 단호한 의지.
[이 무식한 놈이 진짜!]
머리끝까지 열이 뻗친 단귀륭이 발광을 했다. 물론 하운천의 눈에만 보였다.
그사이, 사내들은 어느새 코앞에 다다라 있었다.
“후후, 이번엔 아예 대가리를 죽지 않게 반쯤만 부셔 주마. 그래야 정신을 차리겠군, 네놈은.”
“그럼 난 저 재수 없는 주둥아릴 찢어발겨 주지.”
“큭큭, 너무 심하게 하지 말라구.”
사내들은 뒷골목의 파락호들답게 거친 말을 내뱉으며 몸에 힘을 주었다. 곧 그들의 손과 발이 움직였다.
다시금 매타작이 시작되려 할 때였다.
“이것 보게. 역시 사람 치는 덴 무림인들보다 뒷골목 건달 놈들이 훨씬 낫다니까. 클클.”
“후우, 저 청년을 보고 있으니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네.”
아무도 모르게 나타난 두 노인.
한 노인은 너덜너덜해진 누더기 옷을 입고 있으나 초연하고 호방한 분위기를 풍겼으며 다른 노인은 새하얀 백풍의를 입어 반듯하면서도 인자한 모습이다.
그 둘은 담장 위에 서서 지금 상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둘을 바라보는 선우초설의 얼굴엔 반가우면서도 안도한 기색이 역력하다.
“홍 방주님! 아버지!”
그녀의 외침.
단지 그것으로 골목길의 분위기는 급변했다. 그녀를 붙잡고 있던 사내는 황급히 만세를 부르며 뒷걸음질 쳤다.
하운천을 둘러싸고 있던 사내들도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우라질!
그들의 머릿속엔 이 말만이 맴돌았다.
그때 백수백발 노인의 입이 열렸다.
“초설아, 내 누누이 말했지 않느냐? 네가 마을을 돌아다니며 의술을 베푸는 것은 허락하겠지만 호위무사는 꼭 데리고 가야 한다고 말이다.”
나이 오십을 넘어서 얻은 늦둥이. 그게 선우초설이다. 그랬기에 그녀에 대한 선우정후의 걱정은 남달랐다.
“이놈아, 꾸중은 나중에 하고 일단 저 냄새나는 놈들부터 정리하게.”
홍 방주라 불린 개방의 방주, 홍야개가 말했다.
그러자 선우정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인자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생명은 거두지 않겠소, 본가는 불살활인(不殺活人)의 세가이니. 그러나 그대들의 만행을 두고 볼 수만은 없겠구려.”
차분한 일갈.
그 한마디로 좌중의 분위기를 압도했다. 그가 내력을 끌어 올리자 주위의 공기가 순식간에 차가워진다.
그가 양손을 서로 교차가 되도록 위로 들어 올렸다, 한순간에 내리쳤다.
촤―악!
양 소맷자락이 펄럭거림과 동시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빗방울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얇은 침(針)으로 만들어졌다.
수백 개의 침들을 한 번에 쏟아 내는 선우세가의 무공.
지천세우(地天洗雨)가 펼쳐진 것이다.
파바바바박!
침들은 일말의 자비도 없이 사내들의 전신에 빽빽하게 꽂혀 버렸다.
사내들은 얕은 신음도 내뱉지 못한 채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에 엄청난 고통이 엄습했지만 사내들은 조용했다. 그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과 충혈된 눈, 그리고 목에서부터 얼굴까지 타고 오른 핏대가 그것을 대신 말해 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본 하운천은 눈이 동그래졌다.
시커먼 무언가가 허공을 뒤덮더니 단숨에 사내들에게 내리꽂혔다. 그리고 사내들이 쓰러졌다.
말 그대로 눈 깜짝할 새에 벌어진 일.
[저 새끼들은 또 뭔데 초를 치는 거야, 제기랄!]
그의 옆에선 단귀륭이 죽일 듯이 선우정후와 홍야개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순간 홍야개가 하운천의 뒤쪽을 물끄러미 바라본 것은.
‘허, 이건 무슨 기운이가? 이런 음산한 기운이…….’
홍야개가 눈짓을 했다.
“이봐, 정후. 일단 이곳에서 자리를 뜨는 게 좋겠군. 터의 기운이 좋지 않은 듯허이.”
“그러지. 내가 초설이를 챙길 테니 자네가 저 청년을 좀 챙겨 주게나.”
단귀륭은 움찔했다. 자신의 기운을 얼핏이나마 느끼는 자. 하단전의 기운이 화후에 이르러 중단전에 오른, 구경(具境)의 경지를 이뤘단 뜻이다.
당금 강호에는 무림인의 경지를 네 단계로 나눈다.
기본적으로 심법과 심공을 이용해 하단전에 내공을 쌓은 자들. 그들의 경지를 초경(初境) 또는 입경(入境)이라 한다.
물론 내공의 양과 무공에 고하(高下) 그리고 싸움에 대한 감각 등에 영향을 받아 삼류, 이류, 일류, 절정, 초절정으로 분류된다.
이때는 임독양맥이 뚫리지 않아 소주천만으로 내력을 운용할 수밖에 없다. 소주천이란 인체 내에서 기운이 오장육부를 관통하여 도는 것을 말한다. 단전을 처음으로 좌협(왼쪽 옆구리), 명치부근, 우협(오른쪽 옆구리) 그리고 다시 하단전을 통해 고리를 이루면서 선회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소주천이다.
하단전의 내력이 충만해지고 화후가 충분히 이뤄지면 기운이 충맥을 통해 중단전으로 오른다.
이때 임독양맥이 뚫림으로써 대주천이 가능하게 된다.
대주천이란 내력이 회음을 걸쳐 독맥을 통해 머릿골에 위치한 이환궁에 닿은 뒤 다시 임맥을 통해 내려와 단전으로 돌아오는 운행을 말함이다. 쉽게 말하면 몸 전체를 관통하여 도는 것.
무인들은 임독양맥의 타통과 함께 구경의 경지를 이루는데 이 경지를 이룬 자들은 작금 강호에 열 명도 채 안 된다.
중단전에 기운이 가득차면 상단전으로 오르게 되는데 이것을 극경(極境)이라 한다. 환골탈태(換骨奪胎)는 이때 이루어진다.
그리고 다시 상당전에 기운이 충만해지면 하, 중, 상의 세 단전이 혼원일체를 이루는 혼원일체경(混元一體境)에 이르게 된다.
이때 반로환동(返老還童)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것은 사실상 전설로나마 전해져 오는 경지나 다름없었다.
살아생전 단귀륭도 극경의 경지를 이루었음에, 구경의 경지를 이룬 자를 만나자 흥미가 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흥. 매듭을 보니 거지들의 왕초로구나. 그럼 오황 중 한 명인 취황이겠군. 저놈은 저 계집의 아비라 하는 것을 보니 선황이 분명하고.’
단귀륭은 하운천과 선우초설을 데리고 가는 두 노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들은 하운천을 치료하기 위해 선우세가로 향했다.
세가의 도착했을 때, 선우초설은 유모가 걱정이라도 할까 사람을 보내 자신의 아버지가 하운천을 초대했고 아마 내일쯤 돌아갈 것이라 말해 두라 일렀다. 다쳤다는 사실은 함구하라고 했다.
“예,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그녀의 호위무사들 중 한 명이 대답했다. 그러고는 방을 나와 하운천의 집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뗐다.
방 안에 혼자 남게 된 선우초설.
하운천은 그녀의 아버지가 데려가 친히 치료 중이었다.
괜찮을까?
어느덧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창문을 통해 바라보며 그녀는 근심 어린 한숨을 내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