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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귀 1권(11화)
4장 유경연곡(4)
홍야개가 선우정후와 시선을 교환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이냐고 묻는 홍야개의 시선에 선우정후도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다.
“어떻게 저 아이가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인가……? 거기다 이 기운은…….”
마기다.
마교의 무인들이, 마인들이 가지는 기운.
자신이 그를 치료했었다. 심지어는 그의 몸을 살피기까지 했는데도…… 알아채지 못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말도 안 되지만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지.”
홍야개가 그를 경각시켰다.
그랬다. 이미 벌어진 일, 정리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궁금한 것은 사실이니. 홍야개가 고개를 돌려 견소소에게 물었다.
“저 아이도 유경연곡의 핏줄인가? 아니면…….”
자신들이 모르는 또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인가?
견소소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질문도 듣지 못했던 듯, 여전히 단귀륭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후, 결국 저 아이도 죽어야 할 운명이었던가?”
홍야개가 나직이 중얼거렸다. 개방은, 청령맹은 하운천이 견소소가 신분을 숨기기 위해 납치한 아이로 판단하고 있었다.
유경연곡은 여인들의 문파. 사내아이가 핏줄일 리는 만무하다.
마교와 관련된 인물인가?
이런저런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남은 세 명의 영천무하대 무사들 중 두 명이 단귀륭에게로 날아들고 있었다.
각을 쓰는 무사의 발이 바닥을 쓸었다.
그 진로에 단귀륭의 다리가 있어, 단숨에 부러뜨릴 기세.
허공에선 날카롭게 빛나는 한 자루의 도가 단귀륭의 목을 노렸다.
서슬 푸른 기운이 맺혀 있다.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는 듯.
쩌엉!
콰악!
단귀륭은 도신을 쳐 내며 들어 올린 다리를 강하게 찍어 내렸다. 공격해오던 무사의 발이 그대로 짓밟혀 부러졌다.
“끄악!”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무사를 뒤로하고 단귀륭은 다시금 날아드는 도를 살짝 밀어내 옆으로 흘려 냈다.
그와 동시에 왼손으로 도를 쥔 손목을 낚아채며 오른손을 가면 위로 내질렀다.
퍼억!
가죽 북이 터지는 소리와 함께 무사의 머리가 산산조각이 났다. 부들부들 떨리다 허물어지는 몸뚱이.
단귀륭은 어느새 빼앗아 든 도를 돌려 쥔다.
날카로운 도신이 아래로 향했다. 그 끝에는 부러진 다리를 움켜쥔 채 벌벌 떨고 있는 무사가 있었다.
단귀륭은 무심한 눈 그대로 도를 내리찍었다.
푸욱!
도가 무사의 심장 깊숙이 틀어박혔다. 가면 사이로 스멀스멀 흘러내리는 피.
“저런!”
홍야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괴물 같은 무력!
그때, 남은 한 명의 무사가 홍야개가 들고 있던 자신의 검을 빼앗다시피 하여 단귀륭에게로 달려들었다.
다소 무례한 행동이었으나.
“그만, 멈춰라!”
홍야개는 그런 건 상관없다는 듯 그를 제지했다.
죽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무사는 멈추지 않았다.
가면에 가려 보이진 않으나 분명 분기탱천(憤氣?天)한 얼굴일 것이다.
무사는 모든 내공을 끌어 올렸다. 일격에 모든 것을 건다.
그의 검이 하나에서 둘, 둘에서 넷, 넷에서 여덟으로 늘어나 단귀륭의 요혈들을 찔러 들어갔다.
자신이 가진 극상의 절초.
청월팔변격검(靑月八變擊劍)!
홍야개도 놀라고 선우정후도 놀랐다.
저것은 분명 검황 모용단휘의 검초 중 하나.
하지만.
“난잡하군.”
별 감응 없다는 단귀륭의 말투.
그가 한 발을 앞으로 내디디며 기수식을 취하자, 오른손으로 태풍 같은 기운이 몰려들었다.
그가 일 장을 뻗었다.
연이어 터져 나가는 이 장, 삼 장…… 팔 장.
콰콰콰쾅!
번개같이 뻗어 나간 장력들은 무사의 검들을 부러뜨렸다.
그리고 마지막, 아홉 번째의 장력.
퍼석!
격중당한 무사의 머리가 형체도 남기지 못했다.
영천무하대의 전멸.
청령맹의 맹주를 호위하는 다섯의 무인, 그들이 죽었다.
‘이걸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선우정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 아이가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는 것도 놀랍고, 그것이 마교의 무공이라는 것도 놀랍지만 지닌바 무력이 상식을 뛰어넘는다.
어찌 저 어린 나이에 저 정도의 무력을 지닐 수 있단 말인가?
순식간에 영천무하대가 몰살당했다.
물론 세 명뿐이긴 했지만 그들 개인의 무력은 자신과 엇비슷한 수준.
저벅저벅.
단귀륭이 천천히 건물의 입구에서부터 돌계단을 밟고 내려왔다.
그예 움찔하는 선우정후. 그가 고개를 돌려 홍야개를 바라본다.
“홍가야…….”
홍야개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단귀륭과 마주 서게 된 그.
“네놈. 정체가 무엇이냐? 어찌하여 마교의 무공을 익히고 있는 것이지?”
의아한 점을 묻는다.
이런 무력을 지니고 있었으면서도, 청성교에선 한낱 파락호들에게 몰매를 맞고 있지 않았던가? 어쩌면…….
“무슨 꿍꿍이란 말이냐? 혹 마교의 인물인가? 마령혈단을 노리는…….”
하나, 단귀륭은 묵묵부답.
그의 시선은 견소소를 향해 있었으니 홍야개로서는 무시를 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놈! 기세가 등등하구나!! 어디 나중에도 그렇게 노부를 무시할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
홍야개가 소리치며 품속에서 청록빛을 띠는 봉을 꺼내 들었다.
개방 방주의 신물인 타구봉.
영천무하대의 무사 두 명을 물리친 견소소를 상대할 때도 꺼내지 않았던 그다. 그만큼 단귀륭이 만만치 않음을 느낀 것.
홍야개는 봉을 쥔 손은 중단세를 취하고 텅 빈 왼손은 가지런히 뒷짐을 지었다. 하체는 약간 구부정한 자세. 개천타구봉법(開川打狗棒法)의 기수식이다.
그는 단귀륭과의 거리가 가까워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벅저벅.
삼 장…… 이 장…… 그리고 일 장!
촤아악!
홍야개가 초연하면서도 호방한 기세로 봉을 휘두르며 단귀륭을 덮쳤다.
그때!
견소소를 바라보던 단귀륭의 시선이 홍야개에게 옮겨졌고, 그 순간 홍야개는 등골이 오싹해짐을 느끼며 뻗어 나가던 공격을 회수한 채 뒤로 물러났다.
‘무슨 사람의 눈빛이…….’
이질적이면서도 오금이 저릴 정도의 기운.
그런 홍야개를 바라보며 단귀륭이 나지막이 말했다.
“꼬릴 말은 개새끼의 모습이군.”
그의 빈정거림에 홍야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흥분하여 달려들진 않는다.
“클클, 새파랗게 젊은 놈이 입이 험하구나. 그것이 본모습인가? 서생은 그저 신분을 숨기기 위한 눈속임이고 말이다.”
“신분을 숨겨? 뭘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는 거야?”
“복잡하게라……. 그렇지, 노부가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간단한 방법이 있었던 것을.”
홍야개가 재차 타구봉을 가슴팍까지 들어 올렸다.
간단한 방법, 그것은 무력행사뿐.
단귀륭의 입꼬리도 씨익 올라간다.
“시간도 별로 없으니 빨리 끝내자고, 거지 영감.”
5장 맹세(1)
남궁세가(南宮世家).
안휘성의 성도인 합비에 자리하고 있으며, 중검(重劍)과 쾌검(快劍)의 조예가 깊음.
정파 무림의 여섯 기둥인 육대세가 중 하나.
독문검법인 진룡무궁검법(眞龍舞穹劍法), 구극천왕검(究極天王劍)은 능히 강호백대검법 중 상위를 차지할 만함.
신물인 청천검(靑天劍)과 최고 심법인 천뢰제왕신공(天雷帝王神功)은 정마혼전 이후, 태황 남궁천웅의 실종과 함께 사라졌다고 알려져 있음.
현 가주, 남궁벽은 남궁천웅의 손자이며, 오황팔존(五皇八尊) 중 팔존의 일 인.
그에겐 아들 두 명이 있으며…….
무림비록(武林秘錄) 정(政), 가문 편, 남궁세가 중
***
늦은 밤.
시린 달빛과 탁자 위 호롱불을 벗 삼아 남궁벽은 무언가를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빳빳한 서찰.
누구의 손도 거치치 않은 채 곧바로 날아온 듯.
남궁벽은 서찰의 마지막 줄을 훑으며 곧바로 그것을 접어 품속에 갈무리 했다.
구―우, 구―우.
“하하, 알겠다.”
때마침 전서구가 울음소리를 내자 남궁벽은 손톱만 한 먹이를 건네주었다.
그것은 부리로 먹이를 몇 번 쪼아 대더니 이내 입에 물고 창밖으로 몸을 날린다.
멀어지는 전서구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는 남궁벽.
조사해야 할 것이 있으니 가급적 생포하라 했다.
무엇을 조사한단 말인가? 알아낼 것은 마령혈단의 연단법뿐일 것인데.
“군사가 원하는 건 결국 그것이겠지.”
청령맹의 군사.
제갈우현.
마령혈단을 원하는 것이다.
마령혈단의 연단법을 알아내, 동녀(童女)의 생혈을 대체할 수 있는 원료(原料)를 찾아낼 수 있다면.
“선우세가가 있으니, 군사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그렇다면 그것은 더 이상 마약(魔藥)이 아니다.
무인들이 바라 마지않는 희대의 영약이 될 터.
“홍 장로가 일 치르기 전에 빨리 가 봐야겠구나. 지금쯤 선우세가에 있을 터였다?”
남궁벽은 자신의 애검(愛劍)을 집어 허리춤에 둘러매고는 방을 나섰다.
바깥으로 나오니, 자신의 아들이자 남궁세가의 소가주인 남궁수혁이 서 있다.
“이제 나오십니까?”
“허허, 어찌 알고 기다리고 있었던 게냐?”
그저 싱긋 웃어 보이는 남궁수혁.
이립(而立, 30세) 중반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무척 젊어 보였다.
“소자가 보필하겠습니다.”
그의 뒤로 세 명의 무사도 보인다.
남궁벽이 인자한 미소를 머금으며 돌계단에서 내려와 앞장섰다. 자연히 뒤따르는 남궁수혁과 무사들.
“하하, 쓸쓸하진 않아 좋구나.”
기분 좋은 웃음이다.
그들은 남궁세가의 정문을 나서 일 다경(15분) 정도를 걷다가 인적 드문 곳에 도착하자 멈춰 섰다.
“선우세가까지 빠르게 이동할 것이다.”
“예.”
남궁벽이 명하고 남궁수혁이 대답하며 무사들을 바라본다. 무사들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파악!
파악!
그들은 순식간에 용수철 튀어 오르듯 날아올라 담장을 넘어 건물의 지붕을 밟는다. 아니 밟는 순간 이미 다시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도심을 빠져나오자 수풀이 우거진 숲 속, 그러나 거리낌 없다.
마치 새들이 날아다니는 듯한 움직임.
인마(人馬)로도 두 시진 정도가 걸리는 거리다.
그것이 선우세가와 남궁세가의 거리이건만, 그들은 채 한 시진도 안 되어 선우세가의 정문에 당도해 있었다.
“이상하구나.”
남궁벽이 말했다.
선우세가는 무가이나 의가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밤에도 낮에도 불 꺼질 일이 없는 곳, 하지만 오늘은…….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고, 무엇보다 어둡구나.”
정문도 굳게 닫혀 있다. 언제라도 생길 수 있는 환자를 위해 항상 열려 있어야 할 정문인데도 말이다.
그때, 무언가 이상한 점을 느낀 듯, 남궁수혁이 입을 연다.
“아버님.”
“그래, 이 기운은 마기…… 거기다 혈향까지…….”
남궁벽이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답했다.
두 기운이 서로 부딪치고 있다. 마기의 기운을 가진 자와 또 하나는 익숙한 기운…… 홍야개다.
거기다 피 냄새가 코끝을 찌르니 사상자도 있는 듯.
“담을 넘는다.”
남궁벽이 짤막하게 말하며 먼저 몸을 날렸다. 그 뒤를 남궁수혁과 세 명의 무사들이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