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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제일귀 1권(16화)
7장 수련(2)
그렇게 일 다경이 반 시진, 반 시진이 한 시진 정도가 되었을 때, 하운천의 눈썹이 살짝 흔들렸다.
단귀륭도 느꼈다.
내부에서의 움직임. 바다 위에 비 한 방울 떨어진 정도의 파동.
정말 딱 그만큼이었지만, 한 시진 만에 그만큼의 성장을 보였다.
‘기대도 안 했는데 이럴 수가…….’
기대? 웃기지도 않는다.
세상 그 어느 누가 영약을 먹고 얻은 기운을 한 시진 만에, 느끼는 걸로도 모자라 움직여 보이기까지 한단 말인가?
단귀륭의 애초 목적은 무공을 익히는 데에 있어 그것이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일인지를 깨우쳐 주기 위함이었다.
‘네놈은 정녕 무(武)에 대한 재능을 타고난 것이란 말이냐? 본좌가 네놈을 만난 것이…… 우연이 아니었단 말이냐?’
단귀륭의 핏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자신이 살아 있었다면 흥분으로 인해 심장이 뛰고 등골이 서늘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만큼 하운천의 재능은, 실로 상식을 뛰어넘었다.
단귀륭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하운천을 불렀다.
[애송이, 그 정도면 충분하다. 설마 네 녀석이 그 정도까지…….]
멈칫하는 단귀륭. 순간, 머리끝이 쭈뼛쭈뼛 곤두서는 기분을 느꼈다.
[이런 미친!!]
경악의 연속이다. 미약했던 내공의 움직임이 어느새 태풍처럼 기세를 피워 올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 서슬에 하운천의 얼굴에도 괴로움이 가득했다. 이를 악물고 있는지, 얼굴 근육은 경련을 일으켰다.
내공은 단전의 주위, 오행의 경로를 따라 마구 휘돌고 있었다. 주천(周天)을 할 때마다 그 위력을 더해 가니 이제는 하운천의 온몸이 덜덜 떨리기까지 한다.
[그 노친네는 도대체 무얼 먹인 거냐!]
정신을 잃은 하운천의 입속으로, 윤괴춘은 싸하면서도 창연한 기운의 환단을 먹였었다. 단귀륭은 그 옆에서 그저 그런 영약이니 했었는데…….
맹수처럼 날뛰는 이 기운은 그저 그런 영약의 기운을 훨씬 웃돌고도 남았음이다.
단귀륭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기운을 억제하려고 하지 말고, 밑 독 빠진 항아리의 물 흐르듯 흘려보내거라!]
그러나 벼랑길을 구르는 주먹만 한 눈덩이가 집채만 하게 불어난 꼴이다. 그것을 자연히 흘려보낸다? 가능했다면 이미 그랬을 것이다.
하운천은 내부가 진탕이 되는 고통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자 곧,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쿠오오오!
이제는 남이 봐도 확연히 느껴지는 기운. 하운천의 주위로 일진광풍이 치솟았다.
단귀륭은 속이 타들어 갔다. 이대로 간다면 하운천의 오장육부는 갈가리 찢겨져 버릴 것이다.
그렇게 놔둘 수 없다. 하운천도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일순, 단귀륭의 뇌리로 무언가가 번쩍 스쳐 지나갔다.
[애송이! 선우세가에서 본좌의 움직임을 기억해 내 보아라! 본좌가 내공을 어떻게 다스렸고, 어떻게 내쏘았는지 기억해 내라! 내공을 두 손바닥으로 집중시켜라! 이것은 네 녀석의 의지가 강하다면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서!]
호랑이의 울음소리같이 쏘아 내는 일갈.
‘내 의지?’
하운천은 이를 악물었다.
이런 것에, 자신의 기운에 의해 무너져 버리려고 이곳에 온 게 아니다.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 해내야 한다는 마음가짐. 그것이 자신의 의지다.
태풍이 되어 그의 내부를 휘저어 놓던 내공이 어느새 그의 양팔로 흘러 들어갔다.
찌익!
소맷자락이 마구 펄럭거리다 그 서슬에 못 이겨 찢겨져 나갔다. 잿빛 기운이 그의 손바닥에 운집되더니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단귀륭이 안광을 쏘아 내며 외쳤다.
“애송이! 지금이다!!”
허벅지 위에 올려 있던 하운천의 양팔.
순식간에 일직선으로 뻗어 나갔다.
꽈과광!
산 전체를 진동케 하는 위력과 함께 대지를 울리는 굉음!
무지막지한 기운을 쏘아 낸 하운천도 한 움큼의 핏물을 토해 내며 뒤로 튕기듯 날아가 버렸다.
하나, 그런 그를 쳐다볼 겨를도 없는지 단귀륭은 눈알 튀어나올 듯이 두 눈을 부릅뜨고 하운천이 만들어 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후두둑 떨어져 내리는 돌덩이들과 함께 주위를 삼켜 버린 흙먼지가 걷혔다.
모습을 드러내는 동굴.
암흑처럼 어두운 그 속은 깊이를 가늠하지 못할 정도다. 마치 전설 속의 용이 그 안에 살고 있다고 해도 믿을 정도의 크기.
없으면 만들면 된다는 단귀륭의 말대로, 하운천은 의도치도 않게 동굴을 만들어 버렸다.
[허, 몇 달 동안의 걸쳐 내력 운용의 수련과 함께 어기충(御氣充)의 경지로 들어서면 동굴을 파내게 할 셈이었는데…….]
아직도 놀람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단귀륭의 음성. 그는 잠시간 그 광경을 더 지켜보다가 하운천에게로 날아갔다.
뒤로 튕겨나가는 도중 나무에 부딪쳤는지 몸이 앞으로 허물어진 채 쓰러져 있는 하운천을 단귀륭은 귀기를 일으켜 허공으로 띄웠다. 두둥실 떠오르는 몸은 다행히 큰 내상은 아닌 듯.
단귀륭도 다소 안심하며 그를 데리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
어느새 밤이 깊어, 유난히도 밝았던 달빛. 그 달빛이 사라지고 다음 날이 돼서야 하운천은 깨어났다.
“크윽…….”
마치 칼로 난도질을 당한 듯한 고통을 주는 배를 움켜쥐며 일어서는 그.
고통도 잠시…….
무척이나 어두워 주위를 둘러보니 빛 한 점 보이지 않는다. 아니, 빛이 있다.
맹수의 그것처럼 빛나는 시뻘건 눈!
“허억!”
본능적으로 숨을 들이켠 하운천은 그 눈이 곧 단귀륭임을 알아챘다.
[애송아, 네놈은 왜 항상 깨어날 때마다 그 모양이냐?]
하운천은 그저 어색한 웃음만 지을 뿐, 당최 적응이 되지 않는 단귀륭의 홍안(紅眼)이다.
“그건 그렇고, 단 사부. 어떻게 된 것이오? 소생이 내공을 쏘아 내면서 그 충격에 튕겨나가 정신을 잃은 것까진 기억이 나오만, 이 동굴은……?”
단귀륭은 씨익 웃어 보였다.
[네 녀석도 어지간히 바깥에선 잠자기 싫었던 모양이구나.]
“……?”
[그런 게 있다. 어떠냐? 속은 괜찮으냐?]
하운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통은 있지만 적응이 되자 심한 정도는 아니고, 거동에도 불편함이 없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자신의 행낭을 찾았다. 한데…….
“해, 행낭이!”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있었던 행낭이 없어져 버렸다. 깜짝 놀란 하운천은 자리에서 튀어 올라 동굴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잠시 뒤.
“단 사부!!”
그의 목소리와 쿵쾅대는 발소리의 울림과 함께 하운천은 동굴 안으로 다시금 들어왔다.
“내놓으시오!”
걱정 반, 분노 반이 섞인 그의 목소리.
단귀륭은 내심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이 자식이! 지금 본좌를 의심하는 것이냐? 본좌가 무엇하러 네놈의 행낭을 숨긴단 말이냐! 우리가 이곳에 그런 장난이나 치러 온 줄 아는 것이냐!]
그 호통 소리에 하운천은 움찔했다.
어둑해서 잘은 안 보이나 그의 표정과 분위기로 보아 그는 아닌 듯했다.
“후우, 그렇다면 산짐승이 주워 가기라도 한 것인가? 쓰러지는 바람에 미처 챙기지 못하다니, 이런…….”
자신의 잘못이다. 물론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서이긴 해도, 중요한 물건이었던 만큼 자신이 잘 챙겼어야 했다.
그가 자책하는 사이.
‘큭큭큭.’
들키지 않게 숨을 죽이고 마구 웃어 대는 단귀륭이다.
산속에서의 수련에 있어, 그런 것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이다. 무릇 산속이란 자연이고, 자연과 하나됨에 있어 깨우치는 바가 많을 것이니.
단귀륭은 힘들게 웃음을 멈췄다. 그러고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던 하운천을 불러 세운다.
[걱정은 나중에 하고, 수련 준비를 하거라.]
“……예?”
[토끼 눈 뜨지 말고 어서 준비하거라.]
하운천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이제 막 깨어난 자신이다. 그런 그에게 수련 준비라니.
[뭐하느냐? 분명 본좌가 아까 전, 괜찮으냐고 물어봤을 때 그렇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건 그렇지만…….”
단귀륭이 진중한 어조로 충고했다.
[이거 하나만 말해 두지. 지금 네놈이 이렇게 어물거리는 사이에도, 그녀는 꽤 힘든 고통을 견뎌 내고 있을 것이다.]
꾸욱.
심장이 조이듯, 묵직한 쓰라림이 가슴 전체에 번졌다.
그랬다. 견소소, 자신의 어머니는 지금…….
‘아니, 괜찮으실 거다. 분명 괜찮으실 거야.’
고개를 홱홱 저어 버리는 하운천.
그에 자신의 안일했던 마음가짐도 떨쳐 버렸는지, 결연함이 가득 묻어나오는 눈빛으로 단귀륭을 바라본다.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끄덕이며 동굴 밖으로 몸을 날리는 단귀륭.
하운천이 그를 따라나서고, 잠시 뒤 둘은 동굴 근처에 있는 꽤 큼지막한 바위 위에 올라가 있었다.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은, 네 하단전에 있는 내공을 네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제 것으로?”
[그렇다. 본디 영약이 품고 있는 기운은 순수한 자연의 기운이긴 하나, 그 안에 축적되어 있음으로써 영약의 성질에 영향을 받아 변질되기 마련이다.]
가령, 만년설삼의 기운은 음의 기운이고 구화만지초의 기운은 양의 기운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어젯밤 하운천의 몸 안에 내공이 폭주한 것도 그 이유다.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기 때문.
하운천은 가부좌를 틀었다.
천마대력신공의 구결을 읊조리며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단전 안의 기운을 운용했다.
호된 경험 때문인지, 아니면 타고난 재능이 특출해서인지는 모르나, 어제와는 다르게 확실한 운기였다.
한줄기 내공이 구결에 따라 소주천을 하여 순화되면, 다시금 단전 안의 다른 기운이 솟아올라 주천을 이어 갔다.
순화된 기운들, 그것은 곧 마기(魔氣)였다.
기운을 갈무리하는 법을 모르니 자연, 하운천의 몸에선 서서히 옅은 마기가 피어올랐다.
미약하나 마기는 마기.
그것에 도취된 듯, 단귀륭의 눈이 초승달을 그렸다.
‘큭큭, 이것이다!’
백 년 만에 느껴보는 기운, 그리고 그토록 고대하던 기운.
[드디어 애송이 네가 본좌의 무공을 익히는 구나, 드디어…….]
흡족한 표정이다. 단귀륭은 이 순간을 잊지 않으려는 듯 한참 동안 하운천을 내려다보았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언제고, 네 녀석이 본좌 대신 해 줘야 할 일이 있다. 이 부탁이 본좌의 무공을 전수해 주는 대가다. 알겠느냐? 애송이…….]
하운천은 듣지 못한 듯, 여전히 운기의 집중하고 있었다. 하나 단귀륭은 신경 쓰지 않았다. 하운천의 입꼬리가 살짝 밀려올라가는 것을 보았으니.
두 시진.
하운천의 운기는 두 시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가 살며시 눈을 떴다.
번갯불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흑광(黑光)!
하운천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몸을 살폈다. 통증이 없다. 찌를 듯이 타오르던 내부의 고통도 전부 사라졌다.
[놀랄 것 없다. 원래 그런 것이니.]
하운천은 ‘왜 그런 것인가’라고 물어보려다 멈칫했다.
설명을 듣지 않아도 이해가 되는 기분이다. 그만큼 무공이란 것은 알면 알수록 심오하고 대단했다.
[내일부터는 한 시진이면 충분할 것이다. 오늘은 내상 때문에 길어졌을 뿐. 자, 따라오거라.]
“예.”
앞장서는 단귀륭, 하운천은 바위 아래로 내려서 그를 뒤따랐다. 그리고 멈춘다. 두 발짝만을 움직였는데 단귀륭이 멈춘 것이다.
그가 울퉁불퉁한 절벽을 가리켰다.
[올라가라.]
하운천은 당황하여 말없이 절벽을 가리켰다. 지금 말하는 게 이 절벽이냐는 듯.
단귀륭이 끄덕이자, 캑캑거리며 헛기침을 하는 하운천.
[무공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위 중 하나라 말할 수 있는 하체. 무기를 휘두름에 있어 필요한 근력과 유연성, 끈기와 인내. 보통 때에는 사용되지 않는 신체 부위와 근(筋)까지. 최상의 수련 방법이다.]
친절한 설명에도 하운천이 망설이는 기색을 보이자 단귀륭이 눈썹을 치켜세웠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말라는 눈빛.
하운천이 절벽 앞으로 바짝 붙어 섰다.
올라갈 수 있을까? 자신이?
순간, 피식 웃어 버리는 하운천. 아직도 이런 나약한 소리나 늘어놓고 있다니. 자기 자신이 너무나 한심해서 화가 치밀었다.
하운천은 손을 뻗어 절벽의 튀어나온 부분을 틀어잡았다.
“끄……윽!”
비틀린 신음성과 함께 굵은 힘줄이 솟아났다. 이마엔 핏대가 툭툭 불거져 나왔다.
턱.
이번엔 반대쪽 손이 절벽의 한 곳을 짚었다. 그 후, 차례대로 올라가기 시작하는 오른발, 왼발.
[호오……!]
단귀륭은 내심 놀랐다. 굼벵이와 같은 속도이나, 조금씩 올라가고 있는 게 아닌가.
이번에도 자신의 예상을 깨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