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천주쌍의 1권(3화)
一章 과거로 돌아오다(3)
수중무검(手中無劍)!
어검술!
허공을 유영한 검이 한 바퀴 돌아 천살에게로 돌아가며 강기를 흘렸다.
천살 옆에 떠오른 하나의 검은 완벽한 어검이 되어 공간을 꿰뚫고 날아들었다.
노리는 것은 장유의 심장!
뒤늦게 천살의 공격 대상을 눈치챈 악유선이 창끝으로 어검을 걷어 내기 위해 날아들었으나, 아쉽게도 한 호흡의 차이로 천살의 검이 더 빨랐다.
순식간에 꿰뚫리는 장유의 심장.
불에 댄 듯한 화끈한 감각이 심장 언저리를 지배하며 순식간에 무기력감이 몸 전체로 퍼져 나갔다.
장유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심장에 박혀 있는 검의 손잡이를 바라봤다.
손잡이 앞으로 살짝 드러난 검날에는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왈칵 계속해서 흘러넘쳤다.
의원인 자신이 봐도 이건 가망이 없었다.
‘이대로 정파의 부흥도, 천수의곡의 부흥도, 어느 것 하나 이루지 못하고 가는 것인가?’
허무, 무기력, 무능력, 자책, 분노, 비통, 슬픔.
온갖 감정이 그의 몸을 지배했다.
장유가 악유선을 바라보며 힘들게 힘을 열었다.
입에서는 기도부터 치고 올라온 피가 한 움큼 가득했기에, 그가 입을 열 때마다 핏덩이가 토해졌다.
“쿨럭! 형님…… 저 이대로 가나 봅니다. 쿨럭쿨럭…….”
“그만! 입을 열지 말게 아우. 말하지 말란 말일세…….”
“쿨럭! 쿨럭! 정파의…… 쿨럭! 부흥을 지켜보고…… 싶었…… 쿨럭…….”
‘힘이 있었다면, 조금만 더 강했다면, 내가 천살보다 강해서 천살을 막을 수 있었다면…… 의곡도 정파도……. 모두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삼재심법과 검법 외에 쓸만한 무공 하나 배우지 않았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무공은 사치라고 생각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의 눈에 헤죽헤죽 비웃음을 짓고 있는 천살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미 몸 전체로 죽음이 퍼졌는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었지만, 그는 온힘을 다해 팔을 들어 올려 천살을 향했다.
“쿨럭! 네놈,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꼭 네놈을…… 쿨럭…….”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전생에도, 현생에도, 내세에도 말이다.”
눈앞이 흐려졌다.
그리고…….
***
“큭!”
심장 언저리가 다시 아릿아릿해 오자 장유의 몸은 순간 비틀거렸고, 물지게에 들어 있던 물의 일부가 흘러넘쳤다.
“앗! 차가워.”
흘러넘친 물이 장유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그 물의 양이 적지 않아 그는 비에 젖은 생쥐 꼴이 되었다.
상념에서 빠져나온 그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모습을 살폈고, 젊어진 피부와 아직까지 멸망하지 않은 의곡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내가 과거로 돌아온 것인가?”
현 상황을 설명하기에 가장 타당하였으나,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대충 추측해 보건데 아마도 아홉 살? 열 살 무렵인 거 같은데?’
그런 그의 머릿속에 문득 도가의 한 구절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되었으니, 이것은 내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꾼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나비가 내가 되는 꿈을 꾼 것인가?’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이었다.
문득 이 구절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이유가 무엇일까?
“내가 지금까지 꿈을 꾼 것인가?”
그럴지도 몰랐다.
일장춘몽(一場春夢). 하나의 긴 꿈을 꾼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꿈인지, 과거인지…….
그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하늘이 자신의 부탁을 들어준 것인지도 모른다. 다시 태어난다면, 천살을 죽여 버리기로 했으니까.
과거와 달리 천살이 없다고 하여도, 아직 확인된 것은 없으니 준비할 것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
二章 무학을 익히기 위해 배움을 청하다(1)
장유의 추측대로 그는 나이 아홉 살 때 의생관에서 수업하던 당시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는 전생과 마찬가지로 그 무렵 자신이 받든 수업에 충실하게 참석했다.
“흔히 약초(藥草)라고 하지만, 풀만이 아니라 목본식물은 물론 버섯 등도 약초에 포함된다. 거기, 졸지 말고 들어라.”
약초학 수업은 담당 스승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일품이라 몰려오는 졸음을 참기가 상당히 힘든 수업 중 하나였다.
“신선한 그대로를 약으로 이용하기도 하고, 건조시키거나 삶아서 이용하기도 하며, 성분을 추출하여 화합물을 만드는 데 이용하기도 한다. 필기는 안 할 거냐?”
그의 손에서 날아간 바둑돌이 정확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졸음 수업을 하고 있는 학생의 이마에 명중했다.
“악! 크으…….”
“한 번만 더 졸면 벼루를 집어던질 테니, 알아서 처신하도록 해라.”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약초학 입문서의 앞 장을 다시 소리 내서 읽었다.
“인간이 식물을 약용으로 쓴 것은 선사시대부터로 추정된다. 약 삼천사백 년 전, 대륙의 신농씨가 약으로 식물을 이용했다는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비록 야사이기는 하지만, 알아 두면 유용할 것이야. 서역의 식물학은 식물을 약으로 이용하려는 데에서 출발하며, 그것이 번역되어 일부가 대륙으로 흘러 들어왔다. 그래서 대륙의 약초학이 의학의 부분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도움이 되었지.”
그의 눈이 힐긋 장유에게로 향했다.
요 며칠 사이 확연하게 달라진 수업 태도 때문이었다. 이전처럼 꾸벅꾸벅 졸면서 수업에 임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졸지 않고 진지한 태도로 수업을 받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손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필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스승으로서는 환영할 만한 자세이고, 괄목상대(刮目相對)하는 모습을 칭찬해 주어야 하건만, 하룻밤 새에 저렇게 바뀌었다는 점이 의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수업 중이었기에, 그는 잡생각을 잠시 덮어 두고 계속해서 수업을 진행했다.
“종류로는 크게 균조 식물, 선태식물, 양치식물, 종자식물의 네 가지로 분류한다. 이중 종자식물이 전체의 팔 할 이상을 차지한다. 균조 식물은 균류와 조류로, 물속이나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자라며, 해대(海帶), 복령 등이 있다. 선태식물은 우산이끼와 솔이끼 등으로, 그 종류가 매우 적다. 양치식물로는 석위(石葦)와 해금사(海金砂), 면마(綿馬) 등이 있다. 기억해 두도록.”
그리고는 장유를 불러 세운다.
“장유, 일어나 보도록.”
“예, 스승님.”
그의 부름에 바로 일어나는 장유였다.
예전에는 졸다가 당황하며 일어났을 것인데, 지금은 칭찬받아 마땅한 태도를 보였다.
“해금사는 어떤 효능이 있는 거지?”
“버섯류의 성숙된 포자로, 열(熱)을 내리고 해독하며, 소변을 잘 나오게 하고, 통림(通淋)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대답도 막힘이 없었다.
“그럼 어떤 경우에 사용하면 효과적인가?”
“요로 감염, 요로결석, 백탁(白濁), 백대(白帶), 간염, 신(腎)의 화(火)로 인한 수종(水腫) 등을 치료하는 데 효과적입니다.”
막힘없는 대답이 다시 한 번 이어지고 나서야 스승의 눈에 웃음이 걸렸다.
늙은 나이로 인해 눈 주변의 주름이 자글자글했지만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하고 있는 제자를 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아주 잘했다.”
그의 칭찬에 장유가 고개를 숙여 예를 취하며 마주 답했다.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입니다.”
“허허, 좋구나. 좋아. 하지만 모난 돌이 정 맞는 법이고,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법이다. 이 말을 항시 잊지 말거라.”
아무리 뛰어나더라도 겸손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뛰어난 제자를 걱정한 스승의 조언이었다.
그리고 그런 스승에게 또 한 가지 걱정이 있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저 아이를 저렇게 변하게 했는가?’
의문이었다.
그 원인이 좋은 일이기를 바랐고, 설사 좋지 않은 이유라고 할지라도 잘 이겨 내기를 바랐다.
“이제 곧 점심시간이 시작되겠구나. 오늘 수업은 여기서 파하도록 하겠다.”
스승의 입에서 수업을 파한다는 소리가 나오자, 제자들은 주섬주섬 책보를 챙겼다.
모두 식당을 향해 갔으나, 장유는 다른 곳으로 가고 있었다. 그가 향하는 곳은 원무관(元武館)이었다.
천수의곡은 의생관(醫生館)과 원무관(元武館), 두 개의 관(館)으로 나뉜다.
의생관은 장유가 다니고 있는 순수 의원 희망자들이 다니는 곳이었고, 원무관은 무림인이자 의원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노리는 이들이 다니는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두 관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의생관 쪽에서는 의술만을 가르쳐 순수 의원을 양성하고, 원무관 쪽은 무공 수련을 주로 하고 의술을 곁가지로 곁들이니, 수련의 목적이 다른 두 관의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한데 의생관생인 장유가 원무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
의생관은 점심시간이었지만, 원무관에서는 아직도 수업 시간이었다. 점심시간이 다르기 때문이다.
의생관과 원무관의 학생 수를 모두 합치면 적지 않은 규모였다. 하나 천수의곡의 식당은 크지 않았기에 시간 차이를 두고 점심시간을 시행하고 있었다.
원무관에 들어서자 의생관에서는 볼 수 없던 광경이 펼쳐졌다.
수업 자체도 의생관과는 상당히 달랐다. 그들은 의원과 무인으로서의 삶을 모두 지향하기에 깊이 있는 의학이 아니라 무림인에게 사용할 수 있는 응급처치를 배웠다.
한데 응급처치를 어떻게 배울까?
자기 몸에 자기가 칼질한 후 상처를 만들어서?
훌륭한 헛소리라고 할 수 있겠다.
지방의 소규모 의방에서도 의생을 교육시킬 때 의생에게 자해하라고 하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의방 계통에서는 최고를 달리는 천수의곡에서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원무관생들이 응급처치를 실습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통으로 자른 통나무 위에 먹물로 사람의 혈맥을 그려 놓고, 그 위를 스승들이 지나다니며 먹으로 길게 상처 자국을 그었다.
그러면 교육생들은 그 상처를 지혈하기 위해, 상처가 곪지 않게 하기 위해, 움직임에 불편함이 없게 하기 위해, 어떤 조치를 해야 하는지를 감안하여 침을 놓았다.
공부를 위해 통나무에 침을 놓는 장면은 의생관에서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의생관에서의 실습은 실제로 잔병치레를 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특이한 수련법을 바라보던 장유는 한쪽 구석의 벽에 등을 기댄 채 조용히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들의 수업은 얼마 있지 않아 끝이 났고, 장유는 원무관생을 지도하는 지도 스승에게 다가갔다.
그가 다가가자 원무관 제사(第四) 스승 담우가 물끄러미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냐?”
“저는 의생관원인 장유라고 합니다. 실례지만 원무관의 담우 스승님이신가요?”
“그래. 내가 담우다. 어떤 일로 원무관의 제사 스승인 나를 찾아온 것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