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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쌍의 1권(4화)
二章 무학을 익히기 위해 배움을 청하다(2)
“원무관의 스승님께 드리고 싶은 부탁이 있어서 찾아왔습니다.”
“너는 의생관의 학생이 아니더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의생관 학생이 원무관의 스승인 나에게 무엇을 부탁하려는 것이냐? 일단 들어나 보자꾸나.”
원무관과 의생관의 사이는 앞서 말했듯이 아주 좋지 않았다. 하나 스승들의 눈에는 원무관이든 의생관이든 모두 제자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담우가 굳이 의생관과 원무관을 분리시키며 물어본 것은 아이의 반응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의생관의 아이들은 원무관의 스승을 보면 지레 겁을 먹고 도망가거나 굳어버리기 마련이었다. 한데 이렇게 먼저 다가와서 부탁을 하는 아이를 접하니 신기한 물건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의 물음에 장유는 빙긋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아이들이 보는 세상과 어른이신 스승님들이 보는 세상이 어찌 같겠습니까. 그리고 이 부탁은 꼭 원무관의 스승님들만이 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보는 세상과 어른이 보는 세상이 다르다? 이 말은 자신도 어른이 보고 있는 세상을 보고 있다는 말로 들리지 않는가?
“어디 말해 보거라.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무공을 배우고 싶습니다.”
역시나 담우도 생각하고 있던 무공 수련에 대해 장유가 부탁하고 있었다.
장유는 원무관생이 아닌 의생관생이다. 의생관의 스승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원무관에서 무공을 배운다는 것은 의생관의 스승에게는 실례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될 수 있으나, 천수의곡의 학칙에는 일정 수준까지의 무공은 누구나 원한다면 배울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원무관의 스승들은 의학과 무공을 모두 알고 있지만, 의생관의 스승들은 삼재검법과 삼재심법 이상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의생관생 중에서 이를 실천하는 이들이 몇 없을 뿐이었다.
‘힘이 필요하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라면…….
미래에 벌어질 일이라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도 상관없었다.
준비된 자는 걱정이 없다고 하였다.
‘내가 천살을 쓰러뜨릴 힘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천살을 쓰러트릴 사람이 빈틈을 노릴 수 있게끔 도움을 줄 정도의 능력을 가져야 한다.’
목숨을 다해서라도 그 빈틈을 만들 수 있는 힘.
장유에게는 그 정도의 힘이 필요했다.
그런데 천수의곡의 특성상 검강지경은커녕 검사지경에 오른 고수도 드물었다.
검강지경을 이룬 고수라고 하면 의곡의 곡주와 원무관의 제일 스승 정도였다. 하나 그들은 장유가 쉬이 다가가기에는 너무 높은 위치에 자리해 있었다.
담우는 그 다음의 고수로, 검사지경에 올라 있었고, 그나마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인물이었다.
장유가 담우를 스승으로 모시고자 찾아간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천수의곡 밖에서 따로 스승을 구할 수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담우가 최선의 선택이었다.
“원하는 것이 그것이냐? 천수의곡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일정 수준까지의 무공은 배울 수 있다. 굳이 내가 봐 주지 않아도 의생관 스승들에게 요청해 무공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담우는 의례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그건 장유가 원하던 바가 아니었다.
“저는 담우 스승님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너를 단독으로 봐 준다면 다른 아이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
개인 지도를 바라는 것으로 들은 담우가 불쾌한 듯 매몰차게 돌아섰다.
하지만 뒤에서 소리치는 장유의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제가 바라는 것은 좀더 높은 수준의 지도입니다.”
당돌하게 소리치는 장유의 음성에 담우가 발길을 멈추며 뒤를 돌아본다.
“그게 무슨 소리지?”
“무공 수련을 개인적으로 봐 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 스스로 익히겠습니다. 다만 막힐 때마다 잠깐씩 조언을 청하겠습니다.”
담우가 자신을 올려다보는 장유의 눈동자를 내려다보았다.
‘당돌하지 않은가?’
조언 정도라면 담우로서도 얼마든지 해 줄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 해서 제대로 된 수련이 될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지만 그간 상관할 부분이 아니었다.
“좋다. 그 정도라면 괜찮겠지. 벌써 점심시간이 반이나 지났구나. 어서 점심을 먹으러 가거라.”
“감사합니다. 담우 스승님.”
물러나는 장유에게 담우가 한가지를 물어 보았다.
“무공을 배우고 싶다면 의생관에서 원무관으로 옮기면 되지 않겠느냐?”
“아직 의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의술 공부는 원무관에서도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사정이라는 말에 담우가 장유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엇이냐?”
“…….”
장유는 말하기를 꺼려 했다.
“말하지 못할 것이라면 억지로 입을 열 필요 없다. 이제 그만 가 보도록 하여라.”
담우의 말에 장유는 고개를 숙이고는 물러났다.
장유가 담우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원무관 밖으로 나가자, 담벼락 뒤에 숨어 있던 아이들이 걸어 나와 장유를 둘러쌌다.
원무관의 학생들답게 하나같이 덩치가 컸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로, 소견(小犬) 삼인방인 대털, 호치, 여윤이었다. 원무관 학생들 중에서도 유명한 악질들이었다.
“의생관 녀석 주제에 감히 원무관에서 무공을 배우려고 해?”
대털의 말에 장유가 피식 웃었다.
‘텃세 부리는 건가?’
“배우면 안 된다는 규칙이라도 있냐?”
그의 가소롭다는 듯한 태도와 말대답에, 녀석들이 몹시 화가 났다.
“이놈이! 넌 의생관 학생이야! 의생관이면 그냥 병이나 고치라고! 무슨 무공을 배우겠다고 지랄이야!”
그 태도가 장유의 눈에는 귀엽기까지 했다.
몸은 아이지만 정신연령은 이미 어른인 장유에게는 아이들의 행동이 그저 웃길 뿐이었다.
“내가 내 몸을 지키겠다고 배우겠다는 건데, 뭐 문제라도?”
장유가 이번에도 맞받아치자, 이번에는 옆에 있던 여자아이 여윤이 나섰다.
“무공을 배우고 싶었으면 원무관으로 옮겼어야지. 멍청하긴. 의생관에 남아 있으면서 무공을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 같냐? 약골 주제에.”
의생관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몸이 약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의생관의 아이들은 말 그대로 백면서생이었다. 육체 수련보다는 의술 수업에 매달리기 때문이었다. 현재 소년의 몸을 가지고 있는 장유도 예외는 아니었다.
“터진 주둥이라고 함부로 쏟아 내는구나? 배우다 만 것들아, 보따리 얇은 거 티 내냐?”
이번에도 시비 거는 것을 장유는 멋지게 물리쳤다. 전생을 살면서 익힌 걸쭉한 덕담(?)을 함께 곁들였다.
의생관과 원무관 아이들의 싸움은 장유가 보기에는 딱 애들 놀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도 소년의 몸이니, 애들 놀음에 적당히 동참해 줘야 했다.
그래서 장유는 배우다 만 것들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배우다 말다. 무공과 의학을 둘 다 배우는 원무관 아이들은 의학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고, 그 깊이가 의생관 아이들에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의생관 아이들은 원무관 아이들을 ‘배우다 만 것들’이라 칭했다.
물론 보따리가 얇다는 말 또한 들고 다니는 책이 적다는 말이기 때문에 머리가 나쁘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결국 참지 못한 호치가 주먹을 휘둘렀다.
퍼억.
반응하려고 했지만 이 빌어먹을 약골 같은 몸이 반응해 주지 않았다.
그 바람에 볼썽사납게 뒤로 날아가 담벼락에 머리를 찧게 된 장유였다.
“뭐야, 이거? 무공을 배우려고 하길래 좀 강한가 했더니, 순전히 약골이잖아? 킬킬킬.”
장유가 한 방에 나가떨어지자 주먹을 휘두른 호치가 킬킬거리며 비웃었다.
“끄응.”
주먹을 맞은 볼이 욱신욱신거리기는 했지만 이런 건…….
‘칼 밥 먹은 것에 비하면 애교지.’
무림에서 의원 일을 하며 수도 없이 많은 일을 겪었고, 칼 밥도 한두 번 먹은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에 비하면 완전 장난 수준이었다.
장유는 옷을 털고 일어난 후 손으로 수도(手刀)를 세웠다.
약골 의생관생이 반항을 하려 하자 소견들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어쭈? 그냥 몇 대 맞고 끝내지그래? 특별히 아프게 때려 줄게.”
“호홋! 반항하는 거야? 우쭈쭈쭈.”
“사람 귀찮게 하기는, 쯧.”
도대체 어디서 보고 배운 것인지 길거리 시정잡배의 행동, 그것도 가장 악질적인 태도만 골라서 하는 게 아닌가?
장유가 수도를 세워 그들에게 휘둘렀다.
삼재검법을 익히고 있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초식인 팔방풍우가 장유의 소도로 휙휙 펼쳐졌다.
그 공격에 아이들은 킬킬거리며 팔방풍우를 피했다.
그러나!
“허초다, 이 멍청아!”
장유의 발길질이 호치의 좋지 않은 곳에 적중했고, 순식간에 그는 게거품을 물며 사타구니를 부여잡았다.
“끄으…… 끄으, 끄어어어…….”
원무관 학생들에 비해 힘과 기술이 떨어지는 장유는 허초를 써서 시선을 돌린 후 급소에 실초를 행하는 방법을 사용했고, 그중 첫 번째 상대가 호치였다.
생각지도 못한 멋진 공격(?)에 남은 소견 중 둘인 대털과 여윤이 당황했다.
그 순간을 노리고 또 하나의 발길질이 여윤의 정강이에 작렬했다.
“아악!”
순식간에 정강이를 잡고 펄쩍 뛰어오르는 여윤이었다.
‘애들 놀이는 좀 애들 놀이답게 놀아 줘야겠지?’
그들이 놀라는 동안, 장유가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든 후 여윤의 목을 다른 한쪽 팔로 휘감고는 뒤로 물러섰다.
그리곤 소리쳤다.
“꼼짝 마. 넌 이제부터 인질이야.”
아이들 놀이를 잘못 파악한 장유였다.
안타깝게도 아이들 놀이에 인질극은 없었다.
천수의곡이라는 의원들의 생활터, 그 가운데 원무관 정문에서 벌어진 의생관생의 멋진 인질극이었다.
짱돌이 눈앞을 왔다 갔다 하면서 흔들렸다.
여윤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하기야, 인질이 되어 짱돌로 위협당하는데, 그것도 아홉 살짜리가 정신을 차릴 수 있겠는가?
“너, 너, 뭐하는 거야?”
여윤의 놀라 떨리는 말에 장유가 너무나도 해맑게 웃으며 답했다.
“인질극이라는 건데, 넌 그냥 가만히 있어 주면 돼.”
누가 몰라서 그러는가?
여윤이 물은 것은 그런 뜻이 아니지 않은가.
“순순히 나의 요구 조건을 들어준다면 유혈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거야.”
장유는 대털과 호치에게 다시 한 번 지금의 상황이 인질극임을 강조했다.
아이들이 어디서 이런 경우를 당해 봤겠는가? 고작 아홉 살짜리가 인질극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