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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쌍의 1권(5화)
二章 무학을 익히기 위해 배움을 청하다(3)
대털과 호치의 표정에는 겁이 잔뜩 나 있었지만, 전혀 겁먹지 않은 것처럼 소리쳤다.
“닥쳐! 빨리 여윤을 풀어 주는 게 좋을 거야!”
“어허, 미안하지만 지금 여윤의 명줄을 쥐고 있는 건 나야, 이걸 그냥 확!”
장유가 과장스럽게 돌로 여윤의 머리를 내려치는 흉내를 냈다.
“아악!”
장유의 행동에 겁먹은 여윤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고, 호치와 대털은 어쩔 수 없이 태도를 누그러트려야 했다.
‘유치하게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 하나?’
상황은 장유의 생각대로 돌아가고 있지만, 유치하다는 생각은 도무지 버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편하게 원무관에서 들락거리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었다.
의생관생이 원무관의 스승에게서 무공을 배우려고 한다는 소문이 제대로 퍼지면, 앞으로도 많은 시비가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내 요구 조건은 별거 아냐. 내가 원무관에서 무공을 배우는데 적극 협조하도록 해.”
그 말에 둘, 아니 셋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적극 협조하라니,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나는 의생관생이야. 내가 원무관에서 무공을 배운다고 하면 시비 거는 녀석들이 많겠지? 너희들이 그 녀석들을 좀 막아 줘야겠다.”
소견 삼인방은 원무관에서도 소문난 개 종자들이었다. 성격이 포악한 것은 아니지만, 한 번 달려들면 거머리 같기로 유명한 녀석들이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방패 막이로 내세우기에 손색이 없는 훌륭한 인원들이었다.
소견 삼인방이 자신의 뒷배를 봐준다고 하면, 감히 시비를 걸 사람은 몇 없을 것이다.
그의 조건에 아무런 답이 없자 장유가 다시 짱돌을 치켜들었다.
그 상황에 다급해진 여윤이 나머지 둘을 향해 악을 쓰며 바락바락 소리쳤다.
“빨리 그런다고 말해! 나 죽어! 나 시집도 못 가고 죽는다고! 빨리 한다고 해!”
여윤의 악에 받힌 외침 때문일까?
대털과 호치가 주억주억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입으로 끝내자는 건 아니지?”
“남아일언은 중천금이다!”
중천금은 개뿔.
“쯧쯧. 이 친구들이 뭘 모르는군. 만약에 말로 약속하고 너희가 지키지 않으면 어쩔 거야? 힘이 약한 나는 그냥 맞아 죽어야겠지?”
장유는 가증스럽게도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대털과 호치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 왔지만, 때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여윤이 인질로 잡혀 있지 않은가.
“붓과 종이!”
장유는 두 사람에게 서면 약속을 요구했다. 말 한마디보다 한 장의 종이가 믿음직스럽고, 한 장의 종이보다 한 갑자의 내공이 믿음직스러운 세상이었다.
대털과 호치는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지필묵을 가져왔다.
“자, 이제 내가 불러 주는 대로 적어. 대털, 호치, 여윤은 앞으로 장유가 하는 일에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털과 호치 밑에 달린 것은 불알이 아니고 땅콩입니다. 여윤은 평생 시집을 가지 않고, 머리를 밀고 절에 들어가겠습니다.”
대털과 호치가 서약서를 작성하자, 장유가 여유롭게 덧붙였다.
“아, 그리고 그 밑에 인장 찍어서 이쪽으로 보내.”
대털과 호치는 장유의 명령(?)대로 먹물을 손바닥에 듬뿍 묻혀 인장을 찍었고, 그것을 돌돌 말아 장유 쪽으로 굴렸다.
장유는 서약서를 발로 쫘악 펴서 한번 읽어 보더니 강제로 여윤에게도 인장을 찍게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도 인장을 찍었다.
“좋았어. 이제부터 적극 협조하도록 해.”
그들은 몰랐다. 이 서약서 한 장으로 인해 그들을 어떤 지옥으로 몰고 가는지 말이다.
그들이 적은 계약서 내용은 ‘장유가 무공을 배우는데 협조할 것’이 아니라 ‘장유가 하는 일에 적극 협조할 것’이라고 되어 있었다.
장유가 사악한 미소를 만면에 띠며 웃었다.
‘역시 코 묻은 돈을 뺏는 게 제일 재밌어.’
몸이 어려지니 정신까지 어려진 것처럼 보이는 장유였다. 비유가 조금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끝까지 인지하지 못했다.
***
담우의 옷자락이 매섭게 펄럭이며 주먹이 부웅하고 허공을 갈랐다.
손가락은 잔뜩 움츠렸다가 활짝 펼쳐지며 순식간에 한곳을 짚으며 허공에 펼쳐졌고, 펼쳐졌던 손가락이 마치 과녁을 노리는 화살마냥 정확하게 모이며 짚어 들어갔다.
순간, 담우의 손가락이 모인 허공에서는 공기 터지는 소리가 파앙 하고 터지며 바람을 퍼트렸다.
“이것이 천수의곡의 인무(人武)의 지법 중 하나인 북두지(北斗指)의 첫 번째 초식인 탐랑(貪狼)의 모습이다. 이제 의문은 풀렸느냐?”
장유는 약속한 대로 무공을 익히면서 의문이 생기는 사항을 물어보러 왔다.
천수의곡의 무공은 크게 천(天), 지(地), 인(人)으로 나뉜다. 천, 지, 인이란 무림에서 무림인의 경지를 나누는 입, 지, 벽, 탄, 로, 성, 완, 탈, 천과는 달리, 천수의곡 내에서 전수되고 있는 무공들의 수준을 나누어 놓은 것이었다.
인무란 그중 가장 아래에 속하는 최하위의 무학을 말하는 것으로, 저잣거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삼류 무공보다는 뛰어나지만, 한 문파의 절기라고 부르기에는 손색이 있는 무공들을 의미했다.
지 급의 무공인 지무(地武)는 한 문파의 절기로는 손색이 없으나, 상승 무공이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것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천수의곡에서 최상으로 치는 천 급의 무공은 상당히 상승 무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정주육문, 혹은 천지삼가의 비전 절예에 비하면 큰 손색이 있으나, 중견 문파의 절기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초식들이 천 급의 무공인 천무(天武)로 구분되었다.
비록 저번의 생에서 알고 있는 무예는 삼재검법뿐이었지만, 그는 다른 정파 무림인들의 화려한 무공을 많이 봐 왔다. 어렵지 않게 무공을 펼치는 그들을 보았기에 자신도 배우기만 하면 쉽게 무공을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어허, 손가락이 느리다. 더 빠르게!”
“거기서 손목을 부드럽게 돌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손끝에 힘을 집중시켜서 한 번에 터뜨리는 것이다. 힘을 집중시켜라!”
“손목을 너무 심하게 돌리지 않았느냐. 폭발력이 관절을 통과하며 모두 사라졌다. 다시!”
“손끝이 흔들리며 힘이 분산이 되었구나. 다시 해 보거라!”
담우의 매서운 일갈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의술도 그렇지만 무예 역시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수십 번을 시도했지만 담우처럼 손끝에서 공기가 터져 나오지 않았고, 자세만 간신히 흉내 낼 뿐이었다.
삼재검법 외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장유에게 많은 것을 기대할 수는 없음을 잘 아는지, 장유가 자세라도 그럴듯하게 흉내 내어 보이자 담우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두 번째 초식인 거문(巨門)으로 넘어갔다.
“거문은 순간 점혈(點穴)의 수법이다. 점혈이라는 것이 상당한 수준의 기술과 내공을 요하는 것인만큼 실현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순간적인 점혈은 가능하다. 잠시간이라도 상대의 움직임에 제약을 둘 수 있다면 승기를 잡기가 쉬워지지. 거문은 그러한 것은 노리고 만들어진 초식이다.”
담우가 오른손의 소지와 약지를 부드럽게 말아 쥐고, 나머지 세 개의 손가락을 살짝 구부렸다.
그의 팔이 뱀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순간, 엄지, 검지, 중지가 번득 하며 장유의 팔을 스쳐 지나갔다.
그 찰나의 스침에 장유는 순간적으로 무기력감과 무감각을 느꼈다.
통증은 없었고 순간적이었지만 무인 간의 싸움에 있어서는 승패를 가를 찰나일 것이다.
“원리를 알겠느냐?”
“예.”
그 말에 담우는 상당히 놀랐다는 행동으로 눈을 크게 떴다.
상승의 수법은 아니지만, 간단히 원리를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쉬운 수법도 아니었다.
그런데 장유가 원리를 파악했다니!
담우는 모르고 있지만, 장유는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과거를 통해 한 번의 인생을 더 살아 본 노련한 인물이었다.
그 속에서 꽤나 높은 의술을 가졌기에 점혈당하는 순간에 원리를 대강 눈치챘다.
점혈은 자신의 내기를 상대방의 몸속에 넣어 기맥을 막아 버리는, 일종의 내가수법이었다.
하나 거문은 상대의 혈맥을 내기로 막는 것이 아니라 순간적으로 비틀어 버렸다.
뱀이 똬리를 튼 듯이 비틀어진 기맥은 순간적으로 기의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게 되며, 점혈과 비슷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다.
“그 방법이 무엇이냐?”
“기맥을 비트는 방법을 사용하신 게 아닙니까?”
“어떻게 안 것이냐?”
“스승님의 손끝이 기맥을 스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순간 기맥이 뒤틀리는 것과 동시에 팔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을 감각이 뛰어나다고 해야 하나?
그렇지 않으면 천재라고 해야 할까?
사실 장유는 천재도 아니고 감각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의원으로서 노련할 뿐이었다. 그뿐이었다.
하나 그것을 알지 못하는 담우는 장유를 새로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거문의 형(形)은 보았느냐?”
“제자가 능력이 미진하여, 형까지는 완벽하게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 말에 담우는 장유에게 다시 한 번 팔을 움직여 거문의 초식을 선보였다.
뱀처럼 움직이는 팔뚝과 동시에 기혈을 잡아채는 엄지와 검지, 잡아챈 기혈의 중심은 중지로 고정되며, 검지로 슬쩍 밀어 수레를 돌리듯이 비틀어 버렸다.
하나 단 두 번의 시연만으로 그 모든 행동을 파악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후 담우가 초식의 형을 몇 번이나 더 보여 주고 나서야, 장유는 겨우겨우 거문의 형을 따라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형을 익힌 후에는 더욱더 혹독한 훈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공을 익힘에 있어 하나의 초식을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체력은 더욱 중요하다. 지금 당장 연무장으로 가자.”
담우의 말에 장유는 흐르는 땀을 마른 천으로 닦아 내고는 그와 함께 연무장으로 향했다.
담우는 아직까지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은 조언만 해 주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이것저것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