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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쌍의 1권(6화)
二章 무학을 익히기 위해 배움을 청하다(4)
원무관은 의술뿐만이 아니라 무예 또한 배우는 곳이기에 연무장이 여러 개 있었다. 담우는 그중 가까운 곳 하나를 골라 장유를 데리고 갔다.
연무장에는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은 원무관생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대털과 호치, 여윤이 장유의 눈에 들어왔다.
장유와 그들의 눈이 마주치자 얼마 전에 장유에게 호되게 당했던 그들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숙였다.
장유는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귀엽다는 듯이 빙긋 미소를 지었다.
담우가 들어오자 아이들의 무예를 봐주고 있던 담당 스승이 다가왔고, 장유를 흘긋 바라보고는 담우에게 말을 걸었다.
“이 아이는 의생관 원생이군. 그런데 자네가 의생관 원생과 함께 이곳에는 무슨 일이지?”
장유가 굳이 담우를 가장 먼저 찾아갔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스승들이 의생관과 원무관의 자존심 다툼에 무심하다고는 하나, 결국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 알게 모르게 티가 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담우는 달랐다. 얼마 전 원무관생과 의생관생 사이에 시비가 붙은 적이 있었는데, 그 자리에 나타난 담우는 시시비비(是是非非)를 정확하게 가려 먼저 잘못을 한 원무관생에게 벌을 내렸다.
장유가 그에게서 무공을 배우는 건, 그의 무공이 천수의곡에 속한 이들 중에서는 고강한 위치에 있다는 것 말고도 이런 면모가 있었기 때문이다.
“의생관생이라고 연무장에 오지 말라는 법은 없지. 그리고 이 아이는 내가 심심파적으로 무공에 대해 조언을 해 주고 있는 아이라네. 이번에 체력 훈련 좀 시킬까 하여 이곳에 데리고 왔지.”
“의생관의 아이가 무공을? 무공이 배우고 싶다면 원무관으로 옮기면 되는 것이 아닌가?”
며칠 전에 담우도 똑같이 말했었다.
하지만 장유는 의생관의 심도 있는 의원 수업과 원무관의 무예 수련을 겸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담우는 조심스럽게 장유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그 이유가 생각 외로 간단함을 알았다.
원무관의 학비는 의생관에 비해 두 배 이상 비쌌다. 반면에 장유의 아버지는 농촌에서 소규모 의방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시골의 농촌 의방이 벌어 봐야 얼마나 벌겠는가?
장유가 의생관에 남으려는 이유는 아마도 부모님을 걱정해서일 것이라 짐작되었다.
담우는 그렇게 파악했지만, 장유의 개인적인 사정까지 남에게 세세하게 말할 필요는 없었다.
담우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아이들을 교육하기 위해 돌아갔다.
“자, 이제 이곳을 열 바퀴 돌아보거라.”
“예.”
담우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장유는 연무장 둘레를 뛰기 시작했다.
원무관의 교육시간이기는 했으나 연무장 전체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연무장의 둘레를 도는 장유의 수련은 그들의 수업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처음 시작에 비해 갈수록 숨이 차오른다. 이제 일곱 바퀴째.
머리는 백 바퀴라도 돌 수 있을 것 같은데, 몸은 남은 세 바퀴도 돌기 힘들다고 말하고 있었다.
몸 전체에서 흐르는 굵은 땀방울이 턱 선을 타고 흘러내려 그의 옷 위로 떨어졌다.
“허억! 허억!”
목 끝까지 차오른 숨은 몸을 천근만근 무겁게 했다.
온몸의 세포들, 그 하나하나가 격렬하게 물을 원했다.
‘내 체력이 이 정도로 좋지 않았다니.’
그러고 보니 천수의곡이 멸망하고 처음 무림에 들어갔을 때도 느꼈었다. 차차 나아지기는 했지만, 입(入)의 경지의 자신의 체력은 삼류 무인보다도 좋지 않았었다.
달리는 도중에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아직 정식으로 무공을 배운 것도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지쳐서 나자빠질 수는 없어.’
장유의 머릿속으로 천살의 모습이 다시 한 번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인자하게 웃으며 검을 뿌리는 악귀!
질서를 부수고 반역을 꾀하는 자!
만약 꿈과 같이 그런 일이 이루어진다면…….
아니, 자신이 경험했던 것이 꿈이 아니라 진실이라면…….
절대로 그를 막아야만 했다.
하다못해 그자가 죽음에 이를 수 있는 길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했다.
‘유선 형님.’
갑자기 악유선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자신을 향해 날아온 이기어검을 걷어 내려 했던 그는, 자신이 죽고 나서 어떻게 되었을까?
천살에게 한순간 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최소한 유선 형님의 경지에는 올라야 한다.’
악유선의 경지는 성(成)과 완(完)의 경계.
그러니 자신은 성을 넘어야 하고, 완으로 가는 실마리를 잡아야 했다.
무공의 경지를 나누는 입(入), 지(知), 벽(碧), 탄(誕), 로(路), 성(成), 완(完), 탈(脫).
이제 무공에 입문(入門)한다 하여, 입(入)
무공을 알게 되었다 하여, 지(知)
익힘에 있어 봄의 푸름과 같다고 하여, 벽(碧)
스스로 껍질을 내고 나왔다 하여, 탄(誕)
배움에 있어 스스로의 길을 걸어간다 하여, 로(路)
무학으로써 종사와 같은 경지를 올랐다 하여, 성(成)
무학으로써 완전하게 된다고 하여, 완(完)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벗어 버린다 하여, 탈(脫)
그 위에 탈마저 벗어난 경지, 천(天)이라는 경지가 하나 더 있다고는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그중 상위에 자리한 성과 완.
과연 자신이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아직 확실한 것은 없었다.
도달할 수 있을지, 도달하지 못할지.
그리고 그러한 일들이 현실로 이루어질지.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꿈으로 끝날지.
모든 것이 미지수다.
하지만 준비된 자는 걱정할 것이 없다.
유비무환(有備無患).
서경(書經)의 열명편,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나오는 말로, 앞으로 뼈에 새겨야 할 말이었다.
유비무환 각골명심(有備無患 刻骨銘心).
三章 의원의 마음에도 복사꽃은 핀다(1)
의생관의 심도 있는 의예 수업과 원무관의 무예 수업을 병행하는 것은 엄청나게 고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매일 밤 남들 몰래 공부를 더 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장유의 눈 아래에는 거뭇거뭇하게 검은 반달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한 달이 가고, 계절이 바뀌어 일 년이 흘렀지만, 쉬지 않고 반복했다.
피로는 하루하루 누적이 되어 갔다.
몹시 지치면 가끔씩 휴식을 위해 정자에서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잠을 청하곤 했다.
대나무 숲에 둘러싸인 정자를 넘나든 바람은 대나무 숲을 흔들고, 댓잎 사르락거리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그 가운데 장유는 편하게 누워 잠이 들었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대숲 사이로 은은한 금 소리가 울렸다.
아련하게 울리는 선율.
떨리는 현의 감각.
현을 타고 미끄러지는 손끝에서 시작된 파동이 음의 물결을 타고 부드럽게 흘러 대숲에서 머무른다.
음의 파동은 잠들어 있던 장유를 일어나게 만들었다.
“으음? 어디서 들려오는 소리지?”
기분 좋은 선율이자, 사람을 편하게 하는 소리에 호기심을 느낀 장유가 정자에서 몸을 일으켜 발걸음을 옮겼다.
의생관과 원무관은 천수의곡의 외원과 내원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그 소리는 의생관은 벗어나 천수의곡의 심처에서 울리고 있었다.
“여기는…… 곡주님이 머무는 곳 근처인데.”
천수의곡의 곡주 도원겸이 머무는 곳 근처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라는 것이 그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다.
곡주가 머무는 곳에서 조금 비켜난 곳에 위치한 작은 건물 하나. 그곳에서 금의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장유는 누가 금을 연주하는 것인지 보기 위해 기웃거렸지만, 담은 너무 높았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장유는 돌을 몇 개 받친 후 그 위에 올라서서 까치발을 올렸다.
달그락.
돌끼리 맞물려 나는 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울리면서, 금 소리가 멈추었다.
그리고 무언가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그쪽을 엿보았지만, 그가 볼 수 있었던 건 다홍색 비단옷 끝자락뿐이었다.
그런 장유의 머리 위로 때 이른 복사꽃 하나가 유유히 떨어져 내려앉았다.
***
여름이 가까워질 무렵에는 천수의곡에서 항시 하는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의생관생들의 실습이었다. 아홉 살이 넘은 의생관생들이 스승들과 함께 인근의 마을을 방문하여 무료로 환자들을 진료하는 행사였다.
매해 하는 행사였기에 이번 해에도 의생관 실습을 나갈 때가 다가왔고, 장유도 그 행사에 참가하게 되었다.
“우리가 이번에 가야 할 마을은 부우촌이란다.”
천수의곡이 위치한 사천의 대량산(大凉山)은 높은 산으로 주위에 크고 작은 마을이 많이 위치해 있었다.
그중 부우촌은 규모가 큰 마을이었다.
침술을 가르치는 의생관 제육 스승 사유관의 조에 속한 장유는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부우촌에 별문제 없이 도착할 수 있었고, 좋은 일을 하는 만큼 부우촌 사람들에게 큰 환대를 받았다.
“어이구, 어서 오십시오, 소의원(小醫員)님들. 올해도 이맘때쯤 오실 거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천수의곡에서 행하는 의생 실습은 마을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기에, 소의원이라고 부르며 환영하였다.
제일 스승 비허량과 함께 아홉 명의 스승들이 동참했기에 열 개 구역으로 나누기로 하고는, 각 구역에 속할 의생들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제발 사유관 스승님의 조에 속해야 한다.’
다른 스승들보다는 정식 스승인 사유관이 더 아는 것이 많았다.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서는 사유관의 조에 속하는 것이 유리했다.
이미 저번 생에서 다 배웠으니 뭘 더 배우겠냐고 하겠지만, 의원들은 자신만의 비전이나 치료에 도움이 되는 기술들이 하나둘씩은 있었다.
그러한 비전이나 기술 등은 공개하지 않지만, 의술을 펼치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드러나게 마련이었다.
장유가 원하는 것은 그러한 것들이었다.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노련한 의원들이 가진 의술의 진수가 필요했다. 미래를 대비하고 있는 만큼 알아 두어서 나번득하쁠 것은 없었다.
‘제발 저를 뽑아 주십시오.’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사유관과 눈을 마주한 장유였다.
그리고 사유관의 손가락이 자신을 지목하는 순간, 장유는 너무도 기뻐 환호성을 지를 뻔했다.
물론 사유관의 다음 말이 나왔기에 환호성을 지르는 일은 없었다.
“거기, 장유 옆에 있는 녀석 나와.”
옹기종기 모여 있었기에 자신의 옆 사람을 지목하는 것이 꼭 자신을 지목하는 것처럼 느껴진 장유였다.
‘아, 이런…….’
아쉽게도 그다음 스승이 장유를 뽑아 가 버렸다.
장유는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셨지만, 어쩌겠는가?
찾아가서 ‘당신의 비전이 탐나므로 훔쳐보고 배울 수 있게 데려가 주십시오’라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아깝지만 스승을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