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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쌍의 1권(7화)
三章 의원의 마음에도 복사꽃은 핀다(2)
장유의 담당 스승에게 할당된 구역은 부우촌의 외곽이었다.
동물의 침임을 막기 위해 부우촌을 빙 둘러싼 목책이 눈에 띄었고, 그 주변으로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밀집해 있었다.
“자, 저기 있는 집부터 들어가 보자꾸나.”
스승이 지목한 집은 구역이 나뉘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저 집을 시작으로 순서대로 진찰을 돌려는 계획인 모양이었다.
집의 겉도 허름했지만 내부는 더 허름했다.
어린 의생들이 대부분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장유는 애써 밝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활기차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녹슨 경첩이 달린 나무 문을 밀고 들어가자 중년 여인이 버선발로 뛰어왔다.
“아이고, 의원님들 잘 오셨습니다. 제가 나가 봐야 하는데, 아이들이 몹시 아픈지라…….”
원생들을 버선발로 반기는 것으로 보아 아이들이 많이 아픈 모양이었다.
스승은 자신의 품에서 침통을 꺼내 들고는 중년 여인이 안내하는 곳으로 향했다.
오누이는 열이 올라 얼굴이 발갛게 물들어 있었고, 숨쉬는 것이 힘든지 새액 새액 몰아쉬고 있었다.
스승은 오누이의 손을 들어 맥을 잡았고, 근처에 있던 장유를 시켜 계곡에서 물을 길어 오게 했다.
어떤 오염이 있을지 모를 우물물을 환자에게 사용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어불성설이었다. 환자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청결이었다.
물지게를 챙겨 들고 나선 장유는 방책 바깥에 있는 계곡을 찾아갔다.
소나무가 우거진 숲 사이로 시원하게 흐르는 계곡의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절경이었다.
물지게에 물을 채우는 건 금방이었다.
물지게가 한가득 차자 그는 지게를 들쳐 멨다. 물지게가 몹시 무거웠지만 그간의 체력 훈련 덕분에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읏차.”
그때 그의 눈에 들어오는 붉은 자국이 있었다. 계곡 너머에서 흐릿하게 기억을 자극하는 냄새가 풍겨 왔다.
그 냄새가 익숙해서인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 주변의 분위기와 너무 어울리지 않아서인지, 선명하게 장유에게 느껴졌다.
전장을 흐르던 냄새였다.
“피…… 냄새?”
지나치려고 해도 지나칠 수가 없는 냄새였다.
전생에서는 항시 함께하던 냄새가 아닌가?
세심히 주변을 살피던 장유의 눈에 피에 젖은 모래가 보였다.
다른 핏자국을 찾아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다.
아마도 저 핏자국의 주인은 냄새를 지우기 위해 계곡을 거슬러 올라왔고,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빠졌을 것이다. 무림에서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흔히 사용하는 수법이었다.
‘누가 추격당하고 있는 거지?’
그때 뇌리에 무언가가 번득하고 스치고 지나갔다.
그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천수의곡 근처에서 발견된 사자검문(士子劍門) 장로의 시체였다.
시기적으로 그가 의생 실습을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설마 저 핏자국이?”
사자검문의 장로가 도망간 흔적이란 말인가?
사자검문이라고 하면 정주육문(正柱六門)의 하나이며 또한 삼세검문(三勢劍門)의 수좌
정주육문(正柱六門)
―월검문(月劍門)
―사자검문(士子劍門)
―백화문(百花門)
―적룡문(赤龍門)
―시류문(詩流門)
―천광문(天光門)
정주육문에서 높은 위치를 자랑하며, 검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선비들의 검’이라고 불리는 문파가 아닌가.
정말로 그렇다면!
“섬서에 있는 사자검문의 장로가 무슨 일로 이곳에 와 있는 것이지? 그러고 보니 여기서 죽은 사자검문의 장로가 구룡성의 장로라는 소문이 있었지!”
그는 자신의 기억을 최대한 파고들면서 당시에 주워듣고 흘려버렸던 정보들을 모았다.
“으음……. 사자검문의 장로, 구룡성, 정보, 파견……. 파견? 설마 저 장로가 구룡성에서 정보를 모으기 위해 파견되었던 장로라는 말인가!”
간신히 정보의 조각을 모아 하나의 결론을 도출해 낸 장유는 깜짝 놀라 지고 있던 물지게를 떨어트렸고, 땅바닥으로 물이 다 쏟아졌다.
“살려야 한다!”
한 사람의 고수라도 더 살려 두어야 했다.
천살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살려야 했다.
절대로 살려야만 한다!
장유는 급히 계곡 반대편으로 건너갔다.
계곡을 건너자 냄새가 지워졌을 거라고 안심했는지,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지울 힘도 없었기 때문인지 핏자국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흔적이 선명한 게 다행이군.”
추적술을 배우지 않은 자신이 뒤쫓을 방법은 이 핏자국 흔적뿐이었다.
하나 이 핏자국을 남겨 둔다면 추격자들이 쫓아와 장로를 죽이고 저번처럼 시체만이 남게 될 것이다.
‘내가 흔적을 지우는 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최대한 지워야 해.’
장유는 흔적을 꼼꼼하게 지운 뒤 핏자국을 추적해 갔다.
한참을 그렇게 걸어갔을까. 풀이 우거진 숲 한쪽이 뭉개져 있었고, 선명하게 금실로 사자(士子)라는 두 글자가 수놓아진 홍포를 입은 사람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사자라는 글자에 홍포라고 한다면, 분명 사자검문의 사람이었다.
오른쪽 어깨부터 왼쪽 허리로 길게 그어 내려진 검상을 입었는데, 갈비뼈가 다 드러나 보일 정도의 치명상이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일단 지혈부터…….’
장유는 그를 치료하기 위해 서둘러 다가갔다.
“괜찮으십니까?”
장유가 다가가자 그가 신음하며 손을 움직여 피 묻은 검을 장유의 목에 겨누었다.
검끝이 흔들리는 것이 힘이 다한 듯 보였지만 날카로운 검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쿨럭! 쿨럭! 네 녀석은 누구냐? 삼천(三天)의 개 종자들이냐?”
그의 입에서 장유를 경악에 휩싸이게 할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삼천!
그 공포스럽고 끔찍한 이름이 왜 여기서 나온다는 말인가!
설마 사자검문 장로를 쫓는 이들이 삼천이라는 말인가!
“어찌, 어찌 삼천을 아시는 겁니까!”
장유의 손도 덜덜 떨렸다.
“사…….”
장로가 입을 열고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눈꺼풀을 뒤집은 채 피를 한바탕 게워내고는 풀썩 늘어졌다. 장유의 목에 겨누어진 검도 주인이 힘을 잃자 땅에 떨어져 굴러다녔다.
게워낸 피가 장유의 두 팔을 흥건하게 적셨지만 개의치 않고 손을 잡아 맥을 살폈다.
손끝을 타고 희미한 맥이 잡혔다.
‘아직 살아 있다. 한데 삼천이라니……. 그럼 구룡성은 삼천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런데도 삼천에게 패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삼천이 예상보다 더 강해서?
삼천의 전력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서?
아마도 이것이 가장 합당한 이유였을 것이다.
이 장로가 살아나지 못하고 삼천의 추격자들에게 죽음을 당했다면, 삼천의 정보가 제대로 구룡성에 전달되지 못하였을 것이고, 삼천의 전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살려야 한다!”
장유, 그가 경험한 삼천의 전력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다.
많은 고수들과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병졸들이 있었다.
구룡성이 삼천의 전력을 파악하고 있었다고 해도 막아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설사 막아 낼 수 있다고 해도, 어느 누가 삼천의 전력에 대해 구룡성에 전해 줄 것인가?
장유가 직접 구룡성으로 찾아가서 전해 줄 수도 없는 일이었다.
‘내가 저번의 생을 살아서 삼천이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소’라고 말한다면 누가 믿어 주겠는가?
오히려 삼천의 간자일지도 모른다며 고문이나 당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장로를 반드시 살려야 했다.
“당신은 살아서 반드시 구룡성에 정보를 전해야 합니다.”
손끝으로 혈맥을 눌러 흘러내리는 피를 지혈한 장유는 품속에서 침을 꺼내 침술을 펼쳤다.
어린 의원이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의 정밀한 침술이었다.
부드럽게 혈을 파고든 침이 기를 자극하며 생기를 북돋았다.
침놓기를 마친 장유의 손이 이름 모를 사자검문 장로의 근육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온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창백했던 그의 얼굴에 조금이나마 생기가 돌아왔다.
“이 사람을 여기 놓아두면 안될 텐데.”
언제 추격자들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이었다.
사자검문의 장로를 안전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데, 어디로 어떻게 옮겨야 한단 말인가.
현재의 장유는 열 살 소년의 몸이었다. 여리고 덜 자란 소년의 몸으로 큰 몸집의 노인을 옮기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고 추격자들이 올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 사람을 놓아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장유가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후우…….”
‘이를 어찌해야 한다는 말인가’
***
장유가 어찌해야 할지 걱정하고 있을 무렵, 오누이를 돌보고 있던 스승은 계곡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유가 돌아오지 않자 다른 원생을 계곡에 보냈다.
그 원생은 계곡 근처에서 장유가 가져간 물지게만이 나뒹굴고 있는 것을 보고는 장유에게 일이 생겼다는 걸 알아챘고, 빠르게 돌아갔다.
“스승님, 장유는 안 보이고 물지게만 있었어요.”
스승은 빠르게 대책을 생각하여 원생들에게 말했다.
“이곳은 내가 지킬 테니, 너희들은 빨리 장유를 찾아보거라.”
스승은 원생 아이들을 풀어 장유를 찾게끔 지시했다.
원생들은 물지게가 있던 계곡 부근을 중심으로 움직이며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 한 원생 아이가 제법 먼 거리에 있던 장유를 발견했다.
풀숲 사이로 보이는 장유의 뒤통수를 보고 원생이 소리쳤다.
“야! 너 거기서 뭐해!”
어찌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던 장유는 뒤에서 들려온 외침에 흠칫 놀라 돌아봤다.
다행히도 추격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서는 안도감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이네.”
‘그런데 저거 이름이 뭐였더라?’
순식간에 ‘저거’가 되어 버린 소년 원생이었다.
“야! 너, 지금 당장 가서 스승님이나 어른들 몇 분 모셔 와. 여기 사람이 쓰러져 있어. 무림인인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급한 상황에서 이것저것 생각해 보지 않고 튀어나온 말이었다.
“어? 거기 사람이 왜 쓰러져 있는건데? 그것도 무림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