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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쌍의 1권(8화)
三章 의원의 마음에도 복사꽃은 핀다(3)


장유의 머릿속에 짜증이 확 치밀었다.
한시가 급해 죽겠는데, 저건 왜 빨리 가지 않고 물어본다는 말인가!
‘그냥 불러오라고 하면 불러올 것이지!’
“몰라 임마! 내가 찌른 거 아니니까 빨리 스승님이나 모시고 오라고!”
아까 소리 지른 것보다 훨씬 큰 목소리였고, 이번에는 성질까지 부렸다.
그가 역정을 내며 버럭 소리를 지르자 소년 원생은 그제야 엉거주춤 돌아서며 왔던 길을 뛰어갔다.
‘조금만 더 늦으면 추격자들이 왔을지도 모른다.’
늦지 않게 발견해 준 덕분에 이 사자검문의 장로를 살릴 수 있게 되었다.
장유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려 장로의 가슴팍에 길게 나 있는 검상을 살폈다.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허리 부근까지 길게 베어 내려온 검상이었으나, 중간에 흔들림이 있었다.
“장로가 이 정도 검상을 입었다면 상대도 꽤 크게 다쳤겠군.”
장유는 무공 실력이 뛰어나지 않지만 많은 고수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던 경험 많은 의원이었기에 직접 보지 않았더라도 머릿속으로 상황이 그려졌다.
추격자 중 한 명과 사자검문의 장로가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고, 치명적인 살초를 풀어냈을 것이다. 호각을 이루며 자잘한 상처를 만들었을 것이고, 큰 기술을 준비하며 틈을 내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틈을 노리고 파고든 상대방을 향한 치명적인 일격에 사자검문의 장로가 큰 상처를 입었고, 상대 역시 피 분수를 뿌리며 날아갔을 것이다.
그는 무려 사자검문의 장로다. 그를 추격하는 사람이 천살 혹은 삼천의 천주급이었다면 여기까지 도주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삼천은 흑천(黑天), 귀천(鬼天), 암천(暗天)을 말하는 것으로, 각기 흑천주(黑天主), 귀천주(鬼天主), 암천주(暗天主)라는 세 명의 천주(天主)가 있으며, 그 위에 삼천주(三天主)라는 천살이 있었다.
장유가 기억하기로 삼천주급만 되어도 정주육문의 장문인보다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 그런 그들이 사자검문의 장로를 추격했을 일은 거의 만무했고, 장로가 이 정도까지 상처 입고도 도주했다는 것이 그 사실을 증명했다.
“그런데 이 상처를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곪는데.”
늦봄이라 날이 점점 더워지고 있었다. 거기다 간신히 지혈과 죽지 않을 정도의 기력만 회복시킨 상태였으니,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상태가 더 악화될 것이다. 이곳에는 제대로 된 약재 하나 없으니 제일 좋은 방법은 의곡으로 옮기는 것이다.
사실 자신이 치료할 수도 있지만 그 이후의 상황이 문제가 되었다.
사자검문의 장로가 입은 검상은 상당히 심각했다. 이 정도의 검상을, 그것도 이제 열 살에 들어선 의생관생이 치료한다면 당장 의심의 눈초리를 받게 될 것이다.
그것도 문제가 되지만 자신의 능력이 너무 빨리 알려져도 좋을 것 하나 없었다. 당황하지 않고 지혈 조치를 완벽하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실력을 너무 많이 드러낸 셈이었다.
그래도 정 위급하면 자신이 손을 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니까.
다행히도 소년 원생이 떠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추격자들? 아니면 스승님이나 다른 어른분들?’
상황의 급박함을 알고 빨리 달려온 것이라면 좋겠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었다.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며 장유는 사자검문의 장로를 수풀이 무성한 곳으로 옮겨 몸을 가렸다.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장유의 숨소리도 점차 조용해지고 식은땀이 조금씩 흘러내렸다.
‘추격자들이라면 피 냄새를 그냥 넘어가지 않을 텐데.’
추격에 특화된 그들이 피 냄새를 맡지 못할 리 없었다.
꿀꺽!
침이 목으로 넘어갔다.
여기서 장유가 너무 긴장하여 한 가지 간과한 점이 있었다. 추격자들이라면 접근하면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았을 거라는 점이었다.
“야! 어른들 모시고 왔어!”
아까 보낸 소년 원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도감이 가슴을 엄습하며 장유는 마침내 참았던 숨을 다시 토해 냈다.
“푸아. 다행이다. 그것보다 어른들 모셔 왔어?”
긴장해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기 때문에 상당히 답답하던 차였다.
“당연히 모셔 왔지.”
장유의 물음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뒤로 손짓하는 소년 원생이었다.
“어라? 어…… 어……. 어……. 설마 다쳤다는 사람이…….”
아직 어린아이는 어린아이인 모양이었다. 갈비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의 검상에 기겁하며 입을 가린 채 뒤로 물러서고 있었다. 확실히 어린아이가 보기에는 잔혹한 광경이었다.
“어. 이 사람이야.”
“우웨엑, 우웩, 웨에에엑”
헛구역질을 해 대는 소년 원생의 모습에 장유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이후 장로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시급하게 천수의곡으로 옮겨져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기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

사자검문 장로의 사건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사건 없이 실습 일을 끝마친 장유의 일상은 언제나처럼 바쁘게 돌아갔다.
“어허, 발 구름을 더 강하게. 힘은 발끝에서 시작해서 허리로, 허리에서 팔 전체로 돌리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
“양손의 교차가 이루어진 후에는 좌수, 혹은 우수의 출수가 더 빨라야 한다. 방어와 동시에 순간적인 일격을 가하거라!”
“더 빠르게, 더 강하게!”
“일곱 바퀴 추가!”
비단 원무관에서 벌어지는 무공 수련뿐만이 아니었다. 의생관에서 익히는 의술 수업 역시 마찬가지로 힘겨웠다.
모든 내용을 기억해 두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 예습도 하고 늦은 밤까지 자지 않고 복습을 병행했다.
“수영은 줄기는 둥글고 속이 비어 있으며 살짝 붉은기가 돌고, 씹으면 신맛이 나는 다년초다. 갈증, 탈수 등에 도움이 되는 약초이니 기억해 두도록.”
“어허, 혈 자리를 잘못 잡았지 않느냐. 다시 해 보거라.”
“인간의 오장육부란…….”
하루하루 지쳐 갔고, 스승들의 지도가 이어질 때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실감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장유는 스스로를 더욱 자책하고 몰아붙였다.
‘이렇게 해서 어떻게 삼천을 막는다는 말인가. 더, 더 혹독하게!’
여유가 없는, 하루하루 힘겨운 생활이었지만 의술과 무공을 익히는 일들을 해내는 장유였다.
그 모든 것이 미래를 위한 것이었기에 어느 것 하나 쉽게 손을 놓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사실 수업 시간에 배우는 의술은 그다지 건질 것이 없었다. 과거에 익혀 잘 알고 있는 내용들이었다.
그를 힘들게 하는 건 그가 따로 공부하는 의서들이었다.
‘이건 또 새로운 치료법이군.’
과거 삼천의 침입 당시에 의곡의 모든 의서가 불에 타서 사라졌다. 그 때문에 익히지 못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의곡의 비전은 자신이 익힐 수 있는 것들이 아니지만, 그 외의 자신이 섭렵하지 못했던 많은 의서들은 공부해 두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바쁘게 돌아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몸은 무거워지고 마음은 지쳐 갔고, 피로는 더욱 누적되었다.
오늘도 무거운 몸으로 힘겹게 원무관에서 의생관으로 옮겨 갔다.
그때 허공에서 음률이 들려왔다.
띠리링, 디링.
귓가를 자극하는 맑은소리였다.
장유는 발걸음을 멈추고는 귀를 기울였다.
귓가를 자극하는 맑은소리는 장유의 기억 한구석을 자극했고, 마침내 소리를 기억해 냈다.
“그때 들은 칠현금 소리구나.”
얼마 전 대숲에 싸인 정자에서 들었고, 찾아나섰다가 정체를 확인하지 못했던 다홍 비단옷의 여인이 떠올랐다.
그는 급히 그 건물으로 찾아갔다. 한 번 찾아갔었기에 헤매지 않고 도착할 수 있었다.
‘뭐랄까, 저번에는 느꼈지만, 이곳이 왠지 익숙한데?’
거기다가 그때와 다른 것이 있었다. 그때는 보이지 않던 두 무사가 입구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그때 장유가 다가오는 것을 본 두 무사가 약간 긴장했다가 금새 풀어졌다.
“뭐야? 의생관생이잖아.”
“여기는 웬일이냐?”
두 무사의 물음에 장유는 공손하게 두 손을 모으며 답했다.
“칠현금 소리를 따라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한데 칠현금은 누가 연주하는 것입니까?”
그 말에 두 무사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더니 피식 웃어 보였다.
“정말 듣기 좋지 않냐? 캬, 어린 아가씨가 어찌 저리도 칠현금 연주를 잘하는지.”
“그러게 말일세. 내 입에서 절로 탄성이 나와.”
대답은 해 주지 않고 딴소리하는 두 무사였다.
그들은 각자 몇 마디의 말을 더 했지만 그들의 말에서 건질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어린 아가씨라는 단어였다.
“칠현금을 연주하는 사람이 어린 아가씨란 말입니까?”
“그래, 딱 네 또래의 아가씨지.”
“곡주님의 따님이신 도예림 아가씨가 연주하는 금 소린데, 참 대단하단 말이야.”
도. 예. 림
그 이름을 듣는 순간 장유는 뒤통수를 큰 돌로 얻어맞은 듯이 번갯불이 번쩍였다.
바쁘게 산다고 그녀를 기억하지 못했다.
어찌 잊을 수가 있단 말인가!
한 송이 꽃이 잘 어울리는 소녀. 삼천의 침입 때 죽어 버린 그 소녀.
그 소녀가 장유의 가슴속에서 다시 살아났다.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고 자신했건만, 나는 그녀를 잊고 있었구나.’
저번 생에서는 그랬다.
한데 이번 생은 너무 바쁘게 살았던 모양이었다.
짝사랑이라도 상관없었다.
평생 속으로만 간직해야 할 사랑이라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이 감정이 과연 진짜일까?’
어린 시절의 미화된 기억은 아닐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천수의곡이 삼천의 습격을 받은 것은 장유가 열다섯 살 무렵이었다. 그 무렵의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과연 지금의 자신이 보아도 그녀가 아름답게 느껴질까? 지금의 그녀는 고작 열 살이지 않은가.
‘만약 이번에도 그녀가 내 마음속에 들어온다면…….’
짝사랑으로는 끝내지 않을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녀의 마음을 얻어 낼 것이고, 삼천에게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강해져야겠지. 일단 그녀의 얼굴도 다시 한 번 봐야겠고 말이야.’
강해져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소년의 마음속에도 복사꽃이 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