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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쌍의 1권(10화)
三章 의원의 마음에도 복사꽃은 핀다(5)


“반말해도 되겠네. 나도 열 살이니까. 그것보다 너 여기 오지 마.”
“왜?”
“불편하다고. 아침마다 새벽 산책을 다니는데, 꼭 니 얼굴을 봐야 되겠어?”
이번에도 장유는 능글맞게 웃으며 능청을 떨었다.
“봐서 나쁠 거야 없지.”
“봐도 충분히 나쁘다고.”
“그 이유가 뭐야?”
장유가 묻자 도예림의 입에서는 황당한 답변이 흘러나왔다.
“엄마가 남자들은 모두 늑대라고 했어.”
“너네 아버지도?”
도예림의 아버지라고 한다면, 곡주 도원겸이었다.
“아니, 아빠는 제외.”
“다음부터 나도 제외시켜 줘.”
“싫어. 엄마가 남자랑 가깝게 지내지 말라고 했어. 과년한 처녀가 그러면 안 된다고.”
“고기도 씹어 본 사람이 잘 먹는다는 해동의 속담이 있지. 혹시 알아?”
“씹어 볼 고기가 있고, 씹지 말아야 할 고기가 있는 거야.”
그 말에 장유가 미간을 찌푸리며 실례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거 듣기에 따라서는 상당히 모욕적인 말인 거 알아? 내가 꼭 씹지 말아야 할 고기처럼 들리는 이유는 착각이지?”
“미안하지만 완전하게 착각이 아니야.”
‘도도함도 예전의 그대로인가!’
“그렇다면 앞으론 꼭 씹어 봐야 할 고기가 될 사람이야. 기억해 둬.”
그 말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도예림이 발끝으로 장유의 왼쪽 정강이를 걷어차 버렸다.
물론 정강이를 걷어차인 장유는 펄쩍 뛰며 눈물을 찔끔 흘렸고, 한쪽 다리로는 균형을 잡기가 어려웠는지 비틀거리다가 한쪽으로 넘어졌다.
물론 넘어진 방향이 그리 건전하지 않은 방향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쪼옥.
과연, 어린 의원의 마음에도 복사꽃이 피었다.

***

어두운 대전, 공간 전체를 지배하는 무거운 존재감을 가진 중년인이 태사의에 앉아 있었다.
“추격에 실패했다고?”
태사의에 앉아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하며 모든 사람을 내려다보고 있는 이는 바로 염래본마(炎來本魔) 천살이었다.
이곳은 삼천 총단의 심처였다. 대부분의 삼천 간부들이 천살의 아래에 시립해 있었고, 천살만이 오만하게 좌정한 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군사,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보라.”
그 말에 삼천의 군사인 귀뇌(鬼腦)가 엎드려 절을 한 채 고개만 조금 치켜들며 대답했다.
“천수의곡의 근처에서 그의 흔적이 사라졌습니다. 죄송합니다.”
딱, 딱, 딱, 딱!
천살의 손가락이 태사의의 팔걸이 부분을 툭툭 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리고는 앞에 걸려 있는 중원 전도(中原全圖)를 바라보다가 손끝을 그어 내렸다.
화르르륵!
손톱 끝에 붉은 불빛이 번득인다 싶더니, 순식간에 사천의 일부분이 불똥이 튄 것처럼 타들어 갔다.
위치는 대량산으로, 천수의곡이 위치한 산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하는 법이지. 군사, 용서하겠다.”
그 한마디에 귀뇌가 머리를 돌바닥에 쿠웅하고 내리찍으며 감사를 표했다.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좌중을 압도하는 목소리에 모두가 귀를 귀울였다.
“실패의 흔적을 그대로 놓아두어서는 안 되지. 대계를 조금 변경한다. 천수의곡을 밀어 버리도록.”
“흑천(黑天)의 귀호대(鬼虎隊)를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흑천이라는 말에 천살이 손을 들어 귀노의 말을 멈추게 했다.
“그러고 보니 흑천이 일어설 때가 십 년도 채 남지 않았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유흥은 잠시 뒤로 미뤄 두도록 하지. 구 년 후 삼천 중 가장 먼저 흑천이 일어날 때, 그때 본보기로 천수의곡을 밀어 버리도록 하라.”
흑천이 일어설 때 본보기로 문파 하나를 없애 버리려고 했다. 그리고 그 본보기로 천수의곡을 잡았다.
“존명.”
시기는 조금 멀어졌지만 삼천의 손길, 그 어둡고 검은 손길이 천수의곡을 향했다.



四章 낡은 책 한 권과 인연을 맺다(1)


장유는 원무관의 연무장에서 체력 훈련을 하고 있었다.
체력 훈련은 이제 담우가 따로 지시하지 않아도 장유 스스로 매일 하는 하루 일과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렸다. 하지 않으면 오히려 어색할 지경이 되었다.
하나 원무관의 아이들은 장유를 상당히 고깝게 보았다. 하기사 그럴 만도 한 것이 의생관의 아이가 원무관의 연무장에서 체력 훈련을 하고 있으니 특혜를 받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렇게 원무관의 아이들 대부분이 장유를 벼르고 벼를 때, 마침 사건이 터졌다.
장유가 달리기를 하던 중 원무관의 아이와 어깨가 부딪힌 것이다.
“아씁, 넌 눈이 없는 거냐!”
그냥 넘어갈 만도 하건만 원무관의 아이는 버럭 소리부터 질렀고, 그 소리에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몇몇의 원무관 아이들이 장유 주변을 둥글게 둘러쌌다.
“아, 실수야. 미안하게 생각해.”
먼저 부딪힌 건 장유였기에 사과를 했다.
“미안하다고 하면 끝나? 사람 죽이고 미안하다고 하면 끝나냐고.”
하지만 그 아이는 전혀 사과를 받아 줄 마음이 없어 보였다.
장유도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 육체적으로는 동갑이지만 정신적으로는 훨씬 연장자였다.
그런 장유가 현 상황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왜 그래? 초보처럼? 너네들 원무관생이잖아? 무림에서는 사람 죽여 놓고 사과도 하지 않을 때가 많잖아.”
그 말에 어깨를 부딪힌 아이도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는지 어느 소설책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를 들먹였다.
“그럼, 무림은 강한 자가 지배한다는 논리도 알고 있는 거겠네?”
저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뿐이다.
힘과 힘의 법칙.
약육강식(弱肉强食).
적자생존(適者生存).
강자만이 살아남는 강호 무림.
“마침 연무장이고, 장소도 적당하네.”
장유가 흔쾌히 대결을 수락했다.
마침 자신의 능력이 궁금해지던 차였다. 입(入)의 경지는 넘어섰지만, 지(知)의 경지를 넘어섰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입과 지는 둘 다 낮은 경지인만큼 구별하기가 상당히 모호했다.
한데 원무관의 관생들이라면 지의 경지는 넘어선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여기서 이긴다면 나도 지의 경지에 올랐다는 거겠지.’
장유가 주먹을 말아 쥔 채 자세를 취하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이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며 비무 공간을 만들어 줬다.
물론 그 사이에 대털과 호치, 여윤도 섞여 있었고, 그들은 장유와 눈이 마주치자 슬그머니 눈을 내렸다.
둥글게 형성된 공간에 장유와 아이만이 남았다.
뚜둑, 뚜두둑.
어느 곳의 잡배에게 배웠는지 장유의 앞에 서 있는 아이는 손가락을 꺾으며 겁을 주었다.
그 순간 장유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팔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꺾어졌다.

북두지(北斗指) 염정(廉貞)

곡선을 그리며 꺾어진 팔의 손목이 뱀이 머리를 치켜들 듯 퉁 튕겨져 올랐다. 그 순간 장유의 손가락이 찌르듯이 상대를 내리 찔렀다.
머리를 치켜 든 뱀이 먹이를 물기 위해 아래로 다시 머리를 내리찍는 것과 같은 움직임이었다.
북두지 염정의 수법으로 공격을 받은 소년은 뒤로 빠지며 양손을 움직여 염정을 파훼했다.
서로가 잘 알고 있는 초식의 대결이었다.
염정을 피해 낸 상대는 양 팔꿈치와 무릎을 구부정하게 구부리며 탄력 있게 튀어나왔다.

아랑락(牙狼落)

늑대 어금니의 춤이란 무공명처럼 양 팔꿈치와 무릎을 늑대의 아래턱과 위턱에 달린 어금니처럼 움직이며 장유의 몸 전신을 노려 왔다.
이에 장유는 자세를 낮춘 상태에서 팔을 그어 올렸다.
수도를 이용하여 반대로 펼치는 역태산압정.
아랑락은 공격이 화려하고 연속적이지만,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공격에 약했다.
장유의 수도가 상대의 턱 끝을 후려쳤고, 턱이 타격당하자 뇌가 흔들린 소년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그 사이를 파고드는 한 수가 있었다.
순간적인 틈세를 노리고 들어오는건 바로 장유의 손가락!

북두지(北斗指) 탐랑(貪狼)

손끝에 모아진 공기가 파앙 하고 터지며 소년의 가슴팍을 때렸다.
“아코! 아야!”
가슴팍을 격타당한 아픔에 소년은 가슴을 부여잡은 채 무릎을 꿇었다.
그 순간 장유의 왼 주먹이 정확하게 소년의 안면에 적중했다.
아릿거리는 가슴팍은 부차적인 문제였다. 뇌가 울리는 아픔과 안면 전체에 가해진 충격에 소년은 널브러졌다.
쓰러진 소년의 앞에서 장유가 기세등등하게 입을 열었다.
“내가 이겼지?”
‘확실히 내가 지(地) 급에 오르긴 오른 것 같은데.’
장유의 뜻밖의 승리에 원무관생들은 험악한 표정으로 다시 포위망을 좁혀 오기 시작했다.
장유는 호치와 대털, 여윤에게 눈짓을 했다. 그들과의 계약이 이행되어야 될 상황이었다.
‘빨리 나와서 이것들 치워!’
그런 장유의 눈빛을 받은 그들은 잠시 머뭇거렸으나 장유가 손으로 무언가를 쓰는 시늉을 하자 그들은 인상을 팍 찌푸리고는 앞으로 나섰다. 나오지 않으면 고자가 되고, 평생 시집도 못 가고 비구니가 되어야 할 운명에 처하기로 했으니까.
“다들 그만해! 진건 진 거야. 저 녀석이 평소에 수련이 부족하기는 했잖아?”
“그래, 고작 의생관생 하나에 우리가 단체로 달려들면 뭐가 되겠냐고? 저기 저 코 잡고 찔찔거리는 녀석이나 더 굴려야지.”
그들은 장유를 조금 폄하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렇게 그들이 시선을 잡아끄는 동안 장유는 그곳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