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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쌍의 1권(11화)
四章 낡은 책 한 권과 인연을 맺다(2)


***

지금 장유는 상당히 기분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 수업을 듣고 있는 그의 표정도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원인은 자신의 옆에서 수업을 듣고 있는 무려 천.수.의.곡.주의 따님이신 도.예.림 때문이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것은 오늘 아침이었다. 그가 한참 피곤한 몸을 이끌고 노곤한 잠을 청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탕탕탕!
“야, 장유, 장유!”
누군가가 장유의 방문을 두들기며 장유의 이름을 불렀다.
한참 잘 자던 장유는 같은 방을 쓰는 친구들의 눈총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벅벅 머리를 긁적이며 인상을 찡그리는 모양새가 그다지 기분이 좋은 상태는 아닌 듯 보였다. 아니, 실제로 그는 기분이 매우 나쁜 상황이었다.
그가 화난 것은 다름이 아니라, 매우 중요한 꿈을 꾸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꾼 꿈은 억만금을 주어도 살 수 없을 만큼 좋은 꿈이었고, 평생에 한 번 꿀까 말까 한 기가 막힌 꿈이었다.
꿈속에서 장유는 스물 중반의 자신으로 돌아가 있었고, 그 외의 등장인물은 당시 강호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두 명인 강호쌍미(江湖雙美)가 동시에 장유를 좋아해서, 그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장유는 누구를 선택할까 고민을 하다가, 한 손의 보석보다는 양손의 꽃이라는 생각에 둘 다 취하려고 둘의 옷을 벗기는 찰나, 방해를 받아 깬 것이었다.
두 번 다시 이런 꿈을 꿀 기회는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더 기분이 나빠졌다.
그때 밖에 있는 사람이 다시 장유의 이름을 부르며 문을 탕탕 두드렸다.
“야, 장유! 씹어 봐야 할 고기!”
‘에잇, 이 새벽에 누구야!’
입으로 소리치려던 장유는 ‘씹어 봐야 할 고기’라는 말에 손을 들어 슬그머니 자신의 뺨을 어루만졌다.
어제 새벽에 얻어맞은 화끈한 일격이 생각난 것이다.
장유가 문을 열고 나가자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뭐야? 어제 한 대 때린 걸로 부족했던 거야?”
나쁜 남자가 대세라고 했던가? 본의는 아니었지만 과감하게 저질러 놓고 스스로 튕기는 장유였다.
“책임져.”
이건 무슨 소린가? 장유가 원하는 대로 돌아가기는 하는데, 일이 너무 쉽게 진행되었다.
“옛날에 엄마가 그랬어. 입술은 책임질 수 있는 남자한테만 주는 거라고.”
그 엄마 가정교육 한 번 멋지게 시킨다. 입술은 책임질 수 있는 남자, 즉 좋아하는 남자에게만 주는 것이 맞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우연이지 않은가.
“무슨 책임을 져야 하는 건지는 알고 그러는 거야?”
열 살짜리가 알아봐야 뭘 알겠는가.
그렇게 생각한 장유는 능청스럽게 웃으면서 물어봤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우물에서 물을 퍼서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새벽이라 그런가 물이 상당히 시원했다.
‘에휴, 좀 일찍 일어난 김에 오늘은 연공 조금 더 한다고 생각해야겠네.’
시원한 물이 얼굴을 한 번 적시고, 또 한 번의 물이 장유의 얼굴을 적시려는 찰나, 그녀의 입이 열렸다.
“응, 알아. 같이 자야 하는 거잖아.”
“푸웁!”
경악스러운 소리가 튀어나오자 장유가 깜짝 놀라서 물을 내뿜을 지경이었다.
그게 지금 열 살짜리 소녀의 입에서 나올 소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장유는 자신이 한 생각이 오해라는 것을 도예림의 다음 말을 듣고서야 인지했다.
“엄마가 부부끼리는 손잡고 자는 거라고 했어. 손만 잡고 자면 아기가 생기는 거래.”
잘못된 성교육이 만들어 낸 순수함의 참상. 굳이 표현하자면 그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럼 그렇지. 애가 무슨…….’
현재는 자신도 애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장유는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장유가 그러던가 말던가, 도예림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계속했다.
“부창부수(夫唱婦隨)! 이제부터 네가 가는 곳은 나도 같이 다니기로 했어!”
얘가 원래 이런 성격인데, 크면서 도도해진 것인지, 아니면 예전에 그냥 도도한 척한 것인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다지 도도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게 확실해졌다.
“아서라, 아서. 내가 얼마나 바쁘게 다니는데, 니가 따라다닌다고?”
요즘 확실히 바쁘게 다니는 장유는 두 손을 흔들며 만류했다.
그녀는 그런 장유의 태도가 책에서만 보던 나쁜 남자처럼 느껴졌다.
‘책에서 나쁜 남자가 매력적이라던데.’
도대체 어떤 책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볼을 부풀리며 소리쳤다.
“따라다닐 거야!”
“그럼, 그래 보던가.”
그렇게 답한 것이 화근이었다.
또한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예림은 찰떡이라도 된 것마냥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수업까지 같이 듣는 것이었다.
장유의 옆에 달라붙어 수업을 듣는 도예림이었고, 수업을 하는 스승들로서도 그녀에게 나가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곡주의 딸로서 곡의 사람들에 대해 잘 알고 싶고, 또래 친구를 가지고 싶어요.”
그녀가 아주 멋들어진 변명을 만들어서 곡주에게 말했고, 곡주는 그녀의 의견에 따라 의생관에서 수업을 듣는 것을 허락한 것이다.
멋진 핑곗거리였다.
물론 도예림에 관련된 모든 정보가 곡주에게 낱낱이 넘어갈 것이지만, 어린 도예림은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장유가 도예림을 향해 입을 열었다.
“더운데 붙어 있어야 하는 거야?”
“응! 붙어 있어야 하는 거야.”
솔직히 장유도 싫은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좋아하던 여자가 이렇게 꼭 붙어 있는데, 싫을 리가 있겠는가?
문제가 있다면 상당히 진행이 급작스럽다는 점?
도예림의 현재 나이가 열 살이라는 점?
사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 상태로 삼 년이라는 시간이 더 흘렀다.

***

“담우, 자네 지금 원무관의 아이가 아니라 의생관의 아이에게 지(地) 급의 무공을 알려 주고 싶다고 했는가?”
얼굴에 검버섯이 잔뜩 피어 있고, 크고 작은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뭉쳐 있는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는 바로 원무관의 제일 스승인 비허량이었다.
규칙을 준수하는 깐깐한 노인으로 알려진 그는, 굽은 허리를 받치기 위해 항시 지팡이를 짚고 다니지만, 무공 실력만큼은 성(成)의 초입에 이르러 있어, 무림 어디에 내놓아도 고수 소리를 듣기에 충분한 실력을 가졌다. 그래서 원무관의 총관주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의 앞에 있는 이는 현재 장유에게 무공을 가르치는 원무관의 제사 스승 담우였다.
“예, 그렇습니다. 재능이 뛰어난 것은 아니지만 배우려는 열정이 뛰어나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불과 사 년 만에 인(人) 급의 무공을 익힌 아이입니다. 원무관의 아이들도 익히려면 칠 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무공들을요.”
하나 깐깐한 비허량은 혀끝을 끌끌 차며 원칙을 내세웠다.
“끌끌끌, 아쉽게 되었군. 하나 불허하네. 인(人) 급의 무공은 의곡에 속한 사람이 원하기만 하면 누구든 배울 수 있지만, 지(地) 급과 천(天) 급의 무공은 원무관의 아이들이라고 해도 쉽게 배울 수 없네.”
“하지만!”
“어허, 원칙은 원칙일세. 지 급의 무공은 원무관 아이들 중 상위 삼 할에 속하는 아이들만 배울 수 있고, 천 급의 무공은 지 급의 무공을 배운 아이들 중에서도 상위 삼 할 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일세. 안타까운 자네의 마음은 잘 아는 바이나, 아쉽게도 그 아이는 원무관의 아이가 아닐 뿐더러 상위 삼 할에 속하는 실력은 더더욱 아니지 않나. 그렇기에 불가하네.”
이번에도 비허량은 원칙을 내세우며 불허(不許)를 말했던 것이다.
“어찌 그럴 수가…….”
장유는 욕심이 많은 만큼 더 노력하는 아이였다. 그런 노력을 현실이 배반하게끔 두고 싶지 않은 것이 직접 장유를 가르친 담우의 마음이었다.
아니 이것은 비단 담우의 마음만이 아니라 제자를 가르치는 모든 스승의 마음일 것이다.
“그렇다면 인 급의 무공을 보관해 둔 서고라도 개방해 주십시오.”
담우의 말에 비허량의 눈썹이 순간 꿈틀 움직하더니, 담우를 지긋하게 바라보았다.
“끌끌, 인 급의 무공이 보관된 서고를 말인가?”
“그렇습니다. 장유가 익힌 것은 인 급의 무공 전부가 아니라 현재 가장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몇 가지입니다.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인 급의 무공 몇 가지를 더 알려 주고 싶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인 급의 무공은 의곡 내의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익힐 수가 있었다.
하지만 인 급의 무공 전부를 익힐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인 급의 무공은 일부만이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었고, 지금은 잘 사용되지 않는 무공, 효율이 떨어져서 낙오된 무공, 그러한 것들은 비공개된 채 인 급의 무공 서고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서고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원무관장의 허가가 필요했다.
“좋네. 내 그것까지는 막을 수 없지. 하지만 기한은 단 하루네. 단 하루 동안 안에서 몇 권의 무공서를 보든 상관없네. 그리고 들고 나올 수 있는 것도 단 한 가지이네. 그 점 명심해 두게나.”
“예, 알겠습니다.”
깐깐한 비허량에게서 더 이상 얻어 낼 수 없음을 직감한 담우는 그쯤에서 말을 끝냈다.
비허량은 인 급 무공 서고 출입을 허가한다는 허가증을 써서 내어 주었고, 담우는 포권을 취하고서는 비허량의 방에서 물러났다.
담우가 나가자 비허량이 식어 버린 차를 마시며 중얼거렸다.
“끌끌, 제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갸륵하네만, 어쩔 수 없지. 미안하네.”
비허량은 원칙을 내세우기는 했지만 그 역시 제자를 가르쳐 본 스승이었다.
“내 자네의 마음을 생각하여 자네 몰래 그 아이에게 한 가지 도움을 주기로 하지.”
과연 비허량은 어떤 도움을 장유에게 줄 것인가.
그 도움에 따라서 장유가 하늘로 비상할 날개를 가지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

“이 많은 책을 하루 동안 마음껏 볼 수 있고, 그중 한 권은 제가 가질 수 있다고요?”
장유의 눈에 감탄이 어렸다. 의곡이건만 이렇게 많은 무공서가 있다니…….
비록 인 급의 무공이지만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삼 층 건물 전체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수많은 무공서들이었다. 이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니.
장유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담우에게 감사를 표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스승님.”
담우는 웃는 얼굴로 감사 인사를 받고는 있지만 마음은 씁쓸하기만 했다.
‘미안하다. 더 좋은 무공을 익히게 해 주고 싶었건만.’
하지만 장유의 생각은 그렇게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모든 무리는 기본에서 시작하는 거지. 백화문이든 월검문이든 사자검문이든. 기본 무리를 몇 가지 잘 봐 두면 나중에 많은 도움이 될 거야.’
그런 생각을 하다가 생각이 운천에게로 미쳤다.
‘그 아저씨, 구룡성에 정보를 잘 전달했으려나?’
그 뒤로 별다른 소문은 들려오지 않았으니,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처럼 잘 도착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