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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쌍의 1권(12화)
四章 낡은 책 한 권과 인연을 맺다(3)


‘삼천의 일부만이라도 그들에게 전달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운천이 얼마나 알아내었는지는 잘 모른다. 하지만 최대한 많은 부분을 알아내어서 전해 줬으면 하는 장유의 바람이었다.
‘이렇게 시간 낭비할 때가 아니지.’
단 하루다. 최대한 많은 책을 보고 그중 한 권을 골라야 했다. 담우가 힘을 써서 만들어 준 기회인만큼 최대한의 성과를 이루어야 했다.
장유는 책을 한 권 한 권 뽑아서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인(人) 급에 속하는 내용인만큼 그 내용이 그 내용이었으나 가끔가다가 꽤 쓸 만한 구절, 혹은 초식이 눈에 들어오기도 했다.
“무언가 쓸 만한 게 있느냐?”
책을 읽어 나가는 장유의 옆에 담우가 다가오더니 물었다. 스승인 그로서도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예.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한데 표정이 좋지 않으십니다.”
“밖에 예림이가 있다.”
그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찰떡처럼 붙어 다니던 그녀였지만, 이곳에 출입이 허가된 것은 장유와 담우뿐이었다. 출입이 허가되지 않은 도예림은 들어오지 못하고 계속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너 언제 나오느냐고 계속 물어보는구나.”
그 말에 장유는 겸연쩍은 웃음만을 지어 보일 뿐이다.
이제 열세 살이 된 도예림은 계속해서 장유 옆에 붙어 다녔고, 측간 갈 때와 잠잘 때 외에는 계속해서 따라다니는 중이었다.
“하하하, 그게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허허허, 내가 그걸 몰라서 하는 말이겠느냐? 문제는 나한테 매달리니 문제지.”
장유가 그 웃음에 역시 겸연쩍게 웃으며 보고 있던 책을 넣고 옆의 책을 꺼내려는 순간, 먼지가 그득한 책 하나가 툭 떨어졌다.
“응? 무슨 책에 먼지가…….”
장유가 손을 들어 툭툭 먼지를 털어 내자 낡은 겉표지 위로 책의 제목이 드러났다.

천령공흡(天逞共吸)

그가 그 제목을 소리 내어 읽었다.
“천……령공흡?”
무슨 책인가 하고 보고 있던 담우는 장유에게 점잖게 충고했다.
“그건 보지 않는 게 좋겠구나.”
“왜 그러십니까?”
천령공흡, 원무관 스승들에선 꽤나 유명한 무공이었다. 그것도 상당히 악질적으로.
“내공이 쌓이는 속도가 삼재심법보다 다섯 배가량 느리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익히면 다른 심법을 익힐 수 없다.”
때문에 저것을 익힌 사람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저것 하나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일반적으로 삼재심법으로 육십 년간 운공을 해서 모은 내공을 일 갑자라고 하는데, 천령공흡으로 일 갑자를 모으려면 삼백 년가량을 연공해야 일 갑자의 내공이 모일 정도로 그 성취가 느렸다.
만든 사람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성취까지 느린 무공이며, 다른 내공심법을 익히지 못하게 방해하는 무공이니 악질적이라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유가 그 말에 웃었다. 자신도 이런 내공심법을 몇 알고 있었다. 대부분 첫머리는 익히면 천하제일이 된다거나 그런 허황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알맹이도 없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봐 두어서 나쁠 건 없으니, 한번 읽어는 보도록 하겠습니다.”
“원한다면 그렇게는 하려무나. 하지만 익히지는 말거라.”
“명심하겠습니다.”
그는 넉살 좋게 웃으며 책을 펼쳐 들었다. 낡은 종이 끝을 잡고 부드럽게 넘기자 머리글이 나왔다.

이 책을 연 연자는 무림의 고수가 되고 싶다거나, 혹 이름을 떨치고 싶은 생각이라면 조용히 덮도록 해라. 이 책을 익혀서 고수가 되는 건 삼재심법으로 산을 일 검에 무너트릴 내공을 얻는 것만큼 힘든 일이니 말이다.

‘생각했던 거랑은 뭔가 다른데?’
장유가 생각하기에 이런 책은 시작이 아주 거창해야 했다.
대표적으로 삼재심법만 들어도, 완벽하게 익힌다면 자연과 하나되는 몰아의 경지에 이르러, 호풍환우를 부르고 벼락을 내리며 지진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한데 이 무공은 고수가 되고 싶다면 익히지 말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 시작에 흥미를 느낀 장유가 다음 장을 넘겼다.

천령공흡은 고수가 되기 위한 심법이 아니라, 평생을 갈고닦아 선(仙)의 경지에 도달하고, 만인에게 도움을 주는 만민공덕(萬民功德)을 쌓기 위한 심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령을 익히려는 자는 이 책을 넘기도록 하라.

고수가 되기 위한 무공이 아니라 만인에게 도움을 주는 만민공덕을 쌓기 위한 심법.
‘그것이 진짜 의원이 가야 하는 길이 아닐까?’
의원으로서 가야 하는 길, 무인으로서 가야 하는 길.
‘내가 걸어가려는 길은 과연 어떤 길일까?’
의문이 들었다. 자신은 무공도 익히고 있고, 의술도 익히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었다.
‘언젠가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날이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직 그날이 온 건 아니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오지 않을지도 모르고.’
당장 급한 것이 아닌 이상, 지금 걱정해 봐야 좋을 건 없었다.
고민을 마친 장유는 다음 장으로 넘어갔다.
‘만민공덕을 쌓는 것은 의원이 걸어가야 할 길이지. 그리고 천살을 죽이는 일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길이고.’
아직 익히려고 결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만민공덕을 쌓는 법을 알아 두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천령을 익힐 경우 몸에 선기가 축적되며, 단계적으로 영향이 나타나게 된다.
단계는 총 일곱 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명칭과 특징은 이러하다.

일 단계, 정안(正眼)
바르게 본다.
정안을 개방하고 있을 경우 미약하나마 부동심이 생기게 된다.

이 단계, 광안(廣眼)
넓게 본다.
머리 전체에 눈이 생긴 듯이 공간을 파악할 수 있다.
앞뒤, 좌우를 동시에 볼 수 있게 된다.

삼 단계, 진안(眞眼)
진실된 눈을 가지게 된다.
진안이 개방되는 순간 몸 전체의 능력이 두 배 이상 상승한다.
전신 혈도가 개방되며, 내력이 흐르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개방하면 눈동자가 상아색으로 변한다.

사 단계, 투안(透眼)
꿰뚫어 본다.
사물의 본질을 순식간에 꿰뚫어 보는 단계.
사물의 정보가 서랍장에 정리한 것처럼 정리된다.
원할 경우 어떠한 물건도 투시할 수 있으나, 가로막고 있는 물체의 두께에 따라 심력 소모가 극심하기에 피로가 몰려올 수 있다.
투안을 개방할 경우 눈의 흰자위에 검은 점이 둥글게 세 개가 찍힌다.
삼과 사 단계 사이에 이르면 기(氣)의 흐름을 대략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된다.
기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비틀어 물체의 움직임이 순간적으로 느려지거나 빨라지도록 할 수 있다.

오 단계, 군공안(君空眼)
공간을 지배한다.
자신의 시선이 미치는 범위 내의 모든 것을 완전히 파악하게 된다.
이것은 곧 공간을 지배하는 첫 단계이기도 하다.
절대 고수의 영역인 영역 선포라고도 한다.

육 단계, 참시안(斬越眼)
시간을 베어 버린다.
말 그대로 시간을 뛰어넘는 단계.
예지안(豫知眼)을 얻을 수 있는 단계라고 한다.
비의(秘意) 상으로만 전해지는 단계다.
개방 시에 극심한 고통이 따르기에 오래 개방할 수 없다.
또한 오래 개방할 경우 시력을 상실할 수 있다.
개방할 경우 왼쪽 눈이 푸른색으로 변한다.
참시안은 왼쪽 눈에만 개방된다.

칠 단계, 궁극(窮極)의 단계 절대안(絶對眼)
신을 본다.
자신 안에 내재된 신을 만나는 단계.
물리적 법칙을 뒤집어 버릴 수 있다. 물이 높은 곳으로 흐르게 할 수도, 불이 차가워지게 할 수도 있으며,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
자신이 곧 신이 되는 신인합일의 경지에 이르는 신화경(神化境)의 단계다.
도(道)를 깨우치는 것이 아니라, 도와 하나가 되는 경지이기도 하다.
이 눈을 얻으면 곧 세상 만물의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과 열반의 경지에 들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궁극에 이르러 신(神)이 된다.


하나 실제로는 오 단계, 혹은 육 단계에 올랐다고 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이 글을 적고 있는 나조차도 삼 단계에 올라 진안이 열렸을 뿐이다. 이제 내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천령문(天逞門)의 맥이 끊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이 글을 남긴다.
이 심법을 익히게 될 경우 경지의 상승을 탐하지 말고, 선기로 다른 사람들을 돕도록 하라.
이것이 선배가 후배에게 남기는 마지막 충고이니라.

오 단계부터는 상당히 허황된 부분이 없지 않았으나, 오 단계의 경지가 공간 지배, 영역 선포라고 생각한다면 십대 고수 정도의 경지였다. 충분히 가능한 경지였다.
그 뒤로 나열된 것은 천령의 기운을 쌓는 방법과 구결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 뒷부분까지 한 번에 주욱 읽은 장유는 책을 덮었다.
‘조금 허황된 부분이 있지만, 빠르게만 익힐 수 있다면 강력한 내공을 얻을 수 있기도 하다. 거기에 선기라니…….’
선기를 쌓을 수 있는 무공들은 대부분 수련 속도가 느리다. 이 무공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것을 익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석양이 지기 시작하면서 아까 나갔던 담우가 돌아왔다.
“이제 나가야 할 시간이다. 들고나갈 책은 정했느냐?”
하루 동안 장유가 읽은 책은 십여 권이었다. 그중 가장 마음이 가는 책을 고르라고 한다면 천령공흡이었다.
‘다른 책들의 내용은 거의 다 기억했으니, 일단 이 책은 들고나가서 결정하도록 하자.’
“예, 이 책을 가져가려고 합니다.”
천령공흡, 약한 흐릿하기는 했지만 담우의 눈에는 그 글자가 선명하게 들어왔고, 그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내가 이 무공은 익히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저는 이 심법에 마음이 끌립니다.”
결심에 찬 얼굴이었다.
찾아본다면 좀 더 빠르게 익힐 수 있는 심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기라는 부분이, 선기가 마기와 상극이라는 점이 장유의 결심을 부추겼다.
어쩌면 천살에게 순간의 틈을 만들어 줄 무공은 강력한 초식을 가진 무공이 아니라, 선기를 사용하는 아주 소소한 무공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네 결정이 그렇다면 나로서도 어찌할 방도가 없구나. 마음이 가는 길을 따라 움직이려무나.”
장유의 결연한 태도에 담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허락해 주었다.
장유는 들고 있던 천령공흡의 책을 옷소매에 밀어 넣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