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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쌍의 1권(14화)
五章 단약을 만들다(2)
***
장유가 둥근 약사발에 십여 가지 마른 약초를 넣고 갈아 잘게 가루를 만들었다.
잘개 부서진 약초 가루들을 물에 묽게 풀었고, 같은 조가 된 도예림이 묽게 풀어진 약초 물을 계속 중탕하면서 저었다.
“그거 잘 저어야 한다. 조금 진득해질 때까지 저어. 그럼 될 거야.”
예림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화답했다.
“예예, 제가 알아서 합죠.”
“얼마 전에 탕약을 만들라니까 누룽지를 만든 사람이 누구더라?”
“그건 귀여운 실수.”
자신의 볼을 손가락으로 쿠욱 찌르며 부리는 도예림의 애교에 장유는 웃으며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아, 그러지 마. 오늘 아침에 정리한 머리라고. 헝클어져!”
예림이 약물을 휘젓는 동안, 장유는 수분함유량이 적은 약초를 월계수 잎 달인 물에 재워 역한 냄새를 제거하고, 냉각기가 연결된 탕기에 청주를 부어 넣어 재워 둔 약초를 높은 온도에서 쪘다.
이는 청주로 살균과 함께 일정 압력을 유지하며, 차가운 물이 들어 있는 냉각기로 약물을 냉각시키고, 수증기로 역한 맛을 배출시키기 위함이었다.
약초 가루가 묽게 풀어진 물과 청주에 중탕한 약물을 같은 비율로 혼합한 후, 고운 쌀가루를 풀어 쌀 반죽 형태로 진득한 반죽을 만들고, 그 반죽을 한 덩이씩 뜯어내며 단약 모양으로 둥글게 빚었다.
장유는 둥글게 빚어진 단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다가 선기를 불어넣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단약은 사람을 살리기 위한 약이자 병을 고치기 위한 약이었다. 또한 선기 역시 사람을 살리는 기운이니, 둘을 섞으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생각한 장유는 단약을 빚으며 양손에 선기를 운용했다.
아직 기운을 유형화시킨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경지였지만, 희미하게 좋은 기운이 아지랑이처럼 손끝에서 올라왔다.
‘소나무 냄새가 난다.’
선기를 밖으로 배출해 보는 건 장유로서도 처음이었다. 지금까지 연공하고 초식을 단련하면서 단 한 번도 기운을 밖으로 배출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선기에서 소나무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런데 내공에서 원래 냄새가 나는 건가?’
악유선의 내공에서도, 쾌검백광의 내공에서도, 개화노란의 내공에서도, 그들은 강기까지 구현화시켰지만 냄새를 풍기지는 않았다.
‘선기가 특이한 것이가? 그렇지 않으면 피 냄새가 너무 강해서 느끼지 못한 것인가?’
그는 전생의 기억들을 되짚으며 자신이 내공의 냄새를 맡은 적이 있는가에 대한 고민을 해 보았지만, 답은 ‘없다’였다.
‘회귀하면서 특이한 능력이 생긴 건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다른 내공들을 느끼고 냄새를 맡아 보아야겠다.
‘그러고 보니 사자검문의 장로께서 압력을 발출했을때도…….’
희미하게 먹 향기가 났던 것 같았다.
그때는 군자단에서 나는 냄새라고 짐작했었다. 만약 내공의 냄새를 맡게 된 것이라면, 이건 과거에는 없던 능력이었다.
‘그럼 과거로 돌아오면서 특이한 능력이 생겼다는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도 싱그러운 소나무 냄새를 풍기는 손에서 뿜어낸 선기가 단약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아야겠군.’
장유가 마지막으로 빚어낸 단약 하나를 더하자 도합 스무 개가 된 진득한 단약 덩어리가 만들어졌다.
이제 이것을 말려야 했다.
“이 주변에 양지바른 곳이 어디 있지?”
장유가 뒷정리를 하고 있는 도예림을 향해 물었다.
예림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한 장소로 데려갔다.
“여기 기억나?”
“우리 처음 만난 곳이네.”
예림이 장유를 데리고 간 곳은 그들이 처음 만난 정자였다. 장유가 말했던 대로 낮 시간에 햇빛이 잘 드는 곳이었다.
“여기서 니가 나를 덮쳤지.”
예림이 씩 하고 웃으며 정자 위에 멍석을 깐 뒤 둥글게 빚은 단약을 촤르륵 펼쳤다.
“어디까지나 그건 실수였어.”
“그래, 그때는 너무 어려서 막무가내로 내가 책임지라고 달려들었지. 당황했었어?”
그녀의 말에 장유가 이번에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과장된 동작으로 양팔을 좌악 벌리고는 숨을 한껏 들이킨 후에 말했다.
“아니, 이게 웬 떡인가 했지. 왜? 후회해?”
“아니.”
예림이 속으로 말을 삼켰다.
‘그때 철없이 굴었던 게 지금은 너무 행복하거든.’
남녀칠세부동석.
입맞춤을 하면 책임져야 한다.
손만 잡고 잤어요.
이 세 구절이 이루어 낸 결과였다.
***
단약 제조술 담당 스승인 의생관의 제구 스승 진구는 아이들이 제출한 과제용 단약을 자세하게 살폈다.
“이건 마르는 과정에서 습기가 들어갔군, 오 점 감점.”
“이건 표면이 갈라진 걸 보니 균일하게 섞이지가 않았어. 칠 점 감점.”
“역한 맛이 나는 게 청주로 제대로 살균하지 않았군. 삼 점 감점.”
“응? 이건 약재가 하나 덜 들어간 것 같은데? 십 점 감점이로군.”
먹물이 묻어 있는 붓이 휘리릭하고 움직이며 점수를 적어 내렸다.
그러던 진구의 눈에 꽤나 그럴듯하게 잘 만든 단약이 들어왔다.
“모양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고…….”
그는 엄지와 검지를 이용해 단약을 집어 들어 이모저모 살피고는, 작은 바늘 같은 것으로 끌적여 가루를 조금 냈다.
긁어낸 가루는 왼손의 검지로 살짝 집어 든 후 혀끝에 대며 가루를 살살 굴려 맛을 보았다.
“쌉쌀하긴 한데 역한 맛은 나지 않는군. 그런데 이건 무슨 냄새지?”
약간의 가루를 입안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청명한 향기가 입안을 가득 메웠다.
가루로 먹는 단약의 껄끄러움이라던가 약초 자체에서 나는 쓴맛이 사라지게 해 주는 향기였다.
그는 이번에는 바늘로 긁는 것이 아니라 삼분지 일가량을 뜯어내어 입안에 넣었다.
가루로 넣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청량함이 입안을 휘감았다.
어떻게 삼킨 건지도 모를 정도로 매끄럽게 넘어가는 단약 조각이었다.
“허, 이럴 수가! 이걸 정말로 원생이 만든 거란 말인가?”
‘솔잎으로 찐 듯한 은은한 소나무 향기가 나는군.’
한데 이 단약을 먹자마자 몸 전체로 활기가 퍼져 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말도 안돼. 진짜로 이걸 만든 사람이 곡주님이 아니라 평범한 원생이 만들었다는 말인가? 도대체 누구지?”
진구는 그렇게 생각하며 출품된 단약의 제작 원생들의 이름을 살폈다.
“어디 보자, 장유, 도예림? 도예림이라면 곡주님의 딸이로군. 그러면 그렇지. 곡주님께 무언가 비법을 전해 받은 게로군. 그래서 이런 훌륭한 단약이 나온 것이고.”
진구가 그렇게 납득해 준 덕분에 장유의 선기를 넣어서 만든 단약은 흐지부지 넘어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선기를 넣은 단약이 후에 의술계에 불어올 새로운 바람을 말이다.
***
아침 햇살이 채 모습을 다 드러내지 않은 새벽, 죽림이 우거진 곳에서는 한 청년이 결가부좌를 튼 상태로 숨을 들이쉬고 내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흡, 출, 흡, 출, 흡, 흡, 흡, 출, 흡, 흡, 출, 출.
들이쉬기와 내쉬기를 거듭하는 소년의 탄탄한 가슴은, 그에 맞추어 부풀어 올랐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한참을 그렇게 하고 있을 때였다. 소년의 몸 주변이 밝은 빛으로 휩싸이며 바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년의 몸에서 시작된 바람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영역을 넓히면서 주변의 풀들을 흔들었고, 대나무 잎마저 휘날리며 사각사각 소리를 냈다.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흔들리는 대나무 잎들이 만들어 낸 광경은 아름답기는 하였으나 놀랍다거나 신비하지는 않았다.
정작 놀라운 일은 그때부터 벌어졌다.
대나무들은 원래 마디마디에 물을 감추어 두고 있는데, 그 물들이 자연스럽게 대나무 잎 위로 표출되었다가 흘러내렸고, 흘러내린 물들이 땅에 떨어졌지만 흡수되지 않은 채 땅 위를 슬금슬금 기어 장유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 물들은 장유의 다리 바로 아래에서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맑은 두 개의 구체로 변했다.
장유가 뿜어내는 빛을 받아 환하게 빛나는 구체는 깊은 바닷속에서 난다는 진주와 같은 모습이라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진주의 형상을 유지한 채로 장유의 주변을 맴돌던 두 개의 물 응집체들은 마침내 가부좌를 튼 허벅지 위에 놓은 두 손의 손바닥 위에 올라섰고, 마치 물이 땅속으로 스며드는 것처럼 손바닥을 통해 장유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한순간 맑은 느낌이 전신을 지배하는 감각을 느낀 장유는 선기를 조금씩 움직여 전신으로 퍼진 맑은 감각을 모으기 시작했고, 선기를 전신 기맥으로 일주천하며 곳곳에 퍼져 있는 맑은 기운을 흡수했다.
그 크기는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선기 자체가 점점 투명하게 변해 갔다.
투명하게 변했으나 여전히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선기는 마침내 일주천을 끝내고 단전으로 되돌아갔다.
맑은 기운을 흡수한 투명한 선기가 단전으로 돌아오자, 장유는 아랫배에서 화끈한 감각을 느꼈다.
배 아래에서 시작된 화끈한 기운이 척추를 타고 올라와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극히 미량의 기운이지만 그 느낌은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몸 전체로 퍼져 나간 기운은 관도를 달려가는 우마처럼 시원스레 길을 따라 이동했다.
마침내 혈도를 넘어 근육 구석구석을 매만지던 진기가 다시 척추를 타고 흘러 단전으로 돌아오는 순간, 한 줄기 섬광이 장유의 뇌리를 스쳤다.
바르게 보는 눈인 정안(正眼)이 개방되는 순간이었다.
六章 적전 제자 경쟁(1)
장유가 열아홉에서 스물로 넘어갈 무렵, 그러니까 의생관을 졸업하고 본격적으로 의곡 생활을 하기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장유는 잘 자란 덕분에 육 척 장신의 완연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때 천수의곡 곡주 도원겸의 적전 제자 선발 공고가 나붙었고, 경합을 통해 선택된다고 했다.
그래서 각 스승들이 의생관과 원무관생들 중에서 한 명씩을 각각 추천했다.
원무관과 의생관의 제일 스승부터 제십 스승까지 각기 한 명씩 추천할 경우, 도합 스무 명의 참가 인원이 생기게 되고, 원무관은 원무관끼리, 의생관은 의생관끼리 경쟁하여, 의생관에서 한 명, 원무관에서 한 명을 골라내어 곡주의 적전 제자로 들이는 것이다.
“지금 저를 추천하고 싶다고 하셨습니까?”
“그래, 너를 추천하고 싶구나.”
의생관 제일 스승인 유고의 대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