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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쌍의 1권(15화)
六章 적전 제자 경쟁(2)
원무관의 제일 스승 비허량이 옆집 할아버지 같은 분위기라면 의생관 제일 스승인 유고는 부잣집 터줏대감 같은 느낌이었다. 황색의 장삼이 잘 어울리고, 길게 기른 턱수염은 탐스러웠다. 귀하게 늙으면 저렇게 될 것 같았다.
“너는 성적도 우수하고 실력도 뛰어날 뿐만 아니라 생각이 깊지. 거기다 열심히 하는 노력파이니, 나는 너를 추천하고 싶구나.”
도원겸의 적전 제자가 되면 천수의곡의 곡주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장유가 지난 생에 이미 곡주였다고는 해도, 그것은 자신을 제외한 곡의 모든 사람들이 죽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비전을 하나도 물려받지 못한 이름뿐인 곡주였던 것이다.
‘경합에 참여해서 성공한다면, 곡주의 비전을 배울 수 있다.’
세상 누구에게 물어보아도 의술이라고 하면 천수의곡을 첫손에 꼽았다. 그중에서도 곡주와 부곡주만이 배울 수 있다는 의곡의 비전은 탐나지 않을 수 없었다.
“제가 경합에 나가서 잘할 수 있겠습니까?”
덥석 수락하면 경우가 아니니 겸손하게 묻는 장유였다.
“지금까지 보아 온 너라면 충분히 잘할 것 같구나.”
“하나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유고가 장유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유야, 너는 능력이 있고 실력이 있다. 네가 네 스스로를 믿고 노력한다면, 안 될 일이 무엇이 있겠느냐. 너를 믿을 수 없거든, 지금까지 너를 가르쳤던 모든 스승들을 믿거라. 그들이 만장일치로 너를 추천하였다.”
자신을 가르쳤던 모든 스승들인 의생관의 제일 스승부터 제십 스승까지 모두 자신을 추천하였다고 했다.
이것은 장유조차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과하신 믿음입니다.”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신 유고는 찻잔을 내려놓으며 장유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이 찻잔이 보이느냐?”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는 찻잔이었다.
“예.”
“이 찻잔 속의 차는 아주 따뜻하단다. 마시기 딱 좋은 상황이지.”
“…….”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란다. 차라는 것도 따뜻할 때 먹어야 맛과 향기 모두 좋지. 뜨겁다고 식혀 먹으면 향기와 맛이 모두 날아가 버리는 법이란다.”
“예.”
장유 스스로도 다도를 즐겼다. 형편 상 귀한 차를 맛보는 것은 무리였지만, 값싼 차라도 그 나름의 풍미와 향기가 있었다.
“기회란 이 차와 같단다. 지금 마시지 않으면 나중에는 다시 마실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지. 유야, 차는 따뜻할 때 마시거라.”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말고 잡으라는 말이었다.
더 이상 거절할 필요가 없음을 느낀 장유가 고개를 숙였다.
“스승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장유가 수락하자 유고의 얼굴에도 미소가 감돌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의생관의 모든 스승들에게 감사하거라. 그러고 보니, 담우 그 친구에게도 감사해야겠구나. 그 친구도 내게 추천서를 보내왔으니 말이다.”
원무관의 제사 스승 담우가 추천서를 보내 줬단다.
과거 위험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면서 전장의 우애는 느껴 보았지만, 의곡 내에서는 정을 느끼기 힘들었던 장유는 눈가가 시큰거리는지 손끝으로 문질렀다.
그렇게 장유를 유고는 하염없이 인자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자신의 숙소로 돌아온 장유는 곡주 경쟁에 참여하기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다.
곡주 경쟁은 총 세 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지필 고사로 의술과 관련된 모든 분야의 지식을 물어보는 시험으로써, 의원으로서 중요한 기초 지식이 있느냐 없느냐를 판별하는 시험이었다.
두 번째 시험, 의생관은 치료 실습을 통해 의원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순발력을 평가했고, 원무관의 경우에는 비무 대회를 통해 두 명을 가려냈다.
세 번째 시험은 토론 면접이었다.
면접관들이 응시생들에게 논제를 던져 주고, 그 논제를 토론하는 과정을 평가하는 것이 마지막 시험이었다.
장유가 지필 고사를 대비하여 그간 수업했던 의술서들과 스스로 공부했던 의술서들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있을 무렵이었다.
탕탕탕!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며 누군가 소리쳐 불렀다.
“장유, 장유!”
장유는 한 손에는 의술서를 든 채 숙소의 문을 열었고, 곧 익숙한 얼굴들이 나타났다.
대털, 호치, 여윤이었다. 그들이 장유를 찾은 것이다.
“너 적전 제자 경합에 나간다며?”
장유가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고개를 끄덕이자, 셋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와! 대단해. 열심히 하더니 결국 나가는 거구나.”
“역시 네가 인질극할 때부터 알아봤어.”
“설마 우리를 버리지는 않겠지?”
여윤의 마지막 말에 장유는 피식 웃어 버렸다.
‘귀여운 녀석들.’
“오냐. 당연히 안 버리지. 너희들 덕분에 좀 편하게 무공을 수련할 수 있었으니까. 내가 다음에 한자리 차지하게 되면, 꼭 너희들을 부르마!”
이번에도 역시 터져 나오는 환호성이 있었다.
“역시 인질극으로 뭉쳐진 우정이야!”
대털의 말에 나머지 셋은 와락 웃음을 터뜨렸다.
이후 잠시간의 이야기가 더 오고 간 후에 그들은 자신들의 숙소로 돌아갔다.
‘이제 경합까지 보름 남았네.’
장유가 주먹을 불끈 쥐며 다음 책을 펼쳤다.
***
얼마 후, 의생관과 원무관의 벽에는 각기 참가자 명단이 붙었다.
적전 제자를 뽑는 경합에 나서는 학생들에게는 개별 통지가 되었지만, 일반 학생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았기에 방을 붙인 것이다.
의생관, 경합 참가자 명단
제일 스승 추천 : 장유
제이 스승 추천 : 주비
제삼 스승 추천 : 가여람
……
제십 스승 추천 : 무우풍
원무관, 경합 참가자 명단
제일 스승 추천 : 진우청
제이 스승 추천 : 우오민
……
제십 스승 추천 : 구류연
각기 열 명의 후보자가 뽑혀, 도합 스무 명의 후보자가 경합에 참여했다.
적전 제자를 뽑기 위한 경합이 열흘 앞으로 다가왔을 무렵, 도원겸은 스무 명의 후보를 불러 저녁을 함께했다.
“여기 있는 자네들은 모두 우수한 성적을 자랑하여 각 스승들이 추천했다고 알고 있네.”
원생들에게 손수 차를 따라 주며 덕담을 한마디씩 했고, 장유에게는 차를 따라 주며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자네가 잘 해낼 것이라고 나는 믿네.”
장유는 겸허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감사합니다.”
숙소에서 먹던 식사와는 달리 저녁 만찬은 상당히 잘 차려져 있어 아이들의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었다.
동파육, 마파두부 등등 화려한 음식이 탁자 위를 자리했으며, 양도 많아 참석자들은 흐뭇하게 했다.
그러던 도중 도원겸이 입을 열어 화제를 던졌다.
“자네들은 음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음식을 먹는 것은 즐거움을 줄 뿐만이 아니라 생활하는 최소한의 힘을 얻을 수 있게 해 주니,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병은 근심에서 오는 것인데, 먹고 즐기니 어찌 근심이 올 수 있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저는 음식이란 훌륭한 의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가자들은 하나둘 입을 열어 자신의 의견을 말했고, 마침내 장유의 차례가 왔다.
장유는 차를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옛부터 ‘식이위천(食而爲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음식의 소중함을 잘 표현하고 있는데, 음식을 먹는 것은 본능에 속하는 일이면서 생명 활동의 근원인 동시에 먹는 즐거움 또한 안겨 준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건강 상의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음식이 어찌 의술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장유가 답하자 도원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로도 도원겸과 참가자들 사이에 몇 번의 질문과 대답이 오고 갔다.
식사의 분위기는 상당히 화기애애했다.
그 일이 벌어지기 직전까지 말이다.
“자네는 무공도 배웠다지?”
갑자기 진우청이 장유를 향해 물었다. 꺼림칙하다는 생각을 숨긴다고 숨겼으나 말투에 그대로 드러났다.
그런 진우청의 기색을 눈치채지 못할 장유가 아니었다.
장유는 심드렁하게 화답했다.
“뭐, 필요할 것 같아서 배우기는 했지.”
장유가 능청스럽게 받아치자 진우청의 미간에 순간 골이 패였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의생관생이면서 무공을 배운 점, 참으로 대단하게 생각하네. 하나 그 경지가 얼마나 깊을지는 잘 모르겠군. 무공은 책상머리에서 공부나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지 않나?”
명백한 시비이자 도발이었다.
도원겸도 장유가 어떻게 응수할지 보고 싶었기에 그대로 두고 보았다.
“자네 혹시 무학(武學)이라는 말이 무공의 다른 말임을 알고 있나?”
장유는 입 끝으로 피식 실소를 흘리며 무학을 언급했고, 진우청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잘 알고 있지. 그것도 모를 거 같은가?”
“그럼 다행이군. 난 또 모르는 줄 알았지.”
순식간에 인상이 차갑게 변한 진우청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장유가 한발 더 빨랐다.
“무학이라는 말에서 학문이라는 말이 들어가듯이, 무공 또한 학문과 다를 바가 없네. 그러니 책상머리에서 공부하는 수준이 팔푼이라면, 무공도 역시 팔푼이가 아니겠는가?”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무학 또한 제대로 익히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그 말에는 어폐가 있군. 학문은 머리를 움직이는 것이고, 무공은 몸을 움직이는 것이네. 또 사람마다 재능은 다른 법인데 그것은 어찌 설명할 텐가?”
진우청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지만, 장유는 그저 웃어 보였다.
“일정 수준까지는 가능할지 모르나 상위의 무공은 그렇지 못하지. 상위의 무공 역시 육체적인 노력이 중요하지만, 정신적인 깨달음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
사실 확실히 그런 것이, 무공을 익혀 고수의 경지에 오른 사람 중에는 바보가 거의 없다는 것이고, 설사 바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고수에 오르고 나서 특별한 일로 인해 바보가 된 것이지 처음부터 바보는 아니었다.
비급은 어려운 말과 전대의 고수들이 얻은 심득으로 작성되어 있는 만큼 머리가 나쁘면 익힐 수 없었다.
그렇기에 비급을 익혀 고수가 된 사람들은 하나같이 천재라고 불릴 정도로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었다.
물론 천재라고 하여 무공에 있어서 모두 높은 위치에 자리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 스스로의 노력이니 말이다.
그것이 학문이든, 무공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