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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쌍의 1권(18화)
六章 적전 제자 경쟁(5)
“에라, 재수 없는 자식아! 잘 먹고 잘살아라! 쳇! 이 썩을 녀석!”
한바탕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자 목이 말라 오고 갈증을 느낀 여윤이었다.
그녀는 주변에 대털과 호치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다시 한 번 진우청의 욕을 했다.
“칫! 정말로 재수 없는 녀석이야. 이 몸이 손수 물까지 떠왔건만.”
그러면서 목이 마른지 손에 들고 있던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캬아!”
그 장면을 바라보던 대털과 호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야, 너!”
“그, 그 물에는…….”
그렇다. 여윤이 방금 손에 들고 있다가 마신 물에는 직효를 자랑하는 놀라운 효과의 약이 들어 있었다.
꾸륵― 꾸르륵―
여윤의 자랑처럼 순식간에 효과를 보이는 약이었다.
여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엄마야! 나 어떡해!”
정말 되는 거 없는 여윤이었다.
***
원무관 비무의 진행 방식은 간단했다.
네 명의 출전자가 일대일의 비무를 벌이고, 승자 두 명만이 합격하여 삼차 시험으로 넘어가는 방식이었다.
의생관의 치료 실습 시험은 원무관 시험보다 하루 늦게 진행되기 때문에 장유는 원무관의 비무를 구경하러 갔다.
물론 옆구리가 시리지 않도록 하는 도예림이 붙어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오늘 누가 이길 것 같아?”
예림이 물어보자 장유는 출전자들을 살펴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진우청, 그 녀석은 이길 것 같네.”
“흐응, 그 재수 밥맛? 그건 별론데.”
“나 역시 그 녀석은 별로지만, 꼭 합격할 것 같은 녀석을 고르라면 그 녀석을 고르겠어.”
그들은 그렇게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구경하기 좋은 자리를 찾았다.
“여기가 좋을 것 같아. 잘 보이잖아.”
“동감. 그럼 여기서 보도록 하자. 그런데 손에 들고 있는 건 뭐야?”
장유가 그녀의 왼팔에 매달려 있는 연두색 보따리를 손가락으로 지목하며 묻자, 그녀가 한 번 흘깃 보더니 답했다.
“이거? 그냥 보면 심심하니까 먹을거리 들고 왔어. 잘했지?”
팔에 매달려 부비적거리며 애교를 부리는 도예림을 보며, 장유는 잘했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육 척 장신에 이르는 장유와 오 척을 조금 넘어서는 도예림의 다정한 모습이었다.
“헤헤헤, 기분 좋다.”
어느 순간부터 장유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을 즐기게 된 도예림이었다.
장유와 도예림이 다정하게 장난을 치고 있을 때, 비무대 정중앙에 심판이 나왔다.
“자, 지금부터 원무관의 이차 시험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비무인만큼 무기는 목검으로 진행합니다. 또 살수를 쓸 경우 실격패당할 수 있으며, 상대방이 더 이상 대결 의사를 보이지 않거나 정신을 잃었을 때 공격하는 경우에도 실격패당할 수 있습니다. 이 점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양 선수 앞으로.”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왼쪽에서는 진우청이, 오른쪽에서는 비운이 걸어 올라 왔다.
서로 포권을 취한 후 시작된 비무는 일방적이었다.
비운의 실력이 나쁜 건 아니지만 진우청의 실력이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한 번 싸워 본 장유로서도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는 실력이었다.
‘그러고 보니 저 녀석, 저번에는 검을 들지 않고 있었어.’
진우청은 주 무기가 검임에도 불구하고 장유와 싸울 때는 적수공권으로 나왔다. 그런데도 장유가 밀렸다.
‘저 녀석과 나의 실력 차이가 예상보다 더 크다는 거겠지.’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할 사실이었다.
장유가 주먹을 불끈 쥐었고, 두 눈은 또렷이 떴다.
지금 이 비무 장면을 한순간도 놓쳐서는 안 되었다.
‘얻어야 할 것은 얻는다.’
장유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일방적이던 비무는 결국 진우청의 승리로 끝이 났다.
상대가 패배를 선언하자 진우청은 관객석을 한번 둘러보다가 장유를 보고는 인상을 팍 썼다.
장유의 생각보다 훨씬 예민한 반응이었다.
‘왜 그런 거지?’
원무관과 의생관 사이의 불화라고 보기에는 너무 심한 반응이었다.
장유는 알지 못했다. 진우청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 도예림도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
진우청이 그녀를 처음 본 것은 삼 년 전이었다.
꽃처럼 화사한 그녀였기에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그녀를 향했고, 그녀를 마음속으로 사모했다.
하나 그녀는 아니었다. 그녀가 가는 곳에는 항상 눈에 넣기도 싫은 의생관생이 붙어 있었고, 그 녀석이 향하는 곳에는 항상 그녀가 있었다.
‘내가 저 녀석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밤잠을 새워 글을 써 보기도 하고, 그녀의 눈에 들기 위해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하나 그녀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지.’
삼 년을 노력했음에도 그녀를 향한 마음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눈물이 날 정도로 슬펐지만 그녀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에 기회가 찾아왔다.
자신이 나가는 곡주의 적전 제자 경합에 그 눈꼴시는 녀석도 참여하는 것이다.
그 녀석의 이름은 장유였다.
‘으득!’
적전 제자 경합에 참여하는 모든 참가자들이 함께한 저녁 식사에서 장유에게 망신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녀석이 망신을 당하게 하고, 그 위에 올라선 자신의 모습을 그녀에게 보여 주려고 했었다.
하나 그것은 오산이었다. 녀석이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검을 들지 않은 자신과 손을 나눌 수 있을 정도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나 결과는 동수였다. 이십여 합, 하다못해 십여 합만 더 겨루었더라도 자신이 이겼을 것이지만, 그 녀석은 천운이 돕는 것인지 곡주가 비무를 중단시켰다.
그렇게 그 녀석에게 수모를 주는 것은 실패로 돌아갔고, 놈과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음날에도 붙어 다녔다.
그리고 시작된 일차 시험이었다.
진우청은 자신이 원무관생이지만 웬만한 의생관생보다 의술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고 자신했다. 뿐만 아니라 전날에도 밤을 새워 공부했었기에 일차 시험에서는 반드시 녀석보다 먼저 시험지를 제출하고 합격하고자 했다.
하나 녀석이 쌓은 지식의 담은 견고했다. 자신이 여섯 번째 문제를 풀고 있을 무렵, 놈은 답지를 제출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진 감독관들의 탄성과 놀라는 모습에 득의양양하게 미소를 짓고 나가는 녀석을 보면서 얼마나 울분을 참았던가.
결국 그는 비무 대회에서 그녀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 주기로 결심했다.
도예림, 그녀도 분명히 비무 대회를 관람하러 올 것이니, 자신이 압도적으로 이기는 모습을 보여 주고자 했다. 그래서 초식도 화려하고 강맹한 것들만 사용하여 연신 상대를 압박해 들어갔다.
“한데! 왜! 왜 그녀는 나를 보지 않은 것인가!”
멋지게 상대를 눕히고 나서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그녀의 시선은 자신을 향하고 있지 않았다.
빌어먹을 장유라는 녀석의 입에 과일을 넣어 주는 그녀를 보면서 인상을 팍 찌푸려졌다.
그리고 하마터면 자신의 앞에 있는 패배한 상대에게 화풀이를 할 뻔했다.
진우청은 끓어오르는 화를 속으로 삼켰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슴 깊이 눌러 담았다.
‘내가 곡주가 되기 위해서는 곡주의 적전 제자가 되는 것은 물론, 그녀도 놓칠 수 없다.’
도도하게 구는 그녀를 볼 수록 더욱 의욕이 일어났다.
‘그녀라는 꽃을 반드시 내 손으로 꺾어 주겠다.’
***
의생관의 이차 시험, 치료 실습이 시작되었다.
이 실습 시험은 환자를 대하는 태도와 돌발적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에 대처하는 능력, 그리고 알고 있는 지식을 얼마나 실전에서 쓸 수 있는가를 평가했다.
이 시험에서 합격되는 사람은 단 두 명이었다.
“예, 이제 침놓겠습니다.”
이 시험은 장유에게는 상당히 유리했다. 불혹의 나이가 넘도록 한 번 생을 살았고, 많은 사람들을 치료하였다.
그렇기에 장유는 경험 많은 의원처럼 행동했고, 환자들뿐만 아니라 감독관들 사이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가 되었다.
“어휴, 지들은 저 의원님께 진료받고 싶구만유.”
“저두유, 저두유.”
“장유, 역시 잘하는군. 점수를 후하게 줘도 되겠어.”
“과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모범생이야.”
의생 치료 실습은 꾀병 환자를 두고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마을을 찾아가 의술을 행하는 것으로써, 매년 천수의곡에서 행해지는 의생 실습과 유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의생 실습은 스승님들의 진료를 보고 배운다는 점이고, 치료 실습 시험은 자신이 직접 환자들과 대면하고 치료한다는 점이었다.
“아이고, 의원님. 저는 허리가 아파서 못살겠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일도 못 하고…….”
이러한 신세 한탄도 일일이 다 들어주어야 했다.
환자들의 신세 한탄은 대부분 아픔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아픔이 없다면 이들이 신세 한탄할 일도 상당히 줄어들었으리라.
“상태를 보니 어디서 크게 삔 것 같은데요?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밭을 갈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지 뭐유. 아이고 허리야.”
장유가 자신의 침통에서 얇고 가는 세침을 꺼내 들었다.
“제 앞에 엎드려 보십시오. 제가 침을 놓아 드리겠습니다.”
환자가 장유의 앞에 엎드리자 환자의 등을 살핀 장유는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처 부분은 멍이 들어 있는 채 부풀어 있는 상태였다. 찢어진 것처럼 보이는 근육과 멍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상처가 부풀어 있는 것이 문제였다.
‘고인 피도 있는 것 같은데? 그대로 두면 썩어 버릴 테니, 먼저 고인 피부터 빼야겠어.’
상처가 부풀었다는 것은 그 안에 무언가가 고여 있다는 얘기였다. 고인 것은 피가 아니면 고름일 것이다.
어느 쪽이든 그리 좋은 상황은 아닌 것이다.
들고 있던 침을 내려놓은 장유는 작은 소도(小刀)를 꺼내 화로에 달궜다. 살균 소독을 하기 위해 칼날을 불에 달군 것이다. 그리고는 환자의 입에 물에 적신 헝겊을 물려주었다.
“고인 피를 빼기 위한 작업이라 아플 겁니다. 꽉 깨물고 계십시오.”
고통에 비명을 지를 때 이빨을 다칠 수 있기에 헝겊을 물려주는 것이다.
환자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장유는 소도를 환자의 등 부위로 가져갔고, 조심스럽게 소도의 날을 상처가 부푼 곳에 대고는 천천히 그었다. 피부가 갈라지며 피가 흘러나왔다. 다행히도 고름은 아니었지만 피색이 검은 것으로 보아서는 꽤 오래 고여 있던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