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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쌍의 1권(20화)
六章 적전 제자 경쟁(7)
“아주 잘했다, 잘했어. 만족할 만한 대답이구나. 자, 그럼 결과를 발표하도록 해야겠지.”
도원겸이 먼저 손바닥에 이름을 적어서 뒤집었다.
선명하게 적혀 있는 글자는 장유였다.
그 뒤를 이어 비허량과 유고도 손바닥을 뒤집었고, 그들의 손바닥에도 장유라는 글자가 먹물로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만장일치로 장유가 선발되었고, 가여람은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장유를 축하해 주었다.
“축하해.”
“고마워. 그리고 내가 되어서 미안해.”
“아니야, 확실히 네가 잘했지. 어쨌든 축하한다. 곡주님의 적전 제자가 된 거 말이야. 넌 이제 우리 의생관의 얼굴이야. 열심히 노력해 주길 바래.”
“당연히 그래야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장유였다.
장유는 이제 의곡의 비전을 배울 수 있는 적전 제자가 되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
***
귀뇌가 천살의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흑천의 준비가 예정보다 일찍 끝났습니다. 어찌할까요?”
그 말에 천살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역시나 대기를 지배하는 듯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대기를 진동시켰다.
“천수의곡을 밀어 버리는 계획을 시행하도록. 이번에는 내가 직접 가서 지켜볼 것이다.”
천살이 직접 가겠다는 말에 귀뇌가 화들짝 놀랐다.
“아니 됩니다. 아직 북천의 별[北天之星]이 지지 않았습니다. 그가 움직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천살이 귀뇌를 흘깃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손을 휘져었다.
그의 손에서 붉은 가루와도 같은 기운이 일어나 하늘의 별과 같이 허공을 그렸다. 마치 천문과 같이 움직이는 기의 가루들이었다.
천살은 그 광경을 잠시 보더니 말했다.
“북천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그도 선천지기를 최대한 아끼며 내가 나오기를 기다리겠지. 내가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면 그도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천문이라도 본 것일까?
천살은 자신의 기운을 손바닥으로 갈무리하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귀뇌는 그런 천살의 모습을 보며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최대한 의곡에 개입하지 말아 주십시오.”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천살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북천의 별, 북천검제(北天劍帝). 나의 유일한 맞수이자, 나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인물. 그런데 아쉽게 되었군. 자네와는 허심탄회하게 검을 겨루어 보고 싶었는데 말이야. 천 년의 대업을 완성해야 할 책임만 아니라면…….”
그의 혼잣말은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수명, 잘 보존하게나.”
지켜보던 귀뇌는 침묵했고, 천살은 그저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
비전을 배운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었다.
“침이란 기본적으로 음양과 오행, 건곤의 묘리에 따라 놓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살리겠다는 마음이다. 정성으로 환자를 대해야 환자가 기운을 내고 일어서는 거지.”
“오늘은 공명침술에 대해 배우겠다. 공명침술이란 침의 떨림을 이용해 환자의 혈을 풀어 주는 것으로써, 일곱개의 침이 서로 공명하며…….”
비전을 익히는데 바쁜 장유는 모르고 있었다.
흑천의 습격이 앞당겨졌다는 사실과 천살이 움직인다는 사실을…….
***
흑색 피풍의를 휘날리는 사람들이 산을 넘어 사천성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수는 대략 일백으로, 그들의 왼쪽 어깨에는 선명하게 붉은 글씨로 흑(黑)이, 반대편 어깨에는 귀호(鬼虎)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허리에는 삼 척 반 정도 되는 길이의 박도를 차고 있었다.
흑색 피풍의가 어둠 속에서 몸을 숨겨 주어 자세히 보지 않는다면 그들의 움직임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그들 중 선두에서 가던 자가 손을 들자, 동시에 모든 흑의인들이 그 자리에 정지했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가도록 한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익숙한 듯 나무 위로 몸을 숨기는 흑의인들이었다.
이들은 흑천의 귀호대였다. 개개인이 고수가 아닌 자가 없으며, 특히 귀호대장은 로(路)의 경지를 벗어나 성(成)의 중간 단계에 이른 고수였다.
귀호대장의 흑천 내에서 불리는 이름은 귀도귀음(鬼刀鬼音)으로, 그가 그렇게 불리는 것은 귀호대가 익히는 무공과 관련이 있었다.
귀호대원들은 박도를 사용한 쾌도술인 귀호살이라는 도법을 익히고 있었고, 이 도법이 경지에 오를 경우 검은 호랑이가 유영화되며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호랑이가 죽기 직전에 지르는 거대한 포효와 비슷하다고 하여 귀호살이라고 불렸다.
귀호살에서 나는 호랑이의 울음소리를 귀호명(鬼虎鳴)이라고 하는데, 귀호대 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귀호명을 울릴 수 있는 이가 바로 귀호대장이었고, 그의 귀호명이 울리면 반드시 적의 목숨이 떨어진다고 하여 귀도귀음이라고 불렸다.
그들이 나무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대원들 중 누군가가 귀도귀음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번에 천살께서도 오신다는 게 정말입니까?”
그의 말에 귀도귀음도 그에게 전음으로 답을 해 주었다.
“천살께서 오신다고 하셨다.”
“하면 그분은 언제쯤 오시는 겁니까?”
“천살께서는 이미 인간의 범주를 벗어나신 분. 아마도 우리가 의곡을 칠 때쯤에 도착하셔서 지켜보고 계실 것이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 후로 그들의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고, 휴식이 시간이 끝나자 다시 사천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삼천의 침입이 이미 시작된 줄 모르는 장유는 헛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삼천의 침입을 알리지?’
삼천의 침입이 이제 반년도 남지 않았다.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대비해야 했다.
자신의 기억대로라면 삼천은 흑영대(黑影隊)를 보낼 것이다.
침입하는 경로는 총 세 가지다, 협곡을 따라 들어오는 기습 부대와 시선을 끌기 위해 정면으로 침입하는 부대, 그리고 후방에서 뒤를 치고 들어오는 부대.
장유는 이들의 인원수와 진입하는 방식, 무공 수위도 알고 있었다.
하나 문제는 이것을 알릴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미래에서 왔기에 미래를 알고 있으니, 천수의곡의 멸망을 대비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한다면, 미친놈 소리 들으면서 돌 맞기에 딱 좋았다.
장유가 여러 가지 방법을 고민해 보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던 도중에 장유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꽤 그럴듯한 생각이 있었다.
‘서신을 이용하는 건 어떨까?’
잘못되더라도 자신이 했다는 것만 밝혀지지 않는다면 손해 볼 것도 없기에 일단 한 번 해 보기로 결심한 장유였다.
장유는 지필묵을 준비한 뒤 글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물론 글자를 살짝 흔들고 획 끝을 약간씩 반대쪽으로 힘을 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서체를 가리기 위함이었다.
급보
저는 구룡성 측에서 삼천이라는 모종의 단체에 파견한 첩자입니다. 제가 이렇게 천수의곡에 전서구를 붙이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오라, 귀 의곡에 상당히 급박한 위험이 있음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조만간, 늦어도 반년 안에 삼천이 발호할 것이고, 그중 한 무력 단체가 삼천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의곡을 습격할 것입니다.
구룡성에도 알려야 하지만 또 언제 기회가 생길지 모르는 상황이기에 이렇게 천수의곡 측으로 전서구를 보냅니다. 가능하면 구룡성에도 연락을 주십시오.
아래에 함께 보내는 지도는 의곡을 향해 진격할 삼천의 침투 경로입니다.
장유는 의곡을 그려 넣고 먹선으로 침투 경로와 인원수를 자세하게 적었다.
그리고는 그 편지를 돌돌 말아 끈으로 묶었다.
다음날 전서구를 붙일 수 있는 인근 마을을 찾아간 장유는 천수의곡을 향해 전서구를 보낸 뒤 유유히 의곡으로 돌아왔다.
***
흑의를 입은 한 노인이 감숙의 끝에 위치한 명사산을 날 듯이 뛰어 올라가고 있었다.
산세가 험했기에 웬만한 고수들도 오르기를 꺼려하는 산을 날 듯이 오른 그는 마침내 한 초가 앞에서 신형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검제, 여기 있는가?”
그 말에 초가의 문이 열리며 작은 소년이 걸어 나왔다.
이제 열 살 정도 되어 보이는 또랑또랑한 눈을 가진 소년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맑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저씨는 누구세요?”
소년의 물음에 흑의 노인은 씁쓸하게 웃어 보이며 말했다.
“검제의 제자냐?”
또랑또랑난 눈빛을 가진 소년은 근골 또한 천하일품이었다.
“사부님은 지금 잠시 뒷산에 가셨어요. 그런데 왜 찾으세요?”
“뒷산에 말이냐?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내가 찾으러 가 봐도 되겠느냐?”
그러자 소년이 만류했다.
“아니요, 가신 지 꽤 되었으니까, 곧 돌아오실 거예요.”
그 말이 끝날 때 즈음, 산길을 따라 초로의 노인이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여기저기 찢어지고 낡았다. 행색을 보면 딱 시골에서 농사짓는 노인네로, 어디에서도 고수의 풍모는 느껴지지 않았다.
“검제, 자네 천문을 읽었는가?”
검제, 시골 노인처럼만 보이는 그가 바로 북천검제(北天劍帝)였다.
북천검제 양의, 정파 무림의 거목으로, 나이 스물에 강기를 일으켰으며, 사십에 백 번의 비무에서 백 번을 승리하여 검제의 칭호를 받았다. 그가 육십에 이르렀을 때는 천하에 적수가 더 이상 없다고 할 정도였고, 칠십에 은거에 들어간 전대의 고수였다.
“이미 읽어서 알고 있네. 천살이 움직이기 시작했더군.”
검제, 그는 산길에서 몇 걸음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이미 흑의인의 앞에 서서 이야기를 꺼내고 있었다.
거리는 이십 장 남짓으로, 평범한 몇 보로 그 거리를 넘어온 것이다.
‘과연 검제.’
흑의인은 감탄을 속으로 삼키며 바로 본론을 이야기했다. 이 사안은 시급을 다투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천살이 금천단애(禁天斷崖)에서 나온 사실을 알고 있나?”
흑의인은 조급하게 말했다.
하지만 검제는 느긋했다.
“애야, 얼마 전에 묻어 둔 국화주 좀 떠오너라.”
“예, 스승님.”
제자를 시켜 술을 가져오게 하더니 곧 옆에 있는 지푸라기를 엮어 동아줄을 만들었다.
그 느긋함에 흑의인이 보다 못해 소리를 질렀다.
“검제!”
검제가 소리를 지르거나 말거나 느긋하게 동아줄을 만들던 검제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너무 조급해하지 말게나, 장제.”
장제(掌帝)!
검제와 같은 시대의 고수로서 검제보다는 한 수 아래로 치지만, 장법으로는 천하의 누구도 이길 수 없다는 장법의 황제였다.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 검제와 장제가 동급의 고수가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장제 자신은 잘 알고 있었다. 검제는 이미 인간이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났으며, 이미 선계에 오를 수 있으나 천살로 인해 선계에 오르지 못하고 현계에 묶여 있다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