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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쌍의 1권(22화)
六章 적전 제자 경쟁(9)
“여기서부터는 단 한 걸음도 가지 못한다!”
허세를 부리는 장유였다. 하나 그의 등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이제 그는 도망갈 수 없었다. 여기서 자신이 도망간다면,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을지 모른다.
어쩌면 이번에도 천수의곡이 멸망하고, 자신만 살아남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건, 지난 생이랑 다를 바가 없잖아. 일단 지금은…….’
의지는 굳건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방법이 생길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서 막을 뿐이었다.
장유가 다시 한 번 한 걸음 다가가며 소리 질렀다.
“내가, 내가 여기 있다! 아무도 이곳을 넘어서지 못한다!”
외침과 함께 선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
도예림은 갑작스러운 습격 소식에 깜짝 놀라며 다른 아이들 사이에 섞여서 대피하고 있었다.
그러던 도중에 뒤를 돌아보았는데, 놀랍게도 장유가 뒤에 남아 추격자들을 지연시키고 있었다.
‘안 돼! 장유가 죽을 거야!’
자신이 가 봐야 방해만 되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가 봐야 함께 죽을 뿐이라는 사실도 안다.
하나 머리가 판단하는 것과 가슴이 움직이는 것은 전혀 다른 법이었다.
마음의 판단이 머리의 판단보다 앞섰고, 그녀는 장유를 향해 달려갔다.
“장유!”
그녀가 장유를 소리치며 부르는 순간, 장유가 뒤를 돌아보았고, 추격자의 검이 날아들었다.
“장유!”
장유는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가 순간적으로 엄습하는 화끈한 감각에 고개를 숙이며 몸을 굴렸다.
흔히들 무림에서 말하는 나려타곤이라는 수법이었다. 게으른 당나귀가 바닥을 구른다는 의미에서 알 수 있듯 무림에서는 상당히 치욕스럽다고 말해지는 수법이었다.
나려타곤을 이용해서 바닥을 몇 바퀴를 굴러 피한 뒤 벌떡 일어났다.
곧장 귀 아래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감각에 손으로 귀 아래를 스윽 문질렀다. 아니나 다를까, 귀 아래 피부가 쩍 벌어져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까 전에도 볼을 베이기는 했지만 이번만큼 큰 상처는 아니었다.
상처 주변의 혈을 짚어 지혈한 장유는 자신의 옆까지 달려온 도예림을 보았다.
“바보야! 여기는 왜 온 거야!”
“윽, 윽, 니가 위험해 보였단 말이야.”
장유는 그녀를 더 채근하려다가 눈물범벅이 된 채 끅끅거리며 간신히 울음을 참아 내고 있는 그녀를 보고는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했다.
대신 애써 여유롭게 웃으며 이런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그녀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걱정 마. 이제부터 큰 것 한 방 날리고 튈 거니까.”
장유가 나려타곤을 이용해 공격을 피하는 것과 상처까지 입을 것을 본 귀호대원들은 아까의 치명적인 공격이 우연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장유와 도예림을 향해 박도를 휘두르려다가 흠칫했다.
장유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 가운데 그들의 귀를 자극하는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큰 거 한 방.
그 말과 함께 단 한 방에 귀호대원 중 하나가 쓰러지던 기억이 떠올랐다.
장유는 그들이 흠칫 하는 틈을 타 침통에서 침을 꺼내 손에 한가득 쥐었다. 그리고는 그 침에 기를 한가득 불어넣으며 도예림에게 말했다.
“셋 하면 뛰는 거야!”
울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도예림을 보며 장유는 씁쓸하게 웃었다.
‘암기술은 따로 익힌 적이 없는데 말이지.’
하기사 그가 펼치려고 하는 것은 암기술이 아니었다. 손에 침을 들고 던진다고 그게 다 암기술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장유의 단전에 있던 선기를 절반이 훌쩍 넘게 머금은 침은 유형화되지는 않았지만 희미한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하나.”
도예림이 침을 꿀꺽 삼켰다.
“둘.”
장유가 침을 꿀꺽 삼켰다.
“셋!”
셋 하는 외침과 함께 장유가 양손에 들고 있던 침을 던졌다.
던진 침이 날아가는 방향과 세기는 제각각이었으나 그 수가 적지 않았기에 귀호대원들은 검을 휘둘러 침을 걷어 버렸다.
그렇게 그들이 침을 걷어 내는 동안 장유와 도예림은 빠르게 발을 놀려 최대한 그곳에서 멀어져 갔다.
‘고작 침을 날린 것으로 그들을 묶어 둘 수는 없다.’
고작해야 한 호흡에서 두 호흡. 그 짧은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이 도망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하나 이번에도 장유의 예상과는 다르게 효과가 상당했다. 걷어 내다가 실수한 침, 이를테면 눈먼 침에 맞은 귀호대원들이 괴성을 지르면서 몸을 배배 꼬기 시작한 것이다.
“끄아아아아!”
수십 개의 침들로 나뉘는 바람에 아까 귀호대원을 일격에 내상을 입힌 것에 비하면 선기의 양은 미미했으나, 몸 내부에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마기와 선기가 충돌하면서 일어나는 고통은 상당한 모양이었다.
다른 동료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모습에 침에 찔리지 않은 이들이 당황해했다.
그다지 기운이 많이 담긴 침도 아니었고, 독이 발려 있는 침도 아니었다.
한데도 그렇게 괴로워하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숙련된 전투의 전문가들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 틈을 타서 장유와 도예림은 멀찍이 도망가 버렸고, 반 각가량을 고통을 호소하던 이들이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어, 그어, 그어, 허억…….”
고통으로 벌게진 눈으로 장유와 도예림이 도망간 방향을 노려보던 그들은 누가 뭐라고 할 것 없이 그쪽으로 몸을 날렸고, 다른 동료들도 그들을 따라서 움직였다.
***
장유와 도예림은 의곡의 내원으로 향했다.
내원으로 향할 경우 고립되어 갈 뿐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이미 사방을 포위하고 좁혀 들어오는 적들을 피하기 위해서는 내원으로 향해야만 했다.
“더, 더 빨리 달려.”
장유 자신은 더 빨리 달릴 수 있지만 도예림을 챙기면서 뛰어야 하기에 그 속도는 자연스럽게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나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내원으로 피신해 있는 일행과 합류할 수 있었고, 천수의곡 쪽에서도 필사적이었던지라 포위망도 더 이상 좁혀지지는 않았다.
‘남은 선기가 얼마 없다.’
장유는 잠시 숨을 고르며 남은 선기를 확인하였다가 그 양이 극히 미미함을 발견했다.
한 줌도 되지 않는 내력을 가지고는 무얼 하려고 해도 도저히 방법이 없었다.
‘선기를 회복해야 한다.’
위급한 상황임은 알지만 가부좌를 튼 상태로 선기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앞을 도예림이 막아서며 지켰다.
***
장유가 운공을 하고 있을 무렵, 방어선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귀도귀음의 합류로 순식간에 전장이 뒤집힌 것이다.
아흐흐흥!
귀호명이 울리는 순간, 한 명의 의곡 제자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가 바닥을 뒹굴었다. 종횡무진, 난전에서 어느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었으며, 정확하게 적의 목숨을 취하는 사신이 바로 그였다.
성(成)의 경지에 오른 고수인 그의 도격은 깔끔하고 완벽했으며 또한 빨랐다.
방어망의 한구석이 무너지자, 나머지가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고, 한 번 무너진 방어망은 복구될 줄 모른 채 상황은 더 악화되어만 갔다.
그런 귀도귀음의 앞을 막아선 의곡의 두 고수가 있었다. 곡주 도원겸과 원무관 제일 스승 비허량이 검을 비스듬하게 들고 섰다.
“당신들이 나를 막아선다면 피해가 막심할 텐데?”
무감각한 목소리였으나 말투는 분명 조롱이었다.
하지만 도원겸과 비허량은 그 정도의 격장지계에 흔들릴 정도로 수양이 낮지 않았다.
“여기서 자네를 막지 않으면 피해는 더 막심해지겠지.”
“자네만 죽어 줘도 상황은 한결 나아질 것이야.”
검에 의곡 특유의 심법에서 나온 상아색 검강을 입히는 비허량과 도원겸이었다. 얇기는 했으나 그것은 분명 강기였다.
검 위로 반 척 정도 솟아오른 강기를 본 귀도귀음이 비웃었다.
“흐흐흐흐, 그걸 지금 강기라고 꺼낸 것인가?”
비허량과 도원겸이 강기를 생성할 때는 잠시의 시간이 걸렸는데 비해, 귀도귀음의 경우는 박도를 완전히 검게 뒤덮으며 쑤욱 쉽게 올라왔다. 색은 더 짙었고 도 위로 한 척이나 되었다.
하나 비허량과 도원겸은 당황하지 않았다. 그간의 활약과 풍겨 오는 기도를 통해 자신들보다 고수라는 사실은 파악하고 있었기에 둘이 덤벼든 것이고, 조금이라도 유리한 위치에 서고자 선수를 노려 빠르게 튀어 나가면서 검을 휘둘렀다.
오른쪽과 왼쪽을 지나가며 베어 들어가는 검술이 펼쳐졌다. 둘 중 한쪽을 막으면, 다른 한쪽에 생긴 빈틈을 노릴 요량이었다.
하나 귀도귀음의 도법은 쾌도술이었다. 비허량의 검을 땅 하고 걷어 낸 순간, 박도가 물 흐르듯이 흐르며 거의 동시에 도원겸의 검도 걷어 냈다. 그리고 이어진 것은 전광석화와 같은 찌르기였다.
검은 강기가 뒤덮인 도가 앞에서 불쑥 튀어나오자 도원겸은 다급하게 그것을 피하려고 했으나 아쉽게도 반 호흡이 늦어 버렸다.
귀도귀음의 도가 도원겸의 왼쪽 어깨를 꿰뚫더니 그대로 베어 버린 것이다.
피가 어깨 뒤쪽으로 튀었을 때, 도가 어깨를 절삭하고 지나갔다.
“커억!”
다행히도 딸인 도예림이 그의 외마디 비명을 듣기에는 먼 거리에 있었기에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
비허량은 왼팔이 잘린 채 뒤로 비틀비틀 물러나는 도원겸에게 다가가 지혈 조치를 위해 주머니에서 녹색 가루를 꺼내 그의 왼팔에 뿌려 주었다. 지혈과 고통을 억제해 주는 약초 가루였다.
승기가 잡히자 귀도귀음은 승자의 여유를 부렸다.
“이거 둘이서 덤벼서 나 하나를 상대하지 못하는군.”
조롱임을 알고 있지만 뭐라고 대꾸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크윽! 성의 중급과 초입의 차이가 이렇게나 크다니…….’
비허량과 도원겸은 같은 생각을 하며 현실을 개탄했다.
그때 그들의 뒤에서 누군가가 창백한 얼굴과 힘이 풀린 발걸음으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
그의 입에서는 맥이 빠진 듯, 혹은 실성한 듯 들리는 웃음만이 흘러나왔다.
“우청아…….”
비허량이 그를 알아보고는 이름을 불렀으나, 그는 듣지 못한 듯이 무심하게 그들을 스쳐 지나 귀도귀음에게 다가갔다.
“우청아! 안 된다! 가면 안 된다!”
이번에는 아픈 것을 참고 도원겸이 소리쳐 불렀지만, 진우청은 여전히 반응하지 않았다.
진우청은 귀도귀음 앞까지 걸어가서는 들고 있던 검을 휘두르며 광기에 휩싸인 듯이 소리 질렀다.
“나, 난 이런 곳에서 죽을 수 없어! 난 살아서, 살아서 곡주가 될 거라고! 아하하, 아하하하핫!”
광기에 휩싸인 듯한 게 아니라, 명백하게 광기에 젖은 상태였다.
처음 보는 잔인한 전장의 모습에 이성이 마비되며 미쳐 버린 것이다.
귀도귀음은 그런 진우청을 ‘이건 또 뭐냐?’는 듯이 보다가 강기에 휩싸인 박도를 휘둘렀다.
비허량이 그런 그를 막기 위해 몸을 날렸으나, 이미 허공을 가른 검은 반달이 생겨나 있었고, 그 위로 붉은 피가 터져 나왔다.
진우청은 갈비뼈가 통째로 잘려 나가 버린 가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채 눈을 까뒤집으며 뒤로 무너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