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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1권 (2화)


“뭐라구? 말이면 단 줄 알아!”
송충이 같은 눈썹을 치켜올린 두삼이 벌떡 일어났다.
“다들 그만해! 우리끼리 싸워봤자 괜한 힘만 뺄 뿐이야. 그 힘은 아껴뒀다 마교에서 살아남는데 사용하라구!”
소소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흥!”
두삼이 으르렁거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고, 아신이 고개를 돌렸다. 마차 안에 다시 정적이 흘렀다.
왕오(소일도)는 묵묵히 어두운 창밖만 바라보았다.

이틀 정도 움직인 마차가 멈취섰다.
“내려라.”
사내의 냉막한 목소리와 함께 아이들이 마차에서 내렸다.
“이제부터 나와 너희는 모르는 사이다. 난 너희를 마교에 팔아넘기는 중간 상인이다. 정신 바짝 차려라! 지금부터는 칼날 위를 걷는다 생각해라.”
사내가 아이들을 이끌고 멀리 보이는 불빛을 향해 걸었다.
다섯 아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서늘한 긴장감이 온몸을 찌르르 울렸다.
이미 이 년의 혹독한 훈련을 견딘 그들이었으나, 아직은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참고 참았으나 두려움에 심장이 떨려옴은 어쩔 수 없었다.
불빛이 가까워지자 두 채의 허름한 모옥이 드러났다.
한 채는 창고인 듯 작게 뚫린 창문 하나만 있을 뿐 아직 그리 늦은 시간이 아님에도 희미한 불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내가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창고 옆 모옥으로 향했다. 낡은 문이 바람에 삐그덕거리며 신음 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똑똑똑!
사내가 문을 두드리자 안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머리가 헝클어지고 앞니 두 개가 없는 더러운 외모의 중년 사내가 머리를 내밀었다.
“크헤헤, 왔수? 이잉? 고놈들 싱싱하게 생겼구먼!”
사내가 입맛을 다셨다. 이자는 종회라는 자로 사람들을 납치해 포를 뜨거나, 토막을내어 파는 인육업자였다.
천하의 말종들 중에서도 가장 상종 못할 자가 바로 종회인 것이다.
고아나 가난한 하층민들은 종회에게 좋은 먹잇감이었다.
아이들의 고기는 연하고 냄새가 적어서 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종회의 눈이 번뜩였다.
얼굴은 온통 곰보 자국 천지였고 한쪽 눈이 다른 한쪽보다 작아서 일그러진 외모가 보는 이에게 혐오감을 주었다.
“잊은 건 아니겠지? 이 아이들은 마교로 보낼 것이다.”
아이들을 인솔해 간 사내의 날이 선 목소리가 종회를 향했다.
“스읍! 그렇지. 자―알 알고 말고! 아깝지만 할 수 없지요. 키키킥.”
종회가 입가에 흘러내린 침을 핥으며 음침하게 웃어댔다.
마교에 아이들을 팔면 인육으로 파는 것보다 세, 네 배를 벌 수 있다.
그래서, 오 년에 한 번 마동을 모집하는 행사는 그들로 있어선 대목이라 할 수 있었다.
“독사 당신이 직접 창고에 처넣고 오슈! 간만에 큰돈 좀 만져 보것구먼! 흐흐흐.”
비릿한 웃음이 종회의 입가에 머물렀다.
아이들을 데려온 독사라 불린 사내가 미간을 한 번 찡그리고는 창고로 향했다.
창고 문을 열자 고약한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다. 안에는 이미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이 덜덜 떨며 웅크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몰골은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엉망이었다.
창고 곳곳엔 배설물들이 쌓여 있었고, 쓰러져 정신을 못 차리는 아이도 있었다.
“우웩!”
장팔(반회종)이 역겨움을 못 이기고 구토를 했다.
제법 간담이 단련된 다섯아이조차도 가슴이 내려앉을 정도로 참혹한 광경이었다.
“들어가라!”
독사가 아이들을 거칠게 밀어넣었다.
소일도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할 것이다.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지옥이다.
인간임을 포기해야만 살아남아 복수할 수 있다. 소일도가 구석에 자리잡고 앉았다.
뒤를 이어 나머지 아이들도 각오를 다지며 바닥에 자리잡았다.
끼이익!
문이 닫히고 창고 안은 조그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 외에는 눈앞조차도 구분할 수 없는 어둠에 휩싸였다.
그 속에서 아이들의 흐느끼는 소리와 신음 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꽃이 지니 님도 떠나네…….’
소일도는 눈을 감은 채 아버지의 노래를 떠올렸다.
삼경이 지나 달도 떨어지고 어둠이 사방을 지배하고 있을 때 창고의 문이 서서히 열렸다.
끼이이익!
낡은 문짝이 신음을 토해냈다. 활짝 열린 문으로 한 인형의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키키키킥! 아무래도 그냥 넘기기엔 아깝구먼!”
역겨운 웃음을 지은 종회가 창고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종회의 번들거리는 눈이 한참을 두리번거리더니, 한곳을 향해 멈췄다. 바로 소소였다.
“고년 참 어린것이 어찌 저리 맛나게 생긴 것이여. 크크크!”
서늘한 공포가 소소의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짐승의 눈을 한 종회가 소소를 덮쳤다.
“아악! 사, 살려주세요!”
소소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흐흐흐, 이년아 걱정 붙들어 매거라. 절대 죽이지는 않을 거구먼, 큭큭!”
종회가 거칠게 소소의 옷을 찢었다.
“으아아아아!”
퍽!
그때, 구석에서 한 아이가 달려들어 온몸으로 종회를 들이받았다.
쿵!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힘이 제법 있어서 종회가 뒤로 크게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종회의 두 눈에서 서슬 퍼런 살기가 일었다.
“이 잡것이 어딜 감히! 이 새끼가 뒈지려고 환장했구먼! 오냐! 내가 직접 네놈의 포를 떠서 육고기로 만들어주마!”
종회의 주먹이 아이의 작은 몸에 작열했다. 아이가 두 팔을 교차해 막았으나 종회의 힘을 감당할 수 없었다.
“크윽!”
멀찍이 날아간 아이가 벽에 부딪혔다. 종회가 성큼성큼 걸어가 쓰러진 채 신음을 흘리고 있는 아이를 발로 걷어차기 시작했다.
퍽! 퍽!
아이는 웅크린 채 종회의 발길질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때, 또다른 아이 하나가 몸으로 종회의 옆구리를 받았다.
발길질을 날리던 종회가 두 걸음 뒤로 밀렸다. 몸을 날린 아이가 종회를 막아섰다.
“이것들이 단체로 뒈지고 싶은겨?”
종회가 품에서 날이 선 한 자 길이의 식도를 꺼냈다.
“무엇하는 짓인가!”
그때, 소란을 듣고 달려온 독사가 창고에 도착했다.
“말리지 마슈! 내 몇 푼 손해보는 한이 있어도 이 잡것들을 모조리 포를 떠 버릴 거구먼!”
광기에 눈이 돌아간 종회가 칼을 휘둘렀다.
“크악!”
칼을 휘두르던 종회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독사가 종회의 팔을 꺽어 던져 버린 것이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은가! 이 더러운 종자 새끼!”
독사의 오른발이 종회의 명치에 작열했다.
“끄으윽!”
뒤이어 독사가 종회의 머리를 밟아 땅바닥에 비볐다.
종회의 뺨이 흙바닥에 긁혀 껍질이 벗겨져 나갔다. 순식간에 뺨과 바닥이 피로 물들었다.
“내가 누군지 잊지 않았겠지. 감히 내 상품을 건드려? 니놈이 더 이상 살기 싫어진 모양이로구나! 내게 손해를 끼치고도 네놈이 목숨을 부지할 것이라 생각지는 않았겠지?”
서슬 퍼런 목소리로 독사가 종회의 온몸을 잘근잘근 밟았다.
“커어억! 제, 제가 잠시 미쳤나 봅니다. 제, 제발 살려주십시오! 다, 다시는 이런 일이 크헉! 제에발…….”
종회가 독사의 다리를 붙잡으며 애원했다.
“상품이 상하면 값이 줄어든다는 걸 잊은 게냐! 어차피 내일 마교놈들이 찾아올 테니, 이번 한 번은 용서하마!”
퍽!
독사가 종회의 안면에 발길질을 날린 후 질질 끌다시피 창고에서 끌어냈다.
다시 창고 문이 닫히고 소소의 흐느낌이 들렸다. 옷이 여기저기 찢겨 살이 드러났다.
“왕오! 괜찮아?”
마지막에 종회를 막아선 아이 두삼이 쓰러져 있는 왕오를 흔들었다.
“으……윽, 이 정도로는 끄떡없다.”
대답하는 왕오의 얼굴은 엉망진창이었다. 종회의 발길질에 입술이 터지고 눈두덩이 부어올라 있었다.
조금만 고개를 숙이는 게 늦었다면 실명했을 수도 있는 상처였다.
거동이 힘들었으나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는 듯했다.
적시에 몸을 웅크려 주요 장기를 방어했기에 내상도 생각보다는 적었다.
종회가 파락호가 아닌 무공을 배운 무림인이었다면 왕오는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휴! 다행이구나!”
안심한 두삼이 소소에게 다가가 자신의 웃옷을 벗어주었다.
“이걸 입도록 해…….”
이미 울음울 그친 소소가 두삼의 옷을 받아 걸쳤다.
“왕오는 어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소소가 두삼에게 물었다.
“다행히 뼈는 괜찮아.”
소소가 쓰러져 있는 왕오를 복잡한 표정으로 한 번 쳐다보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차피 모든 일을 각오한 그들이다. 이 정도에 쉽게 무너질 순 없었다. 소소의 눈빛이 다시 차갑게 가라앉았다.
꽉 다문 입술에는 피가 배어 나왔다. 그렇게 마교로 향하기 전날 밤이 폭풍처럼 지나갔다.



2. 지옥곡


아침이 되자 창고의 문이 열리고 독사가 들어왔다.
독사의 곁에는 처음 보는 사내가 자리하고 있었다.
흑포를 걸치고 머리에 치촬(緇撮)을 쓴 자였다.
수염이 덥수룩하게 턱을 덮고 있었으며, 눈빛은 매의 그것처럼 날카로웠다.
“물건의 상태가 좋지 않구나.”
몇몇 쓰러져 있는 아이를 보며 사내가 독사에게 말했다.
그는 마치 당연하다는 듯 하대하고 있었다.
누워 있는 아이 중엔 왕오도 있었다.
독사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허나 잘 살펴보시면 제법 괜찮은 놈들이 많습니다.”
독사가 허리를 굽히며 사내에게 읍했다.
“저놈과 저놈, 그리고 온몸에 멍이 든 저놈 이렇게 셋은 못 데려가겠다.”
사내가 손가락질을 해가며 세 아이를 제외했다. 온몸에 멍이 든 채 버티던 왕오도 그중 하나였다.
왕오는 위기감을 느꼈다.
여기서 제외된다면 복수의 길이 막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인육이 되어 팔려 나갈 판이었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몸이었으나, 이렇듯 시작도 못해보고 어이없이 끝날 순 없었다.
왕오가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크윽! 난 아무렇지도 않소! 이깟 상처쯤이야 하루면 나을 것이오! 이대로 굶어 죽느니, 차라리 당신에게 맞아 죽겠소!”
왕오가 온 힘을 다해 앞으로 걸어나왔다.
부들부들 떨리던 다리가 어느 순간 곧게 펴졌다.
사내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이마에 흉터가 있는 왕오의 생김새도 상당히 특이했고, 저 정도의 상처를 가지고도 열 살의 아이가 두려움 없이 자신 앞에 나섰다는 건 무척 흥미로웠다.
“이놈 봐라. 제법 강단이 있는 놈이로구나! 후후. 하지만, 마동이 되기 위해서는 강단만으론 어림없다!”
호통과 함께 사내가 공력을 끌어올렸다.
칼날 같은 살기가 왕오를 향했다.
“으윽!”
내공이 없는 왕오로서는 버티기 힘든 기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