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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1권 (3화)
뱃속에서부터 핏물이 올라왔다.
꿀꺽!
왕오는 이를 악물고 핏물을 삼켰다.
여기서 쓰러지면 모든 게 끝이다. 사내의 눈에 흥미로운 기색이 어렸다.
“크하하하! 재밌구나! 재밌어! 놈! 참으로 독하구나!”
사내가 살기를 거두었다.
“좋다! 너를 데려가 주지. 그리고, 네놈이 어떻게 커 가는지 지켜보마! 이거 오랜만에 유흥거리가 하나 생겼군 그래. 하하핫! 난 마교 내당 감찰단 소속 전궁이다! 훗날 니놈이 살아남으면 한번 찾아오거라.”
자신의 이름을 전궁이라 소개한 사내가 호쾌하게 웃어젖혔다.
‘휴!’
왕오와 나머지 아이들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자, 받거라 물건의 대금이다!”
전궁이 묵직한 주머니를 독사에게 건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독사가 고개를 조아리며 돈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전궁이 다섯 아이를 포함 열다섯의 아이를 이끌고 대기하던 다섯 대의 마차 중 두 대에 나누어 태웠다.
나머지 세 대의 마차 중 한 대에는 이미 다른 아이 일곱이 타고 있었다.
마차는 그리 크지 않았으나 아이들의 몸집이 작아 조금 좁게나마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타고 마차가 출발했다.
중간에 몇 곳을 더 들러 다섯 대의 마차에 아이들을 모두 채웠다.
며칠 뒤 다섯 대의 마차가 추가로 합류했다.
마차를 이끌고 온 자는 머리가 없는 대머리의 사내였는데, 전궁에게 깍듯이 허리를 숙이는 것으로 보아 전궁이 이 일행의 총책임자임을 알 수 있었다.
마차가 사천성을 넘어서기 전 아이들의 수는 백 명을 채웠다.
각 마차당 열 명의 아이가 꽉 끼어서 타고 움직였다.
백 명을 채우고 난 마차는 일사천리로 신강을 향했다.
두 달여를 넘게 움직인 마차가 사막을 빠져나오자 눈앞에는 마치 세상의 끝인 양 눈 덮인 산봉우리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마교의 심장 천산이었다.
마차는 하루를 더 움직여 기암괴석이 사방을 둘러싼 협곡에 도착했다.
나무 하나 없는 붉은 사암이 기괴하게 뻗어 오른 모습은 아이들에게 위압감을 줬다.
좌우에 높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절벽이 버티는 길로, 열 대의 마차는 신장들 사이를 지나는 죄많은 영혼의 행렬처럼 천천히 전진해 갔다.
협곡을 한참 동안 들어가니 낡은 표지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지옥곡(地獄谷)!
붉은색으로 음각된 글씨가 마치 인세의 지옥이 이곳이라는 듯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공포가 아이들의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표지판을 지나 마차가 서서히 멈췄다. 왕오는 부기가 많이 가라앉은 눈으로 창밖을 주시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지금부터는 절대 되돌릴 수 없다. 앞으로 나아가거나, 목숨을 잃거나 둘 중 하나뿐이다.
바싹 말라 버린 입술에 침을 발랐다. 나머지 네 아이들도 저마다 생각을 정리하는 듯 말 한마디 없었다.
“모두 내려라! 당장!”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문을 열고 허겁지겁 마차에서 내렸다.
눈에 잔뜩 두려움이 깃든 걸 보니, 아마도 다들 험한 꼴을 당했으리라.
상품으로 거래되는 순간부터 그들은 이미 인간이 아닌 것이다.
세 명의 복면인이 두 인솔자로부터 아이들을 인계받았다.
복면인들은 코를 막으며 아이들을 채근해 지옥곡 안쪽으로 향했다.
씻지 않은 채 오물 속을 뒹굴던 아이들에게서는 매우 고약한 냄새가 났다.
입구를 지나자 상당히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좁던 협곡의 끝에 이런 공간이 있으리라곤 누구도 예상치 못하리라.
아마도 오랜 시간 동안 인간의 손이 닿아 만들어진 듯 절벽 곳곳엔 바위를 파고 깍아서 만든 건물들과 동굴이 수백 개가 넘게 늘어서 있었고, 이곳저곳으로 갈라진 좁은 길들이 절벽 사이로 여러 개 위치하고 있었다.
복면인들을 따라 그중 한 갈래 길을 통해 다다른 곳은 지름이 이십 장 정도 되는 호수라기엔 작은 웅덩이였다.
위쪽에는 작은 폭포가 있어 웅덩이로 맑은 물을 공급하고 있었고 아래쪽으로는 돌 틈 사이사이로 물이 흘러내려 가고 있었다.
그곳에는 가죽 포대들을 싫은 수레와 두 명의 복면인이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웅덩이 앞에 다다르자 대기하던 복면인이 가죽 포대를 열어 검은 가루를 아이들에게 뿌렸다.
아이들이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허둥댔다. 가루가 온몸을 시커멓게 덮고 코로 들어가고 입으로 들어갔다.
숯가루였다. 몇 개의 가죽 포대를 모두 비우고 나자 복면인들이 아이들을 웅덩이로 몰아넣었다.
“모두 안으로 들어가라!”
퍽!
퍼퍽!
“으악!”
“꺄아아악!”
복면인들이 머뭇거리는 아이들에게 거친 발길질을 해대며 모두 웅덩이에 처넣었다.
웅덩이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물에 아이들이 턱을 덜덜 떨었다.
냉기에 놀라 뛰쳐나오려던 아이 몇 명이 복면인의 칼집에 맞아 머리에서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복면인이 쓰러진 아이를 발로 차서 물속에 처넣었다. 아이들은 공포에 휩쌓였다.
“몸을 깨끗이 씻도록 해라. 만일 일각 후에도 냄새가 나는 녀석이 있으면 내가 직접 살가죽을 벗겨주겠다!”
칼을 뽑아 든 살기 어린 복면인의 목소리에 아이들이 미친 듯이 때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옷을 입은 줄도 모른 채 손톱으로 온몸을 긁었다.
입고 있던 옷은 누더기가 되었고, 손톱에 긁힌 피부에선 피가 배어 나왔다.
남자와 여자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당장에 사느냐 죽느냐의 공포 외에는 아이들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모두 나와서 여기 있는 무복으로 갈아입는다. 실시!”
일각이 지나자 복면인이 아이들에게 다시 한 번 명령했다.
아이들이 물에서 나오자 복면인들이 눈대중으로 옷을 나눠주었다.
어차피 대중소 세 가지 크기밖에 없으니, 일일이 딱 맞출 수는 없었다.
“당장 갈아입도록 해라! 어서!”
복면인들의 서슬 퍼런 일갈에 아이들이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몇몇 망설이는 아이들에겐 여지없이 복면인의 구타가 이어졌다.
옷은 움직이기 편하도록 통이 그리 넓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자신의 몸에 비해 치수가 큰 편이었는데, 아마도 성장이 빠른 아이들의 특성을 고려한 듯했다.
물기를 닦지도 못하고 무복을 걸쳤기에 축축한 느낌이 불쾌했지만, 누구 하나 불평하지 못했다.
“일렬로 서서 나를 따라와라!”
키가 작은 복면인이 아이들을 인솔했다.
아이들이 덜덜 떨며 삐뚤빼뚤 늘어서서 복면인을 따랐다. 계곡의 날씨는 초여름임에도 상당히 쌀쌀했다.
그 와중에 젖은 옷을 입고 움직이려니 아이들의 몸으로 버티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좁은 갈래길을 통과해 다시 중앙 광장으로 다다른 복면인이 절벽을 빙둘러 나선 모양으로 설치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입구를 통과해 들어서면서 보았던 동굴 앞에 이르자 복면인이 제일 선두에 선 아이 열 명을 동굴로 집어넣었다.
“이곳이 너희들의 숙소다!”
그렇게 열 명씩 나뉜 아이들이 열 개의 동굴로 흩어졌다.
“오늘은 숙소에서 쉬고 내일부터 훈련이 시작될 것이다! 아침에 집합 신호를 들으면 광장으로 모여라! 이상!”
복면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주의를 주고는 절벽 아래로 사라졌다.
왕오가 들어간 동굴은 네 번째 동굴이었다.
웅덩이에서 나오면서 나머지 네 아이들과 흩어져 버렸다.
왕오와 함께하게 된 아홉 명의 아이들은 추위와 공포에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왕오는 웅크린 채 동굴 안을 살폈다.
침상이라고 생각되는 나무로 된 상자 비슷한 것들이 벽쪽에 자리하고 있었고, 이불이라기엔 조악한 천 조각들이 침상 위에 뒹굴고 있었다.
제일 안쪽에는 배설물을 처리하는 항아리가 놓여 있었고, 그 외에는 그저 돌벽과 돌바닥만이 보일 뿐이었다.
함께하는 아이들은 모두 사내였다.
아마도 열을 세우며 남녀를 갈라놓은 듯했다.
아직 몸이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차가운 물에 들어갔다 온 여파인지 조금씩 오한이 몰려오고 있었다.
“으드득!”
왕오가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이 정도에 죽을 자신이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어떻게 해서든 몸 상태를 최선으로 유지해야 했다.
젖은 옷을 모두 벗은 왕오가 나무 침상으로 얼른 들어가 이불을 덮었다.
물기가 없으니 그나마 추위가 조금 가시는 듯했다.
‘쉬어야 한다. 아침까지는 최대한 몸을 정상으로 돌려야 해!’
왕오가 몸을 웅크린 채 억지로 잠을 청했다. 나머지 아이들도 왕오를 따라 옷을 벗고 침상에 들었다.
지옥곡의 첫날이 그렇게 지나갔다.
뿌우우우우―
“모두 집합!”
“어서 튀어나와!”
퍽! 퍼퍽!
둘째날 아침도 무자비한 구타와 함께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딴생각을 할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뿔피리 소리가 울리고 조교들이 동굴에 있는 아이들을 광장으로 몰았다.
왕오가 재빨리 옷을 입고 광장을 향하며 보니 자신들이 들어갔던 열 개의 동굴 외에도 수많은 동굴에서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충 보아도 천 명은 되어 보이는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아마도 호북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사들인 아이들일 것이다.
광장 안에 아이들이 모두 모이자 광장 앞쪽 연단에 족히 삼백 근은 넘을 것 같은 거구의 괴인이 등장했다.
괴인은 두꺼비를 연상시키는 역겨운 외모를 하고 있었는데, 커다랗고 두터운 입술은 좌우로 치켜 올라가 있었고, 그 위에 두 갈래의 콧수염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가느다란 눈꼬리는 쳐져서 마치 인형극의 등장인물을 보는 듯한 기괴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괴인의 커다란 입술이 열렸다.
“정렬.”
나직하고 소름 끼치는 괴인의 목소리가 광장 전체로 퍼지자 복면을 한 육십 명의 조교들이 움직였다.
퍽!
퍼퍽!
“아악!”
“사, 살려주세요!”
“끄으윽!”
사방에서 비명이 난무하고 피가 튀었다.
공포에 떨며 머뭇거리던 아이들의 몸이 잔혹한 폭력에 저절로 움직였다.
조교들의 구타로 조금씩 아이들이 열을 맞추어갔다.
“이런이런…… 불쌍한 아이들을 어찌 그리 괴롭히는 것이냐! 천마의 뜻을 이어받고 성화를 받드는 자로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갖지 못한다면, 어찌 당당한 교도라 말할 수 있겠느냐! 쯧쯧…….”
괴인의 책망에 조교들의 구타가 멈췄다.
괴인이 웬만한 장정의 허리 두깨와 맞먹을 듯한 팔을 들어 올렸다.
팔을 느릿하게 들어 올린 괴인이 손가락 세 개를 펼쳐 앞쪽을 향했다.
쉬이이이익!
퍽! 퍽! 퍽!
순간, 괴인의 손가락에서 섬광 같은 지풍이 날아가 세 아이의 이마를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