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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1권 (5화)


크아아아앙!
성난 늑대가 거칠게 달려들었다.
“우아아아아악!”
십팔호가 눈을 감고 마구 칼질을 해댔다.
‘이런! 미친놈!’
십팔호의 칼질에 잘못하면 왕오가 다칠 판이었다.
“왼쪽으로 피해!”
엎드렸다간 일어나기도 전에 늑대에게 당할 것 같았다.
고함을 침과 동시에 왕오가 십팔호 쪽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광기에 휩싸인 십팔호가 한발 늦게 움직였다.
왕오의 어깨가 십팔호와 부딪혀 움직임이 멈췄다.
순간 늑대의 날카로운 이빨이 왕오의 오른쪽 어깨를 덮쳤다.
“크악!”
오른손의 단도가 땅에 떨어졌다.
늑대가 어깨를 문 채 머리를 마구 흔들어댔다.
왕오가 좌우로 허수아비처럼 흔들렸다.
놀란 십팔호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비명을 질렀다.
“크으윽! 늑대의 옆구리를 찔러! 어서!”
왕오가 사력을 다해 소리쳤다.
“으으으으! 으아아악!”
십팔호가 비명을 지르며 왼손에 든 단검으로 늑대의 옆구리를 마구 찔렀다.
왕오에게 연결된 수갑 때문에 십팔호의 몸도 이리저리 끌려 정확하게 찌르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정신없이 칼질을 해댄 끝에 늑대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었다.
크아앙!
늑대가 고통에 크게 울부짖었다.
그 틈에 어깨를 빼낸 왕오가 재빨리 단검을 주어 늑대의 목에 박아넣었다.
말이 쉽지 이제 겨우 열 살에 불과한 아이가 몸부림치는 늑대의 목을 정확히 찌른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림맹에서 받은 이 년간의 훈련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거대한 늑대가 목에서 피를 뿜어대며 땅에 쓰러졌다. 늑대는 몇 번 경련을 일으키더니 숨을 멈췄다.
“이, 이겼어! 우…… 우리가 해냈어!”
십팔호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크윽! 아직 끝난 게 아냐! 조심해!”
왕오는 주변을 경계했다.
다른 늑대가 다가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피범벅이 된 오른쪽 어깨의 살점이 너덜거렸다.
다행히 힘줄이 다치지 않아 조금 불편하지만 움직일 수는 있었다.
의외로 약기운 때문에 고통은 그리 크지 않았다.
왕오는 제발 약기운이 조금만 더 버텨주길 속으로 기도했다.
십팔호는 힐끔힐끔 왕오를 쳐다봤다.
자신 때문에 다쳤다 생각하니 괜히 미안하고 고마웠다.
처음엔 왕오의 인상 때문에 두렵고 피하고 싶었으나, 자신을 대신해 상처 입은 왕오를 보며 그가 생긴 것과 다르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 생각되었다.
왕오 때문에 십팔호는 목숨을 건진 것이다.
주변엔 아이들의 시체와 늑대의 시체로 피바다를 이루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무공을 익힌 듯 여유롭게 늑대를 상대하고 있는 몇 명의 아이들이 보였다.
그 아이들 덕에 그나마 희생이 줄고 있었다.
왕오와 같이 침투한 네 아이들도 상처를 입었지만 그런대로 잘 버티고 있었다.
한 마리의 늑대를 더 상대하고 진이 빠졌을 때쯤 모든 늑대가 전멸했다.
광장 안은 목불인견(目不忍見)의 참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삼백이 넘는 아이들이 늑대에게 목숨을 잃었다.
제대로 된 시체조차 남기지 못한 아이들도 있었다. 아마도 늑대의 뱃속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팔다리며 신체 일부가 여기저기 찢겨져 뒹굴었다.
아이들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땅에 주저앉았다.
자신들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아직 실감나지 않는 듯했다.
“모두 정렬!”
조교의 외침이 광장을 울렸다. 아이들이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로 간신히 줄을 섰다.
줄은 여기저기 이가 빠져 있었다.
조교들은 살아남은 인원을 확인하고 부상자들을 파악해 심한 자들은 의당으로 보내고, 움직일 수 있는 아이들에겐 약과 붕대를 나눠주어 스스로 치료하게 했다.
조교들은 수갑을 풀어준 후 오늘 짝 지은 두 명이 항시 함께하도록 명령했다.
숙소로 돌아가 간단한 지혈을 하고 금창약을 바른 왕오는 조교가 나눠준 천으로 어깨를 동여맸다.
환단의 약기운이 사라지자 무기력감과 고통이 온몸을 헤집었다.
과다한 출혈 때문에 혼미한 정신으로 하루를 되집어 보았다. 쉽지 않은 하루였다.
다행히 십팔호가 정신을 차려 간신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고…… 고마워.”
십팔호가 왕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왕오가 아니었다면 목숨을 잃었을 것이라는 걸 아는 것이다.
말할 기운도 없었던 왕오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십팔호가 없었다면 자신이 이렇게 크게 다칠 일은 없었을 터였다.
하지만 마지막엔 십팔호로 인해 목숨을 구하기도 했다.
조교들은 아마도 동료 의식을 느끼게 하기 위해 이런 행위들을 시키는 것일 터였다.
‘동료라…….’
간자에게 동료는 이용할 수 있는 수단에 불과했다.
간자의 길은 오로지 홀로 걸어야 하는 길이었다.
왕오는 점점 몰려오는 피곤에 눈을 감았다.
이렇게 지옥곡의 둘째 날이 지나갔다.

“그래 일계의 실행 결과는 어찌 되었는고.”
홍탁이 입술을 실룩거리며 물었다.
“총 삼백십오 명이 사망하고 회생 불가능한 중상자가 사십이 명입니다. 천 명의 마동들 중 육백삼십삼 명이 살아남았습니다.”
홍탁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생존했구나.”
홍탁의 날카로운 눈빛이 이유를 묻고 있었다.
“오세(五勢)의 자제들이 마동으로 합류한 탓입니다.그들이 많은 늑대를 사살했습니다.”
조교의 대답에 홍탁의 인상이 더욱 일그러졌다.
“망할 것들! 그것들이 왜 지옥곡에 입곡한 게냐! 그놈들은 이런 훈련이 필요없지 않느냐!”
홍탁이 흥분해서 버럭 소리쳤다.
“아무래도 팔 년 뒤 열리는 마천혈룡제(魔天血龍祭)를 대비해 쓸 만한 무사들을 자신들의 세력으로 포섭하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조교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흥! 벌써부터 안달이 났구나! 아직 교주가 자리를 내놓은 것도 아니거늘!”
홍탁이 거칠게 코웃음을 쳤다.
마천혈룡제는 새로운 교주를 뽑는 행사로 오 일 동안 후기지수들을 경쟁시켜 나머지 참가자를 모두 제압한 한 명을 뽑아 다음 대 교주로 임명하는 일종의 쟁투였다.
지금의 교주 북궁천이 정마대전의 책임을 지고 일단은 흐트러진 마교를 안정시킨 후 십 년 후에 물러나기로 했기에, 정확히 팔 년 뒤에 마천혈룡제가 개시되는 것이다.
교주로 임명된 후기지수는 교주 무공을 어느 정도 완성할 때까지 폐관하게 되고 그동안 그를 배출한 가문의 수장이 임시 교주직을 맡게 된다.
마교의 가장 강력한 다섯 세력을 마교오세라 불렀는데, 다음 교주를 배출해 낼 가장 유력한 후보도 그들이었다.
그렇기에 다섯 세력이 벌써부터 암암리에 세력 만들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일단 이계(二計)를 실행하고 육 개월 후에 일전에 일렀던 것을 실시하라!”
홍탁의 명령에 복면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그것을 진정 실행하실 작정이십니까? 그리되면 상부에서 문제 삼을 수도 있을 텐데…….”
홍탁의 눈에서 살광이 터져 나왔다.
”내가 누구더냐! 혈섬이니라! 피를 탐하고 잔혹한 죽음을 찬양하는 피의 사자이니라!”
홍탁의 장포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방 안의 집기와 창문이 홍탁의 기세에 마치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
눈에 핏발이 선 채로 홍탁이 조교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선언하듯 말했다.
“나 혈섬 홍탁이 총교령으로 있는 동안! 산 자가 죽은 자보다 많아서는 안 된다!”
조교가 홍탁의 거친 기세에 눌려 신음을 흘렸다.
검은 복면이 입에서 흘러내린 피로 축축하게 물들었다.
“며, 명에 따르겠습니다!”
조교가 힘겹게 답했다.
홍탁의 벌개진 얼굴이 점차 제 색깔을 찾기 시작했다.
부풀었던 장포도 가라앉았다.
홍탁이 창문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들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 방법이기도 하니, 의문을 갖지 말라! 그만 나가 보거라!”
셋째 날 아침도 조교들의 구타와 함께 시작되었다.
전날 많은 아이들의 죽음으로 칠백 명도 안 되는 아이들이 광장에 집결했다.
각 대마다 인원이 달라 열의 끝이 맞지 않았다.
왕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 외에 네 명의 아이들 모두 살아남았다.
그중 특이하게도 아신은 별다른 상처가 없었을 뿐 아니라 옆에 아무도 없이 혼자 서 있었다.
두 명 중 한 명만 살아남은 것이다. 이것은 무척 드물고도 힘든 일이었다.
‘시체를 끌고도 상처없이 살아남다니! 대단하군!’
조교들이 앞으로 나섰다. 왕오는 재빨리 자세를 잡았다.
조교들은 모두 복면을 하고 있어서 누가 누구인지 구분하기가 불가능했다.
그저 가장 앞에 나서는 조교가 책임자이겠거니 짐작할 뿐이었다.
“훗, 독한 놈 혼자 살아남다니.”
조교의 수장인 듯한 자가 아신을 바라보며 냉소를 지었다.
“동료의 팔을 자르고 홀로 살아남았다고? 참으로 대단하지 않은가! 십대 팔십이호. 네놈을 앞으로 유심히 지켜보겠다. 큭큭.”
아이들이 놀라 아신을 곁눈질했다.
아신은 처음 늑대들이 나타나자 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다. 늑대들이 다가오기 전 수갑을 채운 앞 번호 아이의 팔을 잘라 버린 것이다.
물론, 그 아이는 늑대의 재물이 되었다.
하지만, 그덕에 아신은 훌륭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어차피 믿을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선 동료애 따위의 사치스러운 감정을 버려야 했다. 아신은 묵묵히 앞만 바라보았다.
‘아신다운 선택이군!’
왕오는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신을 잘 아는 나머지 세 아이도 왕오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저 녀석은 살기 위해서라면 우리도 버릴 놈이지.’
왕오가 굳은 표정으로 아신을 바라보았다.
물론 자신도 그런 상황이 오면 아신처럼 행동할지도 모른다. 어쨋든 서로의 정체까지 알고 있는 이상 조심해야 할 놈임에는 틀림없었다.
“지금부터 지옥곡 주변을 한 바퀴 돌아 한 시진 내에 다시 이곳에 집합한다! 한 시진 안에 도착하지 못하는 놈들에겐 아침 식사가 없다! 인솔하는 조교를 따라 출발하라!”
명령과 함께 일대부터 아이들이 조교를 따라 지옥곡 입구를 나섰다.
‘좌우로 길이 없는데 어찌 한 바퀴를 돈다는 것이지?’
왕오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지옥곡 입구는 양쪽이 절벽으로 막혀 있었기 때문이다.
입구 밖에는 두 명의 조교가 대기하고 있었다.
헌데, 놀랍게도 우측과 좌측의 절벽에는 각각 열줄의 쇠사슬이 꼭대기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부터 쇠사슬을 잡고 좌측 절벽을 오른다! 일대부터 실시!”
대기하던 조교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얼핏 봐도 십 장은 우습게 넘어 보이는 절벽을 쇠사슬만으로 올라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겐 어마어마한 높이였다.
조교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는 아이들에게 몽둥이질을 했다.
아이들은 덜덜 떨며 어쩔 수 없이 쇠줄에 몸을 맡겼다.
팔에 힘이 지나치게 들어가 후들거렸다.
그래도 늑대와의 사투에 살아남은 아이들은 예전처럼 정신을 놓거나 하진 않았다.
온 힘을 다해 쇠줄을 잡고 위로 오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