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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1권 (6화)
일대의 아이 중 세 명이 추락해 그중 한 명이 죽었다.
나머지 아이들은 비교적 낮은 곳에서 떨어져 경상만 입은 채 다시 쇠줄을 탔다.
두 명의 아이가 더 죽고 열 명이 넘는 아이들이 추락한 후 십대의 차례가 왔다.
왕오에겐 늑대에게 물린 오른쪽 어깨가 상당한 장애로 작용했다. 힘을 반도 못 주는 상태였다.
이를 악물고 쇠줄을 붙잡은 채 절벽을 올랐다. 팔로만 올라서는 꼭대기까지 가기가 쉽지 않다.
다리와 허리를 함께 사용해야 했다. 어깨의 상처가 터져 피가 흘러나왔다.
“후욱!”
왕오의 온몸에서 비 오듯 땀이 흘렀다. 어깨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이마에서 흐른땀이 자꾸 시야를 가렸다.
흐릿한 시야에 정신마저 혼미해질 때쯤 위에서 누군가 왕오의 팔을 당겼다.
“힘내 십칠호! 얼마 남지 않았어!”
십팔호였다. 정신을 차린 왕오가 힘을 쥐어짜 냈다.
왕오의 왼손이 정상을 짚었다. 살았다는 안도감에 온몸의 힘이 풀렸다.
왕오를 향해 미소를 보이고는 앞으로 달려가는 십칠호가 보였다.
간신히 오른 왕오가 숨을 고르기도 전에 채근하는 조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멈추지 말고 당장 움직여라!”
퍽!
조교의 주먹이 왕오의 복부에 작열했다.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의 충격에 쓰러진 왕오의 머리채를 잡아 올린 조교가 얼굴을 들이대며 으르렁거렸다.
“약한 놈은 죽는 게 강호의 법칙이다! 질질 짜지 말고 움직여라!”
순간! 왕오의 무복 주머니에 재빨리 조교의 손이 들어왔다 나갔다.
왕오가 눈을 치떴다.
“아무 일도 없는 듯 행동해라! 광장으로 돌아가기 전 기회를 봐서 쪽지를 확인해라!”
전음이었다. 왕오는 즉시 놀란 표정을 지우고 앞을 향했다.
‘누구인가, 왜 내게 쪽지를 준 거지?’
잠시 혼란스럽던 왕오의 눈빛이 빛났다.
‘그렇군! 저자도 간자구나! 먼저 침투한 자임이 틀림없어! 벌써 임무를 내릴 것 같진 않은데…….’
왕오는 그가 무림맹의 간자일 것이라 짐작했다.
하지만 분명 공야월은 지옥곡을 나서기 전까진 임무가 없을 거라 하지 않았던가.
왕오는 일단은 의문을 접었다.
아차하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에서 딴생각을 한다는 것은 치명적일 수 있기때문이었다.
얼마간 전진을 하니 조금씩 뒤로 처지는 아이들이 생겨났다. 평탄하지 않은 길을 뛰어야 하니 쉽지가 않은 것이다.
앞을 보고 가는 왕오의 등을 누군가 툭 쳤다.
두삼이었다. 두삼은 왕오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하고는 어깨를 맞대고 옆에서 함께 달렸다.
두삼이 무복의 주머니를 가리켰다.
너도 받았냐고 물어보는 듯했다. 왕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앞쪽으로 다시 두 명의 조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이어지던 길이 끊어져 있었다.
두 번째 관문은 폭이 삼십 장은 되어 보이는 낭떠러지였다.
두 절벽 사이를 쇠사슬 두 줄에 의지해 건너는 훈련이었다.
바람이 상당해서 쇠사슬이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다.
발이 미끄러진 아이들이 쇠사슬에 대롱대롱 매달려 비명을 질러댔다.
이곳을 통과하며 다시 몇 명의 아이가 계곡에 떨어져 죽었다. 그야말로 지옥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입에 침이 말라 버릴 정도로 육체가 한계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
“꾸물대지 말고 움직여라!”
조교의 채근에 반 각 정도 전진하자 위아래 높이가 사람 머리 하나 간신히 들어갈 것같은 폭 십 장 정도의 바위 틈새가 나타났다. 통과하려면 자갈이 깔린 바닥에 엎드려 기어야 하는 모양새였다.
조교들의 눈을 피해 쪽지를 살필 절호의 장소였다.
왕오와 두삼이 엎드려 틈새로 들어갔다.
이십 장이 넘게 이어지는 틈새를 기는 동안 자갈에 부딪힌 온몸이 멍투성이로 변했다. 왕오는 쪽지를 꺼내어 살폈다.
쪽지에는 무림맹에서 배운 암구호가 적혀 있었다.
이심공(理心功)을 배워라.
쪽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지금으로썬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이심공이라는 무공을 배워야 한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왕오와 두삼은 이심공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 새기고는 쪽지를 씹어 삼켰다.
바위 틈새를 통과한 후 길 없이 바위들만이 삐죽 삐죽 솟아 있는 험난한 지형을 온몸을 사용해서 지나고 나니 절벽 아래로 지옥곡의 입구가 내려다보였다.
한 바퀴 돌아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아이들은 땀과 상처에서 흐른 피로 범벅이 되어 살벌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쇠줄을 타고 내려선 아이들의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다왔다는 생각에 마지막에 힘이 풀려 추락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왕오가 절벽에서 내려와 지옥곡에 들어서니 이미 삼백 명 정도의 아이가 도착해 있었다.
모두 기진맥진한 채 바닥에 눕거나 앉아 있었다. 왕오 역시 도착과 동시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조교들은 그런 아이들을 제지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모두 정렬! 지금부터 들어오는 놈들은 아침이 없다!”
모래시계를 확인하던 조교가 소리쳤다.
지친 몸을 이끌고 아이들이 간신히 일어섰다.
한 시진이 넘어 도착한 아이들은 입구 앞에서 따로 조교들의 몽둥이 세례를 받아야 했다.
잠시 후 음식을 실은 몇 대의 수레가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었다.
음식은 생각보다 좋았다.
고기와 야채가 제법 많은 양이 배급되었다. 더욱 좋은 점은 식사를 하는 동안만은 조교들이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시진이 넘어 들어온 아이들은 부러운 눈으로 식사 광경을 바라보았다.
반 시진 정도 비교적 넉넉하게 주어진 아침 시간이 끝나고 조교들이 다시 아이들을 집합시켰다.
아침 훈련으로 열다섯이 죽고 서른두 명이 중상을 입었다.
“이제 매일 아침 묘시(卯時:5시―7시) 초에 지금처럼 지옥곡 주변을 돌게 될 것이다. 앞으로도 한 시진 안에 완주하지 못하면 아침은 없다! 살고 싶으면 뛰어라! 살아남는 자만이 천마신교의 전사가 되는 영광을 얻을 수 있다!”
조교의 말이 끝나고, 반백의 장년인이 앞으로 나섰다.
그는 복면을 하고 있지 않아서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양쪽 볼이 늘어지고 주름이 많아 사람 좋은 이웃집 할아버지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작은 눈을 잔뜩 구부려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입이 열렸다.
“나는 너희에게 심법을 가르칠 심법교령 종자도다.”
아이들이 만일 종자도의 별호가 광혈객(狂血客)임을 알았다면 그의 미소 짓는 얼굴을 감히 마주볼 수 없었을 것이다.
정마대전 당시 그가 죽인 정파의 무인이 천(千)을 넘어선다고 알려져 있었다.
“너희는 두 가지 심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하나는 혈마신공(血魔神功)으로 이백 년 전 천하를 떨게 했던 혈마의 비전이다. 또 다른 하나는 이심공(理心功)으로 이것 역시 무시 못할 신공절학이다.”
왕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심공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이다. 둘러보니 나머지 네 아이들도 들은 듯했다. 종자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혈마신공은 다른 심법보다 몇 배의 속도로 공력을 쌓을 수 있다. 빠른 시간 안에 다른 아이들보다 강해질 수 있지. 단, 마성이 강하므로 의지가 약한 이들은 조심해야 한다. 이심공은 내력을 쌓는 속도는 느리지만, 정순한 공력을 확보할 수 있다. 처음엔 좀 힘들겠으나 나중에 가면 혈마신공에 결코 뒤지지 않는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 살아남는다면 말이지.”
마지막 한마디가 아이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지옥곡의 특성상 조금이라도 빨리 강해져야만 살 확률이 높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헌데, 선배 간자는 이심공을 익히라 했다.
‘무언가 숨겨진 비밀이 있군!’
왕오는 혈마신공에 대해 말하지 않은 다른 어떤 부작용이 있거나, 이심공에 숨겨진 다른 공능이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 생각했다.
“자! 혈마신공은 왼쪽 이심공은 오른쪽으로 서도록!”
종자도의 외침에 아이들이 양쪽으로 나뉘었다.
육 대 사의 비율로 혈마신공 쪽 아이들 숫자가 더 많았다. 당장에는 혈마신공이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름을 보아도 강호에 널리 알려진 혈마신공이 분명 처음 들어보는 이심공보다 훌륭해 보였다.
왕오는 눈을 빛냈다. 둘째 날 늑대와의 사투 당시 뛰어난 무위를 선보였던 아이들이 이심공 쪽에 서 있는 것이다.
‘분명 무언가 있구나!’
물론 그 아이들은 이미 다른 심법을 익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모두 이심공을 택했다는 것은 특이한 일이었다.
“자, 이제 혈마신공을 배울 녀석들은 나를 따라오고, 이심공을 배울 녀석들은 내 옆의 조교를 따라 서쪽 수련장으로 가거라.”
아이들이 둘로 나뉘어 서쪽 수련장으로 향했다.
“훗, 어리석은 것들 혈마신공을 배우면 결국 대부분 광혼대의 마졸이 될 터인데. 왜 종자도가 심법 선생인지 짐작도 못할 테지. 쯧쯧.”
누군가가 지나가는 말로 중얼거렸다.
늑대를 유유히 해치우던 아이들 중 하나였다.
오똑한 콧날에 조각 같은 외모가 아이들 중에서도 눈에 띄는 녀석이었다.
광혼대, 마졸 어딘지 모르게 거부감이 느껴지는 단어들이었다. 어쨌든, 무림맹의 간자가 자신에게 이심공을 배우라고 한 이유가 거기에 있음이 분명했다.
조교가 아이들에게 구결을 불러주고 외우게 했다.
반 시진 동안 반복해 아이들이 모두 구결을 외우자, 본격적인 심법 훈련에 들어갔다.
우선은 기를 느끼기 위해 기본 호흡법을 가르쳤다.
이심공의 호흡법은 무척 단순하고 쉬워서, 아이들이 따라하기에 무리가 없었다.
일각이 지나자 모든 아이들이 구결에 따라 일정하게 호흡할 수 있었다.
한 시진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나고 나자 아랫배에 따뜻한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기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미 한 번 개척했던 길이었기에 그 속도가 빨랐다.
이제 기를 아랫배에 모아 단전을 생성해야 했다.
왕오는 호흡에 집중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기를 느낄 수 있을 뿐 호흡을 하지 않거나 신경을 잠시만 놓아도 흩어져 버렸다.
‘혹시 산공단으로 단전이 깨어진 때문인가!’
왕오는 걱정이 일었다. 마음이 심란하자 기가 더욱 모아지질 않았다.
“보아하니 벌써 기를 느낀 녀석들도 있는 듯한데, 그로 인해 이심공을 쉽게 보아선 안 된다. 이심공은 오랜 시간 정진해야 그 효과를 볼 수 있는 무공이다. 단전을 만들고 소주천을 할 때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니, 조급해하지 말고 차근차근 꾸준히 연공하거라!”
조교가 아이들에게 주의를 줬다.
‘다행이군!’
왕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두 시진 동안의 심법 수련이 끝나고 정오에 반 시진의 점심 시간이 주어졌다.
역시 식사 시간에는 조교들이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았다. 음식의 질도 상당히 좋았다.
이후 미시(未時:13시―15시)엔 마보와 돌끌기 등의 체력 훈련이 실행되었다.
한 시진 동안 쉴 틈 없이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수련장을 뒹굴었다.
신시(申時:15시―17시)부터 두 시진 동안은 육합권(六合拳)과 오형각(五形脚)이라는 기본 권각법을 한 시진씩 수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