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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1권 (7화)
그야말로 기초 무공이었는데, 상하전후좌우 여섯 방향을 내지르는 권법과 앞차기, 옆차기, 돌려차기, 내려찍기, 슬격(膝擊:무릎치기) 다섯 가지 다리 공격법을 반복해서 익혔다.
이미 무공을 배운 이들에겐 하품이 날 정도로 지루한 시간이었으나 아직 자세도 잡지 못하는 아이들에겐 상당히 중요한 공부였다.
수련이 모두 끝나고 광장에 모이자 다시 조교들이 나타났다.
“앞으로 육 개월간 오늘과 같은 수련이 반복될 것이다. 육 개월 뒤에 너희 실력을 시험해서 기준에 미달되는 놈들은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니, 목숨을 걸고 수련하도록 하라! 지금부터 자정까지는 개인 수련을 한다. 이상!”
조교의 엄포에 가슴이 서늘해진 아이들이 숙소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각자 수련에 열을 올렸다.
“거봐 내가 혈마신공을 배우라고 했잖아! 나는 벌써 단전을 만들었다구!”
혈마신공을 선택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랍군! 하루만에 단전을 생성하다니! 역시 마공의 위력은 대단하구나!’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저들과의 격차가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시험에서 밀려날 수도 있었다.
‘어차피 기본 권각법은 이 년 동안 충분히 익혔으니 무조건 심법을 수련해야겠군.’
결정을 한 왕오는 숙소로 들어가 자정까지 심법 수련에 매진했다.
호흡을 하는 도중 자신도 모르게 삼매경에 빠진 왕오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이렇게 지옥곡의 셋째 날이 지나갔다.
넷째 날부터는 셋째 날과 똑같은 일정이 반복되었다.
오전에 지옥곡을 돌고, 심법을 수련한다. 오후에 체력 훈련과 기본 권각법을 배웠다.
넷째 날 이후로 더 이상의 죽음은 없었다.
이틀간의 혈사를 통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비교적 뛰어난 아이들만 남았기 때문이었다.
하루 하루 시간이 지나며 아이들은 지옥곡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했다.
잠자는 시간까지 줄여가며 심법 수련에 투자한 결과 왕오는 닷새만에 하단전을 만들 수 있었다.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왕오의 성과를 본 두삼을 비롯한 나머지 네 아이들도 심법에 열중하기 시작하여 열흘쯤 되었을 때 모두 단전을 생성할 수 있었다.
이심공은 마공답지 않게 상당히 정심했다. 조교는 이것을 순수한 마기(魔氣)라 했다.
순수한 마기를 모으면 절대 마인이 되거나 광기에 빠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십팔호는 혈마신공을 익혔다.
십팔호 역시 심법 수련 첫날 단전을 만드는 성과를 올렸다.
단전을 만든 십팔호는 들뜬 모습으로 왕오에게 달려와 자랑했다.
혈마신공의 위력은 상상을 불허했다.
십팔호의 공력은 하루가 다르게 무서운 속도로 늘어났다. 공력이 늘어나면서 소심했던 십팔호의 성격도 차차 변해갔다.
좋게 말하면 자신감이 넘치는 것 같았고, 나쁘게 말하면 거칠고 공격적이 되어 갔다.
왕오는 십팔호에게 이심공을 배우라 말하지 못한 것을 자책했다.
하지만, 왕오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만일 십팔호가 이유를 물을 경우 자신의 정체가 의심받을 여지가 있다.
왕오에겐 마교에 대한 복수와 무림맹 간자로서의 임무가 우선이다.
안타깝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십팔호를 도와줘야겠다 다짐할 뿐이었다.
열흘째 지옥곡을 한 바퀴 돌고 광장에서 쉬고 있을 때 누군가 왕오의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소소였다.
“일전엔 고마웠어…….”
소소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왕오에게 속삭이곤 자기 자리로 허겁지겁 돌아갔다.
왕오는 그런 소소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땐 왜 그리 행동했던 걸까. 잘못했으면 복수고 자신의 목숨이고 모두 사라질 수 있었던 위험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몸이 먼저 움직이고 말았다.
앞으론 절대 있어선 안되는 일이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택한 복수의 길이다.
왕오가 세차게 머릴 흔들고는 다시 돌아앉았다.
“십칠호 오늘은 내가 좀 더 빨랐지? 핫하!”
십팔호가 왕오의 어깨를 툭 치며 기쁜 얼굴로 말했다.
왕오가 십팔호를 보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어느새 제법 한 사람의 몫을 해내는 모습이 대견했다. 이제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혈마심공의 부작용이 훗날 어떤 식으로 나타나게 될지 모르겠으나, 일단은 지옥곡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후 왕오는 넉 달이 넘게 하단전의 기운을 움직여 소주천(小周天)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뭉친 기운은 좀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직은 하단전에 모인 기운의 양이 모자랐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심법에 집중하고 있었다.
자정이 넘었음에도 왕오는 가부좌를 풀지 않았다.
육 개월이 지나기 전에 소주천을 이루어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아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여러 가지 상념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래선, 소주천은 먼 일이었다.
왕오가 마음을 다스렸다. 어차피 한 번 걸어봤던 길이다.
소주천까지는 무림맹에서 이미 경험했다.
조심스레 이심공에 따라 호흡을 깊게 들이마셨다.
하단전에 모인 기운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반 시진이 넘도록 호흡을 이어 나갔을 때 갑자기 아랫배에 간지러운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점점 간지러움이 심해지더니 어느 순간 하단전에 모인 기운이 스스로 움직여 회음(會陰)과 장강혈(長强穴)을 거쳐 독맥을 타고 쭈욱 올라갔다.
이미 한 번 뚫었던 혈도라 거침이 없었다. 독맥을 타고 오른 기운이 목 뒤 대추혈에서 방향을 바꾸더니, 천돌혈(天突穴)을 거쳐 임맥을 타고 내려와 단전으로 돌아왔다. 시원한 느낌이 온몸을 관통했다.
드디어 소주천을 이룬 것이다.
머리가 맑아지고, 내기가 순환하니 온몸에 활력이 넘쳤다. 이제야 비로소 무림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소주천 이후로는 공력을 쌓는 속도가 빨라져서, 육 개월이 지났을 때 왕오는 오 년 정도의 공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3. 금혼제령대법
총교령이 말했던 시험의 날이 왔다.
계절은 이미 겨울에 들어서고 살을 에이는 한기가 광장에 모인 아이들을 괴롭혔다.
제법 여유 있어 보이는 이들도 있는 반면, 그간 실력이 많이 늘지 않은 아이들은 불안한 모습으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특히, 이심공을 배운 아이 중에 그런 이들이 많았는데, 단전은 만들었으나, 소주천을 이루지 못한 이들이 꽤 되었다.
조교들이 광장에 등장하고 그 뒤로 총교령 홍탁이 나타났다.
그의 옆에는 특이한 몰골의 괴인이 함께하고 있었는데, 마치 목내이(木乃伊:미이라)를 보는 듯 뼈만 앙상한 몸에 숱이 많지 않은 백발을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피처럼 붉은 장포를 입은 그는 피부가 백지장처럼 하얀데다가 눈동자마저 없어서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뒤로는 두 명의 조교가 아이 하나는 들어갈 듯한 커다란 향로를 들고 뒤따라 왔는데, 향로에는 마귀상이 사방에 양각되어 있었다.
“준비하거라!”
홍탁의 두터운 입술이 열리자 조교들이 움직였다.
“각자 자신의 짝과 한 팔씩 수갑을 채워라!”
조교들이 호통과 함께 늑대를 상대할 때 채웠던, 수갑과 단도를 나눠줬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수갑의 색깔이 피처럼 붉다는 것이었다.
혼자 살아남은 아이들은 그들끼리 다시 짝을 만들어 주었다. 그간 훈련으로 총 서른여덟의 아이가 더 죽고, 총 육백오 명의 인원이 남았다.
“총교령님, 한 놈이 짝이 없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쉬익!
순간 홍탁의 손가락에서 한 줄기 지풍이 일었다.
퍽!
남아 있던 아이의 이마에 구멍이 나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이제 짝이 맞는구나.”
손가락을 들어 올린 채로 홍탁이 무표정하게 말했다.
왕오는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떨칠 수 없었다.
하는 모양새가 늑대와의 혈전 당시와 비슷했다.
지금은 아이들이 많이 발전했으니 또다시 늑대를 풀지는 않을 것이다.
설마 그럴 리야 없겠으나, 범이나 곰이라도 푸는 날에는 그야말로 목숨을 장담할 수 없었다.
이제 겨우 무공에 입문한 아이들이 그런 맹수를 상대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수갑을 채우며 십팔호와 어찌 됐든 살아남자는 무언의 눈빛을 교환했다.
이제 십팔호도 실력이 많이 늘어 그때처럼 허둥대지는 않을 것이다.
조교들이 아이들에게 붉은색의 환단을 나눠주었다.
저번에 먹었던 환단보다 크기도 크고, 색깔도 달랐다.
환단을 삼키자 후끈한 열기가 온몸을 감싸더니, 왕오의 정신이 마치 꿈을 꾸는 듯 몽롱해졌다.
옆에서 헤헤거리며 웃고 있는 십팔호의 모습이 보였다.
‘이건 뭐지? 약기운이 강력한 건가? 정신을 차려야 해!’
왕오가 입술을 깨물어 피를 냈다.
그러자 몽롱함이 조금은 가셨다. 어렵사리 의지를 집중해 만일에 대비했다.
조교들과 총교령이 이층으로 물러난 뒤 연단 위에 향로와 괴인만 남았다.
괴인이 무어라 중얼거리며 향로 안으로 알 수 없는 가루들을 뿌리자 붉고 검은 연기가 피어올라 광장에 퍼졌다.
시체가 썩는 듯한 고약한 냄새가 후각을 자극했다.
“오늘 살아남는다면 너희는 상상하지도 못할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죽는다 해도 마교의 미래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니 결코 슬퍼하지 말라! 지금부터 금혼제령대법(擒魂制靈大法)을 실시하라!”
홍탁의 목소리가 광장을 쩌렁쩌렁 울리는 순간, 왕오와 아이들의 온몸엔 소름이 돋아났다.
그들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왕오는 몽롱한 정신을 붙잡으려 안간힘을 썼다.
향로에서 피어나온 연기를 들이마시자 더욱 정신이 혼미해지고 눈에 벌겋게 핏발이 섰다.
왠지 화가 나고 분노가 일었다. 마교에 의해 살해된 부모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크으으으! 정신을 차려야…….”
왕오가 다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정신을 수습하려 노력했다.
“크아아아!”
그때, 옆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십팔호였다.
십팔호는 이미 이성을 거의 잃고 있었다.
눈은 핏빛으로 변해 있었고 얼굴은 악귀처럼 일그러져 있었다.
혈마신공을 익혀 마성에 상당 부분 잠식당한 상태에서 약과 연기의 효과에 더욱 쉽게 노출된 것이다.
머리를 잡고 고통의 비명을 지르던 십팔호가 왕오를 쳐다봤다.
“크으으! 네…… 네놈을 죽여 살을 뜯고, 피를 마시겠다! 킥킥킥!”
십팔호가 단도를 들어 올려 왕오를 향해 거칠게 휘둘렀다.
“아…… 안 돼! 정신 차려! 십팔호!”
왕오가 소리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팔에 채워진 수갑 때문에 피하기도 만만치 않았다. 거기다, 혈마신공으로 상승한 공력 때문에 십팔호가 한 번 팔을 휘두를 때마다, 왕오는 이리저리 끌려다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