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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1권 (8화)


몇 번을 간신히 피한 왕오였지만 결국 십팔호의 칼에 옆구리를 길게 베이고 말았다.
“크윽!”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이성의 끈이 그 일격으로 인해 끊어졌다.
순간, 십팔호의 얼굴이 이마에 흉터를 지닌 복면인과 겹쳐졌다. 알 수 없는 괴인의 주문 소리가 왕오의 머리를 파고들었다.

―놈을 죽여라, 원수의 피를 마시고, 살을 씹어라!

십팔호에게 들렸던 목소리가 왕오에게도 들려왔다.
십팔호의 칼이 이번엔 왕오의 왼쪽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피가 튀어 올랐다.
수갑이 채워진 왕오의 왼팔이 십팔호 쪽으로 쑤욱 끌려갔다. 십팔호의 칼이 왕오의 목을 노렸다.
‘원수놈! 내가 쉽게 질 것 같으냐!’
왕오가 끌려가던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칼날이 간발의 차이로 목을 스쳤다. 조금만 더 깊었다면 동맥이 잘렸을 위험한 일격이었다.
뒤로 젖혀졌던 왕오의 오른팔이 앞으로 쏘아졌다.
십팔호의 놀란 눈이 보였다. 순간 왕오의 몸이 흔들렸다.
십팔호가 수갑을 잡아챈 것이다.
왕오의 단도가 십팔호의 오른쪽 겨드랑이 밑을 깊게 가르고 지나갔다.
심장을 노렸으나 빗나간 것이다.
“크아아악!”
십팔호가 고통에 몸부림쳤다.
왕오의 몸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왼팔이 끊어져 나갈 듯 아팠다.
십팔호의 뒤쪽으로 끌려가던 왕오가 두 다리를 올려 십팔호의 오른쪽 팔과 목을 감았다.
“우어어어!”
왕오가 팔을 꺾자 십팔호가 비명을 질렀다.
사력을 다한 왕오가 십팔호의 오른팔을 반대편으로 꺾었다.
우드드득!
십팔호의 어깨에서 섬뜩한 소리가 났다. 이제 오른팔은 쓰지 못할 것이다. 재빨리 땅에 착지해 고개를 숙인 왕오의 머리 위로 십팔호의 단도가 지나갔다.
미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잘린 머리카락이 공중에 날렸다.
공격을 피한 후 십팔호의 등 뒤로 돌아간 왕오가 오른손의 단도를 십팔호의 목에 밀어넣었다.
“꺼어억!”
목을 찔린 십팔호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크아아아아아아!”
왕오가 승리에 취해 비명을 질렀다. 순간 수갑이 붉게 빛나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
붉은빛은 뇌전이 되어 점점 죽은 십팔호와 왕오의 전신을 덮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왕오의 온몸을 관통했다.
붉은 뇌전에 감전되어 선 채로 경련하는 왕오의 눈은 흰자위만 남아 있었다.
“끄으으으!”
뇌전 줄기가 점점 강해지더니, 반 각 정도 지나자 왕오의 정수리로 빨려 들어갔다.
왕오의 칠공에서 온갖 노폐물과 배설물이 터져 나왔다.
한동안 경련하던 왕오가 그대로 쓰러지고 뇌전도 사라졌다.
광장은 쓰러진 아이들로 가득했다.
모든 아이들이 왕오와 같은 일을 겪었다. 짝을 이루었던 둘 중 오직 한 사람만 살아남았다.
무려 삼백이 넘는 목숨이 한번에 사라진 것이다.
장내에는 피비린내와 배설물의 냄새가 범벅이 되어 코를 찔렀다.
“성공했소!”
마치 칼로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로 괴인이 홍탁에게 보고했다.
광장의 참상을 바라보는 홍탁의 입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이제야 제대로 된 천마신교의 전사들이 탄생하겠구나! 후후후! 앞으로 세상은 천마신교의 깃발 앞에 무릎꿇게 될 것이다!”
현 상황을 음미하듯 홍탁이 한동안 광장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모두 정리하고, 내일부터는 삼계에 돌입한다!”
홍탁이 조교들에게 명령한 후 괴인과 함께 사라졌다.

*

왕오는 악몽을 꾸었다. 자신이 칼을 들어 십팔호의 목에 구멍을 내고 있었다.
십팔호가 부들부들 떨며 살려달라 애원했다. 십팔호의 두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십팔호의 입이 좌우로 찢어져 귀밑까지 벌어졌다.
찢어진 입에서 기다란 혀가 튀어나와 왕오의 얼굴 앞에서 흔들거렸다.
십팔호의 광기에 찬 눈동자가 보였다.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놀랍게도 자신 역시 붉은눈에 입이 찢어진 악귀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왕오가 비명을 질렀다.
“왜, 나를 죽인 거지?”
등 뒤에서 슬픈 목소리가 들렸다.
왕오가 혼비백산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목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십팔호가 피눈물을 흘리며 왕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아니야! 나…… 나는 다만 원수 녀석을…… 처단했을 뿐이야!’
목구멍까지 다달았던 말이 굳어 버린 혀 때문에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내가 한 게 아니야! 내가 그럴 리 없어!’
왕오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자신의 행동을 부정했다.
“니가 한 거야! 니가 날 죽였어! 난 살고 싶었어! 정말 살고 싶었어!”

―살고 싶었어!

십팔호의 외침이 여기저기 울려서 멤돌았다.
왕오가 고통에 뒹굴었다. 십팔호가 왕오에게 점점 다가왔다.
“아냐! 으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며 깨어난 왕오의 눈에 나무로 된 천장이 보였다.
십팔호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모든 것이 꿈이었나?’
온몸은 땀으로 흥건했고 작은 경련이 일고 있었다.
간신히 손가락을 움직여 보았다.
끔찍한 고통이 일었으나 억지로 팔다리를 움직일 수 있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둘러보았다.
퀴퀴한 약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사방이 왕오처럼 누운 아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잠시 멍하니 있던 왕오의 뇌리에 십팔호를 찌르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닐 거야! 단지 악몽일 뿐이야!’
속으로 강력하게 부정했지만, 왕오는 이미 그것이 자신이 한 짓임을 알고 있었다.
물론 약에 취하고 심령을 조정당해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분명 자기 손으로 십팔호를 죽인 것이다.
“크윽!”
왕오는 치밀어 오르는 혐오감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간 조금씩 마음을 열었던 십팔호였는데, 지옥곡에서 어떻게든 살아남는다면 나중에 반드시 도와주리라 생각했던 불쌍하고 약한 아이인데,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만 것이다.
혈마신공을 배우는 것도 막지 못했던 자신이 이젠 직접 그를 죽인 것이다. 뱃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우웨엑!”
왕오는 토하고 또 토했다. 더 이상 토할 게 없어 물조차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계속 토했다.
“크흐흐흐흑!”
왕오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복수를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독하게 마음 먹었던 자신이었건만,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왕오야! 아직 멀었구나!’
앞으로는 이보다 심한 일도 있을 것이다.
가장 더럽고 추악한 일을 하는 자들이 바로 간자다. 왕오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여기서 멈출 순 없다.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꽃이 지니 님도 떠나네…….”
왕오는 작은 목소리로 아버지의 노래를 웅얼거렸다.
그렇게 지옥곡 육 개월째의 잔인한 하루가 지나갔다.

금혼제령대법(擒魂制靈大法)은 다른 이의 혼을 삼켜 공력을 증가시키는 마교에서 조차도 금지하는 극악한 마공이었다.
그 조건이 상당히 까다로워서 자신이 아는 사람, 친한 사람의 혼을 삼켜야만 그 효과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가족, 친지, 친구의 혼을 먹고 강해지는 술법인 것이다.
그 때문에 오래전부터 강호에서 금지된 술법 중 하나였다.
거기에다, 향로와 환단에 들어가는 재료 또한, 구하기가 힘든 것들이어서 어지간해서는 함부로 시도조차 못할 술법인 것이다.
일례로 향로에 들어가는 재료 중 하나인 천년초(千年草)의 꽃은 이름처럼 천년은 아니지만, 칠십 년만에 한 번 개화하는 희귀한 약재였다.
마침 마동들이 들어온 해에 개화한 천년초를 발견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시도조차 못했을 일이었다.
사실, 홍탁은 대법을 십여 년 전부터 준비했으나, 천년초를 구하지 못하는 바람에 이제야 비로소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여러 까다로운 조건들이 있었으나, 대신 효과는 탁월해서 한 번의 시도로 무려 일 갑자에 가까운 공력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 공력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은 각자의 노력에 달린 일이었다.
금혼제령대법의 또 다른 단점은 오로지 처음 한 번만 효력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대법을 두 번 시행한다 해서 공력이 더 이상 늘지는 않는 것이다.
하지만, 한 번의 시도로 일 갑자의 공력을 얻는다면, 그것은 결코 단점이라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



4. 입세(入勢)


다음 날 아침 자신의 상태를 확인한 왕오는 망연자실한 심정이 되었다.
십팔호의 영혼으로 얻어진 일 갑자가 넘는 공력이 하단전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단단한 구슬과 같이 뭉쳐서 심법을 운용할 때마다 조금씩 풀려 나왔다.
지금은 약 십 년 정도의 내공이 왕오가 사용할 수 있는 전부였으나, 몇 년 후에는 결국 일 갑자가 넘는 내공을 갖게 되는 것이다.
어지간한 영약을 먹은 것과 맞먹는 효과다.
광장에 모인 아이들 모두 반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들 또한, 자신의 친구를 죽이고 일 갑자의 공력을 얻었으리라.
‘후회되 십칠호?’
마치 십팔호가 자신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 느껴졌다.
‘아니, 후회 같은 사치스러운 감정은 버린 지 오래야!’
“크크크큭…….”
왕오는 일그러진 얼굴로 웃었다. 이미 인간이길 포기하고 복수를 위해 마인의 길을 걷고 있는 그다. 이런 일로 나약해질 순 없었다.
‘칭얼대지 마 왕오! 네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놈이라면 너의 손에 죽은 내가 너무 억울하잖아!’
십팔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를 악문 왕오의 눈에 혈광이 일었다.
‘그래, 잘 지켜봐라 십팔호! 내가 어떤 식으로 마교 놈들에게 복수하는지! 네 몫까지 몇 배로 갚아주마!’
거구를 이끌고 등장한 총교령 홍탁이 연단 위에서 잠시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씨익!
그의 입꼬리가 양옆으로 말려 올라갔다.
“예상보다 효과가 더 좋구나! 이제야 비로소 천마신교의 전사들로 보이는구나!”
왕오는 홍탁의 미소에 구토가 솟아오르는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훗날, 저 두꺼비 새끼만은 반드시 죽이겠다!’
왕오의 온몸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좋은 기세들이로구나! 훗훗! 그래, 그런 독기가 있어야 진정한 마인이니라!”
이제 아이들의 눈빛에서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홍탁의 목소리에 만족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다들 금혼제령대법의 효과는 느끼고 있으리라 본다! 물론, 충격이 제법 크겠지만, 죽은 친구들은 지금부터 너희 안에서 영원히 함께하며 너희가 마도의 정예 전사로 발전해 나가는 초석이 될 것이니라!”
홍탁의 목소리가 모든 아이들의 머리를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