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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애고검기 1권(3화)
一章 주루풍운(酒樓風雲)(3)
‘왜 심 언니가 저 사람에게 이토록 관심을 보이지? 처음 저 사람을 발견하고 도와준 사람은 바로 나인데 언니가 저렇게 선수를 치는 것은 너무한 일이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하던 그녀는 잠시 후 금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고, 뭔가 재미있는 듯 싱글거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동생의 시선을 느끼며 얼굴을 붉혔다.
“누나, 왜 그래? 저 형 얼굴이 그렇게 멋있어?”
“쓸데없는 소리! 어디서 그런 무례한 말투를 배웠니?”
단청하는 자신을 꾸짖듯이 마음속으로 타일렀다.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어딜 봐도, 그저 행동거지에 조금 품위가 있을 뿐 한낱 서생일 뿐인 저런 자에게 왜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거지? 정신 차려라, 청하! 오늘 이렇게 먼 길을 나온 것은 가문과 무림을 위한 중요한 일 때문이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가다듬자 이제는 금비의 얼굴을 바라보아도 별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다.
스스로를 가다듬고 좌중을 바라보자 제갈운학과 금비는 제법 마음이 맞는지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고 있었고, 이제 심은은 입을 다문 채 대화 중인 두 남자를 바라보며 조금씩 술과 안주를 먹고 있었다.
오직 단일비만이 좀이 쑤신다는 듯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주루 안의 사람들을 둘러본다든지 하며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삐이걱∼
문이 열리더니, 두 사람이 주루 안으로 들어섰다.
얼굴 여기저기에 주름이 잡힌 노인 하나와 흑의를 걸친 중년인 하나.
노인은 곰방대를 입에 문 채 웃음을 띠며 느긋한 걸음으로 주루에 들어섰고, 중년인은 죽립(竹笠)을 깊이 눌러써서 얼굴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어서 오십시오∼!”
점소이가 달려 나가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허리를 숙이는 자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듯 스쳐 지나간 중년인을 어리둥절해 바라보는 점소이에게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허허. 아이야, 넌 필요 없으니 저리 물러나 있거라. 우리는 잠시 볼일만 보고 나갈 거란다.”
“네? 네……. 그, 그런데 볼일이 어떤 일이신지. 식사를 대접할까요? 아니면 술을…….”
“그런 게 아니래도. 잠시면 끝날 일이니 저리 비켜서거라.”
말과 함께 슬며시 미는 노인의 손길에, 점소이는 비칠비칠 세 걸음을 뒷걸음질 치더니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그 모습에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것은 역시 단일비였다.
“누, 누나…….”
턱짓으로 두 사람을 살짝 가리키는 단일비의 행동에, 단청하 역시 긴장하며 그들을 주시했다.
어느새 탁자의 모두는 말을 멈춘 채, 알게 모르게 두 사람의 행동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제갈운학은 젓가락을 딸각거리며 안주를 휘젓고 있었지만 눈길은 그들에게 가 있었고, 심은은 아무 말 없이 술잔만 바라보고 있었다.
단청하는 중년인을 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금비를 바라보았다.
금비는 아무 말 없이 두 사람 쪽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의 시선은 중년인이 아닌 노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시선에서는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엿보이고 있었다.
‘저 노인은 누굴까? 아버님과 스승님들께 강호의 노고수들에 대한 설명을 많이 들었지만 워낙 많은 데다 저 노인 또한 별다른 특징이 없어서 알 수가 없는데……. 그런데 저 사람은 무공도 모르는 백면서생이 한눈에 위험해 보이는 저 노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거지? 휴우…… 역시 강호의 흉험함을 겪어 보지 못해 그런가 보구나…….’
금비의 얼굴에 나타났던 관심은 아주 잠시 머물다가 곧 사라졌다. 그의 얼굴은 이내 평온하게 변했지만, 오직 단청하만이 그 표정을 보았던 것이다.
“모두 주의하시오. 저 노인은 모르겠으나 흑의를 입은 저 사람은 아마도 청사검(靑蛇劍) 인당(刃堂)인 듯합니다.”
제갈운학의 말에, 일행의 얼굴이 굳어졌다.
청사검 인당!
특유의 청사검법(靑蛇劍法)으로 강호에서 일류고수의 평판을 들어왔고, 한 번 칼을 뽑으면 상대를 죽이기 전에는 집어넣지 않아 발검필살(拔劍必殺)이란 별명을 가진 잔인한 사도(邪道)의 고수. 그 무공 실력도 대단하지만 독랄한 손속 또한 무섭기 짝이 없다는 냉혈한.
“저 사람은 강남 일대를 주무대로 활동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갑자기 이곳에 나타났다는 것은…….”
“네, 아마 우리가 목적인 듯하네요.”
“이거 큰일이로군요. 인당도 어렵지만 그 뒤의 노인 역시 상당한 고수인 듯한데, 무황성의 어르신들께서 도착하시려면 아직 하루는 더 기다려야 할 테고…… 우리야 어떻게든 한다 쳐도 금 형은 어떡하지요?”
“그게 제일 문제네요. 소협, 죄송하지만 지금 헤어져 주시겠어요? 방으로 돌아가셔서…….”
심은이 채 말을 끝내기도 전에 인당이 그들에게 다가섰다.
잠시간 적막이 흘렀다.
인당은 단청하의 등 뒤로 다가서서, 금비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섰다.
적의를 가득 담은 채 그를 쏘아보는 단일비와, 그를 바라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음식을 뒤적거리는 제갈운학과, 아무 표정 없이 그를 올려다보는 심은, 그리고 부드러운 미소를 띤 금비.
돌아앉은 단청하의 어깨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인당의 입술이 천천히 열리더니, 감정이라곤 섞여 있지 않은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놔라.”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리고 그쪽은 누구시기에 이렇게 하대를 하시는지……?”
대답한 사람은 단일비였다.
그의 말과 함께 제갈운학과 단청하가 서로 눈짓을 교환하고 있었다.
단청하의 고개가 살짝 끄덕여지고 단일비의 눈빛이 굳어지면서 네 사람은 천천히 긴장을 굳히기 시작했다.
인당의 죽립 아래로 보이는 입술이 살짝 일그러졌다.
“꼬마 놈이 겁이 없구나. 세 번은 말하지 않는다. 내놔라.”
“무얼 내놓으라시는지 도대체 모르겠군요. 남에게 말을 걸 땐 먼저 자신을 밝히는 것이 예의가 아니던가요?”
이어지는 단일비의 말에, 인당의 대답이 이어졌다.
“죽이고 찾지.”
치잉!
검명이 울리며 파르스름한 검신이 칼집에서 튀어나왔다.
치르르르!
마치 독사의 울음소리인 양 기이한 음향을 날리며 날아드는 인당의 칼날!
검집에서 뽑힌다 싶은 순간 허공을 날아든 칼날은 똑바로 단청하의 목을 향해 짓쳐 들고 있었다.
그 순간, 네 사람의 몸이 믿을 수 없도록 빠르게 움직였다.
단청하의 몸이 마치 물이 흘러내리듯이 탁자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와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단일비의 칼날이 인당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인당의 칼이 허공에서 방향을 틀어 유연하게 곡선을 그리며 단일비의 칼날을 쳐 냈고, 그 순간 의자에서 튕겨 일어나며 찔러 오는 심은의 장검이 인당의 이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채앵!
“크윽!”
단일비가 신음을 흘리며 의자째 뒤로 튕겨 나갔다.
부족한 내공에 내상을 입고 튕겨 나간 것이다.
하지만 인당 역시 마음속으로 놀라며, 거의 코앞으로 날아온 심은의 칼날을 간신히 고개를 돌려 피해 냈다.
바로 눈앞을 스치며 지나가는 심은의 칼날에, 인당은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새파란 애송이들이라 얕보고 제일 먼저 등을 돌린 계집을 두 조각 내 놓으면 나머지 놈들도 혼비백산하여 행동이 흐트러질 것이고, 하나씩 죽여 버린 후 물건을 찾으면 끝이라는 계산을 했던 그는 마치 수십 년 합공을 해 온 동문처럼 손발이 척척 들어맞는 소년, 소녀들의 공세에 순식간에 수세에 몰려 버렸다.
하지만 이제 심은의 공세까지 무위로 돌아간 상황, 인당은 이를 갈며 검에 내공을 실었다.
‘조각조각 내 주마!’
살기를 끌어올리며 칼을 휘두르려는 순간, 쐐액! 하는 파공음과 함께 눈앞으로 날아오는 물체 하나!
그때까지 고개도 들지 않고 앉아 있던 제갈운학의 손끝에 쥐어져 있던 젓가락이 유성처럼 날아들었다.
이것이 제갈세가가 강호에 자랑하는 비전의 절초 중 하나, 탈혼유성(奪魂流星)의 절기였다.
이제 육성(六成)의 화후를 이룬 것뿐이지만, 제갈운학의 손을 떠난 젓가락은 마치 원래 있던 곳을 찾아가듯 인당의 이마를 향해 유성처럼 날아들고 있었다.
그야말로 목숨을 빼앗는 유성!
명칭에 걸맞은 상승절기가 갓 스물을 넘긴 제갈운학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이야압!”
터져 나오는 기합 소리와 함께 번쩍거리는 검광!
황하녹림채의 다섯 고수를 한꺼번에 도륙할 때도 한 마디 소리를 내지 않았다던 인당의 입에서 기합성이 터져 나오며 그의 칼이 허공을 갈랐다.
쩌억!
청사검법 중 쾌검식인 청사출동(靑蛇出洞)이 펼쳐지며 젓가락이 두 조각이 났다.
원래 청사출동은 상대방을 일검에 격살하는 쾌검식(快劒式), 하지만 인당은 코앞으로 날아든 젓가락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절체절명의 순간 자신의 가장 빠른 공격검식으로 방어에 융통한 것이었다.
실로 강호에서 실전을 오래도록 경험해 온 자만이 할 수 있는 행동이었다.
인당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지금 이어지는 공격들은 무섭도록 정교하게 짜인 합공이었고, 그는 이 애송이들이 이렇듯이 무서운 공격을 해 낼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하나하나의 실력이라면 절대 인당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그들이 펼치는 합공은 자신들의 실력을 두 배로 높여 주는 효과가 있었다.
이 모든 공방은 단지 한 호흡의 순간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인당은 그 모두를 파훼했고, 이제 남은 것은 그의 분노한 반격뿐이었다.
공격을 위해 검을 추슬러 자세를 바로잡으며, 눈앞에 온몸의 허점을 노출한 심은을 일검에 잘라 버리려는 순간 그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신음성.
“그르륵…….”
바람이 빠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인당의 몸이 나무토막처럼 굳어졌다.
천천히 자신의 아랫배를 바라보는 그의 시야에, 하단전을 꿰뚫고 등 뒤로 빠져나가 있는 새파란 칼날이 보였다.
탁자 아래 누운 채 위를 향해 검을 내뻗고 있는 단청하. 그녀의 손에 쥐어진 장검이 인당의 배를 꿰뚫고 있었다.
모래탑이 허물어지듯, 인당의 몸이 천천히 아래로 가라앉았다.
“으아악∼!”
“사, 살인이다! 으아아!”
그제야 비명 소리와 함께 객점 안의 사람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아수라장 속에서, 단청하가 천천히 탁자 아래서 기어 나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얼굴색이 파르스름하게 질린 것이, 극도의 원기(元氣)를 소모했음을 보여 주고 있었다.
이 일련의 합격술은 사실 네 사람이 수없이 맞춰 보고 또 연습했던 것이다.
비록 객점의 탁자를 놓고 연습해 온 건 아니었지만, 네 사람은 어디에서 이 방법을 쓰더라도 손발이 확실히 맞을 수 있도록 연습과 토론을 거듭해 왔다.
처음 의견을 낸 것은 제갈운학이었다.
그들 네 사람은 어떤 이유에서 어쩔 수 없이 먼길을 떠나야만 했었다.
강호 경험이나 무공수위 모두 부족한 그들 네 사람의 일행은 믿을 것이라곤 오직 자신들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적들이 알지 못할 거라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그러나 강호의 일이란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것, 이 여행은 도처에 위험이 널려 있어 어떤 고수와 맞닥뜨릴지 모르므로 한 가지 비기(秘技) 정도는 갖추어야 할 것이라는 의견과 함께 합격술을 연마할 것이 제안되었고, 그들은 이번 여행을 하는 동안 시간이 날 때마다 이 합격술을 연습하고 또 연습했던 것이다.
이 합격술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 맡은 이는 바로 단청하였다.
처음에 단청하의 역할은 단일비가 적임라는 것이 모두의 의견이었다.
가장 무공이 낮아 보이는 사람, 그러므로 제일 먼저 공격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 그가 마지막 한 수를 쓰는 사람이어야 했다.
하지만 아직 너무 어린 단일비는 연습을 거듭할수록 냉정하고 대담한 일검을 쓰는 것에 허점을 드러냈고, 그 때문에 단청하가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
고수라면 다수와 상대할 때는 제일 먼저 가장 약한 적을 노린다. 따라서 단청하가 이 역할을 맡게 된 이후 그녀는 가장 약한 듯이 허점을 내비치는 것과 빠르게 피하는 법, 그리고 상대의 마지막 빈틈을 노려 검을 쓰는 법을 한꺼번에 연습해야 했다.
그녀에겐 버거운 역할이었으나 단청하는 이를 악물고 연습을 거듭했다.
그녀가 못하면 단일비가 해야 한다. 이 역할을 맡은 자는 가장 죽을 확률이 높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녀로서는, 가문의 대를 이을 독자(獨子)인 단일비가 그 역할을 맡게 할 수는 없었던 것이었다.
실로 가녀린 듯 하지만 오기가 강하고 맘먹은 일은 해내고야 마는 단청하의 기질을 바로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하 매(河妹), 괜찮소? ”
“누나, 정말 멋졌어!”
제갈운학과 단일비가 각각 말을 걸며 다가왔다.
단청하가 대답하려는 순간,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들의 말을 갈랐다.
“끌끌……. 대단한 아이들이로구나. 십여 년간 장강(長江) 이남을 활개 치고 돌아다녔던 청사검 인당이 이런 곳에서 너희 같은 어린아이들에게 죽을 줄이야 누가 알았을꼬?”
네 사람은 모두 놀라 목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보았다.
곰방대를 물고 있던 노인이 어느새 그들의 곁에 다가와 인당의 시체를 발끝으로 툭툭 차며 웃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색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