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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애고검기 1권(4화)
一章 주루풍운(酒樓風雲)(4)


처음부터 범상한 사람이 아닐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대단한 고수일 줄은 몰랐다. 이것이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들은 인당이 죽을 때부터 모두 노인에게 신경을 곤두세웠고, 그가 어떤 행동을 하든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하지만 노인은 어느새 그들의 이목을 완전히 따돌린 채 그들의 바로 곁에 다가와서 웃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녀석이 죽은 것은 자업자득이라 할 만하다. 쥐꼬리 같은 제 실력을 믿고 상대를 경시했으니, 죽어도 염라대왕 앞에 할 말이 없을 게야. ”
사람 좋게 웃는 노인에게, 제갈운학이 포권하며 말했다.
“실례지만 어르신의 고명(高名)을 알려 주실 수 있으신지…….”
“흐흠, 내가 누군지 궁금한가? 하지만 곧 죽을 목숨들이 내 이름 따위 알아서 무에 쓰려고? ”
노인의 말에 모두가 몸을 떨었다.
부드러운 목소리에 웃는 얼굴로, 지금 그는 모두를 죽이겠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때, 조용히 앉아 있던 금비가 천천히 일어나며 말하였다.
“저는 당신을 알겠습니다.”
“호오…… 너 같은 어린 녀석이 나를 안다고? 어디, 내가 누구냐?”
금비는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저 미소를 띤 채 노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예전에 떠돌이 서상(書商)에게서 ‘무림악인록(武林惡人錄)’이란 책을 구한 적이 있었지요. 거기에 쓰인 인물들 중에 이런 표현이 있었습니다. ‘그는 사십 세가 넘어 출도했다. 곰방대 속에 숨긴 칼날을 검 대신 펼치는 십이로(十二路) 질마검식(疾魔劒式)으로 출도 후 십여 년 동안 죽인 사람의 숫자는 이백에 달했고, 오십 세가 되었을 때 강호에서는 시랑(豺狼)과 이자는 한 뱃속에서 나왔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살인을 즐기고 교활하니 무섭기 짝이 없고, 무공이 높고 도망쳐 숨는 데 능란하니 제거하기 어렵다. 이자의 이름은……’”
“허허…… 그렇다, 노부가 바로 풍음전(馮陰典)이다.”
금비의 말이 이어짐에 따라 점점 굳어지는 일동의 얼굴은, 마침내 노인이 자신의 이름을 밝혔을 때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착잡해졌다.
질마검효(疾魔劒梟) 풍음전(馮陰典)!
그 독랄한 손속과 잔인한 마음가짐으로 무림에 이름을 날린 고수!
무공은 황화예(黃化藝)에 이르렀고, 자비심이란 눈 씻고 찾아봐도 없으며, 냉혈동물의 잔인함과 올빼미의 교활함으로 더욱 명성을 떨친 마두(魔頭)가 바로 그였다.
둘러선 단청하 일행을 부드러운 눈길로 바라보며, 풍음전이 말을 이었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으니 이야기가 좀 더 수월하겠구나. 아이들아, 그 물건을 내게 넘겨주지 않으련?”
“아까부터 무슨 물건을 내놓으라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풍 선배님의 고명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만, 이곳은 엄연히 금검파의 세력 안이고, 무황성의 보호 안에 있습니다. 어찌하여 오늘 이렇게 후배들을 핍박하시는 건지요?”
“허허……. 네 녀석이 제갈세가의 둘째라는 십방수재(十方秀才)냐?”
“불초가 제갈운학입니다.”
십방수재(十方秀才).
이것이 강호에 알려진 제갈운학의 별호였다.
그의 나이 스물하나, 열일곱에 출도하여 이렇다 할 위명을 떨치지 않았음에도 그의 지략과 무공 및 학문, 기예(技藝)에 걸친 다재다능함은 그에게 이런 별호를 부여했던 것이다.
원래 제갈세가는 무공뿐 아니라 뛰어난 지혜로 이름을 떨친 가문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제갈운학의 영민함은 날로 이름을 높이고 있었다.
두 살 위인 형 탈명신검(奪命神劍) 제갈신룡(諸葛神龍)이 백년 내 제갈세가에서 배출한 인재 중 무공으로는 최고라는 명성을 떨치고 있었고, 세 살 아래인 화중봉(花中鳳) 제갈화봉(諸葛花鳳)이 어린 나이에도 무림 사대미인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리고 있었지만 제갈운학의 명성 역시 이들에게 전혀 뒤떨어지지 않았다.
“네가 펼친 비검술은 아주 잘 보았다. 내 생각이 맞다면 그것이 너희 제갈세가의 절기인 탈혼유성검(奪魂流星劍)이겠지?”
“선배님의 고견(高見)에 감탄할 따름입니다.”
“한 오륙성 정도의 성취인 듯하더구나……. 원래 탈혼유성의 절기가 극성에 이르면 나뭇가지나 풀잎도 극상(極上)의 비도(飛刀)로 변하고, 손에서 떠나는 순간 목표에 이르러 있다고 들었다. 방금 그게 네 최선이냐?”
“…….”
묵묵부답, 대답이 없는 제갈운학의 태도가 노인의 말이 맞다고 대답하고 있었다.
“끌끌, 나이 스물이 넘도록 가문의 절기 하나 대성(大成)하지 못하다니…… 역시 산수재(散秀才)란 별명이 틀리질 않는구나.”
제갈운학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원래 산수재라는 말은 과거에 낙방한 선비를 가리키는 말, 풍음전은 대성치 못한 무예와 제갈운학의 별호를 교묘하게 꿰어서 그를 놀리고 있는 것이었다.
본시 탈혼유성검은 제갈세가가 강호에 자랑하는 대홍락의 절기, 제갈운학이 스물의 나이에 그것을 육성까지 연마했다는 것은 누구에게든지 자랑이 되면 되었지 흉이 될 수는 없었다.
하나 풍음전은 교묘한 말장난으로 제갈운학을 부끄럽게 함으로써 그의 심기를 흐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풍음전의 격장지계(激將之計)에 금비는 마음속으로 고소를 지었다.
‘과연, 별호에 들어가는 효(梟) 자가 어디서 왔는지 알 만하군…….’
그러나 제갈운학은 곧 안색을 바로 하며 풍음전에게 말했다.
“후배의 성취가 미흡한 점은 항상 부끄럽게 생각해 온 바이니, 선배님의 질책은 금과옥조(金科玉條)로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하나 선배님께서 후배에게 그러한 점을 물으신 뜻이 저를 가르치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자명할 터, 후배의 무공수위를 다 가늠하셨으면 이제 손을 쓰시겠습니까?”
공손하지만 칼날같이 예리한 제갈운학의 말에, 풍음전의 얼굴 표정이 살짝 변했다.
말 그대로, 풍음전이 제갈운학에게 꼬치꼬치 캐물은 것은 그의 탈혼유성검의 성취가 과연 어느 정도인지가 가장 궁금했던 때문이었다.
탈혼유성검의 절기는 소리비도(小利飛刀)와 함께 제갈세가가 자랑하는 대홍락(大紅落)의 절기 중 하나. 만약 팔성의 경지에 오른 탈혼유성검이라면 풍음전이라도 막아 내기 힘들 것이었고, 십성에 이르렀다는 제갈신룡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풍음전은 이미 도망치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 풍음전은 아직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출수(出手)를 막고 있는 생각은 지금 세 가지였다.
첫째, 제갈운학의 말이 사실인가 하는 것.
제갈운학의 태도나 청사검 인당에게 탈혼유성을 날린 후 힘겨워하는 모습을 생각하면 육성의 성취가 사실인 듯하지만, 그는 강호에 널리 알려진 신기제갈가(神機諸葛家)의 적통(嫡統). 그 머릿속에서 무얼 꾸미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것이 제갈세가가 강호에서 존경받는 가장 큰 이유, 가뭄에 콩 나듯 무학의 인재가 배출되는 제갈세가지만, 그 뛰어난 두뇌들은 오히려 무공에서 혁혁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남궁세가(南宮世家)나, 독공과 암기술에서 무림에 따라올 자가 없다는 사천당문(四川唐門)의 고수들보다 더욱 무림에서 껄끄럽게 여겨지는 이유였다.
둘째, 한 마디 말도 없이 서 있기만 하고 있는 심은의 정체.
제갈운학이 본 실력을 다 드러낸 것인지, 아니면 숨기고 있는 절예가 있는지가 반반의 확률이라면,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심은은 분명 자신의 실력을 오 할은 숨기고 있다고, 오랜 세월 강호에서 굴러 온 그의 본능이 속삭이고 있었다.
게다가 심은이 풍기고 있는 기도 역시 그의 경계심을 자극하고 있었다.
열여섯이나 열입곱쯤밖에 안 된 듯한 소녀의 기도라기엔 너무도 차분하고 침착하다. 경계심을 풀지 않으면서도 당황하거나 겁먹은 빛 없는 그 침착함이 풍음전의 심기를 긁어 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금비는 누구인가.
무공을 전혀 모르는 백면서생처럼 보이는데, 은은히 풍기고 있는 풍음전의 살기와 둘러싼 청년고수들이 발산하고 있는 기도에 일반인이라면 벌써 기가 질려 거품을 물고 혼절하고도 남았겠건만 담담하게 미소까지 띠고 서 있다.
‘게다가, 분명 처음 보는 놈이건만 묘하게 낯이 익단 말이야…….’
일부러 내공을 끌어올려 강한 기세를 쏘아 보냈다.
무공을 모르는 자라면 풍음전의 이 암경(暗勁)만으로도 내상은 입지 않더라도 호흡이 곤란해지고 정신을 잃기 마련. 과연 금비의 얼굴빛이 약간 창백해지더니 잠시 비틀거렸다.
하지만 그것뿐, 다시 몸을 바로잡으며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허리를 세우는 그 모습을 보며 풍음전은 감탄했다.
‘만약 전혀 무공을 모르는 아이라면, 저 마음의 수양과 굳건함은 육십 평생을 강호에서 구른 나를 몇 배나 뛰어넘는구나…….’
당장 목이 달아난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 이 상황에서 저토록 담담하게 마음의 안정을 갖는다는 것은 풍음전 같은 절정고수라 하더라도 이루지 못한 경지였다.
‘쓸데없는 생각, 저 어린 계집이 어디의 누구면 어떻고 저 아이가 누군들 어떤가? 어차피 오늘 금검파와 제갈세가, 두 문파에 원한을 질 수밖에 없는 상황, 더 나빠질 것도 없고 물러설 곳도 없다!’
독하게 마음을 다잡은 풍음전의 눈에 진득한 살기가 일었다.



二章 혈전(血戰)(1)


‘온다!’
제갈운학은 풍음전이 출수하리라는 것을 느끼고 전신의 공력을 끌어올렸다.
청사검 인당보다 두 단계는 위라고 평가받는 고수, 지금 그들의 실력으로는 네 명이 합공을 하더라도 백 초를 견딜 수 없을 것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기계(奇計)로 이편의 손실을 최소화하며 척살할 수 있었던 인당의 경우와는 완전히 다른 상황. 뾰족한 방법도 없이 그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어느새 뽑아 든 두 장의 비도(飛刀)를 손안에 살짝 쥐면서 그는 되뇌었다.
‘최선을 다할 뿐, 죽음을 겁내서야 강호에 나올 수 없었으리라…….’
슬며시 주위를 둘러보니 단씨 남매 역시 비장한 각오를 보이며 검을 고쳐 잡고 있었다.
과연 명문가의 혈통, 이렇게 죽음을 마주한 상황에서 정통문파의 뿌리 깊은 힘은 그 진가를 보여 주는 법이다.
제갈운학은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며 심은과 금비를 바라보았다.
한 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풍음전을 바라보고 있는 심은과 믿을 수 없는 정력(精力)으로 이 자리에 함께하고 있는 금비.
그의 유일한 노림수가 있다면, 바로 심은의 존재였다.
‘노괴물은 그녀의 진가를 모른다. 아무리 그녀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하더라도 그녀의 본 실력에서 삼 할은 낮게 보고 있을 터, 오직 그녀의 한 수만이 유일한 돌파구다. 만약 그것이 무위에 그친다면…… 허허, 금 제(金弟), 금 제에겐 정말 미안하게 되었구려. 강호에 나와 처음으로 지기(知己)로 삼을 만한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했는데…….’
제갈운학의 눈에 빠르게 풍마질검을 떨쳐 내며 몸을 띄우는 풍음전의 모습이 비쳐 드는 순간, 그의 독백은 거기서 끊겼다.
‘선수필승(先手必勝)!’
필승을 바랄 수야 없었지만, 풍음전의 선제공격을 받으면 그들에게 승산이라고는 일 할도 남지 않는다.
오직 선수로 그의 공세가 펼쳐지기 전에 허점을 찾는 것, 그것만이 그들에게 남겨진 유일한 활로란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그의 손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쐐애액!
다시 펼쳐지는 탈혼유성의 절기!
제갈운학의 두 장의 비도 중 하나가 빛살처럼 풍음전의 가슴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핫핫핫……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
풍음전의 곰방대의 반이 벗겨지며, 새하얗게 빛을 발하는 검이 제갈운학의 비도를 마주쳐 갔다.
채앵! 하는 소리와 함께 풍음전의 풍마질검(馮魔疾劍)에 마주친 비도가 한차례 떨더니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그 순간, 소리 없이 풍음전의 인후(咽喉)를 노리고 날아드는 비도 하나!
오른손으로 탈혼유성을 날리면서 거의 동시에 왼손으로 날린 소리비도였다!
그 옛날 제갈세가의 비조(鼻祖)가 창안한 이후, 수없이 많은 고수들의 목숨을 덧없이 빼앗아 간 대홍락의 절기. 그 절대적인 위력 때문에 비도파천황(飛刀破天荒)이란 별명을 가진 전설의 비도술이 지금 풍음전에게 날아들고 있었다.
탈혼유성검이 극쾌(極快)를 생명으로 하는 절기라면 소리비도는 무음무성(無音無聲), 비도가 몸에 박히고 나서야 알게 된다는 신공이었다.
전혀 성격이 다른 두 절기를 양손으로 한꺼번에 펼쳐 내는 것, 이는 노강호(老江湖) 풍음전조차도 상상하지 못한 공격이었다.
제갈신룡의 경우 이 두 절기 모두 십성까지 연마했지만, 그는 제갈운학과 같이 한꺼번에 구사하는 재주는 갖지 못했다.
그들의 아버지이자 현 제갈세가의 가주인 제갈각(諸葛覺)은 어느 날 이 양수비도술(兩手飛刀術)을 연습하는 제갈운학을 보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부의 재능은 신룡이 백 년 내 본가(本家) 최고다. 하나 응용하고 발전시키는 데는 전에도 후에도 운학을 따를 사람이 없을 듯하구나. 운학이 만약 육십을 넘겨 산다면 본가의 무공은 그 녀석을 통해 지금의 두 배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으헛!”
풍음전이 기겁하는 신음을 내지르며 내공을 떨쳐 풍마질검을 휘둘렀다.
안개처럼 일어나는 검기, 풍음전이 자랑하는 질마검식 제팔초, 마봉밀밀(魔封密密)이 펼쳐지며 그의 상반신이 푸른 검기에 휩싸였다.
이 초식은 검식을 세밀히 떨쳐 공격을 막아 내는 수비의 절초, 그러나 제갈운학의 소리비도는 물결을 따라 흘러내리는 나뭇잎처럼 풍음전의 검기의 흐름을 타고 흐르며 그의 인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소리비도의 특징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막아서는 것을 꿰뚫든지 멈추든지 둘 중의 하나인 다른 비도술과는 달리, 소리비도는 운기(運氣)의 결(訣)을 타고 흐른다.
그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