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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애고검기 1권(12화)
六章 소요칠결(逍遙七訣)(1)


두 번째 교전은 처음과 달리 침묵 속에서 시작되었다.
처음으로 움직인 것은 두향응이었다.
검을 겨눈 채 바라보고 있는 금비를 향해 오죽흑관이 천천히 떠서 다가가더니 어느 순간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웅웅웅웅―
두향응의 흑관에서 벌 떼의 울음소리 같은 기묘한 음향이 울려 퍼졌다.
금비가 가볍게 땅을 박차며 신형을 띄워 올렸다.
검을 앞으로 뻗어 두향응과 맞부딪쳐 가는 금비.
‘흐흐흐……. 애송이 녀석, 죽을 자리를 파는구나.’
내공에서의 절대적인 우위. 정면으로 맞부딪친다면 저따위 새파란 애송이가 자신의 삼 갑자 내공에 당해 낼 리 없다는 것이 그의 계산이었다.
마화강기의 내공을 가득 끌어올린 두향응의 관과 금비의 검이 격돌하는 순간, 돌진해 오는 두향응의 힘에 금비의 검이 허공에서 호선을 그리며 돌아섰고 그를 따라 오죽흑관이 미끄러지듯이 따라 돌았다.
다시 한 번 두전성이의 절예가 펼쳐지려 하는 순간, 금비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렸다.
“크핫핫핫! 애송이 놈, 한 수의 재간으로 언제까지 우려먹을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초형, 지금이다!”
“우하하! 건방진 녀석, 죽어랏!”
‘흡자결(吸子訣)이로구나…….’
금비의 마음속에 당황이 어렸다.
고루혈괴의 흑관의 기세를 받아 돌려 무위로 만드려는 순간 그의 검을 빨아들이며 놓아주지 않는 흡입력. 두향응이 내공을 운용해 그의 검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두전성이의 시전 중, 조금이라도 그 시기가 빠르거나 늦었다면 운기가 흐트러져 자신이 내상을 입을 상황이건만 노련한 두향응은 정확한 시기를 포착해 금비의 검세를 놓아주지 않고 있었다.
그 순간, 십이성 공력으로 내려치는 응초형의 낭아봉!
전신 공력을 다해 내려치는 수왕봉법의 거상파암(巨象破岩)의 기세가 금비의 몸뚱아리를 두 조각 낼 듯 날아들고 있었다.
응초형의 낭아봉이 금비의 이마에 닿을 듯한 순간에, 금비는 자유로운 오른손을 봉을 향해 뻗었다.
그에 아랑곳없이 금비의 손을 뭉개 버릴 요량으로 내리쳐지는 응초형의 공세. 그러나 금비의 손이 낭아봉에 닿는 순간 그의 손은 낭아봉을 부드럽게 감싸 쥐고 있었다.
‘이, 이럴 수가! 이놈의 무공은 대체…….’
응초형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필생의 공력을 쏟아 부은 공세가 맞잡은 금비의 손바닥을 타고 흘러 나가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거세게 쏟아지던 물살이 둑 속에 빨려 들어가 물길을 타고 흘러 나가는 것처럼, 자신의 공세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금비가 인도하는 대로 흘러 나가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와 다르게 뿜어져 나가던 응초형의 공력이 어느 순간 철판 같은 반탄력에 맞부딪치며 산산이 깨어졌다.
그와 함께 두향응의 관에 붙어 있던 금비의 고검이 살아 있는 물고기처럼 파닥거리더니, 쩌엉 하는 소리와 함께 튕겨져 떨어졌다.
“커어억!”
답답한 신음과 함께 튕겨 나가는 응초형의 거구.
“으허헉! 이, 이 애송이 놈!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능숙한 이화접목이로구나.”
빙글빙글 돌며 반대편으로 튕겨 나가는 두향응의 오죽흑관.
“우우욱…….”
삼키는 듯한 신음 소리와 함께, 허공에 뜬 금비의 온몸이 부르르 떨리면서 붉은 입술 사이로 핏물이 흘러내렸다.
약간 비틀거리는 금비의 신형. 몸을 바로잡으며 내려서는 그의 눈에,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음혈호의 핏물 뚝뚝 떨어지는 송곳니가 비쳐 들었다.
캬아앙!
금비의 허리어림을 노리고 달려드는 음혈호의 벌린 이빨 사이로 흘러내리는 것은 분명 인혈(人血)이었다.
아마도 마을 사람들의 고기로 포식했으리라. 금비의 눈에 노기가 서렸다.
“마물(魔物)!”
한 마디 외침과 함께, 왼손의 고검(孤劍)이 빛살처럼 음혈호의 이마를 노리고 날아들었다.
까앙!
살가죽을 때림에도 불구하고 암석을 때리는 듯 울려 퍼지는 둔탁한 소리와 약간 주춤하며 뒤로 물러설 뿐 멀쩡한 음혈호의 모습.
금수혈괴 응초형의 득의만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크핫핫핫! 호아(虎兒)는 도검불침이다. 삼 갑자 이하의 공력으로는 녀석의 가죽에 흠집 하나 내지 못할 테니, 어디 하고 싶은 만큼 칼을 휘둘러 보아라!”
그의 말대로 음혈호는 삼 갑자 이하의 공력으로는 상처를 입힐 수가 없어 위기 때마다 몸을 던져 방패막이가 되어 주곤 하였으며, 도검이 불침하는 이 마물의 공세를 피하느라 주의가 흐트러진 틈을 타 상대를 주살하는 합공은 금수혈괴 응초형이 가장 자신하는 공격이었다.
응초형의 웃음소리에 용기백배한 듯, 나직한 으르렁거림과 함께 음혈호가 다시 달려들었다.
금비의 안색이 무거워지더니 조용하지만 노기 어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미 마기에 물든 데다가 인육에 맛을 들여 더 이상 짐승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마물……. 너 같은 마수를 어떻게 살려 둘 수 있겠느냐?”
다리를 벌려 ‘정(丁)’자 자세를 잡은 후 고검을 어깨 높이로 들어올려 음혈호를 향한 채, 금비는 달려드는 마물을 차분히 바라보았다.
크아아앙!
포효하며 뛰어오르는 음혈호의 공세 앞에 화살처럼 마주 쏘아져 가는 고검. 금비의 조용한 한 마디가 이어졌다.
“낙수결(落水訣).”
까앙!
또다시 음혈호의 이마에 날아든 금비의 고검이 튕겨지며 금비의 몸이 뒤로 휘청였다. 충격을 받은 음혈호 역시 바닥에 떨어졌다.
“크하하! 헛수고라니까! 알고 보니 바보로구나……. 으음?”
응초형의 비웃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 휘었던 대나무를 놓는 것처럼 뒤로 휘청였던 금비의 몸이 앞으로 튕겨 나가고, 그와 동시에 그의 손에 든 고검이 쏘아져 나갔다.
까앙!
똑같은 자리에 다시 떨어지는 검극(劍極), 그리고 똑같이 울리는 둔탁한 파열음.
그리고…….
까앙! 까앙! 까앙! 까앙!
금비의 몸이 빛살처럼 움직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충격을 받아 캥캥거리며 그의 검을 피해 고개를 돌리는 음혈호를 향해, 금비는 눈 깜짝할 사이에 다섯 번의 연속 찌르기를 날렸다.
똑같은 자리인 이마 정중앙. 음혈호가 머리를 돌려 피하려 했건만 금비의 신형은 그림자처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뒤쫓으며 검을 날렸다.
까앙!
캐애앵!
여덟 번째 찌르기가 들어간 순간, 음혈호의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그 이마가 갈라지며 핏물이 배어 나왔다.
그리고…….
서걱!
지금까지의 파열음과는 다른, 무언가 베어지는 듯한 소리.
아홉 번째 찌르기를 적중한 후 금비는 검을 거두고 물러섰다.
이 구절연환(九折連環)의 검공(劍功)은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져, 검을 거둔 금비의 모습은 마치 처음부터 아무런 움직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듯했다.
한순간의 정적. 비명 섞인 응초형의 고함이 터져 나오는 순간 음혈호의 이마가 쩌억 갈라지며 뇌수를 흩뿌렸다.
“안 돼! 호아! 으아아아!”
죽어 넘어지는 음혈호를 바라보는 금수혈괴의 눈에 시뻘건 핏발이 섰다.
그에게 음혈호는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강호 사람들에게는 마물로 손가락질 받고 인육에 맛들인 마수였지만, 그에게는 어릴 때부터 동고동락한 형제와 같았다.
그런 음혈호가 속절없이 죽어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응초형의 머릿속에는 이미 이성이 사라지고, 화산 같은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네 이놈―! 갈가리 찢어 씹어 먹고 말겠다!”
“안 된다, 초형! 진정해라!”
다급한 고루혈괴의 외침이 아예 들리지 않는 듯, 응초형이 몸을 날려 금비에게 덤벼들었다.
허공을 가득 메울 듯이 거대한 강기로 둘러싸인 응초형의 낭아봉, 십이성 공력을 끌어올려 펼치는 수왕봉법의 최절기 광사앙천(狂獅殃天)이 주루를 허물어 버릴 듯한 기세로 금비에게 쏟아졌다.
입가에 흘러내린 핏물을 닦아 내며 조금 지친 듯한 표정의 금비가 고개를 들어 응초형의 공격을 바라보았다.
조금은 안쓰러움을 담은 금비의 시선이 시뻘겋게 핏발을 세우고 달려드는 응초형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유엽결(流葉訣).”
흘러든다.
금비의 고검이 응초형의 기세 속으로 흘러들어 가고 있었다.
태산이라도 허물 듯한 광사앙천의 기세 속에서, 금비의 검로는 마치 시냇물 위를 떠가는 나뭇잎처럼 부딪침 없이 미끄러져 파고들고 있었다.
맞서는 것도, 쪼개는 것도 아니요, 오직 그 기세 속에서 거스름 없이 녹아드는 듯한 금비의 검로. 낭아봉의 기세와 그 거구에 에워싸여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듯했던 금비의 모습이, 어느새 멈춰 선 응초형의 몸 아래 다시 나타났다.
씻은 듯이 사라져 버린 공격의 기세.
당장이라도 금비의 머리를 박살 내 버릴 듯 낭아봉을 내리쳐 가는 응초형. 석상처럼 굳어진 그의 목줄기에 금비의 칼이 반쯤 틀어박혀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응초형의 부릅뜬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르륵…….”
가래 끓는 듯한 신음성과 함께 낭아봉을 치켜든 그의 손이 천천히 힘을 잃고 떨어져 내렸다.
쿠웅!
응초형의 거구가 주루 바닥을 울리며 무릎을 꿇었다.
착잡함이 가득한 금비의 눈길. 아무 말 못하고 죽어 가는 응초형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표현할 수 없는 흔들림이 떠올라 있었다.
“쿨룩!”
금비가 허리를 꺾으며 한 모금 핏물을 뱉어 냈다.
내장이 진동한 듯, 피를 토하는 금비의 안색은 창백하게 변해 있었고 손아귀의 힘이 빠진 듯 검 끝이 흔들렸다.
극도의 내공 소모와 함께 응초형이 뿜어내는 기세를 받아 내며 공격을 이루어 낸 대가이리라.
그때, 두향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믿을 수가 없구나. 고작 일 갑자가 될까 한 내공을 가지고 오직 초식의 정밀함만으로 강호삼괴 중 하나를 죽이다니……. 그 무공은 대체 무엇이냐?”
금비가 힘겹게 고개를 들며 웃었다.
“이것은 소요칠결(逍遙七訣) 중 두 초식이오.”
“소요칠결? 처음 들어 보는 무공이다.”
천천히 몸을 바로 세우면서, 잔잔한 표정으로 돌아온 금비가 말을 이었다.
“이 무공은 나의 선친께서 돌아가시기 전 창안하신 이래 한 번도 강호에 선보인 일 없이 오직 나에게 구결(口訣)로써 전수하신 것으로, 이름 그대로 당신께서 정원을 거니시는 동안의 깨달음을 무예로 표현하신 것이오.”
“대단하구나. 네 아비의 이름자가 어찌 되느냐?”
남의 부친을 마치 집안에서 부리는 종 부르듯이 마음대로 하대하는 두향응의 말투에도, 금비는 다만 웃으며 고개만 흔들 뿐이었다.
그런 그의 마음속에, 자신에게 구결을 전수해 주며 웃던 유자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알겠느냐, 비아? 낙수결은 마루 아래 섬돌에 떨어져 홈을 만드는 물방울의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요, 유엽결은 앞뜰 시냇물을 따라 흘러내리는 나뭇잎의 모습을 보고 창안한 것이다. 또한 세우결(細雨訣)은…… 하하. 이처럼 이 일곱 절기들은 모두 내가 게으름 피우다 얻은 깨달음을 모아 만든 무공이나 그 속에는 내 무예의 정수가 담겨 있다. 이 무공들은 내가 너에게 주는 선물이니, 이 구결들을 깊이 이해하고 체득한다면 소요칠결만으로도 네가 강호에 나갔을 때 누구도 너를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대답하기 싫다면, 좋다……. 이제 너는 죽을 준비가 되었느냐?”
귀기 어린 두향응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린 금비의 눈에, 허공에 떠오른 오죽흑관과 그 주위를 가득 메운 서른여섯 개의 마화가 비쳐 들었다.
그와 함께 들썩거리는 주루의 바닥. 여기저기 판자가 뜯겨 나가며 고루강시들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살아날 생각은 않는 게 나을 것이다. 솔직히 지금 죽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성장할 네놈이 너무 두렵구나. 지금의 네 상세로 내 모든 것을 건 공격을 받아 낼 수는 결코 없다!”
공력은 소진되었고 내상 또한 심각한 상황. 핏기 하나 없이 핼쑥해진 얼굴로 금비는 고검을 받쳐 들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조금씩 후들거리는 팔과 막으려 해도 새어 나오는 기침 소리. 입가에는 어느새 다시 핏물이 배어 나오고 있었다.
십이성의 마화강연으로 허공에 가득한 서른여섯의 마화와 스무 구의 고루강시, 그리고 마기를 흩뿌리며 마화 속에 떠 있는 오죽흑관.
입가에 흐른 핏물 사이로 웃음이 떠올랐다.
여느 때보다 더욱 짙어진 미소와 함께 자신을 향해 죄어 오는 두향응의 공세를 바라보는 금비의 모습. 그러나 그 모습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기만 했다.
‘오는구나…….’
금비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일 갑자의 공력이라고 했던가? 하하……. 그 정도의 공력만이라도 마음대로 운용할 수 있었다면, 내 오히려 금수혈괴를 죽이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두향응의 말을 떠올리면서, 금비는 웃었다.
단전에서 울컥울컥, 고통이 온몸으로 터져 나가고 있었다.
다가오는 고루강시들의 모습 위로, 나직이 한숨을 내쉬며 그에게 이르던 노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네 단전은 내가 너를 거두었을 때 이미 깨진 지 오래되어 나로서도 고칠 방법이 없었느니라……. 어린 나이에 부모의 은덕으로 이미 벌모세수(伐毛洗髓)하여 임독양맥이 타통되어 있고, 나 또한 너의 세맥(細脈)까지 수없이 씻어 주어 진기의 흐름은 이었으나 네가 가진 내공은 단전에 모이지 아니하고 전신 세맥에 숨어든 상태다. 네 천생의 그릇이 너무나도 커서 고련에 의해 깨어진 단전으로도 어느 정도의 진기(眞氣)는 순간적으로 운용이 가능할 것이나, 명심하거라. 오랫동안 쉼 없이 진기를 운용하는 것은 네 목숨을 깎아 먹는 짓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