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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1권 (10화)
일단 가장 큰 세력은 구대 삼십일호 혁련위가 중심이 된 무리와 칠대 이십호 사마령이 중심이 된 무리였는데, 그 둘 다 이미 열 명이 넘는 인원을 모았다.
아무나 자신들의 무리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 수가 많지 않았다.
세력은 크지 않지만 일대 십오호 북궁호가 중심이 된 무리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북궁가는 현 마교주 북궁천의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두 세력은 위지가와 목가였는데, 그들 역시 만만치 않은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일단 왕오에게 제의가 들어온 곳은 혁련가와 사마가 그리고, 북궁가였다.
왕오는 일단 북궁가는 제외하기로 했다.
북궁호의 성격이 맘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궁호는 음험하고, 편협한 녀석이었다. 며칠 전부터 왕오에게 시비를 거는 것이 확연하게 느껴졌다.
식당이나, 경신법 훈련 때 북궁호의 무리들이 왕오를 툭툭 치거나, 비웃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왕오가 영입 의사에 대한 대답을 명확히 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협박을 해서 압력을 가하면 겁이 나서 자신들에게 올 것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생각 같아선 당장에 목을 부러뜨려 버리고 싶은 놈들이었으나 지금으로썬 왕오가 그들 모두를 상대할 수 없었다.
어찌 됐든 왕오에겐 상당히 귀찮으면서도 위협이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혁련가와 사마가 두 곳이 남는데, 여자인 사마령 밑에 들어가기는 왠지 싫었다.
그녀는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의 미모를 이용해 아이들을 모으고 있었다.
확실히 예쁜 얼굴이긴 했으나 왕오에겐 별 감흥을 주지 못했다.
‘혁련위에게 가야겠군!’
왕오는 결심을 굳혔다.
“넌 어디로 들어갈 거야?”
점심 식사 후 뇌전검 수련 시간이 되자 소소가 장팔과 함께 다가와 물었다.
왕오가 인상을 찡그렸다. 다른 사람들이 많은데서, 함부로 셋이 모인다면 괜한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봐, 이봐 너무 신경 쓰는 게 더 어색하다구!”
장팔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듣고 보니 그도 그랬다. 소소가 궁금한 표정으로 왕오를 바라보았다.
“혁련위.”
금혼제령대법 이후 바뀐 게 하나 더 있었으니, 그것은 아이들끼리 이름을 불러도 조교들이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물론, 아직 조교들은 아이들을 번호로만 부르고 있었다.) 이로 인해 뛰어난 몇몇의 이름은 모든 아이들에게 알려져 있었다. 각 무리의 수장이 그들 중 하나였다.
그들은 무리를 만들면서 일부러 자신들의 이름을 밝혔다. 자신들이 오세의 사람임을 알린 것이다.
“혁련위라…….”
소소가 턱을 괴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로 돌아갔다.
“그렇다면, 난 사마령! 일단 예쁘잖아! 후훗!”
장팔이 경쾌하게 웃어젖히곤 자리로 돌아갔다. 사실 자리라고 해봐야 하나 건너였다.
그간 많은 아이들이 죽고 십대에 남은 인원은 이십 명이 조금 넘었기 때문이다.
왕오는 다시 한 번 정신을 가다듬었다.
여기는 삶보다 죽음이 가까이 있는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스스로에게 상기시켰다.
모든 수련이 끝나고 왕오는 혁련위의 무리를 찾아갔다.
자유 시간이었기에 몇 명의 아이들이 혁련위 곁에 모여 있었다. 왕오가 혁련위에게 다가가자 녀석들이 날카로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십대 십칠호군! 그간 눈여겨 봤다. 상당히 인상적이더군!”
혁련위가 웃으며 왕오를 맞이했다.
열한 살의 아이치고는 큰 덩치에 코가 상당히 큰 소년이었다. 제법 대범한 듯 말하고 있지만, 그 역시 마인의 후손, 저 안에 광기와 잔인함이 숨어 있을 것이다.
마인들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었다.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무표정하게 왕오가 말하자, 주변의 아이들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감히!”
왕오가 씨익 웃으며 소리 지른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치고는 제법 흉흉한 인상이었으나, 이마에 십자 흉터가 있는 왕오에 비하면 어림없었다.
“너…… 너, 이 자식…….”
왕오의 시선을 받은 아이가 잠시 움찔했던 게 부끄러워 얼굴이 벌개졌다.
“그만!”
혁련위의 한마디에 아이들이 움직임을 멈췄다.
혁련위의 입술 양끝이 위로 올라갔다.
“훗훗, 재밌구나! 그래, 그 정도 배짱은 있어야 우리와 함께할 수 있지. 하지만, 실력이 그만큼 뒷받침이 되어야겠지!”
혁련위가 이빨이 보이도록 입술을 말아올렸다. 눈에서 한 줄기 혈광이 흘러나왔다.
사실 왕오가 실력이 제법 괜찮긴 했으나 혁련위가 볼 땐 많이 모자랐다.
공력이라던가 초식 면에서 아직은 지옥곡 최고 수준에는 한참 못 미치고 있었다.
“조건이 있다.”
그런 혁련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왕오가 말했다.
혁련위와 주위 아이들의 표정이 차갑게 굳었다.
“지금은 내가 너보다 실력이 모자람을 인정하지. 일단 너의 명령을 듣겠다. 하지만 이 년 안에 내가 너를 이긴다면, 너의 명령에 따르지 않겠다!”
왕오가 무표정하게 자신의 할 말을 했다.
혁련위의 표정이 굳었다.
“건방지군!”
주변의 아이들이 혁련위의 한마디에 따라 살기를 뿜어냈다. 왕오는 표정 변화 없이 그저 혁련위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지만! 맘에 드는군!”
혁련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넌 앞으로 나 혁련위의 친구다!”
파격적인 혁련위의 말에 왕오조차 깜짝 놀라 표정 관리를 해야 했다.
주위의 아이들은 당황한 얼굴들이었다.
“모름지기 저 정도 그릇은 되야 나랑 친구가 될 수 있지! 내 오늘 제대로 사람을 얻었구나! 하하하하!”
혁련위가 큰소리로 웃으며 기뻐했다.
왕오는 뜻밖의 상황에 어리둥절했으나, 이내 신색을 회복했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 난 마교 혈천궁(血天宮)을 이끄는 혁련가의 아들 혁련위라 한다!”
혁련위가 주먹 쥔 손을 내밀었다.
“난 십대 십칠호 왕오라 한다!”
왕오가 오른 주먹을 들어 혁련위의 손목에 마주 걸었다.
서늘한 긴장감이 왕오의 뒷목을 감쌌다.
혁련위는 생각보다 그릇이 크고 위험한 놈이었다.
왕오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일이 진행되었다.
사실 왕오는 혁련위의 성질을 건드려 조심성 없고 고집 쎈 모습을 보인 후, 혁련위와 수하들에게 제압당해 어쩔 수 없이 무릎을 꿇는 상황을 만들려 했다.
그렇게 되면 혁련위는 왕오를 항상 자신의 부하 정도로만 생각할 것이고, 결코 자신을 능가하지 못할 것이라 여기게 될 터였다.
또한, 큰 견제도 없을 것이 분명했다.
허나, 혁련위는 왕오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대응을 했다.
그가 진정 왕오를 마음에 들어하는지, 아니면 필요에 의해 이용하려는 것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아이들은 혁련위의 대범함을 칭송할 것이고, 더욱 믿고 따를 것이 분명했다.
혁련위가 진정 이와 같은 결과를 노린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만일, 그가 이런 상황을 예측한 것이라면 혁련위야말로 북궁호 따위와는 비교도 않되는 무서운 상대였다.
‘혁련위라!’
왕오의 입장에서는 앞으로 더욱 경계해야 할 인물 중 하나였다. 이렇게 왕오가 혁련위의 무리에 들어갔고, 두삼은 육대 팔십칠호 목인소의 세력으로 들어갔다.
장팔은 자신의 말처럼 사마령의 무리로 들어갔다.
아신과 소소를 빼고는 모든 아이가 각각의 무리로 들어간 것이다.
다음 날부터 왕오는 혁련위의 무리들과 자주 어울렸다.
혁련위는 왕오가 무척 마음에 든 듯 친근하게 대해 줬다.
성격도 화통하고 무공도 뛰어난 혁련위가 왕오도 마음에 들었으나, 가슴속에는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놓았다.
혁련위와 자신은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는 사이였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서로에게 칼을 겨눠야 할 것이다.
며칠 뒤 자율 수련 시간에 혁련위의 무리를 만나러 간 왕오는 크게 놀랐다.
“반가워! 난 소소라고 해!”
소소가 혁련위의 무리에 들어온 것이다.
“왕오.”
왕오는 무뚝뚝하게 자신의 이름 두 자를 내뱉었다.
꼭 서로 다른 세력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부담이 됐다.
“오늘 새로 영입한 소소야. 여자인데도 불구하고 검 실력이 대단하지! 얼굴도 사마령만큼이나 예쁘고, 하하! 우리 식구가 됐으니 앞으로는 서로 가족처럼 생각하자구!”
혁련위가 왕오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왕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소는 혁련위 무리 모두가 동경하는 꽃이 되었다. 특히, 혁련위는 소소를 무척 아끼고 소중히 대해 주었다.
소소에게 마음을 빼앗긴 것이다.
하지만 소소의 반응은 담담했고, 오히려 왕오에게 더 친근하게 굴곤했다.
그럴 때마다 무리의 남자아이들은 왕오에게 질투의 눈빛을 보냈기 때문에, 왕오는 얼마 동안 상당한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왕오가 혁련위의 세력으로 들어간 뒤에 북궁호는 이를 갈았다. 자신을 무시하고 다른 곳으로 간 왕오를 어떻게든 혼내주고 싶었던 것이다.
다른 아이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혁련위의 무리로 들어간 터라 함부로 건들기가 쉽지 않았다.
기회를 옅보며 북궁호는 왕오가 혼자 행동할 때를 기다렸다.
어차피 일대일의 다툼은 무리끼리도 용인하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심복 중 한 명을 시켜 왕오에게 댓가를 치르게 하려 했던 것이다.
왕오 또한 북궁호의 그런 수작을 이미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서 늘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만일 북궁호가 도발한다면, 대충 넘겨서는 않된다.
확실하게 인상을 심어주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자신을 귀찮게 할 것이다.
왕오는 자신을 건드는 놈들을 온전히 놔두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마교는 강자존의 원리가 지배한다. 한 번 얕보이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마교에게 가문이 멸망한 이후로 왕오에게 자비심이나 동정 따위의 감정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왕오가 혁련위 무리로 들어간 뒤 며칠 되지 않아 북궁호가 수작을 걸었다.
왕오가 수련이 끝나고 보충 연습을 하느라 늦은 시간에 식당에 혼자 도착한 것이다.
혁련위 무리는 이미 식사를 끝내고 나간 뒤였다.
북궁호가 자신의 심복에게 눈짓을 했다.
북궁호의 명령을 받은 삼대 오십구호가 왕오의 뒤를 따라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에는 몇몇의 아이가 아직 식사를 끝내지 못하고 남아 있었다.
왕오는 자신이 먹을 음식을 받아 그릇에 담았다. 그때, 오십구호가 다가왔다.
“카악! 퉤!”
오십구호가 왕오의 그릇에 가래를 뱉었다.
“아이쿠! 이런 난 아무도 없는 줄 알았네. 근데 버러지 새끼 한 마리가 있었구나! 크크큭!”
오십구호는 왕오가 운신을 못할 정도로 밟아줄 작정으로 시비를 걸었다.
북궁호의 무리에서도 실력이 북궁호 다음으로 좋은 그였다.
덩치도 왕오보다 머리 하나는 커서 얼핏 보기에도 왕오가 상대가 되지 않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