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박쥐 1권 (12화)
“저 녀석에 대해 지속적으로 근황을 알려드릴까요?”
조교가 물었다. 홍탁이 전궁을 바라보았다.
“됐소, 그저 한번 만났을 뿐이오. 그럼, 이만! 상부의 결정이 내려지면 다시 연락 드리겠소.”
전궁이 관심없다는 듯 수련장을 떠났다.
홍탁은 전궁을 보내고 집무실로 돌아왔다.
“앞으로 녀석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라!”
홍탁이 수석 조교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감찰단 부단주가 관심을 가지는 놈이라…….’
그놈의 무엇이 전궁에게 관심을 가지도록 했는지 궁금했다. 또한, 혹시라도 전궁이 아끼는 놈이라면, 만일의 경우―금혼제령대법의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을 경우―전궁을 압박하기 위해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좋은 패가 될 수도 있었다.
수석 조교가 깊이 고개를 숙인 후 홍탁의 집무실을 나섰다.
*
왕오의 검이 세 갈래로 분열했다.
나뉘어진 세 개의 검영이 동시에 허공을 갈랐고, 마지막 순간 분열되었던 검들이 한점을 향해 동시에 빨려 들어갔다.
콰아아앙!
검이 멈춘 곳에 위치한 아름드리 나무가 산산조각이 난 채 흩어졌다. 상당한 위력이었다.
“후우…….”
왕오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뇌전검의 성취가 목표했던 수준으로 올라섰다.
극성을 이루게 된다면 검영이 수십 개로 분열될 것이다.
상대방은 검로를 짐작도 못하고 당하게 되는 것이다.
왕오가 손목을 부드럽게 돌려가며 초식들을 다듬었다.
금혼제령대법 이후 일 년 육 개월의 시간이 경과했을 때 왕오는 공력의 육 할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엄청난 속도였다. 원래 가지고 있던 공력과 합하여 무려 사십 년에 가까운 내공을 지니게 된 것이다.
이제는 오세의 녀석들과 붙는다 해도 결코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어느덧 왕오의 나이도 열두 살이 되었고, 체격도 상당히 커져 있었다.
체력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은 탓에 온몸의 근육이 고르게 발달되어 있었다.
뇌전검도 이미 오성의 경지에 이르렀다.
왕오와 함께 마동이 된 나머지 네 아이들 역시 각자 자신의 위치를 잡아가고 있었다.
두삼은 왕오 못지않은 실력으로 목인소에게 상당한 신임을 받고 있었다.
창술도 이미 지옥곡 최고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장팔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무리에서 잘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둥글둥글한 외모답지 않게 검술도 제법이어서 그 역시 사마령에게 꽤 신임을 받고 있었다.
아신은 여전히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었다.
열다섯 명이나 되는 무리를 이끌고 있었으며, 가혹하고 잔인하게 아이들을 지배했다.
소소는 날이 갈수록 미모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사마령과 함께 지옥곡의 이화(二花)로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이용해야 하는 간자에게 있어 아름다움은 무기인 동시에 저주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이 저마다의 길을 걸어가고 어느덧 이 년의 시간이 지나 다시 시험의 때가 왔다.
5. 암동
예상대로 금혼제령대법에 관한 일은 불문에 붙여졌다.
성과가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다.
천마신교의 수뇌부에서는 오히려 홍탁을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기로 결정을 내렸다.
홍탁의 왕오에 대한 관심도 시큰둥해졌다.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어쨌든 왕오에겐 잘된 일이었다.
드디어 시험의 날이 오고 마동들이 광장에 모였다.
이 년의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었다.
광장에 모인 아이들의 눈빛이 형형하게 빛났다.
긴장하고 있었으나 이전과 같이 떨거나 안절부절못하는 이들은 없었다.
이미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몇 번의 한계를 넘은 아이들이다. 단지 독기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거구의 홍탁이 연단 위로 천천히 올라섰다.
홍탁이 마동들을 둘러보았다.
이젠 아이라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한 모습에 입가에 만족스런 미소가 떠올랐다. 홍탁의 시선이 왕오를 스치고 지나갔다. 왕오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반드시 저놈은 내 손으로 죽이겠다!’
역겨운 홍탁의 모습을 보며, 십팔호의 죽음을 떠올린 왕오의 가슴에 분노가 치솟았다. 홍탁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들 열심히 수련했으리라 본다. 오늘 너희는 그 성과를 시험받게 될 것이다. 만일, 그간의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목숨을 잃게 될 것이요. 너희들이 그간 열심히 자신의 실력을 키웠다면 살아남을 것이다. 시작하라!”
조교들이 마동들에게 환단을 나눠주었다.
금혼제령대법 때 먹었던 것과 비슷한 크기 비슷한 색의 환단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수갑을 채우지 않았다.
무언가 다른 관문일 것이다. 아이들이 환단을 모두 삼키자 홍탁이 다시 말을 이었다.
“오늘의 시험은 암동(暗洞)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암동은 지옥곡 북쪽에 위치한 동굴 지대를 말했다.
지하로 통하는 수십 개의 입구가 뚫려 있었고, 그 안에는 수 많은 함정과 독물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너희가 지금 먹은 약은 절명단(絶命團)이란 극독이니라.”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홍탁이 말했다.
몇몇 아이들은 충격에 휩쌓였다.
선택의 기회도 없이 극독을 삼키게 된 것이다.
이제 죽는 일만 남은 것이다. 하지만 왕오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분명 시험이라 했으니 그 답 또한 있을 것이다. 왕오는 차분히 홍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절명단을 복용한 자는 삼 일 안에 해독약을 먹지 못하면 온몸으로 독이 퍼져 핏물로 화해 사라진다. 너희는 삼 일이 되기 전에 해독약을 찾아 마셔야 살아남을 수 있다. 그 해독약은 암동의 가장 끝에 가져다 놓았다. 살아남으려면 암동을 돌파해 해독약을 취하거라!”
‘결국은 해독약을 찾는 것이 시험이었군!’
왕오는 이번 시험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일단 삼 일의 넉넉한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암동이 위험한 곳이라는 이야기였다.
‘삼 일 동안 돌파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겠지…….’
그간 겪었던 관문들 못지않은 죽음의 함정이 마동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자! 모두 암동으로 향하라!”
홍탁의 명령에 따라 조교들이 아이들을 암동으로 인솔해 갔다.
홍탁은 즐거운 표정으로 마동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집무실로 사라졌다.
암동 앞에 도착한 아이들을 조교들이 스무 명씩 열다섯 조로 나누었다.
총 인원이 삼백일 명이어서 왕오가 속한 마지막 조는 스물한 명이 되었다.
왕오의 조에는 아신을 비롯 무림맹 출신 아이들이 모두 포함되었다.
‘이렇게 같이 들어가는 건가?’
다행히 무림맹 아이들이 함께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혁련위 무리에 소속된 아이들은 아쉽게도 소소 외엔 모두 다른 조였다.
“일단 자신의 무기를 들고 이 지도를 받아라!”
삼십여 개에 이르는 동굴의 입구 앞쪽으로 여러 가지 무기들이 놓여 있었다.
무기를 가지러 가던 왕오는 자신을 향하는 한 가닥 살기를 느꼈다.
고개를 돌려 확인해 보니 북궁호였다. 얼른 살기를 지웠으나,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을 꾸미고 있음이 분명했다.
일전의 사건으로 아직도 벼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암동이라면 놈에겐 절호의 기회일 것이다. 대비를 해야 했다.
왕오는 검을 가져오며 단도 세 개를 더 챙겼다.
소매에 두 개의 단도를 숨기고, 허리띠 안쪽으로 하나를 걸었다.
“꼭 이대로 조를 이루어야 합니까? 제가 가고 싶은 조로 갈 순 없습니까?”
그때, 북궁호가 조교에게 물었다. 왕오의 조로 오려는 것임이 분명했다.
“바꿀 사람이 있다면 상관없다. 단, 이번뿐이다!”
조교도 북궁호가 오세(五勢)의 사람임을 알기에 귀찮지만 이동을 허락해 주었다.
북궁호가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왕오의 조로 왔다.
“흐흐, 오늘이 네놈 제삿날이구나.”
북궁호가 비릿하게 웃으며 왕오를 도발했다.
북궁호와 졸개들이 암동에서 왕오를 공격한다면, 살 확률보다는 죽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상당히 위험한 상황이었다. 왕오의 머리속이 복잡해졌다.
“일조 나와라!”
일조의 스무 명이 앞으로 나섰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라! 우선 일차 관문은 혼자서 돌파해야 하는 관문이다. 기관진식이 설치되어 암기와 함정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일조는 여기 삼십오 개의 입구 중 하나를 선택하여 들어간다. 다른 사람이 선택한 입구로는 들어갈 수 없다. 반드시, 입구당 한 사람만 들어가도록 한다.”
북궁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완전히 잘못 짚은 것이다. 오히려 가만 있었으면 왕오가 들어간 입구로 자신이 들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절대 왕오와 같은 곳으로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개자식! 운이 좋구나!”
북궁호가 살기를 띤 목소리로 왕오에게 으르렁거렸다.
왕오는 그런 북궁호를 무시한 채 무표정한 얼굴로 동굴의 입구만 바라보았다.
일단 한시름 놓았다.
함정과 암기를 피하며 북궁호의 무리까지 상대한다면 정말 살아남기 쉽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조가 통과한 반 각 뒤에 이조가 같은 방법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기관의 복구 시간이 반 각 정도 걸리기 때문이었다.
앞의 아이가 돌파한 기관을 다른 아이가 아무 힘 안 들이고 통과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렇게 모두 일차 관문을 통과하면 암동 중앙의 광장에서 모이게 된다. 그곳에서 조교들이 이차 관문에 대해 설명해 줄 것이다. 일조 출발하라!”
북궁호가 앞조에 속한 자신의 무리에게 귓속말을 했다.
아마도 자신이 직접 왕오를 처리할 수가 없으니, 다른 놈들에게 손을 쓰도록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리라.
모든 조가 들어가고 왕오의 차례가 왔다.
왕오는 그동안 북궁호 무리가 가장 적게 들어간 입구를 선택했다. 한 명이 들어간 곳이었다.
이미 오십 명이 넘는 세력을 만든 북궁호가 최소한 한 곳에 한 명은 들어가도록 한 것이다.
왕오는 무기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한 후 천천히 동굴로 들어갔다. 암동에 진입하자 시야가 검게 변했다.
빛이라고는 입구에서 들어오는 것밖에 없었다.
걸음을 옮길수록 점점 더 어두워져서는 끝내 암흑으로 변했다.
시야가 점차 어둠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왕오에겐 이런 환경이 오히려 유리했다.
무림맹에서 받은 이 년의 간자 훈련 중 어둠에 적응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거기다, 비설종의 수련 역시 게을리 하지 않았기에 어둠 속에 몸을 숨기는 것은 식은죽 먹기였다.
앞에 들어간 북궁호의 졸개놈이 어딘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이런 환경이라면 그놈은 스스로 죽을 자리를 찾아온 것이다.
왕오는 감각을 끌어올렸다.
소리와 냄새, 피부를 통해 사물을 느끼고 기운을 감지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사방의 윤곽이 왕오의 머릿속에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