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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1권 (18화)
“지옥곡을 벗어났다고 결코 안심하지 마라! 천마신교는 강자존의 원리만이 지배하는 세상이다. 앞으로는 살아남기 위해, 더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해 수 많은 마인들과 경쟁해야 한다. 만일,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거나 게으름을 피운다면, 너희는 누군가에게 먹혀 버리고 말 것이다!”
수석 조교의 말이 왕오의 가슴에 비수처럼 다가와 박혔다.
이곳은 마교다. 한순간도 방심해선 안 되는 것이다.
수석 조교의 말이 끝나고 뒤쪽에 서 있던 백의의 중년인이 앞으로 나섰다.
“나는 천마제이서고의 각주 여량이다!”
자신을 여량이라 소개한 중년인은 턱이 긴 말상의 사내였는데, 염소수염에 머리에 유건을 쓴 모습이 조금은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자였다.
여량이 말을 이었다.
“천마제이서고는 천마서고를 그대로 복사하여 이곳 지옥곡 인근으로 옮겨온 곳이다. 천마서고에 있는 모든 책들이 천마제이서고에도 존재한다. 단, 교주 무공인 천마신공과 오세의 가문 비전신공은 제외되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전대 마인들의 무공이 소장되어 있으니 너희에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상당한 파격이었다.
어차피 교주의 무공과 각 가문의 비전무공은 오직 교주와 그 가문의 사람만이 볼 수 있다.
그것 외에 전대 마인의 모든 무공비급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아이들이 노력하기 만하면 천마신교의 최고수급 마인으로 올라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이야기였다.
한마디로 마동들을 천마신교의 핵심 전력으로 키우겠다는 상부의 의지였다.
“천마제이서고의 생활은 비교적 자유롭다. 또한 숙소도 한 명당 하나씩 배정될 것이다. 물론 혼자 무공을 수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천마제이서고 출입시에는 반드시 내가 나누어 준 출입증을 제시하고 확인을 받아야 한다. 그럼 모두 지금부터 나를 따라 천마제이서고로 출발한다! 이상!”
말을 마친 여량이 아이들을 이끌고 천마제이서고로 향했다.
6. 천마제이서고
천마제이서고가 위치하는 곳은 지옥곡 북쪽 암동(暗洞)에서 삼백 장쯤 떨어진 협곡이었다.
지옥곡과 비슷하게 절벽으로 빙 둘러싸여 오로지 하나의 입구로만 출입이 가능했다.
서고는 북쪽 절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절벽을 파서 그 안에 공간을 만들어 책을 보관하고 있었다.
서고의 입구는 거대한 철문으로 막혀 있었고, 그 앞을 네 명의 감시인들이 지켰다.
얼핏 철문의 규모만 보아도(높이가 무려 오 장은 되어 보였다.) 서고의 어마어마한 크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서고는 지상 삼층, 지하 삼층, 총 육층으로 무려 육만 권이 넘는 여러 분야의 서적들이 그 안을 꽉 채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서고의 규모에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고의 위쪽 절벽에는 여러 개의 굴이 뚫려 있었는데, 바로 아이들이 무공을 수련할 석실이었다.
식당은 입구 오른쪽 절벽에 자리잡고 있어서 언제든 자신이 원할 때 식사할 수 있었다.
지옥곡에 비하면 상당히 파격적이라 할 만큼 자유로운 곳이었다.
“모두 주목해라! 지금부터 서고 출입증을 나눠주겠다. 이것을 지참해야만 서고에 출입할 수 있다. 서고의 책은 밖으로 꺼내올 수 없다. 책은 서고 안에서만 볼 수 있으며, 필사는 반드시 지정된 문관에게 요청하여 받아가도록 한다. 만일 이를 어길시 참혹한 형벌이 뒤따를 것이다!”
여량이 아이들에게 주의 사항을 일렀다.
어차피 지키면 그만이니 어려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서 생겼다.
“글을 읽지 못하는 녀석들은 문관들에게 따로 글을 배우도록 하라. 기본적인 글을 깨우치지 못한 녀석들은 서고에 출입할 수 없다! 반드시, 수업을 듣고 빠른 시간 안에 글을 깨우치도록 하라!”
왕오와 무림맹 출신 네 아이들은 물론 글을 배웠다.
하지만 마동으로 끌려온 대부분의 아이들이 글을 알지 못했다.
거의가 가난한 집에서 팔려왔거나, 고아였기 때문에 글을 배운다는 건 생각조차 못했던 것이다.
왕오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이 중에 오세의 아이들 외에는 글을 아는 이의 수가 열 명도 채 안 되었다.
굶어죽은 유생의 자녀라던지, 명문가의 숨겨논 서자라던지 하는 경우가 아니면 어찌 글을 알고 있겠는가.
얼른 서고로 들어가 무공을 익혀야 다른 아이들보다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글을 아는체하려면 무언가 그럴 듯한 변명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혹여, 그게 가능하다 해도 결국 누군가는 자신과 네 아이를 주목하게 될지도 모른다.
‘당분간 글을 배우는 척해야겠군!’
왕오가 결단을 내렸다. 최대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야 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몇 달간은 서고를 이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차피 대부분의 아이들이 같은 상황이다.
쓸데없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글을 배울 아이들은 앞으로 입구 왼편에 있는 수학당(修學堂)으로 사시(巳時)정(오전10시)까지 집합하도록 하라.”
말을 마치고 여량이 사라지자 몇 명의 인물이 아이들에게 머물 석실을 배정해 주었다.
왕오는 사층의 석실들 중 이층 스물두 번째에 배정되었는데, 왕오의 석실 앞쪽으로 두 칸 건너 두삼이 배정되었고 그 뒤로 세 개의 석실을 지나 소소가 배정되었다.
혁련위와는 아예 층이 달랐다.
왕오는 석실을 차분히 둘러보았다.
지옥곡보다 훨씬 깔끔하고 침상도 잘 정돈되어 있었다.
거기다 공간이 제법 넓어서 혼자 수련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왕오는 침상에 앉아 운기조식을 했다.
이젠 사십 년이 넘는 내공이 몸을 한 바퀴 돌아 소주천을 했다. 피곤했던 몸이 차차 안정되어 갔다.
“후우―”
길게 숨을 내쉰 왕오가 운기조식을 마쳤다.
내일부터는 당분간 뇌전검과 경공을 더욱 단련할 수밖에 없었다.
오세의 아이들은 바로 서고에 들어갈 것이다.
가문의 비전무공을 이미 배우고 있었지만, 다른 상승무공을 접함으로 해서 얻게 되는 깨달음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잘만 찾는다면 강호를 평정했던 전대 거마들의 무공을 익힐 수도 있는 것이다.
지금도 그들과 실력 차이가 어느 정도 있는데 또다시 벌어지는 것이다.
마음이 착찹했다. 하지만 조급하게 마음먹게 되면 실수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목숨과 직결될 것이다. 왕오는 마음을 다스리며 잠들었다.
암동에서의 여러 사건들 중 가장 아이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린 것은 바로 아신이었다.
특히, 북궁호는 아신에 대하여 이를 갈았다.
북궁호는 자신에 뜻에 반하는 어떠한 것도 인정하지 못하는 편협한 성격이었다.
그런 그가 손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아신에게 놀아난 셈이니, 그 분노는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그 덕에 왕오는 북궁호의 증오 대상에서 두 번째로 밀려났다. 왕오의 실력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고 섣불리 상대할 수 없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아신에게 고맙다고 절이라도 해야 할 일이었다.
북궁호는 암동 이후로 아신을 손봐 줄 날을 벼르고 별렀다.
하지만 천마제이서고에서는 교령들과 감시자들의 삼엄한 통제 때문에 꿈도 꿀 수가 없었다.
북궁호는 어쩔수 없이 나중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아신에게는 다행이었다.
왕오는 삼 개월이 지나서야 서고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것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상당히 빠른 편이었다.
물론, 제일 먼저 서고에 들어가게 되면 쓸데없이 주목을 받게 될까 십여 명의 아이가 서고로 향한 뒤에야 왕오도 서고로 향했다.
무림맹 출신의 다른 네 아이들 역시 왕오와 같은 선택을 했다. 글을 배웠다 하면 의심받을 것임을 안 것이다.
그들도 왕오와 비슷한 시기에 서고에 들어갈 수 있었다.
서고 안쪽은 상당히 넓었다.
책을 꺼내 그 자리에서 바로 읽을 수 있도록 각 책장마다 의자와 책상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문앞에는 다섯의 문관들이 필사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곳곳에 감시하는 자들이 지키고 있어서 혹시라도 밖으로 책을 가져가는 것을 막고 있었다.
무서(武書)는 지상 일층부터 지하 삼층까지 네 개의 층에 위치해 있었는데, 분야별로 정리되어 있었다.
왕오는 미리 생각해 둔 바가 있어 우선 암기와 독, 진법에 대한 서적이 있는 지하 삼층으로 향했다.
암동을 통과하며 비도의 도움을 많이 받았기에 반드시 암기를 익혀야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수행하게 될 간자의 임무라는 것이 비밀스러운 것이 대부분일 텐데, 소리없이 상대를 격살하고 자신의 자취를 숨기기에는 암기가 가장 좋았다.
암기의 장점 중 또 다른 하나는 자신보다 실력이 뛰어난 상대와 맞설 때 유용하다는 것이다.
무림맹에서 받은 훈련 때도 암기술은 필수였다.
검은 이미 익히고 있는 뇌전검(雷電劍) 또한 훌륭한 무공이었기에 쓸데없는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지금부터 다른 훌륭한 검법을 익힌다고 해봐야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과연, 얼마만큼 실력이 향상될지 장담할 수 없었다.
차라리 뇌전검에 전념하여 대성을 이루는 편이 더 나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지하 삼층엔 아이들이 한 명도 없었다. 사방에 천고의 무공 서적들이 널려 있는데, 누가 비루하게 암기나 독 따위에 관심을 두겠는가.
감시인 외에는 사람이 없는 관계로 왕오는 편안히 책을 찾아볼 수 있었다.
반나절 동안 서고를 뒤진 끝에 세 가지 마음에 드는 무공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첫 번째는 줄을 이용하여 암기를 자유자재로 조종하고 쉽게 회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회선류(回線類)라는 무공으로 승표(繩?:줄이 달린 표창)와 비검(飛劍)을 이용하여 벽 뒤에 숨은 적까지 제거할 수 있는 유용한 암기술이었다.
두 번째로는 유엽비도나 수리검(手裏劍), 표창 등 모든 던질 수 있는 암기에 통용될 수 있는 비곡표(飛曲?)라는 암기술로 내기의 운용과 회전을 이용하여 물체를 곡선으로 날리는 기술에 대해 쓰여져 있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서책은 발석포(發石砲)라는 조금은 단순한 이름의 암기술로 모든 암기에 내기를 담아 강력한 탄환처럼 쏘아내는 기술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던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완성도가 높아질수록 점차 그 차이가 벌어져 나중에는 바위도 뚫어 버릴 정도의 강력한 위력을 발휘했다.
이 기술을 극성으로 익히면 손에 잡히는 모든 물체를 수(數)에 관계 없이 기를 담아 쏘아낼 수 있다. 수전이나 철구 등을 쏘아낼 때 상당한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왕오는 자신이 배운 기초적 암기술을 토대로 이 세 가지 무공을 빠르게 익혀 나갔다.
암기술을 익히면서도 또 한 가지 소홀이 하지 않은 분야가 바로 독(毒)이었다. 암기보다도 은밀하게 상대의 목숨을 빼았을 수 있으며, 자신의 흔적을 들키지 않을 확률 또한 높았다.
수많은 독들의 용독(用毒)과 해독(解毒)에 대해 최대한 익히려 노력했다. 이것은 결국 왕오 자신의 목숨을 지켜내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네 아이들도 각자의 장기에 맞는 무공을 택해 익혔다. 이곳에서 익히는 무공들이 앞으로 마교에서 살아남는데 구명줄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