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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1권 (19화)
왕오를 포함한 다섯 아이는 그 누구보다도 절실하게 무공을 익혔다.
아신은 암혼수라도(暗魂修羅刀)라는 백오십 년 전 강호에 피바람을 일으킨 절대마인 마귀도(魔鬼刀) 야율력의 무공을 익혔다. 두삼은 삼백 년 전 마창(魔槍)이라 불리던 곽비의 천관십이창(天貫十二槍)이라는 무공을 선택했다.
장팔은 독특하게 천살검(天殺劍)이라는 살수무공을 택했다. 아마도 왕오와 같은 마음이었으리라.
소소는 소혼검(消魂劍)이라는 섬뜩한 이름을 가진 검법을 택했다.
검의 움직임이 은밀하고, 변화가 심해 간자이자 여자인 소소에게 어울리는 검법이었다.
이렇게 각자의 무공을 혼신의 힘을 다해 익힌 지 칠 개월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왕오는 여느날처럼 독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서고로 향했다.
서고 입구에서 출입증을 제시한 후 안으로 막 들어섰을 때였다. 갑자기 철문을 박차고 일곱 명의 마인들이 서고로 들이닥쳤다.
모두 상당한 고수였다.
그들의 움직임은 갑작스러우면서도 섬전처럼 빠르게 이루어져, 서고 안의 사람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봤을 땐 이미 여섯 마인이 한 명의 서고 감시자 앞에 도달해 있었다.
“생포하라!”
우두머리인 듯한 중년인의 명령에 여섯이 번개처럼 움직여 감시자를 덮쳤다.
그들은 날렵한 움직임으로 감시자가 미처 손을 쓸 새도 없이 순식간에 사지를 제압했다.
발버둥치는 감시자의 혈도를 점혈한 사내들이 그의 입을 벌려 무언가를 뽑아냈다.
“크아악!”
그것은 피가 흥건히 묻은 어금니였다. 그 뒤로 여섯 마인들의 무자비한 구타가 이어졌다.
감시자의 온몸은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변했다. 반 각 정도의 구타가 멈추고 서고 감시자가 시체처럼 땅바닥에 축 늘어졌다.
“독단은 제거했습니다!”
사내들 중 한 명이 우두머리에게 보고했다.
감시자는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을 흘리며 꿈틀거리고 있었다. 고통스러워하는 그의 입에서 흘러내린 피가 서고 바닥을 적셨다.
서고 안의 아이들과 다른 감시자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사내들을 쳐다보았다.
“우리는 감찰당 소속 방첩대(防諜隊)다. 이놈은 무림맹의 간자다. 앞으로 방첩대에서 심문하여 나머지 간자의 무리를 색출할 것이다!”
왕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혹시라도 방첩대라 소개한 자들이 왕오와 네 명의 아이들에 대해 알아낸다면, 다섯 아이는 죽은 목숨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표시를 낼 순 없었다. 저자들은 간자를 색출하는데 전문적으로 훈련된 자들, 조금의 틈만 보여도 다섯 아이의 정체를 알아차릴 것이다.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무림맹의 간자가 잡힌 것에 대한 걱정보다는 과연 자신에 대해 체포된 간자가 알고 있을까가 더 걱정되었다.
“저런 쥐새끼! 이제껏 잘도 숨어 있었구나!”
“퉤! 더러운 정파 놈!”
여기저기서 움직이지 못하는 간자를 욕하고 침을 뱉었다.
바닥에 쓰러진 간자의 피투성이 얼굴 위로 왕오 자신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언젠간 왕오 역시 마교의 무리들에게 발각되어 똑같은 일을 당하게 될 수도 있었다.
어차피 각오한 길이었으나, 이런 상황이 현실로 눈앞에 닥치니, 머릿속이 복잡하고 아무 생각도 떠올릴 수 없었다.
간신히 마음을 가라앉힌 왕오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나머지 네 명의 아이는 이곳에 없었다.
이 사실을 그들에게 빨리 알려야 한다. 그래야 그들도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왕오는 방첩대가 빠져나가면 곧바로 아이들을 찾아야겠다 생각했다.
“놈을 끌고 나와라!”
우두머리 중년인이 명령을 내린 후 서고 밖으로 나갔다. 나머지 사내들이 따라나서고, 두 명의 무사가 쓰러진 간자를 질질 끌다시피 하며 서고 밖으로 향했다.
간자가 서고문까지 끌려가는 잠깐의 시간이 왕오에게는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
마치 죽음 직전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잠깐 동안 평생의 기억이 지나가듯, 오만 가지 생각이 왕오의 머릿속을 지나갔다.
침이 마르도록 긴장된 시간이 지나가고 드디어 간자가 서고문에 도달했다.
마음이 급한 왕오가 밖으로 움직이려 한 순간이었다.
“더러운 마교놈들 뒈져라!”
문앞에서 마동들에게 필사를 해주던 문관 하나가 번개처럼 움직여 자신이 잡고 있던 붓을 던졌다.
붓은 문관이 던졌다기엔 너무도 빠르고 정확하게 일행을 덮쳤다. 분명 내기를 실은 일격이었다.
일개 문관이 던진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강력한 일격이었다.
거기다 문을 통과하려는 절묘한 순간에 가해진 공격인지라 방첩대의 움직임이 방해받을 수밖에 없었다.
방첩대는 전혀 예상치 못한 공격에 당황했다.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문관이 던진 붓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모든 이들의 표정이 굳어 버렸다.
붓은 정확히 간자의 뒤통수를 뚫고, 이마로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즉사였다.
“으하하하하! 마교의 졸개들아 지옥에서 보자! 끄으윽!”
입에 거품을 문 문사가 땅에 쓰러진 후 매케한 냄새가 퍼졌다. 독단을 깨문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너무도 순식간에 벌어져 방첩대는 눈만 멀뚱히 뜬 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쓰러진 문사의 얼굴과 몸이 마치 안에서 거품이라도 이는 듯 이리저리 튀어나왔다 들어갔다 하며 경련하더니 일다경도 되지 않아 한 줌 독수로 변해 버렸다.
사람들은 놀라 문사의 시체에서 허둥지둥 물러섰다.
왕오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또다른 간자였다.
둘 다 죽음을 맞이했다.
한 사람은 정체가 발각되어 다른 간자에게 죽었고, 다른 이는 비밀을 지키기 위하여 동료를 죽이고 자살했다.
자신이 택한 길이, 소름 끼치게 차갑고 어두운 미래뿐인 이 길이 어떤 길인지가 현실이 되어 먹먹하게 가슴을 짓눌렀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모든 걸 버려야 한다.]
[간자의 목숨은 오직 자신과 동료만이 취할 수 있다.]
머리로만 이해하던, 이 세 가지 간자의 절대계명이 이제야 비로소 숙명처럼 다가온다.
일단의 소란이 끝나고도 방첩대는 한동안 남아서 천마제이서고의 모든 인원들을 조사했다.
다행히 더 이상의 검거나 심문은 없었다. 왕오는 이번 사건을 통해 더욱 마음을 단단히 했다.
사 년의 시간은 총알같이 흘러갔다.
마동들은 어느새 청년티가 날 정도로 자라 있었다.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도 이전과는 달리 고수라 불릴 수준의 것이었다.
왕오와 네 명의 소년, 소녀에게서도 이제는 마인이라 할 만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눈빛은 타들어 갈 듯 뜨겁고 날카로왔으며 몸은 무쇠와 같이 단단했다.
열일곱이 된 소소는 그 미모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이젠 사마령조차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청순하면서도, 농염한 이중적 아름다움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두삼은 칠 척에 가까운 큰 키와 단단한 체구를 자랑했다.
자신의 키보다도 큰 그의 창 묵주(墨柱)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은 마치 천상의 신장과도 같았다.
장팔은 뚱뚱하던 몸이 어느새 날씬해져서 상당한 미남으로 변신했다.
잘생긴 외모에 빠르고 깃털 같은 움직임까지 예전의 장팔을 알고 있는 자들이라면,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고 말 정도로 모든 면에서 변화를 이룬 그였다.
단지 아직도 그 유들유들한 성격만은 그대로였다.
아신은 마치 한 자루 혈도(血刀)와 같이 차갑고 광포(狂暴)한 마인이 되어 갔다.
폭이 한 치(3㎝)가 조금 넘는 협도(狹刀)를 사용하는 아신의 도법은 빠르면서도 파괴적이었다.
왕오 또한 많은 발전이 있었다.
이제 청년티가 제법 나는 왕오는 기어이 서고에 온 지 삼 년 정도 지난 시점에 일 갑자의 내공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냈다. 절정의 경지에 오른 것이다.
지옥곡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의 빠른 속도였다.
물론, 무림맹의 네 명과 오세의 우두머리, 그 외에 뛰어난 몇 명의 아이들 또한, 절정의 경지에 올랐다.
아마도 일, 이 년 안에 나머지 아이들도 모두 절정의 경지를 넘어설 것이다.
하지만 왕오에겐 또 다른 성과가 있었다.
암기에 내기를 싣는 경지에 오른 것이다.
이젠 어느 정도 자신의 뜻대로 회선류와 비곡표를 펼칠 수 있었다.
발석포 또한 큰 진전을 이루어 양손으로 동시에 열 개의 암기에 경력을 실어 발출할 수 있었다.
같은 수준의 고수를 만난다면 그가 왕오에게 도달하기도 전에 격살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상대방이 왕오의 암기에 대해 모를 경우에 한해서지만 말이다.
뇌전검은 이미 팔성의 경지에 이르렀다.
검이 열 개로 갈라졌다 합쳐지는 단계였다.
팔성부터 비로소 제대로 된 뇌전검을 구사할 수 있다.
불규칙한 검로와 상대의 공격에 맞추어 바뀌는 초식 구사가 가능해진 것이다.
공력이 늘어나면서 비설종 또한 자연스럽게 발전했다.
이젠 어지간한 고수들은 왕오의 움직임을 알아차릴 수 없을 것이다.
드디어 마지막 시험날이 다가왔다.
각주 여량이 천마제이서고 앞에 모두를 집합시켰다.
백오십의 마동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마지막 시험을 기다렸다. 이젠, 어떤 상황이 닥친다해도 놀라거나 당황하지 않을 정도의 평정심을 갖춘 것이다.
몇몇은 전의에 불타 살기를 피워대는 녀석들도 있었다.
마기를 주체하지 못하는 놈들, 바로 혈마신공을 택한 아이들이었다.
혈마신공을 택한 아이들 중 약 팔십 명의 아이가 살아남았다.
아무래도 초반의 공력 차가 금혼제령대법 때 살아남을 확률을 높여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두 무리가 비슷한 수준이었다.
오히려 최상위 실력자들은 이심공을 배운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늘 마지막 시험은 너희에겐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저, 천마신교의 정식무사가 되는 일종의 통과 의례라 생각하면 된다. 오늘 이후로 너희는 진정한 마도의 전사가 될 것이다.”
각주 여량이 미소를 띄운 얼굴로 아이들에게 시험에 대해 설명했다.
“자! 시작하라!”
여량의 명령에 따라 두 명의 교령이 절벽의 입구로 향했다.
“모두 들여보내라!”
두 명의 교령이 바깥쪽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곧이어 손발이 묶인 죄수들이 안쪽으로 하나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몰골은 몹시도 참혹했다.
여기저기 피딱지가 말라붙어 있었고, 옷은 넝마와 다름이 없었다.
인원은 사백여 명 정도 되었는데, 비쩍 말라서 뼈가 드러난 몸이 이들의 고초가 얼마나 심했는지 말해주고 있었다.
광장에 모인 마동들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교령들과 감시자들이 그들을 한데 모으더니 묶인 손발을 풀어주었다.
그자들이 영문을 몰라 머뭇거리며 두려운 표정으로 교령들과 감시자들을 바라보았다.
“무기를 나눠줘라!”
놀랍게도 여량의 명령에 따라 죄수들로 보이는 자들에게 검과 도가 지급되었다.
그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는 듯했다. 그것은 마동들도 마찬가지였다.
‘저런 자들과 싸우라는 것인가?’
왕오는 속으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은 이미 절정에 오른 고수였다. 저런 자들은 몇 명씩 덤빈다 해도 마동들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예전에 늑대와의 대결 때 마동들에게 먹였던 환단을 나눠주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을 복용한다 하여도 저들이 마동들을 상대하기는 역부족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