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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1권 (20화)


그때, 여량이 힘이 실린 목소리로 마동들에게 말했다.
“오늘의 시험은 시험이라기 보단 축제라 칭해야 할 것이다. 여기 이놈들은 정파의 위선자 놈들이다. 감히 천마신교에 대항하다 붙잡혀 포로가 된 자들이다. 이놈들을 죽이지 않고 살려둔 것은 바로 오늘 같은 날을 위해서다. 이제 너희는 정파 놈들의 피로 몸과 마음을 깨끗이 씻고 진정한 천마신교의 전사가 될 것이다.”
“우와아아아아!”
마동들이 환호했다. 정파는 그들의 적이었다. 놈들은 모두 죽여야 할 대상이었다.
마동들이 마기를 끌어올리고 정파의 포로들을 향해 살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환단을 복용한 포로들은 두려운 표정으로 마동들을 바라보았다.
무기를 든 손을 덜덜 떨며 눈물을 흘리는 자들도 있었다.
“더러운 마교놈들 우리는 결코 네놈들에게 굽히지 않을 것이다! 퉤!”
그중 한 무사가 악에 받쳐 소리쳤다.
무사의 고함에 힘입어 나머지 포로들도 조금씩 용기를 내기 시작했다.
“어차피 살기 힘들 테니 한 명의 마인이라도 더 죽이고 가겠다!”
“그래! 네놈들의 살거죽은 칼이 들어가지 않는지 어디 한번 보자!”
왕오와 네 아이는 이 상황을 결코 환호할 수 없었다.
이미 마인에 가까워진 왕오였으나, 그의 뿌리는 정파였다.
어쩌면 저들 중에는 언젠가 한 번 스쳐 지났을 이가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한편으론 반드시 그들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자신이 두렵고, 혐오스러웠다.
‘결국 어쩔 수 없는 건가.’
왕오의 눈에 광기가 어렸다.
세상은 원래 이런 거다, 다른 이의 눈물로 자신의 길을 닦는 것이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잔혹하고 처절한 복수!’
어차피 자신이 나선다 하여 저들을 구할 수는 없다.
그저 죽어가는 이들에게 한 목숨 더 추가할 뿐이었다.
이래서 간자들은 같은 편들조차 외면하고 경멸하는 것이다. 만일 전투에서 만난다면 서로를 죽여야 하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왕오를 비롯한 다섯 아이는 이를 악물었다.
여기서 포로들을 죽이지 못한다면, 그들은 정체를 의심받게 될 것이다.
“더러운 정파 놈들에게 처참한 죽음을 내려라!”
여량의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마동들이 달려 나갔다.
퍽! 퍽!
그것은 싸움이 아닌 학살이었다.
정파의 포로들은 일초조차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마동들과의 실력차가 너무도 컸기 때문이다.
“으아아아!”
“끄으으!”
사방에서 울분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몸에서 떨어져 나간 팔다리가 여기저기 흩어져 피를 뿌렸다.
공포에 질려 주저앉는 자들, 정신이 나가 오줌을 지리는 자들, 악다구니를 쓰며 마동들에게 달려들다 토막 나는 자들, 광장에 한 폭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이 악마 새끼들!”
도를 높게 쳐든 중년인이 왕오에게 달려들었다.
온몸에 피딱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는 그가 충혈된 눈으로 검을 휘둘렀다.
왕오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이미 결심을 굳혔다. 한 줄기 빛살이 공간을 가르자 중년인의 머리가 허공으로 떠올랐다.
머리를 잃은 몸뚱이가 나무토막처럼 무너져 내렸다.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혐오감이 왕오를 덮쳐 왔다.
‘어차피 내가 택한 길! 막는 놈들은 마교든 정파든 모두 죽이리라!’
왕오의 눈이 번들거리며 광기에 물들기 시작했다.
왕오의 검이 다음 먹잇감을 찾아 움직였다.
콰앙!
뇌전검이 발출되고 도망치던 중년여인이 수십 조각 육편이 되어 터져 나갔다.
왕오는 공력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미친 듯이 휘두르는 뇌전검에 포로들이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으아아아아아!”
나머지 네 아이도 광기에 휩싸여 온몸에 피를 뒤짚어쓴 채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이것은 또 다른 원죄. 포로 한 명을 죽일 때마다 자신들의 영혼도 조금씩 죽어감을 느꼈다.
결국 모든 포로들이 처참하게 도륙되어 땅에 쓰러졌다.
광기를 주체하지 못한 아이들이 서로 검을 맞대기도 했으나 곧바로 교령들에게 제지당했다.
그야말로 도살이었다. 정파의 포로들은 인간이 아닌 짐승이었다. 피가 곳곳에 고여 웅덩이를 이루었다.
모든 마동들의 얼굴에 잔혹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왕오는 덜덜 떨리는 손을 간신히 진정시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만들어낸 피비린내 나는 참상이 마음을 짓눌렀다. 하지만 왕오는 얼굴에 아무렇지 않은 듯 억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잔인하고 피에 굶주린 마인이다!’
왕오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
“너희는 지금 이 순간 비로소 진정한 천마신교의 전사로 다시 태어났다! 마음껏 자랑스러워하라!”
“와아아아아!”
여량의 외침에 이제 진정한 마인이 된 아이들이 환호했다.
감시자들이 장내를 정리하고 술과 음식을 베풀어 백오십 마인의 탄생을 축하했다.
드디어 모든 수련이 끝나고 마교의 무사로서 첫걸음을 내딛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이제 각 단체에 배속되어 조장급 이상의 간부로 활약하게 될 것이다.
실력으로 보면 그 위의 직책도 가능했으나, 아직 어리고 경험이 없기에 우선 조장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수련 마지막 날이 지나고 왕오와 무림맹의 네 아이는 복수에 한 발 더 다가섰다.



7. 첫 번째 임무


다음 날 마동들은 각자 새로운 단체로 배치되어 뿔뿔히 흩어졌다.
특이한 점은 혈마신공을 익힌 자들은 대부분 광혼단(狂魂團)에 소속되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광혼단은 마기를 이기지 못하고 광포해진 마인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마교의 돌격부대였다.
특히, 단주가 바로 심법교령이었던 종자도였다.
이로서 종자도가 혈마신공을 직접 가르친 이유가 어느 정도 짐작이 되는 것이다.
광혼단은 전쟁이 있을시에 가장 앞에서 화살받이 역할을 하는 자들이었다.
항상 가장 많은 이들이 사망하고, 인원 보충이 많이 필요한 곳이었다.
혈마신공을 배운 이들은 대부분 결국 치솟는 마기를 정신이 감당치 못하게 됨으로, 통제가 쉽지 않아진다.
혈마신공을 배운 마동들 중 서른 명에도 못 미치는 인원만이 아직 광기에 물들지 않았다.(물론 이들 대부분도 나중에는 점차 광기에 침식당하게 될 것이다.)
무려 오십 명이 넘는 아이들이 마기를 다스리지 못하고 광기에 물들기 시작한 것이다.
광혼단에 배치된 마인들은 대부분 광기에 물든 자들로 몸 안에 고(蠱)를 심어 심신(心身)을 제어하게 된다.
결국엔 마교의 개가 되는 것이다.
이로서 광혼단의 전력은 급상승하게 되었다.
마교에서 가장 무시당하던 단체가 일거에 오십 명이 넘는 절정급 고수들을 보유함과 동시에 수위를 다투는 무력 단체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다른 단체들이 종자도의 수작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왕오와 네 명의 아이도 각각 자신의 소속 단체로 이동했다. 두삼은 창술을 인정받아 마창묵갑기병대에 배속됐다.
장팔은 사마령을 따라 내당 소속 집법대에 배치되었다.
아신은 내당 수신호위대에 배치되었다.
소소는 잠입, 침투, 암살을 수행하는 암영대에 배치되었다.
마지막으로 왕오는 전궁의 입김으로 비밀리에 감찰단에 소속되었다.
홍탁에게는 관심없는 척 했지만, 실상 전궁은 지속적으로 왕오를 지켜보고 있었다.
단지, 홍탁이 쓸데없는 생각을 할까 봐 표시를 내지 않았을 뿐이었다.

전궁의 부름을 받은 왕오는 감찰단으로 향했다.
드디어 본격적인 마교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날이 선 긴장감이 왕오의 전신을 압박했다.
감찰단이라면 마교 내부의 수많은 정보와 비밀이 수집되는 곳이다.
배신자나 비리 연루자들, 무림맹의 간자들을 색출해 내는 곳이 바로 감찰단이다.
이런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확하고 세밀한 정보가 필수였다.
이것은 왕오에게는 상당한 기회였다. 자신의 원수가 누구인지 알아내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마교 내의 거의 모든 자료가 감찰각에서 원하면 언제든지 제공하도록 되어 있었다.
지금 당장은 왕오의 직책이 높지 못하기에 그 범위가 한정되어 있으나, 차근차근 계단을 밟고 올라간다면 결국 원하던 목적지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전궁의 집무실 앞이었다.
왕오는 정신을 바짝 차린 채 집무실에 들어섰다. 전궁은 이젠 감찰단의 단주가 되어 있었다.
어렸을 때 그토록 강력하고 커 보였던 그가 이젠 어느 정도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것이 왕오의 감회를 새롭게 했다. 희끗희끗한 머리가 그도 이제 중년을 넘어서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단주님! 명 받고 왕오를 데려왔습니다!”
왕오를 안내한 감찰단의 무사가 전궁에게 고개를 숙였다. 왕오도 무사를 따라 전궁에게 인사했다.
“그래, 수고했다. 나가보거라.”
정체 모를 문서들을 검토하던 전궁이 고개를 들어 왕오를 바라보았다.
“많이 컸구나, 기세도 좋아졌군.”
전궁이 문서들을 내려놓으며 왕오에게 말을 건냈다.
“감사합니다! 단주님!”
왕오가 전궁의 칭찬에 절도 있게 대답했다.
어찌 됐든 자신은 이제부터 마교의 사람이다.
되도록 상관에게 잘 보여 더 높은 자리에 올라야 훨씬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다.
물론 복수를 위해서도 더욱 그랬다.
“너에 대한 기대가 많다. 처음 만났을 때의 임기웅변과 근성이 너의 진실된 모습이라면, 넌 감찰단에서 중요하게 쓰일 것이다.”
감찰단의 임무들은 감시, 정보 수집, 잠입 수사 등 은밀하게 움직이는 일들이었고, 대부분 비밀 엄수가 철칙이었다.
혼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할 때가 비교적 많아서 갑작스런 상황에 대처하는 임기웅변능력이 매우 중요했다.
또한, 입이 무겁고 근성이 있는 자들이 필요했다.
왕오는 그러한 조건에 부합되는 인물이었다.
“너는 앞으로 잠입대 소속으로 활동하게 된다. 잠입대는 신분을 숨기고 내부 감찰을 하는 임무를 주로 수행한다. 너의 임무는 수신호위대 부대주 도침을 감시하는 것이다. 수신호위대로 잠입해서 도침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하도록 해라.”
전궁이 무표정하게 말을 이었다.
“니가 알아야 하는 것은 오직 명령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뿐! 일체의 의문이나 질문은 허용치 않겠다. 물론, 니가 감찰단 소속이라는 것 역시 누구에게도 말해선 안 된다.”
마교에서의 첫 임무였다.
수신호위대라면 아신이 배치받은 곳이다.
아신과 함께 근무하게 된다는 것이 조금은 껄끄럽게 느껴졌다.
도침이라는 자가 어떤 자인지 왕오는 알지 못한다.
그를 감시해야 하는 이유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명령이 떨어졌으니 그대로 이행할 뿐이었다.
우습게도 왕오는 마교에서조차 간자와 비슷한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