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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1권 (21화)
“이미, 네가 도침 휘하의 수신호위대 조장으로 발령나도록 손을 써두었다. 지금 바로 밖에 있는 무사를 따라 그곳으로 출발하도록 해라. 자세한 사항은 그가 알려줄 것이다.”
“존명!”
왕오가 전궁에게 군례를 올린 후 집무실 밖으로 나오자 자신을 안내할 무사가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광대뼈가 툭 튀어나오고 턱수염이 많은 사내였다.
“나는 엽승방이라 한다. 잠입대 부대주다. 앞으로 너의 모든 보고는 나에게 하면 된다. 접선은 불규칙하게 할 것이다. 단, 중요한 보고가 있을시 마을에 있는 유향각(有香閣)이란 식당에 만날 시간과 장소를 암표(暗標)로 남겨라. 그 외의 보고는 내가 같은 식당에 남긴 암표에 따라 행하면 된다.”
부대주 엽승방이 왕오에게 얇은 책자를 하나 건네주었다.
“나와 네가 사용할 암표책이다. 최대한 빨리 외우고 없애도록 해라. 이 암표는 오로지 너와 나만 사용하기에, 감찰단의 다른 무사들조차 알아볼 수 없다. 허니, 절대 잊어버리지 말고 꼭 기억하도록 해라. 암표는 육 개월에 한 번씩 변경된다. 그러니 그때까진 이 암표가 너와 나의 유일한 연결점이 되는 것이다.”
아마도 암표가 쉽게 파악되지 않도록 하려고 계속 변경하는 듯했다.
이것은 무림맹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무림맹에서 암표에 대한 교육을 받은 왕오였다.
이제 얼마 후 무림맹의 연락책과도 접선하게 될 것이다.
왕오는 속으로 자신의 삶이 참으로 재밌다는 생각을 했다.
아마도 전생에도 첩자나 암살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일단 보고는 서면으로 하되, 유향각 이층 오른쪽 두 번째 탁자 밑바닥에 숨겨놓도록 해라. 그러면 요원들이 수거해 갈 것이다. 변동 사항은 추후에 같은 방법으로 알려주겠다. 조심 또 조심해서 정체가 들키지 않도록 해라!”
“명심하겠습니다!”
왕오가 엽승방의 말에 답했다.
두 사람은 어느새 수신호위대 앞에 도착해 있었다.
부대주 엽승방은 마지막으로 왕오에게 도침에 대한 조사는 신중히 오랜 기간을 두고 접근하라 일렀다.
섣불리 의심을 사면 도침이 먼저 몸을 사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분간 무리하지 말고 믿음을 얻는데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남기고 엽승방이 돌아갔다.
수신호위대는 마교의 주요 인사들을 보호하고 경호하는 임무를 한다.
또한, 각종 행사나 제전(祭典)의 안전을 미리 검사하고 사고를 미연에 예방하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곳은 실력과 감각이 뛰어난 정예 인력만이 들어올 수 있었다.
교주는 따로 수호대가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지키지만, 그 가족과 교의 주요 인사들은 모두 수신호위대에서 그 안전을 책임지고 있었다.
스무 명씩 삼십 개의 조를 기본 단위로 임무를 수행하며, 각각 열 개의 조를 세 명의 부대주가 관리하고 있었다.
수신호위대의 대주는 축융이라는 자로 천마신교 내에서도 상위를 다투는 실력자였다.
비록 직책은 대주였으나 어지간한 단주급과 맞먹는 무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그만큼 수신호위대가 교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증거였다.
왕오는 십삼조의 조장으로 부대주 도침의 밑에 배속되었다.
아신은 십일조의 조장이었다.
같은 부대주 밑에 소속된 것이다.
왕오는 일단 부대주 도침을 찾았다. 발령을 보고하기 위해서다.
첫 만남이기에 의심받을 행동을 해선 안 되었다.
도침의 집무실에 도착한 왕오가 걸음을 멈추었다.
“수신호위대 십삼조 조장으로 발령받은 왕오! 도침 부대주께 인사드립니다!”
문밖에서 왕오가 자신이 왔음을 알렸다.
“들어오라!”
도침의 허락이 떨어지고 왕오가 들어가 절도 있게 자세를 잡았다.
“성화강림(聖火降臨)! 만마앙복(萬魔仰伏)!”
왕오가 부대주 도침에게 인사했다.
대체 성화와 만마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이것이 천마신교의 구호였다.
성화로 세상을 정화해 마도 천하로 만들겠다는 조금은 어리둥절한 뜻이 내포된 이 구호만 보아도, 마교의 무리들이 얼마나 제정신이 아닌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도침은 메부리코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자였다.
성격이 매우 까다로운 자임을 짐작할 수 있는 외모였다.
“그래, 잘왔다. 마동 출신이라고? 후후 그렇다면 인상만큼 실력이 제법이겠구나. 앞으로 지켜보도록 하지. 나가서 조원들을 만나보도록 해라.”
도침이 날카로운 눈으로 왕오를 쏘아보며 인사에 답했다.
왕오를 이리저리 살피는 도침의 눈빛에 서린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도침이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지 않고 있음이 분명했다. 둘 중 하나였다.
왕오의 실력을 견제하는 것이던지, 왕오가 감찰단에서 잠입했음을 눈치챘던지.
둘 다 왕오에게는 문제거리였다.
“존명!”
군례를 취한 후 도침의 집무실을 벗어나는 왕오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왕오는 도침이 무슨 이유로 자신을 경계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만들어야 했다. 밖으로 나오니 십삼조의 부조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조장의 안내에 따라 수신호위대가 머무는 숙소로 향했다.
보통 수신호위대는 다른 곳으로 파견을 나가 있을 경우가 많았고, 파견이 없는 조원들은 연무장에서 단련을 하던가 아니면 숙소에서 쉬곤 했다.
열 개의 조가 한 건물을 같이 썼는데, 숙소는 개인별로 나뉘어 배정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건물의 규모가 엄청났다.
교의 정예무사들이다 보니 그 대접이 상당히 훌륭했던 것이다.
때문에 수신호위대 중 제법 많은 수의 대원들이 오세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상당히 자존심이 강하고 수신호위대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몇몇은 새로운 어린 조장의 발탁을 별로 달갑게 생각지 않았다.
“저…… 조원들이 불경스럽더라도 너무 크게 신경 쓰지 마십시오. 아직 낯설어서 그럴 뿐입니다. 곧 조장님을 수족처럼 따르게 될 이들입니다.”
부조장이 조심스럽게 왕오에게 말했다.
마동 출신의 왕오가 조원들과 부딪혀 큰 사고라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되었던 것이다.
부조장 복태는 하급 무사부터 시작하여 이 자리까지 올라온 중년의 사내로, 마인치고는 성실하고 심성이 모나지 않은 이였다. 그리고 산전수전을 다 겪은 만큼 왕오가 보통 실력자가 아님을 짐작하고 있었다.
겨우 열일곱의 나이에 수신호위대의 조장이 되었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이 특출나다는 것을 뜻한다.
아직 혈기 왕성한 젊은 조원들은 그 사실을 미처 생각지 못하는 것이다.
숙소에 들어선 왕오는 대강 이런 분위기를 눈치챘다.
조원들이 일부러 표시를 내지는 않았지만, 몇몇은 못마땅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너무 뻔한 대응이라 하품이 나는군. 아무래도 한바탕해야 정신들을 차릴 테지.’
왕오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상관에겐 깎듯이 아랫사람에겐 가차 없이]
왕오가 간자로서 지켜야 할 철칙이었다.
밑에 놈들이 감히 올려다볼 수도 없이 만들어야 딴생각을 못한다.
조금이라도 틈을 보인다면 언제 정체를 들키게 될지 모른다. 이들은 왕오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놈들이기 때문이었다.
없는 죄라도 만들어 왕오를 거꾸러뜨리려는 자들인 것이다.
“뭣들 하나! 새로 부임하신 조장님이 오셨다. 모두 집합!”
쉬고 있던 조원들이 복태의 호통에 어슬렁거리며 숙소 앞으로 집합했다.
십삼조의 숙소 옆에는 다른 조들의 숙소가 붙어 있었는데, 하나의 숙소 크기가 상당해서 각자 자신들의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옆의 다른 숙소들은 사람이 보이질 않는 것을 보니 모두 임무를 받아 파견 나갔던지 안에서 쉬고 있는 듯했다.
“여기 계신 왕오 조장님께서는 지옥곡의 혹독한 관문들을 통과하신 천마신교의 뛰어난 전사이시다.”
복태가 조원들에게 왕오를 소개했다.
몇몇은 지옥곡이란 단어에 놀라는 눈치였으나, 대부분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숙소 앞에 모인 십삼조 조원들은 대부분 스무살 중반에서 후반 정도의 나이로 보였다.
왕오에 비해 최소 일고여덟 살은 많은 것이다. 그들로선 아니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왕오는 그들을 전혀 이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자신의 조원이기는 하였으나, 그들은 왕오가 그토록 증오하는 마인에 불과했다.
왕오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다시 한 번 걸렸다.
“한 명씩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제일 앞에 있는 녀석은 위지무현으로 위지가의…….”
왕오의 표정을 본 복태가 위험하다고 느끼고는 얼른 나서서 왕오에게 조원들을 소개하려 했다.
“필요없다! 하찮은 쓰레기들의 이름은 알고 싶지 않다! 앞으로는 지금 서 있는 순서대로 번호로 부를 것이다!”
왕오가 복태의 말을 중간에서 끊고 단호히 명했다.
“조, 조장님…… 조금만 참으심이.”
깜짝 놀란 복태가 얼굴이 하얗게 변해서 왕오를 말렸다.
조원들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 햇병아리 조장이 겁을 상실한 듯 보였다.
그중에서도 위지가의 사람인 위지무현의 얼굴은 그야말로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그래도 조장이라고 이렇게 집합까지 하고 대충은 대우를 해주며 지내려 했는데 자신들을 먼저 도발한 것이다.
자부심 높은 위지가의 사내로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흥! 지옥곡 출신이라면, 자기 친구를 잡아먹고 살아 나왔다는 그 마동들을 말하는 것이오?”
가장 앞에 있던 위지무현이 빈정거리며 소리쳤다.
금혼제령대법의 일은 이미 천마신교 내에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지옥곡 출신들을 질시하거나, 그들의 실력을 비하하는 자들은 이를 빗대 친구를 잡아먹고 살아남은 괴물들이라 뒤에서 수근대곤 했다.
그 말이 왕오의 분노에 불을 지폈다.
십칠호의 일은 왕오에게 있어 역린(逆鱗)과 같았다.
왕오의 눈에서 살광이 일었다.
“네놈이 용기가 있다면 어디 한마디만 더 지껄여 봐라!”
왕오의 온몸에서 무서운 마기가 뻗어 나갔다.
절정 고수의 기세였다. 마교에서도 채 칠십 명이 되지 않는 절정고수다.(물론, 마동들은 포함하지 않은 숫자이다.)
스무 명의 조원들 모두가 왕오의 기세에 엄청난 압박을 느꼈다.
이를 악물고 버티던 위지무현은 그제야 자신이 왕오를 잘못 건드렸음을 깨달았다.
이 정도 기세라면 부대주와도 맞먹는 공력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위지세가라는 자존심이 그를 물러서지 못하게 했다.
위지무현이 왕오에게 다시 한마디 도발하려던 찰나였다.
한 줄기 빛살이 번뜩이더니 위지무현의 목에 붉은 줄이 생겨났다.
위지무현은 입을 연 채 눈을 부릎뜨고 있었다.
위지무현의 열린 입으로 핏물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머리와 몸이 분리되었다.
소리도 없었다. 무엇이 어떻게 된 것인지 제대로 본 조원은 오직 부조장 복태뿐이었다.
왕오가 검기를 날려 위지무현의 목을 벤 것이다.
“그때까지 목이 붙어 있다면!”
왕오가 차갑게 말했다. 절정 이상의 고수만이 가능한 일격이었다.
놀란 조원들의 눈이 위지무현을 향했다.
그와 동시에 위지무현의 잘린 목에서 피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너무도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었다.
조장이 부임하자마자 조원을 죽이다니. 조원들은 이것이 현실인지조차 의심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