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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신선 1권(6화)
제2장 지는 착하게 살았지라!(3)
“아, 그런데 말이어라, 그 지옥의 그분들은 왜 제 손이 닿으니까 튕겨져 나갔던 거지요?”
“본래 지옥의 마두는 어두운 기운을 극한으로 지닌 이들이네. 그런데 동생께서는 신선, 즉 빛의 기운만을 가진 이가 아닌가. 빛과 어둠은 근본적으로 섞일 수 없고 서로를 거부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네.”
“아하! 그러니께 물과 기름 같다, 이 말씀인 거지라? 그렇구먼. 하마터면 저 하나 때문에 지옥이 난리 날 뻔했어라.”
석두는 다음부터는 조심해야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염라대왕은 흐뭇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말 나온 김에 지옥을 구경시켜 줌세. 어떤가, 동생?”
“아따! 형님께서 친히 지옥 구경을 시켜 주신다는데 즐겁게 따라야지요! 안 그렇소? 내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지옥 구경을 해 보겄소.”
“하하하! 그래, 동생은 착하게 살았는가?”
염라대왕은 당당한 석두의 태도가 재미있었던 모양이었다. 석두는 그의 질문에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외쳤다.
“아! 그러지라! 지는 착하게 살았지라!”
털이 홀랑 타 버리긴 했어도 삼두견은 삼두견이었다.
“우와! 이게 그 똥개 녀석이 맞더랑가!”
석두는 자신의 키만큼이나 커진 삼두견을 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자신의 허벅지까지 오던 그 허접한 변견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거대하고 용맹한 삼두견이 탄생해 있었던 것이다.
“허허. 지옥의 신수가 아니겠는가. 어서 타게.”
염라대왕은 삼두견의 등 위에 탄 채 손짓을 했다. 본래 염라대왕 이외에는 어떤 이들도 태우지 않는 삼두견이건만, 석두가 올라탔음에도 순응하는 듯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 이름이 뭐여라, 형님?”
“이름 말인가? 그냥 삼두견이라 불리고 있네.”
석두는 의기양양하게 날고 있는 삼두견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아따! 정해 부렀어라! 이 녀석 이름으로 말복이 어떻소, 말복!”
말복. 염라대왕은 그리해도 상관없다며 껄껄 웃었다.
하지만 그들은 미처 모를 것이다. 삼두견이 그 이야기를 알아듣고 남몰래 눈물지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따! 여기가 지옥이여?”
석두는 아래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장면에 눈살을 찌푸렸다. 오물이 가득 담긴 구덩이에 빠진 이들이 괴롭게 허우적대고 있었고, 그들의 팔과 다리를 온갖 벌레들이 갉아먹고 있었다.
“여긴 등활지옥(等活地獄)이네. 생전에 살생을 많이 한 이들이 주로 이곳에 오게 되는데, 무림인이라 불리는 이들이 많더구만.”
석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생전에 아무리 무공이 강했다 해도 죽고 나면 이런 곳에서 괴로움을 받게 된단 말이지 않은가.
“끔찍한 거여라.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지라.”
“허허허! 그렇지. 착하게 사는 게 최고지.”
말복은 열심히 허공을 박차고 날아 다음 지옥으로 향했다. 지옥은 팔열지옥과 팔한지옥으로 나뉘는데, 팔열지옥은 뜨거움과 육체적인 고통을 받는 곳이었다. 팔한지옥은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하는 지옥이었기에 심연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팔열지옥 중 두 번째 지옥은 흑승지옥(黑繩地獄), 칼날이 풀처럼 솟아 있는 이곳에서는 온몸이 동아줄에 묶인 이들이 여기저기 굴러다니고 있었다.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제.”
다른 지옥까지 모두 돌아본 석두가 낸 결론은 당연히 한 가지였다.
착하게 사는 사람 앞에 두려움이란 없다는 것.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행복하게 사는 이에게는 지옥은 전혀 관계없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아따! 이 소식을 우리 마을 사람들한테 전해 줘야 되는디이!”
“하하! 선계에서는 가끔 지상으로 통하는 문이 열린다 하던데, 그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나 보구먼?”
석두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염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도, 돌아가는 방법이 있어라?”
염라대왕은 의외의 반응이었는지 헛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있긴 하다네. 다만, 지상에 내려간 신선이 다시 올라오려면 다음 개문 시기가 되어야 하고, 또 자칫하다간 신선으로서 쌓아 온 모든 공력과 도의 깨우침을 날려 버릴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라네.”
“아따, 지상으로 내려가는 방법이 있긴 있었구먼.”
새로운 사실을 알아낸 석두는 의미심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옥의 순례를 모두 마친 말복은 염라성으로 재빨리 돌아왔다. 자신의 등에 탄 저 신선이 또 자신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불안함 때문임이 분명했다.
“아따! 말복아, 수고혔다!”
끄응…….
말복의 등에서 내린 석두는 귀엽다는 듯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복도 그리 싫지는 않은지 꼬리를 살랑이며 고개를 숙였고 말이다.
“정말 신기한 일이구먼. 이 녀석은 심지어 천제에게도 으르렁거리며 적의를 드러내는데 말일세.”
염라대왕은 그 모습이 여간 신기한 것이 아니었다. 물론 자신을 잡아먹을 뻔한 상대이기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이리 잘 따를 줄은 그로서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석두의 대답은 간단했다.
“하하하! 매 앞에 약 없지라! 매가 바로 약인 거라!”
석두의 대답에 염라대왕은 또다시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석두의 말에는 가식이 없었다. 오로지 자신이 직접 겪고, 또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해 주었기에 염라대왕에게 큰 호감을 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이 녀석이 자네를 극진히 따르니, 내 선물을 줌세.”
염라대왕은 말복의 갈기털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비록 불에 홀라당 타 버리긴 했으나 본래의 형태를 유지한 털 하나를 뽑아낼 수 있었다.
염라대왕은 그것을 작은 주머니에 담아 석두에게 건네주었다.
“견왕(犬王)의 털을 지니고 있으면 짐승들에게 어떠한 해도 입지 않는다네. 잘 간직하게.”
석두는 꾸벅 절을 하며 주머니를 받아 들었다. 짐승들에게 해를 입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으나 막연히 자신에게 이로운 것이라 생각했다.
“아, 그럼 지는 이만 선계로 올라가 봐야 할 것 같은디…….”
“자네가 이곳에 온 후 시간이 상당히 흘렀으니 선계에서 난리가 났겠구먼. 말복이 선계까지 무사히 데려다 줄 터이니 조심해서 가게.”
염라대왕은 석두가 벌써 떠난다는 것이 못내 아쉬운 듯했다. 아무리 눈치가 없는 석두라도 그런 것까지 깨닫지 못하지는 않았다.
“아따, 형님! 얼마 안 있으면 선계에서 신선주 축제가 있응께 그때 우리 작은형님이랑 함께 오시어!”
“흠흠. 그래도 되겠나?”
염라대왕이 되어서 선계에 가는 것이 꺼림칙하긴 했으나 상당히 반기는 눈치였다. 석두는 말복의 등에 훌쩍 올라타며 외쳤다.
“아따! 지옥의 대장인 염라대왕께서 이리 착하게 사시는데 그 누가 싫어하겄소! 게다가 형님의 아우인 제가 이리 착한데 그 누가 뭐라 하겄소! 그러니 꼭 오시어잉!”
“하하, 알았네! 꼭 갈 터이니 또 봅세, 동생!”
말복은 이내 힘차게 하늘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말복의 모습이 먹구름에 가려 사라졌음에도 염라대왕은 아쉬운 듯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3장 사람한텐 분수란 게 있는 것이여(1)
선계는 발칵 뒤집혀 있었다. 부선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것이다.
“도대체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허허. 부선이 없으면 술도 담그지 못하잖소.”
신선들은 저마다 석두를 걱정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물론 개중에는 술을 마시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를 걱정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설마 하계로 내려간 것이 아닐까요?”
“그렇지는 않을 걸세. 동생은 하계로 내려가는 방법조차 모르지 않는가.”
여섯 신선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쨌든 결론은 하나였다.
“동생은 곧 돌아올 테니 믿고 기다려 봅세.”
검선의 대답이 너무나 무책임하다고 느꼈는지 조용히 있던 협선이 불쑥 나섰다.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잖나. 게다가 곧 축제의 그날이 다가오는데 부선이 없으면……. 으음.”
“어쨌든 지금 중요한 것은 술이 아니라 부선의 행방이지 않습니까.”
비선이 협선을 꾸짖듯 말했다. 신선들은 의외라는 듯 비선을 바라보았다.
“그가 없으면 저 술은 그냥 썩혀 버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일 년을 기다려 왔는데요.”
신선들은 이내 그러면 그렇지 하는 눈빛으로 비선을 바라보았다. 젊어서 수많은 여자들 울렸다는 비선. 그런 만큼 신선이 되어서도 그의 잔머리는 상상 이상이었다.
푸확!
그 순간, 구름 아래에서 거대한 형체가 솟아올랐다.
“마, 마수!”
신선들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옥의 마수가 선계에 올라오다니? 게다가 저 마수는 삼두견이라 불리는 지옥의 파수꾼이 아닌가!
“피, 피하게!”
쿠우웅!
여섯 신선은 그 거대한 마수가 자신들을 향해 떨어져 내리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크르릉…….
구름 위에 안착한 삼두견은 신선들을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그 눈에 담긴 살기가 어찌나 강했던지 신선들은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아따! 이놈이 어디서 눈을 부라려! 눈 안 까냐! 앙?”
그 순간, 그들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선! 부선의 목소리임에 분명했다.
“부, 부선!”
“아이고, 형님! 보고 싶었소!”
신선들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염라대왕 외에는 따르는 이가 없다고 알려진 삼두견의 등에 석두가 타고 있었던 것이다. 석두는 그것으로도 모자라 삼두견의 머리를 후려치기까지 했지만, 삼두견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의 말 하나하나에 눈치를 보며 따르지 않는가.
석두는 신선들에게로 달려갔다. 여섯 신선은 자신이 사라졌다는 것 때문에 상당히 걱정한 모양이었다.
“잘 돌아왔네! 그런데 도대체 어디에 가 있었던 것인가?”
“저 삼두견은 또 무엇이고?”
신선들이 호들갑을 떨고 있음에도 석두는 그저 빙긋 웃을 뿐이었다. 자신을 이리 걱정해 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 마냥 기분 좋을 뿐이었다.
“아따, 지가 지옥에 다녀왔지라!”
“지옥? 신선은 그곳을 출입하는 것이 금해져 있지 않은가!”
그가 입을 열자 신선들이 하나 둘 그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다들 관심 없는 척했어도 사실은 석두가 어디서 무엇을 하다 온 것인지 상당히 궁금했던 것이다.
석두는 지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신선들 중에서도 지옥을 실제로 다녀와 본 이는 아무도 없었기에 모두들 석두의 이야기에 빠져 들고 있었다.
가르릉…….
그리고 어느새 그 존재감이 사라진 말복이었다.
밤새 계속된 석두의 이야기는 말복을 불에 굽는 부분에서 절정을 맞았다.
“아! 그러니께! 개고기가 얼∼매나 맛있느냐! 함은 셋이 먹다 둘이 동시에 죽어 나자빠져도 언제 죽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거지라! 그래서 이야, 염라대왕이 내 몸보신하라고 이런 걸 다 준비해 줬구나! 하면서 굽기 시작했는데!”
“했는데?”
석두는 대답 대신 말복을 바라보았다. 신선들도 그제야 말복을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하하하핫! 그러니까 그 개가 바로 저 삼두견이었다, 이 말인가?”
“아, 그렇지라! 어쩐지 똥개 주제에 대가리가 세 개 달렸을 때 알아봤어야 했던 거라니께요.”
신선들은 박장대소했다.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이도 있었다. 석두는 그들의 반응에 더욱 흥이 났는지 외쳤다.
“아, 그래서 지가 말했지라. 다음번에 꼭 선계에 놀러 오시라고, 일 년에 한 번 잔치가 있다고. 아, 근데 염라대왕께서도 그걸 아시더라고! 어찌 알고 계셨는지 아십니까?”
“그, 글쎄?”
신선들은 웃음을 멈추고 침을 꿀꺽 삼켰다. 석두는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알고 보니 천제와 염라대왕께서는 의형제를 맺은 사이셨다, 이거여! 그러니까 염라대왕께서도 지 형님이 되는 것이제이? 그렇지 않소?”
신선들은 모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천제와 염라대왕이 의형제 사이라는 것은 그들로서도 금시초문이었던 것이다.
“아! 그래서 지가 말했지라. 아따, 형님! 그럼 이번 잔치 때 형님도 꼭 오소!”
“그랬더니?”
“오신다 하지요! 꼭 오시기로 하셨으니, 이번 잔치 때는 손님이 훨씬 더 늘어날 거라요! 와하하!”
신선들은 놀라움 반 기대 반으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염라대왕이, 명계의 고위 관리들이 선계에 오신단 말인가! 게다가 천제께서도 천계의 대신들을 모시고 온다 하시었다. 그야말로 대규모 축제가 되리라 기대하고 있었다.
“아, 그럼 술을 더 빚어야지 무엇들 하는가! 어서어서 움직입세!”
비선이 손바닥을 마주치며 외쳤다. 신선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으로 흩어져 갔다.
크릉…….
석두는 말복에게로 다가갔다. 어느새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말복은 그가 다가가자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다.
“그려, 그려. 여기까지 날아오느라 고생이 참 많았네이. 너도 다음번에 염라대왕과 함께 오드라고! 알았제?”
왈! 왈왈!
말복은 알았다는 듯 몇 번 우렁차게 짖고는 구름 아래로 몸을 날렸다.
“흐흐, 참 평생 못 잊을 추억을 만드는구먼.”
석두는 씨익 웃었다. 지금까지와 달리 왠지 씁쓸해 보이는 웃음이었다.
“사람은 분수에 맞게 살아야제.”
항아리에 열심히 복숭아를 따다 넣는 신선들을 보며 중얼거리는 석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