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불량신선 1권(7화)
제3장 사람한텐 분수란 게 있는 것이여(2)


복숭아주가 익어 감에 따라 신선들도 나날이 들떠 갔다. 그것은 석두와 여섯 신선도 마찬가지였다.
“아따, 이제 이틀 남았지라?”
“그렇네, 후우. 내일이 개문이니 과연 어떤 분들이 오실지 기대되는구먼.”
협선은 벌써부터 두근거리는 모양이었다. 그는 한창 접전이 진행 중인 검선과 광선의 장기 대전을 지켜보다가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 벌떡 일어섰다.
“아우, 도끼질하러 갑세!”
“도끼질? 웬 도끼질이라요? 나무를 더 베었다간 큰일 난다고 하지 않았소!”
석두는 엉겁결에 협선에게 끌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석두로서도 은근히 반가웠던지 어느새 손에는 황금 도끼가 들려 있었다.
“걱정 말게.”
협선은 바닥에서 구름을 한 움큼 뜯어내어 주문을 외웠다. 이내 구름에서 새하얀 나무가 빽빽하게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우와! 역시 형님들의 신선술은 대단하다니께요! 난 왜 이렇게 되질 않을까나.”
석두는 그 구름 나무를 신기한 듯 만져 보았다. 심지어 촉감까지도 진짜 나무의 그것과 똑같았다.
“그나저나 형님께서 뭔 바람이 불어 도끼질을 다 하자고 하시었소? 뭐, 저야 좋지만, 헤헤.”
협선은 대답 대신 도끼를 꽈악 움켜쥐었다. 그러곤 힘차게 도끼질을 하기 시작했다. 설레는 것을 조금이라도 가라앉히기 위함이 분명했다.
“아따! 나 몰래 도끼질 좀 하셨나 보구먼! 나도 질 수 없지이!”
퍼억! 퍼억!
도끼를 휘두르기 시작한 석두. 그렇게 들뜬 분위기 속에서 선계의 하루가 흘러가고 있었다.
다음 날. 구름은 벌써부터 뭉실뭉실 피어오르고 있었다. 신선들은 하나같이 하늘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쩌어억!
“오오!”
신선들은 놀란 듯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두 개의 문이 개문되었다. 새하얀 빛이 흘러나오는 문과 붉은빛이 흘러나오는 문. 각각 천계와 명계로 연결된 것이 분명했다.
까아악!
흰빛이 뿜어 나오는 문에서 주작이 날아올랐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천제와 천계의 고관대사들이 선계에 발을 딛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명계로 통하는 문에서도 명계의 고관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크허엉!
명계의 신수인 삼두견이 먼저 선계로 솟구쳐 올랐다. 이전의 그 불에 탄 모습은 오간 데 없고 풍성한 갈기를 자랑하며 용맹한 자태를 뽐냈다.
그 뒤를 따라 검은 도복에 붉은 피부를 가진 염라대왕과 명계의 대사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천제와 염라대왕을 아뢰오!”
신선들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천제와 염라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석두가 반갑게 외치자 둘 다 대소를 터뜨렸다.
“아따, 형님들 오시었소! 이리 동시에 오시니까 정말 반갑구마이!”
“하하! 동생, 형님을 이곳으로 모신 것이 역시 동생이었구먼!”
“이런 좋은 아우들이 있으니 나도 인생을 헛살지는 않았구먼!”
천제와 염라대왕은 상당히 오랜만에 만난 듯 서로를 얼싸 안았다. 신선들은 모두 놀라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의형제 사이라곤 하나 천계와 명계를 다스리고 있는 두 왕이 이토록 허물없는 모습을 보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천계의 관리들은 하나같이 성스러운 인상이었다. 새하얀 머리 위에는 작은 상투를 멋스럽게 틀었고, 하나같이 흰 수염을 허리까지 늘어뜨리고 있었다. 명계의 관리들도 신선들의 상상보다는 험악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대부분이 도깨비나 마두 출신이었기에 머리에 뿔이 나 있거나 날카로운 송곳니가 솟아 있긴 했지만, 그들의 행동 하나하나에서 또한 기품이 넘쳤다.
천계와 명계의 관리들은 서로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지상의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두 곳의 사이가 나쁘지 않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단지 출신과 종사하는 곳의 역할이 다를 뿐, 그들 하나하나는 모두 고결한 존재임을 서로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빛과 어둠이라는 뚜렷한 특징을 가진 명계와 천계의 관리들이었기에 신체 접촉은 극히 꺼리고 있었다.
석두가 앞서 보였던 대로 그들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반발력은 더욱 컸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각 위치에서 정점에 선 자들. 천제와 염라대왕은 전혀 서로의 신체 접촉을 꺼리지 않았다.
“아따! 이리 한자리에 모이니 오죽 좋소! 이번에 오시면 푸욱 쉬다가 가시여잉!”
“하하, 내 그러지 않아도 그럴 생각이었네. 게다가 형님과는 천 년 만에 만났으니 회포를 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천제는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 말에 석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천 년이라니!
“아, 그렇지. 예전에 손오공인가 하는 녀석이 난리 칠 때 만났던 이후로는 마주친 일이 없구먼.”
둘은 석두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석두는 놀라는 기색을 보이는 대신 호탕하게 웃으며 외쳤다.
“그 이야기는 한잔씩들 하면서 이 아우에게 차근차근히 들려주시어요이! 알것지라?”
“하하! 알았네! 잔치를 시작함세!”
천제는 염라대왕의 손을 부여잡고 힘차게 외쳤다. 예정된 잔치 시작 일은 내일이었지만,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잔치는 흥겹게 시작되었다. 술을 나르는 일을 자처한 여섯 신선이 곳곳을 누비며 술을 따라 준 덕분에 술이 모자라는 일은 없었고, 천계와 명계의 고위 인사들이 만났기에 이야기도 잦아들 틈이 없었다.
게다가 또 다른 볼거리까지 신선들을 즐겁게 해 주고 있었다.
크르릉.
까아악!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본다 했던가. 지금 말복과 주작의 형태가 딱 그랬다. 말복은 호시탐탐 주작을 노리고 있었고, 이를 모를 리 없는 주작은 노련하게 말복의 공격을 피해 내며 도리어 약을 올리고 있었다.
여간해서는 보기도 어렵고, 한자리에 몰아 놓기는 더더욱 어려운 두 신수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하나의 희극이나 다름없었다.
“이것이 복숭아주의 맛이로구먼! 껄껄! 내 술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지금까지 왜 몰랐나 싶구먼! 이리 달콤하고 기분 좋은 것인데 말이야! 껄껄!”
신선주의 맛은 염라대왕까지도 반하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 염라대왕은 가뜩이나 붉은 얼굴이 더욱 붉어질 만큼 매우 흥겨워했다.
“그렇습니다, 형님! 이제 앞으론 일 년에 한 번씩 이곳에서 만나 담소라도 나눕시다.”
천제는 염라대왕에게 술을 따르며 말했다. 염라대왕은 호탕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따, 형님들께서 자주 만나신다 하니 저도 기뻐서 몸 둘 바를 모르겠구만이라. 자자, 많이들 드시어! 아직 술은 엄청나게 남아 있응게!”
“알겠네, 하하하!”
석두가 넉살 좋게 말을 토해 내며 그들에게 술을 건네자, 분위기는 한껏 흥겨워지고 있었다.
“아, 그런데 형님!”
“왜 그러는가, 아우?”
취기가 머리끝까지 올랐을 무렵, 석두가 불쑥 말을 꺼냈다. 어느새 여섯 신선도 석두의 주위에 모여 앉아 있었다.
“내가 다시 땅으로 내려가 불믄 형님들 섭섭하겠지라?”
그의 말에 신선들뿐 아니라 염라대왕과 천제까지도 펄쩍 뛰었다.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아, 당연하지 않겠나! 무료한 일상에 자네가 있어 다들 활력을 찾고 있네! 하루하루가 이리 즐거우니, 이것이 다 자네 때문이 아니겠는가!”
천제가 말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석두는 그들의 말이 너무나 고마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고마워라. 형님들, 내 형님들 덕에 사는 맛이 나요, 사는 맛이 나.”
어머니를 여의고 홀로 살아가던 석두였다. 나무를 해서 먹고살기란 결코 쉽지 않았고, 또 그를 이리 위해 주는 이도 없었기에 석두는 이들 하나하나가 무척이나 소중했다.
“허허, 아우님께서 이제야 우리의 소중함을 깨달았네그려. 자자, 마시세, 마셔!”
염라대왕은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는 석두가 기특한지 잔을 들어 올렸다. 이내 주위의 신선들까지도 잔을 들어 올렸다. 일 년에 단 하루. 이 하루만은 고하를 막론하고 하나가 될 수 있을 터였다.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쭈욱 말이다.
다음 날, 술이 깬 선계와 명계의 고관들은 모두 자신들이 데려온 신수의 등에 올라탔다. 호시탐탐 주작을 노리던 말복마저도 이때만은 엄숙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일 년 뒤에 보세, 아우.”
“내년에는 더욱 맛있는 술, 기대하겠네.”
천제와 염라대왕은 훨씬 더 돈독해진 형제애를 자랑하며 각자의 신수에 올라탔다.
이내 천계와 명계의 고관들이 하늘로, 그리고 구름 아래로 사라졌다.
“수고했네, 아우. 덕분에 또 하루 잘 놀았구먼.”
비선이 석두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평소라면 누구보다도 시끄럽게 떠들었을 석두가 아무런 말이 없질 않은가.
“형님.”
“왜 그러는가, 아우?”
여섯 신선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 진지한 모습의 석두를 본 적이 없지 않은가.
이내 고개를 돌린 석두는 여섯 신선들을 두루 둘러본 후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
“저 이제 신선 그만 할 것이어라. 지상으로 내려갈 방법을 가르쳐 주소.”

신선들은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석두가 다시 지상으로 내려가려 하는지도 모를뿐더러 그를 보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욱 강했던 것이다.
이미 그의 존재는 그들에게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만큼 정이 든 이들은 석두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석두는 단호했다.
“지는 그냥 산에서 나무나 하면서 살아야겠어라.”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하는 겐가? 혹, 선계의 생활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라도 있는가?”
비선이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하지만 석두는 그럴 리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아니어라. 내가 선계에 와서 본 것, 들은 것, 배운 것은 내 평생 해 온 그 어떤 것들보다 값진 것이여. 게다가 이리 좋은 형님들까지 모시게 되었으니, 더 소원이 없다니께요.”
“하면 왜 그런 말을 하는 겐가?”
검선이 타이르듯 물었다. 석두는 한숨을 쉬고는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사람에게는 분수가 있는 것이어라.”
석두는 신선들을 둘러보았다.
“태산에서 나무나 하던 무지렁이가 신선이 되어 부렀소. 아따, 처음엔 이게 웬 횡재인가 싶었지라. 신선이 되었다는디 누가 싫어라 하겄소.”
“허허, 그렇지.”
협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다른 신선들도 충분히 공감하는 것이었다. 자신들도 그토록 신선이 되기를 염원하지 않았던가.
“덕분에 저도 견문을 많이 넓혔어라. 배운 것도 많고. 하지만 말이지라, 사람에게는 근본이 있고 분수가 있는 것이란 말이여. 머리가 똑똑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도를 깨친 것도 아니어라. 할 줄 아는 것은 도끼질, 오로지 도끼질뿐인데 이리 한자리를 축내고 앉아 있는 것은 더 이상 견디질 못하겠구먼.”
“이보게, 동생…….”
비선이 답답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동생은 그리 생각할지 모르나 선계의, 아니 천계와 명계에서도 그리 생각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네. 자네 덕에 금주의 법이 깨졌고, 자네 덕에 도끼질을 배우지 않았나. 자네 덕에 이 선계가 얼마나 화기애애해졌냐, 이 말일세.”
신선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듯 석두를 바라보았다. 비선과 다른 신선들이 이렇게까지 이야기하자, 석두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석두도 그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석두의 결심은 생각보다 훨씬 깊은 것이었다.
“지는 그냥 나무나 패면서 살라요. 지상에 내려가서도 형님들과의 추억,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니 걱정 마시어라.”
석두가 말을 마치자,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때,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병선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런데 동생, 동생은 이미 천도복숭아를 너무 많이 먹어 지상에 내려가도 영생하게 된다네. 평생 늙지도 죽지도 않는단 말이네. 그래도 괜찮겠는가?”
“으음. 그도 그렇군. 자네가 지상에 내려간다 해서 신선이라는 근본이 바뀐 것은 아니라네. 게다가 선계에서와 달리 모든 금제가 풀리게 된다네.”
협선이 말을 덧붙였다. 금제라 함은 선계에서 신선의 힘을 일정한 수준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일종의 안전장치 같은 것이었다. 그런 것이 모두 풀리게 된 신선의 힘은 그야말로 천하무적. 무림의 어떤 고수라 할지라도 천도복숭아를 먹으며 수련한 신선보다 심후한 내공을 지닐 수는 없을 것이었다.
게다가 그 힘의 사용이 미숙한 석두였으니, 또 다른 의미로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 걱정 마시우. 지가 선술과는 연이 전혀 없는 거 형님들도 아시잖어라. 게다가 그 말은 평생 나무만 할 수 있다는 거 아니겠어라. 난 그거로도 족하우.”
석두가 이리 말하니 신선들도 더 이상 말릴 수만은 없었다. 더 이상 말해 보아야 석두의 뜻은 바뀌지 않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럼 다음 잔치 때 천제님과 염라대왕님께 말씀드려야 하지 않겠는가. 이야기도 없이 가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 일이네.”
비선이 궁여지책으로 말을 꺼냈다. 천제와 염라대왕이 다시 강림하실 때까지만이라도 석두를 붙잡아 놓으려는 생각인 듯했다. 게다가 잘하면 천제와 염라대왕이 석두를 붙잡아 둘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천제와 염라대왕의 부탁까지 거절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