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불량신선 1권(9화)
제4장 나도 나를 모르겠구먼(2)
챙그랑!
설상가상. 뒤로 물러선 탓에 무릎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던 모포가 땅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안에 숨어 있던 신력거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이, 이거?”
땅에 떨어진 도끼를 내려다본 여문아는 정신이 멍해짐을 느꼈다. 척 보아도 보통 도끼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 것을 어찌 이런 나무꾼이 가지고 있는 것일까.
한편, 석두는 아연실색해서 그녀와 도끼를 번갈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와 석두의 눈빛이 교차하는 찰나, 수많은 망설임과 생각들이 석두의 머릿속을 스쳐 갔다. 그리고 결국 석두는 결심했다.
“에, 에이잇!”
퍼어엉!
그녀가 의문이 가득 담긴 눈초리로 고개를 들었을 때, 어마어마한 뭉게구름이 사방을 뒤덮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천지를 진동하는 울음소리.
크워어어어!
뭉게구름이 가라앉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용이었다. 그 용은 움막의 지붕을 통째로 날려 버린 채 광폭한 울음을 울어 대고 있었다.
“이, 이건 대체…….”
여문아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털썩 주저앉았다. 자신이 마지막으로 본 것은 무엇인가 주문을 외듯 합장을 한 나무꾼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 엄청난 용이 코앞에 나타나지 않았는가.
크워어어!
여문아는 잔뜩 긴장한 채 뒤로 물러섰다. 어찌 된 일인지 전혀 알 수 없고 영문도 모르겠으나, 자신의 앞에 솟아 있는 것은 분명 용이었다.
크워어!
용은 당장이라도 그녀를 삼키려는 듯 울어 댔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그녀는 그제야 용을 자세히 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 용은 인형처럼 울부짖기만 하고 있을 뿐, 심지어 그녀 자신을 보고 있지도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워어어―어엉―어어엉―
그녀가 얼이 빠져 용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 용은 마지막으로 크게 한 번 울부짖었다. 그 울부짖음은 서서히 피리 소리처럼 얇아졌고, 종래에는 다시 퍼엉 하는 소리와 함께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뭐, 뭐지? 도술……?”
그녀는 망연자실한 채 중얼거렸다. 보고서도 믿을 수 없는 것이지 않은가.
“아차!”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는 깨달을 수 있었다. 나무꾼이 없다! 게다가 도끼도 들고 도망친 듯 도끼를 감싸고 있던 모포조차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역시 보통 나무꾼이 아니었어. 생긴 건…… 생긴 건 너무 평범해서 기억해 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평범한 나무꾼이 도술을 쓸 리가 없지.”
여문아는 이를 갈았다. 어쩌면, 아주 어쩌면 그 순박하게 생긴 나무꾼이 태산을 베어 버린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그럴 리가……. 내공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는걸. 게다가 그렇게 부들부들 떠는 녀석이……. 젠장, 어쨌든 도망쳤으니 문파의 문도들을 총동원해서 산동 일대를 뒤져 봐야겠군.”
여문아는 산 아래로 몸을 날렸다. 어쨌든 다른 문파의 무인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았으니 최소한의 소득은 있었기에 문파로 돌아가는 그녀의 발걸음은 올 때만큼이나 쾌속했다.
“후아―. 후아―. 어이구메. 무슨 여자가 그리 억세다냐.”
한편, 석두는 무작정 산허리를 돌아 산속으로 숨어든 후였다. 불시에 신선술을 사용해 도망쳐 나오지 않았다면 거기서 도끼를 빼앗겼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참으로 악독한 여자였다. 얼굴은 예쁘장한 편이었지만, 나무꾼이라고 무시하는 행색 하며 반말을 찍찍 내뱉는 것이 무림인들의 망신은 다 시키는구나 싶을 정도였다.
“이거 어쩔 수가 없구먼. 이대로라면 날 잡으러, 아니 이 도끼를 빼앗으러 계속 무인들이 몰려올 게 분명하니……. 방법은 하나여!”
모포에 소중히 싸인 채 자신의 손에 들린 신력거부를 내려다보던 석두는 결심한 듯 벌떡 일어섰다.
“일단 어떻게든 다시 선계로 올라가서 이 도끼를 돌려주고 와야 쓰겄구먼!”
하지만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디…… 어떻게 올라가야 되려남?”
가장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벽에 가로막혔다. 그야말로 암담함의 극치. 언제, 그리고 어디서 개문이 되는지조차도 모를뿐더러 안다 해도 그곳까지 무사히 가리라는 보장도 없었다.
“아, 그렇구먼! 가장 간단한 방법을 내가 잊고 있었네이!”
한참을 궁리하던 석두는 마침내 방법을 깨달은 듯 손바닥을 마주쳤다.
“이번에도 신선이 되려는 도사님의 다리를 붙잡고 올라가면 되는디, 어찌 그걸 몰랐을까나!”
석두다운 생각이었다. 게다가 이미 한 번 그렇게 신선이 되었던 석두였기에 그것이 두 번 다시 찾아오기 힘든 기연이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이 근처 태림에 도사님이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은디, 한번 가 봐야 되겠구먼!”
모포에 잘 만 도끼를 등에 질끈 동여맨 석두는 의기양양하게 태림(太林)으로 향했다.
태림은 대나무가 빽빽이 솟아난 숲이었다. 이곳에는 벌써 십 년째 도를 닦는 도사가 살고 있었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석두였다. 자신이 선계에 가 있는 동안 그 도사가 우화등선하였거나 죽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곳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해가 어렴풋이 떠오르기 시작하자 석두는 그 대나무 숲으로 들어섰다. 한밤에 들어서는 대나무 숲은 자칫하면 길을 잃기 쉬울 뿐만 아니라 온갖 독충들의 서식처가 되었기 때문이다.
“도사님이 어디 있을까나이. 쩝.”
석두는 출출함을 느끼며 숲으로 들어섰다. 선계에 있을 때야 천도복숭아를 하나 따 먹으면 되었다지만 지금은 그렇지도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검선이 가르쳐 준 호흡법으로 몸속의 탁기를 빼내고 있긴 했지만 하루 세 번 울리는 이 소리만큼은 방법이 없었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숲 속을 얼마나 거닐었을까. 어디선가 구수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자, 석두는 눈이 번쩍 뜨였다.
“어메. 어디서 꿩고기라도 구워 먹나 본디……. 어딜랑가. 찾아봐야겠구먼.”
이내 냄새가 풍기는 곳으로 몸을 돌린 석두였다. 석두 자신은 인지하고 있지 못했지만 석두의 오감은 짐승의 그것에 필적할 만큼 발달해 있었다. 그랬기에 석두는 그 냄새의 근원지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산발을 하고 누더기를 입은 노인이 토끼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저, 저기 노인장…….”
그 모습을 보자 절로 침이 꿀꺽 넘어갔다. 석두는 조심스럽게 그 노인장에게 다가갔다.
“어따! 오늘 아침은 둘이서 먹게 생겼구먼. 젊은 사람이 아침을 굶어서야 쓰나.”
그 노인은 석두를 보자 반갑게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가진 것이 별로 없어 보임에도 나눌 줄 아는 노인이었다.
“아따, 고마워라! 이제야 좀 살 것 같네이. 하하.”
석두는 토끼 다리를 맛나게 뜯으며 미소를 지었다. 노인은 그런 그를 보며 기분 좋게 웃다가 문득 물었다.
“그런데 자네는 이 숲에 무슨 일인가? 보아하니 나무꾼이나 심마니인 것 같은데.”
석두는 고기를 한 점 더 베어 물며 답했다.
“이 숲에 유명한 도사님이 있다 해서 찾아왔지라, 헤헤헤. 혹시 영감님은 아시어, 이 숲에 도사님이 어디에 계신지?”
그의 말에 노인은 껄껄 웃었다. 석두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노인은 한참을 웃다가 겨우 숨을 고르며 입을 열었다.
“이놈아! 네 눈앞에 앉아 있는 내가 바로 그 도사야! 껄껄!”
“뭣이여? 그 말이 진짜랑가?”
석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하지만 그 노인은 대답 대신 묵묵히 토끼 고기를 먹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석두는 의외로 빨리 찾았다는 것에 안도하며 노인 앞에 무릎을 꿇었다.
“도사님, 지가 부탁이 있어라! 꼭 들어주셔야 하는디…….”
도사는 그런 것쯤은 알고 있다는 듯 석두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곤 다시 무심하게 입에 고기를 가져가며 말했다.
“성질 급한 젊은일세. 좀 기다리게. 일단 먹을 것은 다 먹어야 부탁도 들어줄 것이 아니냐.”
두 마리의 토끼가 뼈만 남기고 깨끗하게 사라지자, 그제야 도사는 석두에게 입을 열었다.
“아, 그래, 날 찾아온 이유가 무엇인가? 보아하니 꽤 급박한 이유인 듯한데.”
석두는 불현듯 도사에게 달려들었다. 그러곤 도사의 다리를 꽈악 부여잡았다.
“어서 우화등선해 주셔라! 지 소원은 그것이여. 지금 당장 우화등선해 주십시오, 도사님!”
말을 마친 석두는 눈을 꼬옥 감았다. 금방이라도 도사가 하늘 문을 열고 날아오를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도사의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이었다.
“허허, 이 친구. 우화등선이 장난인 줄 아나? 우화등선하는 것이 그리 쉬우면 내가 십 년이 넘도록 이 숲에서 도를 닦고 있겠냔 말이네.”
“그, 그럼……?”
석두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도사를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처량해 보였던지 도사는 저도 모르게 대답하고 말았다.
“하지만 큰 문파에서 수련하는 고명한 도사들은 또 어떨지 모르지.”
“큰 문파에서 수련하는 도사들? 문파라 하심은 그…… 무림인들을 말씀하시는 거라?”
한 가닥 희망이 생긴 것인가. 석두가 눈이 휘둥그레져 되묻자 도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당파와 청성파, 그리고 곤륜파가 도사들이 모여 만들어진 문파라네.”
“그, 그럼 산동에서 가장 가까운 곳은 어디어라?”
도사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주의 깊게 들은 석두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물었다. 도사는 토끼 갈비뼈로 이빨을 쑤시며 말했다.
“무당파가 호북에 있으니, 여기서는 가장 가까울 걸세. 그런데 왜 우화등선하라 한 겐가?”
도사는 그것이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석두는 도사의 얼을 빼놓는 답을 한 후, 휘적휘적 숲 밖으로 몸을 돌렸다.
“도사님의 다리를 붙잡고 지도 따라 올라가려고 했지라. 그럼 열심히 도를 닦으시어! 선계는 또 충분히 좋은 곳이니께!”
석두는 조심스럽게 움막으로 돌아왔다. 다행히도 저번에 만났던 그 여인은 없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었기에 석두는 움막 안에서 몇 가지 간단한 채비만을 한 채 산 아래로 발길을 돌렸다.
가장 중요한 것은 먹을 것을 해결하기 위한 약간의 금전. 선계에 오르기 전에 모아 놨던 돈이 조금 있었기에 당분간 먹을 걱정과 잘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이 도끼를 수상하지 않게 보일 수 있을까나.”
모포로 둘둘 만 도끼를 등에 메고 다니는 것은 누가 봐도 수상해 보일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떡하니 허리춤에 차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 아니던가.
궁여지책으로 집에 있던 멧돼지 가죽을 도끼날에 잘 덮어 씌웠다. 그러니 손잡이가 새까만 망치 같은 우스꽝스런 모양이 되어 버렸지만, 적어도 도끼의 황금빛은 감출 수 있었기에 석두는 그것을 허리춤에 잘 매 두었다.
“그런데 호북으로 가려면 어디로 가야 되려남? 아따, 이거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걸려 있으니 간수하기가 참으로 어렵구먼.”
답답한 듯 한숨을 쉬며 제남으로 향하는 석두였다. 혹, 호북으로 떠나는 여행객 무리가 있으면 섞여 가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