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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신선 1권(10화)
제4장 나도 나를 모르겠구먼(3)
산동의 성도 제남. 위로는 황하가 흐르고 아래로는 태산이 있어 그야말로 천연 절경을 지닌 도시였다.
그리고 그런 만큼 사람들도 아주 많았다.
석두는 눈이 휘둥그레질 수밖에 없었다. 별천지도 이런 별천지가 없었다. 건물마다 들어선 음식점에선 온갖 맛있는 음식 냄새가 풍겨 나오고 있었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그 사이에 뒤엉켜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유달리 눈에 들어오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갈색 도복을 입은 무림인들이었다.
‘그때 그 여자도 갈색 도복을 입고 있었구먼. 날 쫓아온 것인가?’
석두는 저 무림인들과는 절대 마주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여차하면 신선술로 눈을 속이고 도망치면 된다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 그리했다간 어떤 소문이 퍼질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울려 퍼지자 석두는 자신의 배를 바라보았다. 이놈의 배꼽시계는 한시도 틀린 적이 없었다.
“우선은 뭘 좀 먹어야겠구먼.”
무림인들에 대한 고민은 금세 잊고 어떤 음식을 먹을까 행복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 석두였다.
그 무렵, 석두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지만 제남에서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여문아의 보고 때문이었다. 곧장 종남으로 돌아온 여문아는 장문인을 찾았다. 여문아의 보고는 이랬다.
“태산을 베어 버린 절대고수는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삼신기 중 하나로 보이는 도끼를 지닌 나무꾼은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종남의 장문인 태을검(太乙劍) 우무학은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나무꾼이? 어째서 나무꾼이 그런 신기를 가지고 있단 말인가?”
“그것은 저로서도 알 수 없었습니다.”
여문아가 낭패스럽다는 듯 대답하자 우무학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렇다면 어찌 빼앗아 오지 못한 것인가? 평범한 나무꾼이라면 그저 무력을 조금 행사하는 정도로도 충분히 신기를 가져올 수 있었을 텐데?”
여문아는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눈을 빛내며 답했다.
“그 나무꾼은 확실히 그 절대고수와 무엇인가 연관이 있는 듯했습니다. 제가 도끼를 빼앗으려 하자, 그 나무꾼은 도술을 부려 달아나 버렸습니다.”
“도술이라?”
여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용이 나타났던 것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하게 늘어놓았다.
“흐음. 알 수 없는 노릇이군. 어쨌든 제자들을 데리고 산동으로 가게. 태산 주위의 크고 작은 마을에 모두 감시를 서게 하고.”
“알겠습니다.”
여문아의 눈에는 이번에는 기필코 그 신기를 탈취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어쩌면 그것은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절대적인 무기에 대한 열망인지도 몰랐다.
종남파의 무인들이 산동으로 모이기 시작하자, 무언가 냄새를 맡은 다른 문파의 무인들도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제남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을 품에 안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었다.
물론 그런 이야기들은 이 순박한 나무꾼에게 전혀 관계없는 것들이었지만 말이다.
“흐흐. 역시 도시의 음식이 맛있구먼.”
석두가 고심 끝에 고른 음식은 왕만두였다. 가격도 그렇거니와 새하얀 연기를 무럭무럭 뿜어내는 만두는 석두의 식욕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석두가 들어와 있는 모강객잔(母江客盞)의 한구석에는 화산파의 무인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석두를 안중에 두고 있지도 않았다. 그들의 주목적은 종남파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내는 것이었다.
“꺼어―. 잘 먹었구먼!”
석두는 동산처럼 부풀어 오른 배를 어루만지며 객잔 밖으로 나왔다. 하지만 이내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만치에서 객잔을 향해 걸어오는 이들은 그 갈색 도복의 무인들이 아닌가.
“후, 후딱 도망쳐야겠구먼!”
석두는 잽싸게 고개를 돌려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뒤를 너무 의식했던 탓인지 채 몇 걸음을 걷기도 전에 마주 오던 사람과 부딪치고 말았다.
“꺄악!”
“어메! 죄송해라! 괜찮아라?”
그와 부딪친 사람은 가녀린 여인이었다. 석두는 깜짝 놀라 여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여인은 괜찮다는 듯 툭툭 털며 일어섰다.
“허미, 이거 죄송해서 어쩐다냐. 괜찮어라?”
석두는 미안해 죽겠다는 듯 그 여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다음부턴 조심하시……. 어? 당신?”
선심 쓰듯 말하며 고개를 들던 여인은 깜짝 놀란 듯 석두를 바라보았다.
놀라기는 석두도 마찬가지였다. 재수가 없어도 이리 없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와 부딪쳐 넘어졌던 여인은 바로 여문아. 서로가 서로를 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
“너, 너!”
여문아는 크게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석두는 심장이 멈출 만큼 놀라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쏜살같이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쪼, 쫓아! 저 녀석이다!”
이내 뒤에서 여문아의 외침이 들려왔다.
쫓고 쫓기는 자의 필사적인 질주가 시작되었다. 석두는 복잡한 도시의 골목길을 뛰고, 또 뛰었다.
“허메! 저것들은 지치지도 않는가!”
난감한 노릇이었다. 석두가 아무리 뛰고 또 뛰어도 무림인들은 거침없이 그의 뒤를 따라왔다. 더군다나 그 간격이 조금씩 좁혀지고 있지 않은가.
게다가 그 갈색 도복의 무인들은 앞을 가로막는 것들을 모조리 밀쳐 내며 달렸기에 도시는 난장판으로 변해 버렸다.
“잡아라! 잡아!”
한편, 여문아는 가장 앞에서 석두를 쫓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발 빠름은 사람이 북적이는 도심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멈추시오!”
그때, 전혀 예상치 못한 구원군이 나타났다. 붉은 도복의 무인들. 바로 화산파였다.
“이게 무슨 짓이오! 아무리 종남파의 제자 분들이라곤 하나 도시를 이리 어지럽혀도 되는 것이오!”
여문아는 자신들의 길을 막은 화산파 문도들을 이를 뿌득 갈며 노려보았다. 어느새 그 나무꾼의 모습이 인파 사이로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젠장…….”
다 잡은 물고기를 놓쳤을 때의 기분이 이런 것일까. 화산의 무인들은 비웃음을 가득 머금으며 말했다.
“아까 그 나무꾼이 신기에 대한 중요한 단서라도 가지고 있는 모양이지요?”
‘젠장, 능구렁이 같은 자식들…….’
여문아는 그제야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화산파 무인들이 그 나무꾼을 도와주기 위해 자신들의 앞을 막은 것이 아님을 말이다.
그들은 단지 종남파가 조금의 단서라도 잡는 것을 막고 싶을 뿐인 듯했다. 더 나아가 자신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캐내고 싶어 한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소란을 피워서 죄송하군요.”
여기까지 와서 물러서는 것은 분했지만 여문아로서도 다른 문파가 그 정보를 알게 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를 갈면서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흥, 별다른 이유도 없이 도시를 난장판으로 만들다니. 종남도 별수 없는 집단이로군.”
화산 무인들 중에서 가장 서열이 높아 보이는 사내가 비웃으며 돌아섰다. 여문아는 이를 뿌득 갈며 고개를 들었다. 자신이 비웃음을 당하는 것은 상관없다. 하지만 종남파를 비웃는 것만은 그녀로서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런 집단의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며 뒷덜미를 잡는 화산도 별수 없는 집단이로군요.”
그녀는 조소를 가득 담은 채 말하고는 돌아섰다. 그리고 역시나 뒤통수로 따끔거리는 살기가 느껴졌다.
“방금 그 말, 다시 한 번 해 보시지.”
여문아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렸다. 종남의 다른 무인들도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은근히 이런 상황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듯했다.
사람이 북적이는 도시 한복판에서 두 무인 집단이 일촉즉발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석두는 붉은 도복의 무인들 덕에 간신히 한숨 돌릴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뭣들 하는 짓이랑가?”
석두는 어이없다는 듯 무인들을 바라보았다. 도심 한복판에서 칼부림을 하려 하지 않는가. 바로 옆에는 먹음직스런 음식들이 놓여 있고, 또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 한복판에서 말이다.
그들 근처의 음식점들은 행여나 불똥이 튈까 음식이며 가재도구들을 안으로 부산히 나르고 있었고, 시민들도 어느새 무인들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두려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여. 무림인들이란 게 다 이런 사람들뿐인 거라?”
석두는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상상했던 무림인들과 판이하게 다르지 않은가. 분명 선계에서 듣기로도 무인들은 무를 숭배하고 협을 목숨처럼 생각하며, 평화와 질서 확립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라 했다.
하지만 이들의 행실 하나하나는 무엇인가. 시정잡배와 다를 것이 없잖은가.
이쯤 되자 슬슬 화가 나기 시작한 석두였다. 착하고 순한 사람일수록 화가 나면 무섭다는 것을 몸소 보여 주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번 해보겠다는 거요?”
“종남으로의 도전이오?”
화산의 무인들이 검을 뽑아 들었다. 종남의 무인들도 기다렸다는 듯 검을 뽑아 들었다.
그러자 시민들 사이에서 파란이 일었다. 무인들의 싸움에 자칫 잘못 불똥이 튀어 죽게 되더라도 하소연할 곳이 없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죽기 싫으면 알아서 피해야만 했다.
“너희 종남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으나 너희들이 꾸미고 있는 짓이 떳떳하지는 못할 것인즉! 우리 화산의 이름으로 네놈들이 꾸미는 짓을 밝혀내고야 말겠다!”
화산에서 서열이 가장 높은 이가 외쳤다. 붉은 도복에 매화가 수놓아져 있는 것을 보니, 그 유명한 매화검수임에 틀림이 없었다.
“흥! 남의 뒤나 캐고 다니면서 떳떳한 척하는 네놈들만 하겠느냐!”
여문아는 코웃음을 치며 외쳤다. 이내 무인들 사이에서 살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매화검수는 그 와중에도 씨익 웃으며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흐아압!”
그 다음 순간, 여문아가 기합과 함께 앞으로 달려 나갔다. 시민들은 곧 피 튀기는 싸움이 일어나리라 생각하며 잔뜩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울려 퍼진 것은 검과 검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아니라 우렁찬 고함 소리였다.
“아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거리여!”
시민들의 시선이 고함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일제히 모여들었다. 무인들도 검을 휘두르려다가 크게 기우뚱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네, 네 녀석……?”
시민들이 갈라져 나가고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로 석두. 여문아는 당황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석두는 씩씩대며 앞으로 나섰다. 그 기세가 어찌나 당당하고 흉포했던지 그 어리벙벙해 보이던 나무꾼이 맞나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내가 듣기로 말이제, 무를 수련하는 사람들은 협과 의를 중시해야 한다 했제!”
석두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자신도 모르게 협선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입으로 술술 흘러나왔다.
“그런데 이게 뭐여! 너거들이 깡패여? 지금 길 한복판에서 남의 가게 장사하는 데 그 앞에서, 어? 애덜도 빤히 보고 있는데 이게 지금 뭣들 하는 짓이냐, 이거여! 너거는 부모도 없냐?”
하나부터 열까지 틀린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무인들을 옹호하는 자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무공에 대한 꿈을 키운다지만 그럴 리 없는 것이다.
그 어린아이들이 살이 베이고 피가 튀기고, 서로의 흠집을 잡으려 하는 것들을 보며 무인들을 동경할 리 없지 않은가.
“이, 이…….”
매화검수는 무어라 반격할 말을 찾으려는 듯했지만 석두의 말에 틀린 것이 없었기에 앞으로 나설 방도가 없었다.
“아, 그뿐만이 아니여. 사람을 초면에 봤으면 존댓말을 써야제. 생판 처음 보고 나이도 내가 더 많아 보이는데 놈은 뭐고 녀석은 뭐여? 집에서 그따위로 배워먹었남?”
여문아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게다가 어느새 시민들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고 있었다. 무인들을 보며 수군거리는 것을 보니, 결코 좋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는 않을 법했다.
“이런 것들을 무림인이라고, 제자라고 키우는 문파는 도대체 무슨 정신머리를 가진 겨? 그따위 정신머리로 살아서는 평생 고수 소리는 들어도 사람 소리는 못 들을 것이다, 이놈들아!”
“뭐야?!”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매화검수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석두를 노려보며 외쳤다.
“그러는 네놈은 누구기에 종남의 무인들에게 쫓겼단 말인가! 네놈이 뭐 태산을 베어 버린 범인이라도 된단 말이냐!”
적반하장도 유분수라 했던가. 잘못을 꾸짖는데 오히려 자신에게 화를 내는 매화검수를 보자 석두는 속에 쌓여 있던 것이 울컥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아, 그려! 내가 베었다! 됐냐, 이 싸가지 없는 놈아!”
그의 외침이 산동의 성도 제남을 가득 울렸다. 석두가 두고두고 후회할 한마디였다.
그의 한마디에 좌중은 침묵했다. 무인들도 얼빠진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긴 마찬가지였다.
“거, 거짓말하지 마라! 네놈이 무슨 힘이 있어 태산을 벨 수 있단 말이냐!”
하지만 여문아는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쏘아 댔다. 그러자 석두가 눈을 부라리며 그녀를 노려보았다.
평소의 착한 모습은 어디로 갔던가. 지금 석두의 모습은 수라 나찰이라 해도 믿을 만큼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게다가 천도복숭아와 감천수를 먹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내공이 증진되었고 혈맥이 뚫렸기에 어마어마한 기운이 그의 몸에서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또, 또 반말 하제이. 정말 이것들이 여기서 경을 치려고 하는구먼! 어라, 이래도 칼을 안 치우네이? 당장 그 칼 치워라이! 싸울 거면 도심 밖으로 나가서 너거덜끼리 싸우란 말이여!”
당장 검을 치우지 않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인들은 식은땀을 흘리며 검을 거두었다. 석두는 그제야 마음에 든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암! 잘한 것이제! 그래야제!”
무인들은 그 기세에 눌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것은 석두였다.
‘아, 아따. 내가 무슨 말을 해 버린 거다냐.’
자신도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라 나서긴 했는데 조금씩 이성이 되돌아오자 크게 후회가 되고 있었다. 게다가 여전히 모두들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아, 그럼 난 이제 갈 테니께 따라오지 말그라이!”
석두는 그렇게 엄포를 놓고는 돌아서서 시민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그렇게 무인들에게서 빠져나온 석두는 꽁지가 빠져라 뛰기 시작했다. 지금은 저 녀석들이 잔뜩 굳어 있지만, 곧 자신을 쫓아오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한편, 여문아와 매화검수는 서로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 가만…….”
여문아는 머리에 돌을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그때 그 도끼가 어마어마한 힘을 지니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분명 저 나무꾼은 그 도끼의 힘을 모른 채 엉겁결에 태산을 잘라 냈고, 또 그 덕분에 도술을 부릴 수 있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신물은 가지고만 있어도 특별한 능력이 생겨난다 했으니, 그리 생각하면 모든 아귀가 들어맞았다.
“그 말은 곧…… 저 녀석만 처리하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쏜살같이 달리기 시작했다. 그 나무꾼의 기세에 잠시라도 눌려 있었던 자신을 탓하기라도 하듯 말이다.
석두는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그 악녀가 자신의 뒤에까지 따라붙었지 않은가.
“거기 서라, 이놈!”
“아따! 끝까지 반말하네이! 내가 너보다 나이 많거던! 그러니까 그만 쫓아오고 가서 어른한테 말하는 법이나 더 배워 오그라이!”
이쯤 되자 석두도 어쩔 수 없었다. 어떻게 해야 상대를 따돌릴까 하는 생각을 하는 대신 이왕 시작한 훈계 끝까지 해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사실 그가 머리를 쓴다 해도 그녀가 그의 계책에 속을 리도 없는 것이었다.
여문아는 어느새 석두의 바로 뒤에까지 따라와 있었다. 손을 뻗으면 금방이라도 붙잡힐 것만 같았다.
“에, 에라이! 다 나와라!”
이쯤 되자 석두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어설픈 신선술이나마 부려서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했다. 도끼를 빼앗겨선 안 되지 않는가. 더구나 이런 소인배들에게.
퍼엉! 퍼엉! 퍼엉!
크워어!
꾸에에!
이내 사방의 땅에서 온갖 동물들이 치솟았다. 돼지며 말, 곰, 심지어 사슴까지.
땅 위로 솟아오른 짐승들은 그대로 석두를 등에 집어 태웠다. 그러곤 날아오르듯 성벽을 넘어 단숨에 달아나 버렸다.
“도, 도대체…… 저 녀석은 신선이라도 되는 것인가.”
또다시 다 잡았다 생각한 순간, 그를 놓쳐 버린 여문아는 허탈한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