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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신선 1권(11화)
제5장 도사님, 제발 날아 주셔라!(1)


소문의 중심은 제남이었다. 태산을 베어 버린 이가 흰 옷을 입은 젊은 사내라는 소문은 무림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갔다. 소문이라는 것이 부풀려지게 마련이어서, 종남과 화산의 무인들을 꾸중했다는 소문이 종남과 화산의 무인들을 단번에 꺼꾸러뜨렸다는 소문으로 변했고, 이내 그 소문조차 더욱더 부풀려지고 있었다.
“들었남? 태산을 벤 사나이 이야기 말이야. 내가 듣기로 의협심이 대단해서 굶주린 백성들이 핍박당하는 꼴을 못 보고 넘어간다는구먼!”
“내가 듣기론 키가 팔 척에 눈은 불꽃처럼 부리부리하게 타오르고, 마치 독불장군 같다 하던걸.”
열이면 아홉,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그 태산인의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런 실정이니, 각 문파들은 큰 혼란에 빠져들었다. 특히 종남파와 화산파는 그 상황이 더욱 그랬다.
“아니,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약관 정도의 나이에 태산을 벤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그것이 저도 의문입니다. 게다가 그 사내에게서는 아무런 내공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화를 낼 때 그 살기만큼은 어마어마했습니다.”
여문아는 자신이야말로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말했다. 우무학은 자신의 수염을 거칠게 쓰다듬다가 말했다.
“그렇다면 그 나이에 반박귀진의 단계에까지 올랐다는 말인가! 아니, 환골탈태를 했다 해도 그런 신물을 가지고 있는 이라면 우리가 모를 리 없지 않은가!”
“저희도 백방으로 알아보고는 있습니다만 도무지 그의 정체에 대해서 알아낼 수가 없습니다.”
“알았으니 어떻게든 종남까지 들이도록 하게! 마두는 아닌 것 같으니 말로 잘 구슬려 보란 말일세!”
장문인의 다그침에 식은땀을 흘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를 뿌득 가는 여문아였다.

석두는 그저 묵묵히 호북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루라도 빨리 이 도끼를 선계에 가져다주고 나면 이 일련의 소동도 더 이상 일어나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찰거머리 같은 것들이 그만 좀 쫓아왔음 좋겠는데 말이여.”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간담이 서늘해지는 석두였다. 그때 자신이 무슨 생각에서 앞으로 나섰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도대체 무림인들 앞에서 그런 말을 어떻게 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였다.
“그나저나 슬슬 배가 고파 오는디 마을은 언제 나타날랑가. 슬슬 나타날 때가 된 것 같은디.”
석두는 또다시 울리기 시작한 배꼽시계에 발길을 재촉했다. 다행히도 마을이 나타났다. 장청이라 불리는 마을. 산동에서 하남으로 통하는 길목에 있었기에 나름대로 숙박과 편의 시설이 발달한 마을이었다.
“어따, 좋구먼!”
석두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객잔 한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이내 소면과 만두를 맛나게 먹은 석두. 허기가 좀 가시자 그제야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가 귀에 또렷이 들려왔다.
“아, 글쎄 들리는 말로는 신선이래요, 신선.”
“아, 그래. 들짐승들이 등에 이고 날아갔다지 않나!”
‘어메. 이거 내 이야기 아녀?’
자신의 이야기임에 분명했다. 새삼 소문의 무서움을 깨달을 수 있었다. 게다가 자신이 신선임을 어떻게 알게 되었단 말인가!
“아녀. 신선은 아니고, 알고 보면 그 태산인을 움직이는 건 그 도끼래요, 도끼.”
“뭐여? 그럼 그 도끼가 마물이라는 것이구먼. 쯔쯧, 하여간 무림인들은 그런 것이 나타났다 하면 혈안이 되어서…….”
석두는 자신의 허리춤에 잘 매여 있는 도끼를 내려 보았다. 얼핏 봐서는 가죽으로 둘둘 말아 놓은 망치 같아 보였지만, 분명 그 신력거부임에 틀림이 없었다.
게다가 이 녀석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써 달라고 울어 대고 있었다. 그 울림은 시도 때도 없는 것이어서 석두로서도 난감할 따름이었다.
‘이거 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구먼.’
“저, 손님?”
“허걱! 왜, 왜 그러십니까?”
잠시 상념에 빠진 사이 점소이가 그에게로 다가왔다. 점소이는 화들짝 놀라 자신을 바라보는 석두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말했다.
“요즘 그 태산인에 대한 소문이 돌고 있는 것 아십니까?”
“태산인?”
석두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되물었다. 왠지 자신이 연관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했지만 말이다.
“아, 모르시는군요! 그럼 다행입니다. 사실 손님이 들어오실 때부터 유심히 보고 있었는데 세상 물정에 어두워 보이셔서 제가 살짝 이야기해 드릴까 했거든요.”
꽤 오랜 시간 동안 객잔에서 일해 온 점소이가 분명했다. 눈썰미만으로 사람의 특성을 감별해 내고, 이야기를 해 주러 왔지 않는가.
물론 그 이야기의 대가는 약간의 금전이겠지만 말이다.
점소이는 석두의 반대편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로 태산을 베어 버린 태산인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석두의 얼굴은 조금씩 사색이 되어 갔다.
점소이의 이야기인즉슨 이런 것이었다. 팔척장신에 기골이 장대한 태산인은 그 생김새가 장군감이요, 또 온갖 산짐승들의 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들고 다니는 도끼는 어마어마한 힘을 지닌 것이어서 태산 정상을 일거에 베어 버렸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하늘과 땅의 이치를 깨달은 신선. 그러니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석두는 얼이 빠진 채 점소이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점소이는 그의 표정이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놀란 것이라 생각했는지 씨익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에 들어와 잠자리에 들면서도 석두는 멍한 기분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이제 밖에 나다니는 것도 조심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막연한 불안함이 들었다.
“에라, 뭐 있남.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야제.”
하지만 거기까지가 한계였던 듯 이내 잠을 청하는 석두였다.
다음 날, 석두는 새벽 일찍부터 도시를 나섰다. 혹여 있을지 모를 사람들의 주목을 의식한 탓이었다.
사실 그 소문은 오히려 석두에게 큰 도움을 주는 것이었다. 소문의 내용과 석두 본인의 모습은 꽤나 큰 차이가 있지 않은가. 그 누가 보아도 석두는 단순한 무지렁이 나무꾼에 불과할 것이었다.
한나절 내내 길을 걸으면서 석두는 깊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이 도끼를 그 무인들에게 넘겨줘 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아녀. 그런 잡배들이 따라붙을 정도면 이게 굉장하긴 한 거여. 잘못하다간 백성들만 피해를 입을 테니 딴생각 말아야겠지라.’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자신이 본 무림인들이라면 분명 옳지 않은 일에 이 힘을 쓸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날이 금세 어두워졌다. 한나절 내내 걸어도 마을이 나오지 않았기에 석두는 별수 없이 길 한쪽에 짐을 풀 수밖에 없었다.
나무가 가득한 숲이었기에 왠지 무섭기도 했다. 들짐승을 만날 수도 있는 노릇이지 않은가.
“에이, 설마 이런 숲에 호랑이라도 있겄어?”
석두는 말도 안 된다며 피식 웃고는 불을 피웠다. 호랑이는 산에 산다. 이런 곳에는 기껏 해 봐야 늑대 몇 마리뿐일 터였다. 그 정도는 자신의 신선술로 어찌해 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으르릉.
하지만 어디에서나 예외는 있었다.
곧 여기저기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석두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게다가 가끔 보이는 그림자는 늑대라 하기엔 너무 컸다.
“호, 호랑이여?”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주위를 돌기 시작한 것이 호랑이임을 깨닫자 석두는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한 마리가 아니었다. 어째서 호랑이가 무리를 지어 다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놈들이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점이었다.
크허엉!
“아이고메! 내, 내는 맛이 없응께 그냥 가그라!”
이내 싯누런 호랑이들이 풀숲에서 튀어나왔다. 세 마리의 거대한 호랑이. 그 호랑이들은 석두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듯 세 방향에서 동시에 달려들었다.
“으아악!”
석두는 비명을 지르며 땅바닥에 벌렁 누웠다. 순간 살면서 일어났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것, 나무를 패던 것, 신선이 된 것……. 이것이 사람이 죽을 때 본다던 주마등이 아닌가 싶었다.
할짝!
이상한 일이었다. 호랑이들이 자신의 육신을 갈가리 찢어 놓아도 벌써 여러 번 찢어 놓았을 시간인데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석두는 자신의 얼굴을 차가운 것들이 문지르기 시작하자,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아, 아이고메!”
눈을 뜬 석두는 다시 기절할 듯 놀라고 말았다. 눈앞에 호랑이들의 머리통이 다가와 있었던 것이다.
‘뭐, 뭐여. 먹을 거면 빨리 먹든가. 왜 침만 묻히는 겨!’
다시 눈을 감은 석두는 자신의 얼굴을 핥고 있는 호랑이들의 행동에 의문을 느끼면서도 차마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 얼핏 들은 말로는 곰은 사람이 죽은 척을 하면 그냥 지나간다는데, 호랑이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헤엑― 헤엑!
하지만 호랑이들의 반응은 정말 이상했다. 마치 자신들이 키우는 개라도 된 양 애교 부리듯 그의 귀에 바람을 불어넣는가 하면 연신 얼굴과 목을 할짝거리고 있지 않은가.
“어, 어메…….”
결국 석두는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그제야 호랑이들과 제대로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그르릉…….
호랑이들은 그가 눈을 뜨자 반가워 죽겠다는 듯 머리를 맞대었다. 녀석들의 눈에는 살기가 없었다.
“뭐, 뭐여, 너거덜. 키워진 것들이었냐.”
그것에 용기를 얻어 벌떡 일어난 석두. 석두는 곧 호랑이들의 꼬리에 매인 붉은 고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어쩐지 호랑이들이 무리를 지어 다닐 리가 없다 했제. 어이구, 간지럽다이! 얼굴에 침 봐라, 이거.”
호랑이들은 꼬리를 축 늘어뜨리고 석두에게 달려들었다. 석두를 자신들의 친구, 혹은 자신들의 주인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쯤 되자 석두도 슬슬 긴장감이 풀어지고 있었다. 어쩐지 귀여운 구석이 있는 녀석들이지 않은가.
“너거 주인은 뭐 하느라 너거를 이리 풀어놨다냐. 그래, 이리 와, 이리 와! 그려, 하하핫!”
녀석들의 주인이 누구이건 밤을 함께 보낼 친구를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즐거워진 석두였다.

“아이 참. 이 녀석들이 어딜 갔지?”
한밤의 숲에서 짐승들을 찾아낸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관리하던 호랑이들이 사라졌기에 제갈예지는 열심히 숲을 뒤지고 있었다.
“녀석들이 여행객이라도 덮치면 큰일인데…….”
제갈예지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주인 이외에는 충성하지 않는 호랑이들이었기에 사람을 습격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제갈세가는 본래 태산에 자리를 잡고 살았다. 하지만 태산이 잘려 나가면서 무너져 내린 조각들이 세가의 건물을 박살 내 놓았기에 지금은 근처인 태안으로 임시 거처를 세워 생활하고 있었다.
그 태산을 자른 의문의 태산인에 대한 제갈세가 사람들의 분노는 대단했다.
천 년이 넘게 태산 자락을 지켜 오며 태산에 자리를 잡은 유일한 세가로서의 긍지를 가지고 살아왔는데 그것이 단번에 무너져 내렸지 않은가.
그렇기에 그들은 누구보다 먼저 그 태산인을 찾아 자신들의 손으로 처단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다.
본래 제갈세가는 기문진법에 능하다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또 하나 능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조련술이었다.
“오늘 밤 내로 찾지 못하면 오라버니에게 혼날 텐데…….”
그녀의 오빠인 제갈위류는 상당히 엄격했다. 게다가 가주의 직계 자손들만 호랑이를 조련하는 것이 허락되었기에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 벌은 더 클 것이 분명했다.
크르릉.
그때, 그녀의 귀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세 호랑이 중 하나인 적호의 으르렁거림이었다.
“저기 있구나!”
그녀는 신이나 발길을 옮겼다. 이내 자신의 세 호랑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하지만 그 호랑이들에게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안색은 급격하게 나빠졌다.
“설마…….”
호랑이들의 아래에 한 사람이 깔려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 호랑이들은 그 사람을 가지고 장난을 치기라도 하듯 마구 날뛰어 대고 있었다.
“큰일이다! 사람을 죽여선 안 되는데……!”
사색이 되어 호랑이들에게 달려드는 제갈예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