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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신선 1권(12화)
제5장 도사님, 제발 날아 주셔라!(2)


“간지러워, 이놈아.”
산의 왕, 호랑이. 하지만 석두와 한데 어울려 장난을 치고 있는 이 호랑이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녀석들과 놀면서 깨닫게 된 것인데, 이 녀석들은 석두를 마치 우두머리를 대하듯 하고 있었다. 어찌 된 노릇인지는 석두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막연히 자신이 신선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혹은 조련이 잘되어 있거나.
가르릉.
그는 땅에 등을 대고 철퍼덕 누웠다. 대자로 몸을 펴고 누운 석두의 위로 세 마리의 호랑이가 각자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 녀석은 자신의 배 위에, 두 녀석은 자신의 양팔 위에 말이다.
“산적이 나타나도 무섭진 않겄네그려. 클클.”
중얼거리던 석두의 숨소리가 점점 잦아들었다. 하지만 석두는 이내 화들짝 놀라 깰 수밖에 없었다.
“그만둬!”
앙칼진 여성의 목소리. 이내 발소리가 자신에게로 가까워졌다.
“으음? 뭔 일이여?”
석두는 눈을 비비며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에는 푸른 도복을 입은 소녀가 서 있었다.
아담한 소녀였다. 볼에는 아직 젖살이 빠지지 않았고, 도톰한 입술과 큰 눈은 묘하게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그 소녀는 벌떡 일어난 석두를 보며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주, 죽은 게 아니었군요?”
제갈예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적호, 풍호, 광호. 세 마리의 호랑이는 먹이를 주는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사나운 녀석들이었던 것이다. 심지어 이렇게 별 힘도 없어 보이는 사내가 호랑이들에게 물려 죽지 않았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이었다.
“앙? 아따, 요 녀석들의 주인이셨구마이! 호랑이를 키우면 간수를 잘하셔야제! 그러다가 길 가는 사람 덮치기라도 하면 어쩔라고 그라요? 하긴 요 녀석들은 전혀 안 그럴 것 같지만.”
석두는 말을 하면서 적호의 목을 와락 끌어안았다. 그 모습에 제갈예지는 더욱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저런 것은 주인인 자신으로서도 할 수 없는 행동이 아닌가! 호랑이의 목을 끌어안다니! 그야말로 단박에 물려 죽어도 시원찮을 행동이었다.
더 기가 찬 것은 적호의 행동이었다. 적호는 그가 껴안자 마치 애교라도 부리듯 눈을 감으며 그에게로 풀썩 쓰러지지 않는가!
‘내공을 숨긴 고수다!’
이내 그녀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눈앞의 사내에게서 내공을 느낄 수 없는 것은 분명 자신의 눈이 너무 낮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산의 왕, 맹수의 왕인 호랑이가 길들여진 개처럼 아양을 떨 리가 없지 않은가!
“죄, 죄송합니다.”
그녀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이런 고수라면 결코 밉보여선 안 되는 것이었다. 강호란 곳은 언제 어디서 적으로 마주 대할지 모르는 곳이니, 만나는 이들과는 무조건 좋은 관계를 쌓아야 한다고 배워 왔다.
“아, 아따! 뭘 죄송하요! 요 녀석들 덕에 무섭지 않게 밤을 보낼 수 있었구먼. 뭐, 처음엔 조금 놀라긴 했지라! 하하!”
석두는 별거로 다 사과를 받는다는 듯 뒷목을 긁적이며 말했다. 제갈예지는 이 의문의 고수가 화를 내지 않자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 혹시 괜찮으시다면 저희 거처로 가시겠습니까?”
“거처?”
제갈예지가 공손하게 묻자, 석두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제갈예지는 다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제가 관리를 잘못하여 대인을 귀찮게 하였으니, 하룻밤 대접이라도 하지 않으면 제갈가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저희 거처로 가시지요.”
“허어―.”
석두는 고맙기도 하고 난처하기도 했다. 물론 호랑이 때문에 크게 놀라긴 했지만, 뭐 심심하지 않게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던 것이다.
하지만 제갈예지가 부득불 우기는데 바로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 뭐 그리 말씀하시는데 거절할 순 없지라. 가십시다.”
“예. 대인을 저희 세가로 모실 수 있게 되어 영광입니다.”
제갈예지는 의문의 고수가 자신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자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잘하면 오라버니들에게 혼나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 터였다. 게다가 무공의 수위를 알 수 없는 고수임에 분명한 이 사내. 어딘가 얼빠져 보이긴 했지만 그 태산인에 대한 정보를 캐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들었다.
이런 고수가 산동의 산 구석에서 잠을 청할 이유는 지금으로선 단 하나, 태산인을 쫓고 있음이 분명하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태안은 태산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까닭에 산을 타는 이들이 주로 찾는 중소 규모의 마을이었다.
제갈세가는 마을의 바로 옆에 천막을 치고 생활하고 있었다. 다른 무림인들이라면 주민들을 몰아내고 마을을 차지했을 것이기에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저…….”
석두는 제갈예지에게 말도 잘 걸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제갈세가라는 무림 세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직도 석두에게 무림인은 자신 같은 일반인들이 범접하기 힘든 존재라고 인식되어 있었다.
제갈예지는 석두가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자 또 나름대로 긴장하고 있었다. 저 의문의 사내가 자신의 무례에 사실은 꽤 화가 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런데 정말 무림 고수가 맞긴 한 걸까?’
석두를 힐끗힐끗 살피던 제갈예지에게 문득 든 생각은 그것이었다. 고수라 하기엔 너무나 평범한 외모였고, 눈빛에서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아까부터 왠지 긴장한 표정을 하고 있지 않은가.
‘절정의 고수들은 자신을 완벽히 숨길 수 있다고 했어. 분명 그런 것일 거야.’
하지만 이내 의심을 걷어 낸 제갈예지였다. 이 호랑이들은 보통 호랑이가 아니지 않은가. 태산비호라 불리는 특별한 혈통의 호랑이. 일류고수라 할지라도 이 호랑이 셋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 않았던가.
그런 호랑이들을 애완동물 다루듯 하였으니 범상치 않은 인물일 것임에는 분명했다.
“그럼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곧 모시러 나오겠습니다.”
“아, 그, 그러셔라.”
막사 앞에 도착한 제갈예지는 공손히 말했다. 석두가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이자, 제갈예지는 막사 안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호랑이들이 제갈예지를 따라오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서……. 들어가자.”
제갈예지가 표식을 흔들어도 호랑이들은 으르렁대며 석두의 다리에 머리를 비빌 뿐이었다.
“지, 지가 잘 데리고 있을 테니 다녀오셔라. 얘네들이 지를 참 좋아라 허네요.”
이쯤 되자 난처한 것은 석두였다. 제갈예지는 난감하다는 듯 석두를 보다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참 귀엽게 생기셨구먼. 안 그러냐? 너희들 주인 말이다.”
그녀가 사라지자 언제 긴장했냐는 듯 호랑이들과 장난을 치기 시작한 석두였다.
제갈예지는 곧장 자신의 아버지 제갈염옥에게로 달려갔다. 외부에서 특별한 손님을 모셔 왔을 때는 가주에게 보고하는 것이 관례였던 것이다.
“계십니까, 아버지.”
제갈염옥은 제갈예지가 들어오자 고개를 들었다. 독서를 좋아하던 그였기에 손에는 항상 책이 들려 있었다.
“오오, 그래. 무슨 일이냐?”
“다름이 아니라…….”
제갈예지는 주저하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녀가 석두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하고 나자, 제갈염옥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태산비호가 그런 행동을 하다니……. 태산의 호랑이는 맹수 중의 맹수이기에 아무에게나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했건만.”
제갈염옥도 그녀의 이야기에 흥미를 보였다. 분명 호랑이들은 제갈예지가 알아보지 못한 무언가를 느끼고 그에게 그런 충성을 바치는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일단 안으로 모시거라. 내 친히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야겠다.”
인자하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제갈염옥이었다.

“아따, 내가 듣기로 무림 세가는 궁궐 같은 집에서 산다던데 이 세가는 꽤나 가난한가 부네이. 왜 천막을 치고 산대냐.”
석두는 호랑이들의 머리를 간질이며 중얼거렸다. 그 제갈예지라는 여인은 들어간 지 일식경이 다 되어 가도록 나오지 않았고, 가끔 여기저기의 천막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사람들은 그를 특이하다는 듯 힐끔힐끔 쳐다보며 지나쳐 갔다.
제갈세가인들이 보기에 석두는 특이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허리까지 오는 호랑이들을 강아지 다루듯 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돌리며 중얼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태산비호라 불리는 이 세 마리의 호랑이가 석두에게 이리 살갑게 구는 것은 바로 수왕(獸王) 삼두견의 털 때문이었다. 석두의 품에는 말복의 털 여러 가닥이 담긴 주머니가 들어 있었고, 그것은 지니기만 해도 모든 맹수와 맹금류들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지니게 되는 것이지 않던가.
물론 석두는 그런 사실은커녕 자신이 말복의 털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말이다.
“이거, 손님을 기다리게 하였습니다.”
마침내 저만치의 천막이 열리더니 사내가 걸어 나왔다. 제갈세가의 가주인 듯했다.
“아, 아니유. 기다리긴 뭘 기다려라.”
아는 것이 없는 석두지만 한 가문을 이끄는 이가 자신을 맞으러 나왔다는 것이 꽤 큰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왜 자신을 이리 극진히 대접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하룻밤 잠자리는 따듯할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우선 안으로 드시지요. 마침 저녁 만찬이 시작되려는 참이었습니다.”
제갈염옥은 석두를 친히 막사 안으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이미 이십여 명은 되어 보이는 제갈가의 사람들이 모여 앉아 가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내 가주를 따라 들어온 석두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하나같이 의문이 가득한 눈빛이다. 그도 그럴 것이 석두에게서는 뛰어난 내공이나 현기도 느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단순한 천민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 하하. 안녕하셔라.”
석두는 모두가 자신을 바라보자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제갈염옥은 세가인들에게 석두를 소개시켰다.
“이분은 제갈예지가 데려온 객이시오. 듣기로, 태산비호를 애완동물 다루듯 한다 하더이다.”
“오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태산비호는 심지어 같은 제갈세가의 사람들조차 접근하기 힘든 맹수가 아니던가.
“아, 아니어라. 여기 분들이 교육을 잘 시킨 덕분인지 아주 순하기만 하던데 무슨……. 하하.”
석두는 뒷목을 긁적이며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제갈염옥이 한 말이 제갈가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는지 어느새 그들은 석두의 주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저, 존함이 어찌 되시는지……?”
“태산비호를 단박에 길들인 비법이라도 있으십니까?”
“내공이 느껴지지 않으신데…… 혹 신공이라도 연마하셨습니까?”
석두는 갑작스레 쏟아지는 질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들은 자신이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할 말을 마구 해 대는 데다 하나같이 학구열에 불타는 눈빛을 하고 있지 않은가.
‘무림 세가가 무섭다더니, 이런 말이었구먼.’
당혹스럽기도 하고 혼란스러워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되어 버린 석두였다.
제갈세가가 다른 세가와 다른 점이라면 다른 지역의 사람들을 손님으로 받아들이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배움의 고하를 막론하고, 자신들이 모르는 점이 있으면 한사코 익히고 가르침을 받으려 들었기에 이들의 습성을 모르는 이가 이들과 마주하게 되면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바로 지금의 석두처럼 말이다.
분위기가 손님에게로 몰리기 시작하자 제갈염옥이 슬쩍 입을 열었다. 제갈가의 특성상 이런 경우 손님들이 크게 난처해 하고 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자자, 우선 앉읍시다. 손님께서 체하시겠소.”
세가 사람들은 그제야 각자의 자리로 돌아왔다. 석두는 그제야 숨통이 트인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계속되었다. 제갈세가 사람들은 자신들이 손님에게 무례했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다소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석두로서는 얼떨떨할 뿐이었다. 이들은 자신이 보았던 여타 무림인들과 달리 아주 예의가 발랐을 뿐 아니라 자신을 마치 대단한 사람인 양 대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대인의 존함은 어찌 되십니까?”
“지, 지는 석두라고 하지요.”
석두가 대답하자 제갈세가 사람들은 하나같이 의문을 표했다. 그야말로 천민 중의 천민이나 가지는 이름이 아닌가.
“그, 그럼 별호는 있으십니까?”
“별호?”
석두는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듯 되물었다. 하지만 이내 머릿속에 스쳐 가는 단어가 있었다.
“아, 부선이라고도 부르덥디다.”
“호오, 부선이라!”
그의 옆자리에 앉아 있던 제갈위류가 탄성을 내뱉었다. 선이라는 별호는 아무나 달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도끼의 신선. 부법에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부선께서는 어떤 신공절예를 연마하셨습니까?”
“하하! 지는 나무나 팼지라. 신공절예는 무신.”
신공절예라는 이야기에 박장대소하고 만 석두였다. 무공의 무 자도 모르는 무지렁이가 바로 자신이 아닌가.
하지만 제갈세가 사람들은 오히려 석두에게 호감을 표했다. 자신을 나무꾼에 비유할 만큼 낮추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제갈세가는 원래 이런 곳에서 사시는 것이어라?”
“아, 무슨 말씀이신지?”
제갈위류가 되묻자 석두는 손가락으로 주위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이 천막 말이지라. 보통 무림 세가들은 큰 저택에서 산다고 들은 것 같은데…… 아니어라?”
순간 재잘대던 소리가 뚝 끊어졌다. 분위기도 어쩐지 무겁게 가라앉고 말았다.
석두는 자신이 말실수를 한 게 아닌가 하여 금세 입을 다물고 눈치만 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저희도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보금자리가 있었습니다.”
불호령이 떨어지리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제갈위류는 착잡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
“저희 제갈세가는 태산에 자리를 잡고 있었지요. 태산 자락에 자리를 잡은 무인들은 저희 가문 사람들뿐이었기에 큰 긍지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 이거 설마? 에이, 아니겄제이.’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석두는 여느 때처럼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역시나 제갈위류는 그의 예상을 어기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태산 정상이 무너져 내리면서 저희들의 보금자리는 산산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인명 피해가 나지 않은 것이 천운이라 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 그래서…… 그 범인을 잡았어라?”
석두가 침을 꿀꺽 삼키며 묻자 제갈위류는 고개를 저었다. 잠시 침울한 분위기가 흐르고, 한참 만에 제갈염옥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저희는 그 태산인을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태산비호도 조련하기 시작한 것이구요.”
“그, 그럼…… 태산인인가 하는 사람을 찾으면 어찌할 것이어? 설마…….”
석두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발 아니기를 하는 바람과 달리 제갈염옥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제갈가의 오랜 역사를 단번에 짓밟은 자이니 엄벌로 다스려야겠지요.”
그 순간 석두는 깨달았다. 자신은 지금 호랑이 굴에 들어와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이들은 자신이 호랑이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무너뜨린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자신을 가차 없이 잡아먹고 말 것이 분명했다.
“하, 그, 그렇구만요.”
석두는 말을 흐리고는 음식을 마구 집어 먹기 시작했다. 어서 배를 채우고 자리를 뜨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부선께서는 원래 산동에 계시던 분이셨습니까?”
제갈위류가 넌지시 물어 왔다. 석두는 고개를 저었다. 무조건 자신은 태산과 관계없는 사람인 척해야겠다고 생각한 탓이었다.
“흐음. 그런데 저희가 죄송스럽게도 부선의 고명을 들은 일이 없으니……. 하면 산동에 오신 이유는 역시 태산인 때문이시겠군요?”
석두는 제갈위류를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분위기가 살아났다. 그들은 모두 눈을 번뜩이며 그에게 물어 왔다.
“그렇다면 혹 태산인에 대한 정보를 얻으신 것이 있으십니까?”
“그, 그게…… 무, 무작정 온 거라……. 하하!”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역시 자신은 거짓말할 체질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게 된 석두였다.
그야말로 십 년 수명을 갉아먹는 듯한 시간이 지나고, 석두는 손님용 침실에 들 수 있었다. 어찌나 집요하게 물어 대고 자신의 행동을 관찰하던지 먹은 음식이 체하지나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허메. 그래서 사람은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겨. 이게 무신 일이여, 에효.”
따듯한 모포 위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탄을 하던 석두는 이내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저…… 주무시나요?”
가냘픈 목소리. 제갈예지임에 분명했다.
“아, 아직 안 자고 있어라. 들어오셔도 되어.”
석두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내 제갈예지가 쭈뼛거리며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이 밤에 결례를 범하여 죄송합니다.”
제갈예지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생긴 것 같지 않게 야무진 구석이 있는 아가씨다. 석두는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저, 저기…… 다름이 아니라…….”
그녀는 무엇인가 어려운 부탁을 꺼내려는 것이 분명했다. 석두는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라. 말씀해 보셔.”
자신이 한 행동이 매우 올바르지 않은 것임을 석두가 알고 있을까. 제갈예지는 그의 말에 용기를 얻은 듯 답했다.
“저희와 함께 태산으로 가 주세요!”
“뭐, 뭣이여?”
석두의 얼굴이 하얗게 변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