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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신선 1권(13화)
제5장 도사님, 제발 날아 주셔라!(3)
“허참! 일이 이렇게 꼬이나.”
석두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상황이 그리되었으니 어찌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울며 겨자 먹기로 승낙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탓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그냥 눈 딱 감고 거절할걸 그랬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흐미, 나는 그냥 나무나 하고 도나 닦고 싶다니께.”
눈앞이 깜깜해져 푸념을 늘어놓아도 이미 엎질러진 물. 어찌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태산으로 다시 돌아간다니. 그 안에는 아직도 그 갈색 도복의 무인들이 지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거니와 이 제갈세가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일이었다.
“일어나셨습니까?”
석두의 한숨 소리가 천막 밖에까지 들린 모양이었다. 제갈예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그리 귀여워 보이던 이 여인이 지금은 왜 이리 밉살스러운지 모를 노릇이었다.
“일어났어라! 준비하고 나갈 테니께 기다리라 하시어!”
석두는 잠자리를 정리하고 일어섰다. 옆에 준비된 물로 간단히 세안하고 허리춤의 신력거부를 다시 잘 묶었다.
“어떻게든 요놈만 안 들키면 되는 것 아니겄어. 후우. 입조심해야제, 입.”
신력거부를 들키지만 않으면 자신이 태산을 잘라 버린 범인이라는 사실을 저들도 모를 것이 분명했다.
밖에는 벌써 제갈세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태산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미 거대 문파들이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싹 다 가져갔다 하나, 태산에 대해 제갈세가 사람들만큼 잘 아는 이들도 드물 터. 분명 건질 것이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물론 석두는 그 산으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가슴 떨리는 일이었지만 말이다.
“허허, 부선께서 흔쾌히 동행해 주신다 하니 저희들이 참으로 안도됩니다그려.”
앞서 다른 세가인들을 통솔하는 것은 가주인 제갈염옥과 제갈위류, 제갈예지였다. 그리고 석두는 손님 자격으로 그들을 따르고 있었고 말이다.
“하하, 지가 뭐 할 줄 아는 것이 있다고.”
석두는 하룻밤 새 초췌해진 얼굴로 억지웃음을 지어 보였다. 며칠간 도망쳐 나와 겨우 멀어졌건만, 도로아미타불. 다시 태산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산으로 향하는 길은 태산에서 빠져나올 때와 달리 너무나 짧았다. 고작 한나절 걸은 것만으로 뎅겅 잘려 나간 태산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가.
“여기서부터는 각자 나뉘어 산을 오릅니다. 혹, 태산인에 대한 증거가 될 만한 것을 찾으면 잘 간직했다가 산 중턱의 세가 본관에서 만나기로 하였습니다.”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한 세가 사람들을 보며 석두가 얼이 빠진 표정을 짓자 제갈위류가 슬쩍 덧붙여 주었다.
그러니까 석두로서는 슬쩍 빠져 도망갈 기회도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산 어디에서 세가인들을 만날지 모르는 일 아닌가.
“일단 오릅시다.”
앞장서 걷기 시작한 제갈염옥. 그 뒤로 제갈위류와 제갈예지, 그리고 울상이 된 석두가 따라갔다.
산을 오르기 시작하자 석두는 더욱 가슴이 답답해 왔다. 재수가 없어도 이리 없단 말인가!
이 익숙한 산길은 분명 자신이 나무를 팔러 도시로 향할 때 오가던 길이었다. 그리고 저 위로 보이는 익숙한 풍경은 분명…….
“여기에 누군가 살았던 흔적이 있네요.”
역시나 자신이 선계에 올라가기 전 살았던 거처가 나타나자 다른 이들은 쏜살같이 그곳으로 달려갔다.
석두는 혹여 자신과 연관 있는 물건이 있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에 노심초사하며 그들의 뒤를 따랐다.
다행히도 다 썩어 버린 집 안에는 다른 곳에서 온 무인들이 쓸 만한 것들을 다 건져 간 후였다.
“정말 머리카락 한 올까지도 다 가져갔나 보군. 신병이라면 눈이 멀어선…….”
제갈위류는 혀를 차듯 중얼거리고는 움막 밖으로 몸을 돌렸다. 제갈예지는 제갈염옥을 부축하며 저만치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크르릉.
호랑이들은 여전히 석두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녀석들은 석두가 불안해 하고 있음을 눈치 챘는지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제갈위류는 석두가 항상 나무를 패러 오르던 산길을 정확히 타고 올라갔다. 이내 잘려 나간 나무 밑동과 그 옆에서 다시 자라나고 있는 묘목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른 지 일이 년은 된 것 같네요.”
제갈예지가 잘려진 나무의 단면을 살펴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에 제갈가의 두 사내는 고민 어린 표정을 지었다. 물론 석두는 그와 반대로 화색이 돌고 있었지만 말이다.
‘좋아! 이대로만 가면 별 소득 없이 내려갈 수 있을 것이여!’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였다. 석두는 혹 남아 있었을지 모를 증거들을 가져간 무림인들을 고마워하며 저만치로 걸어가기 시작한 일행의 뒤를 따랐다.
석두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제갈위류가 평소의 자신을 감시한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리도 당연하다는 듯 자신이 다니던 길만 골라서 찾아낼 수가 있단 말인가!
“여기에도 움막이 있군.”
제갈위류는 얼마 전까지 석두가 거주하던 움막을 금세 찾아내었다. 하늘로 높이 치솟았다가 떨어진 탓에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긴 했지만 그 형체만큼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여기서 저 위로 오른 후에 태산을 베어 낸 것일까요?”
제갈예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여기서 산허리만 돌아가면 제갈세가의 본관이 나오지 않는가.
“허허.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이곳에 그 태산인이 거주했다면 아직 이 주위에 감시를 위한 무인들이 남아 있을 터. 그들의 도움을 구해 보자꾸나.”
제갈염옥은 허탈한 듯 말하고는 발길을 돌렸다. 어디서 어떻게 태산을 베어 냈는지 알아보러 가기 위함인 듯했다.
“이, 이제 그만 내려갑시다. 더 봐야 건질 것도 없을 것 같은데……. 알았어라. 계속 갑시다.”
이제는 반쯤 자포자기한 채 따라가기 시작한 석두였다. 어찌 보면 이리 올라가도 별일 있겠느냐 하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얼마 오르지 않아 그들은 당도할 수 있었다. 석두가 힘차게 도끼질을 했던 그 부근의 바위 위로 말이다.
“이 근처에서 베어 낸 것이 분명하군요. 이 근처에서 진기의 폭발이 일어나 쑥대밭이 되어 버렸습니다.”
제갈위류는 손으로 푹 파여 버린 산의 한구석을 가리켰다.
이 장면은 석두로서도 놀라운 것이었다. 자신이 잘랐지만 그 자른 단면을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럼으로써 더 놀랐다. 자신이 잘라 낸 태산 정상의 너비가 생각보다 어마어마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일대가 쑥대밭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허메, 정말 빨리 돌려줘야겠구먼. 그러려면 일단 이 자리부터 빠져나가야 될 터인데.’
제갈염옥이 몸을 돌렸다. 하산하려는 것이 분명했다. 다행히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범인이라는 것도 밝혀지지 않았으니 석두로서는 다행인 일이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저 밑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던 것이다. 왠지 불길한 예감. 그리고 대부분의 불길한 예감들이 그렇듯 이번에도 여보란 듯 갈색 도복의 무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종남의 사제 분들을 만나게 되니 영광입니다.”
무인들을 발견한 제갈염옥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 갈색 도복 무인들의 선두에는 석두로서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은 여인, 바로 여문아가 서 있었다.
“제갈가의 가주님이시군요. 이번 일로 심려가 크시겠습니다.”
‘아이고메, 저 불여우가 여긴 웬일이다냐.’
석두는 재빨리 뒤로 숨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
“혹, 태산인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것이 있으십니까?”
제갈염옥이 조심스레 물었다. 여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문아가 이리 쉽게 정보를 알고 있음을 밝한 것은 그들의 관계 때문이었다.
문파와 세가 사이에는 엄연한 구별이 있었다. 문파들은 세가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노력했고, 그럼으로써 세가들에게 여러 가지 정보와 지식들을 얻어 내곤 했다. 세가끼리도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문파들이 달랐지만 말이다.
석두에겐 불행이겠지만 종남파와 제갈세가는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이었다.
“태산인의 정체를 알고 있는 이가 있습니다. 나이는 이십 세에서 이십이 세 사이로 보이는 사내인데 허리춤에는 가죽에 싸인 막대기 같은 것을 매고 있고, 흰 옷을 입고 있습니다. 얼핏 보아서는 얼이 빠진 못 배운 무지렁이 같으나 그 정체를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여문아는 자신이 아는 것들을 소상히 고해 올렸다. 그녀의 세밀하고, 또 공손한 대답에 제갈염옥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허허. 종남에서 발이 빠른 걸로 알아준다더니 의를 지킴에 있어서도 누구보다 빠르고 정확하십니다그려.”
“과찬이십니다, 후훗. 아, 그런데 저분은?”
‘아뿔싸!’
수줍은 듯 웃던 여문아가 드디어 석두를 발견했다. 석두로서는 하늘이 무너진다 아니할 수 없었다.
“아, 이분은 부선이라는 분이시네. 강호의 은거 기인으로 태산비호가 쩔쩔 매는 대단한 분이시라네.”
“흐음. 그러시군요.”
여문아는 무엇인가 꺼림칙하다는 듯 대답했다. 자신에게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저 백의의 사내가 왠지 낯이 익었던 것이다.
“부선께서는 무엇을 그리 보고 계십니까. 자, 인사하시지요. 이분은 종남파의 제자 분이십니다.”
“아, 아, 안녕하셔라.”
제갈염옥이 자신의 팔을 잡아끌자 석두는 재빨리 몸을 돌리며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든 얼굴을 보이지 않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의 그런 행동에 여문아의 의심이 가중되었음은 더할 나위 없었던 것이고 말이다.
“하, 하하. 그럼 이만 내려갑시다. 이미 이 산에는 태산인에 대한 정보가 없을 듯하니…….”
“혹시 우리 어디서 마주친 적 없습니까?”
석두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여문아가 불쑥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석두는 그녀의 얼굴이 보이기가 무섭게 옆으로 몸을 돌렸다.
“저, 저기…… 제 얼굴을 보아 주시어요.”
여문아가 따라가는 대로 석두의 몸도 함께 돌아갔다. 제갈세가 사람들은 어이없다는 듯 둘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석두는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지금이 도망칠 때라는 것을 말이다!
“에라아!”
석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 아래로 몸을 날렸다.
‘선계만큼 평화로운 곳이 없는 것을……. 내가 바보짓을 한 건 아닌가 모르겄어!’
지상으로 내려온 것이 정말로 후회되는 석두였다.
“젠장! 저놈이 여길……!”
여문아의 외침이 들려왔다. 이미 석두는 비탈길을 타고 내달리고 있었고, 여문아는 제갈가의 사람들을 이끌고 쫓기 시작했다.
제갈염옥과 제갈위류, 제갈예지는 영문도 모른 채 여문아의 손에 이끌려 달리기 시작했다.
“흐, 흐메. 이걸 어쩌냐!”
한편, 석두는 급하게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갈색 도복의 무인들이 길목을 막아서고 있었던 것이다.
“후후훗. 오늘에야말로 독안에 든 쥐로구나.”
어느새 뒤따라온 여문아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석두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나,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는데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라.”
석두가 애원하듯 말했지만 여문아는 여전히 사악한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네놈은 평범한 나무꾼이겠지. 그런데 요새는 나무꾼이 도술을 부리나 보군?”
석두는 그 말에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신선술로 도망친다 해도 이번엔 제갈가의 추적까지 받을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