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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신선 1권(15화)
제6장 내가 사람으로 만들어 줄 터인께!(2)
“이걸…… 가지라는 겨?”
수룡은 대답 대신 혀를 길게 내밀어 석두의 손 앞까지 비늘을 가져왔다. 석두는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닐 것 같아 비늘을 조심스럽게 움켜쥐었다.
“고맙구먼! 어디에 쓸 일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 항상 간직할 터이니께!”
석두는 그 비늘을 품속에 잘 집어넣었다. 수룡은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물속으로 사라져 갔다.
“흐음. 그럼 난 저놈들이 잘하고 있나 가서 볼까나?”
수룡이 사라진 호수를 내려다보다가 수적들의 소굴로 발길을 옮기는 석두였다.
다음 날, 태안과 평음, 그리고 제남의 모든 집 앞에는 금 한 덩어리씩이 놓여 있었다. 의적을 흉내 낸다느니, 혹은 태산인의 짓이라느니 하는 말이 나왔지만 정작 돌기 시작한 소문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상단이 지나다 목격한 것인데, 추룡호에 수룡이 나타났는데 그 수룡을 신선이 수족처럼 부리더라는 것이었다. 그 신선은 수적들을 추룡호에서 깡그리 몰아내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에게 금을 나누어 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 그런데 내가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그 신선이 하시는 일은 지상에 내려와서는 안 되는 요물을 다시 선계로 가지고 올라가는 것이라, 이 말이야!”
이 소문은 물론 이야기꾼들에게는 너무나도 좋은 소재였다. 제남의 모강객잔에서는 이야기꾼 금 노인이 소문에 살을 붙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물론 그 이야기의 값은 한 잔의 술과 한 끼의 식사. 객잔의 모든 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금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그 신선께서는 호북으로 향하고 계시다, 이 말이지! 그 말은 곧 다음 우화등선은 무당파에서 일어난다는 게 아니겠는가!”
“오오!”
여기저기서 탄성이 일었다. 하지만 금 노인은 다음 이야기를 풀어내는 대신 목이 칼칼하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
짤그랑!
이내 금 노인의 탁자 위로 노인이 원하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술 한 잔을 더 마실 수 있는 돈이 생긴 것이다.
“이야기가 참 재미있네요. 조금만 더 해 주시겠어요?”
하지만 뒤이어 들려온 목소리는 금 노인으로서도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어느새 주위 사람들의 시선은 금 노인에게 말을 건 아리따운 목소리의 주인공에게로 돌아가 있었다.
“허, 허허! 이리 아리따운 아가씨가 술을 산다는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지!”
고개를 돌린 금 노인은 내심 놀라고 말았다. 그가 일 갑자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어마어마한 미인이었던 것이다. 톡 치기만 해도 앞으로 굴러 떨어질 듯한 초롱초롱한 눈, 하늘을 찌를 듯 오뚝하게 솟은 코, 그리고 그 아래 앵두같이 불그스름한 입술이 전체적으로 소젖같이 하얀 피부를 더욱 빛내 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하늘에서 내린 선녀라 할 만한 미모였던 것이다.
아름다운 여인이 술을 사서일까, 금 노인의 이야기는 밤이 깊어서까지 끊이지 않았다.
“어따, 왜 이렇게 귀가 간지럽다냐. 누가 내 욕이라도 하나?”
요즘 따라 이상하게 귀가 가려운 날이 많다고 생각하는 석두였다. 게다가 산길이 어찌나 구불구불한지 아무리 걸어도 산을 오르는 것 같지가 않았다.
량산(梁山)은 산동과 하남의 사이에 솟은 산이었다. 그런 만큼 교통의 요지이기도 해서 녹림채의 산동 지부가 위치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산적과 수적이 교대로 진을 치고 있으니, 그만큼 산동을 지나는 상인이 여간 많은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산적이 있는지 어쩐지 석두로서는 알 길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산적들을 겁낼 이유도 없었다. 어느새 석두는 조금씩 자신이 산적들 정도는 교화시킬 힘이 있음을 깨달아 가고 있었던 것이다.
신선술이 무림인들에게까지 통할지는 여전히 미지수였지만 말이다.
“후우―. 오늘은 이쯤에서 쉬어 볼까이.”
등 뒤로 석양의 붉은빛이 비추어 오자 석두는 한쪽의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배가 고팠지만 딱히 먹을 것도 없었기에 힘을 아낄 겸 여기서 쉬기로 한 것이다.
“하암―.”
풀밭에 누워 숨을 깊게 들이쉬면 자연의 기운이 몸속 가득 충만해지는 기분이었다. 게다가 대지의 기운이, 그리고 산에 사는 온갖 짐승들의 이야기 소리가 귀로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신선이란 인간이 느끼기 힘든 소소한 것들까지도 느낄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리고 석두로서는 그것이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째잭!
“흐음?”
어느새 석두의 배 위로 꾀꼬리 한 마리가 날아와 앉아 있었다. 석두는 피식 웃으며 손을 들었다.
“심심하던 차에 잘되었구먼. 허허.”
짐승들은 석두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았다. 금수의 눈에 석두는 이미 인간이 아닌 것일지도 몰랐다.
이유야 어쨌든 자신의 주위로 몰려드는 동물들과 함께하는 것이 즐거워 보이는 석두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방해꾼은 존재했다.
“낄낄, 량산에 홀로 등반을 하는 간 큰 녀석도 있네그려.”
“뭐, 우리로선 용돈 벌이 좀 할 테니 나쁘지 않지만.”
풀숲을 해치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녹림채 소속인 듯한 두 명의 산적이었다.
뻣뻣한 산적 수염과 비대한 체구, 그리고 등에 멘 거대한 태도는 그들이 산적임을 단박에 느낄 수 있도록 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 때문에 짐승들이 다 도망가 버리자 석두는 기분이 확 상했다.
“뭐여? 음…….”
석두는 인상을 쓰며 고개를 돌렸다. 산에서 산적을 만나는 것은 특별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전의 수적 사건 덕에 자신감이 생긴 덕분이었다.
“어디서 눈을 부라리고, 이게! 죽고 싶나?”
하지만 석두는 이내 눈을 아래로 내리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의 두 배는 될 법한 그 덩치들을 보자 저도 모르게 수그러들었던 것이다. 그나마 생겼던 자신감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행색을 보니 돈도 없게 생겼군. 네놈이 가진 귀중한 물품을 다 놔두면 살려는 보내 줄 테니 어서 내놓아 보거라.”
땟물이 줄줄 흐르는 가죽 옷을 걸친 산적이 선심을 쓰듯 말했다. 석두는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라도 고개를 들어 자신의 힘을 보여 줄 것인가, 아니면 일단 품에 있는 조금의 돈이라도 주고 도망칠 것인가 하는 것을.
‘그려. 난 신선이여! 자신감을 가져야제!’
“이……!”
마침내 석두는 굳은 결심을 하고 고개를 들었다. 무어라 고함을 치려는 순간, 석두는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검은 그림자에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투팍! 퍼퍼퍽!
“크억!”
“크허어억!”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선녀임에 분명한 무척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 여인은 아주 우아하게 주먹을 놀려 두 명의 산적을 쓰러뜨리고는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부선인가요?”
“아? 네? 아, 그러지라. 지가 부선이지라.”
석두는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늘에서 선녀님이 내려온 것은 좋은데, 산적들을 단박에 때려 눕혀 버렸지 않은가.
“그, 그런데…… 선녀님이 맞으셔라?”
“호호, 생각보다 훨씬 더 순진하신 분이네요.”
선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이름은 옥녀(玉女). 현 옥황상제이자 천제의 딸이었다.
‘흐음. 내가 들었던 것보다는 훨씬 평범해 보이는데?’
그녀는 얼이 빠져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석두를 보며 생각했다. 천제의 딸이자 하늘의 선녀인 그녀가 어째서 하계에 내려와 있는 것일까. 게다가 무슨 이유로 석두를 찾아온 것일까.
그것은 석두가 선계에서 마지막으로 벌인 신선주 잔치에서 돌아온 천제의 한마디에서 시작된 일이었다.
“부선 말일세, 꽤 괜찮아 보이지 않나?”
자미궁으로 돌아온 천제는 궁무대신이라 불리는 자신의 충복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궁무대신은 천제와 오랜 기간 함께한 천계의 충신으로, 사리 분별에 특히 능한 이였다.
“외관적인 나이로 보았을 때, 아가씨와 잘 어울리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게다가 부선의 됨됨이 또한 다른 이들과 비교할 때 월등히 뛰어나니 사위로 삼기에 더없이 좋지 않나 싶습니다.”
궁무대신은 천제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답했다. 천제는 아니라는 듯 손을 저으며 말했다.
“아직 내 딸과 혼인시킨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네. 다만 그 동생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그리할 뿐이지.”
“하면 어서 날을 잡으심이 좋을 듯합니다. 게다가 부선의 행동을 보시면 아가씨께서 좋아하실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궁무대신의 공손한 대답에 잠시 고민에 빠지는 천제였다.
“하나 그 아이가 좋아하는 사내는 독불장군처럼 힘 있고 고집 있는 이가 아닌가. 부선은 그런 면에서 조금 모자라지 않을까 하는데…….”
“그러나 부선은 다른 면에서 충분히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가 아닙니까. 분명 아가씨의 마음도 움직이실 수 있을 겝니다.”
“허헛! 그렇긴 하겠군! 알았네! 내 긍정적으로 생각해 봄세!”
천제는 마음에 든다는 듯 손뼉을 쳤다. 자미궁의 기둥 뒤에서 그의 딸 옥녀가 모두 엿듣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내 서방님이 되실 분? 도끼의 신선이라. 왠지 만나 뵙고 싶은걸.”
옥녀는 대외적으로는 조신하고 품위 있는 천상 천계의 선녀처럼 보였으나, 내심 왈가닥 같은 면이 있었다. 게다가 강한 남자에 대한 그녀의 애착은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어서 남몰래 지옥의 아수라를 연모한 적도 있었다.
이쯤 되자 가만히 있을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남몰래 구름을 타고 선계로 내려갔다.
신선들은 천계의 선녀가 선계로 내려오자 하나같이 꿀 먹은 벙어리 같은 표정이 되어 버렸다.
여인을 본 것이 오래되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선녀는 허락 없이 선계로 내려와선 아니 되었던 것이다.
“선녀께서 이곳엔 무슨 일이오?”
그들 중 용감하게 나서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비선이었다. 젊어서 숱한 여인들을 울렸던 그다운 용감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옥녀는 그를 멋지게 늙은 신선 이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주위의 신선들을 주욱 둘러보다가 말했다.
“저어…… 이곳에 부선이라 불리시는 분이 있다 하여 와 보았습니다.”
“부선? 부선께서는 이미 하계로 내려가셨소이다.”
비선은 조금은 질투가 난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옥녀는 의문스럽다는 듯 물었다.
“어째서 신선이 하계로 내려가신 것이지요? 천제께서도 알고 계시나요?”
비선은 고개를 저었다. 그는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부선께서는 지상에서 도끼질이나 하며 살겠다는 말씀을 남기고 내려가시었소이다. 그런데 부선은 어째서 찾으시는 것이외까?”
‘도끼질?’
도끼질이란 말이 옥녀의 가슴에 와 닿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거대한 부를 들고 수많은 이들과 피 튀기는 접전을 벌이는 젊은 영웅의 모습이 그려졌다.
“하계? 정확히 하계 어디쯤이죠?”
옥녀는 눈을 빛내며 물었고, 비선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리하여 지상에 내려온 옥녀는 이곳저곳을 다니며 정보를 얻었고, 마침내 석두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석두와 맞부딪히니 꽤 실망을 하게 된 옥녀였다. 어리바리해 보이는 것은 둘째 치고,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활용하지도 못하잖은가.
“그런데 선녀님께선 어떻게 저를 알고 찾아오셨대요?”
“호호. 소녀, 부선께서 하계로 내려오실 때 도끼를 들고 내려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옥녀는 슬쩍 말을 돌렸다. 이곳저곳의 이야기꾼에게 부선이 대단히 뛰어난 무기를 지니고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알기로 그런 종류의 위험한 물건은 십중팔구 선계 혹은 천계에 보관되고 있었다.
“그, 그렇지라. 그래서 지는 다시 선계로 올라가서 이 도끼를 돌려주려고 하는 것이지라.”
석두는 그런 그녀의 생각도 모른 채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두는 아마 그녀가 당장이라도 도끼를 들고 하늘로 올라갈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것 때문에 천제의 명을 받들어 이곳에 왔습니다.”
“그, 그려? 형님께서?”
석두는 이곳에서 천제의 이름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는 듯, 침을 꿀꺽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옥녀는 잠시 그의 눈치를 살피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천제께서 말씀하시길, 모든 것은 만류귀종(萬流歸宗)이라 하였으니, 무학과 도는 그 길은 달라도 끝은 하나로 통한다고 하시었습니다.”
“그, 그래서여?”
석두는 어려운 한자 성어를 알아듣지는 못하였으나 옥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는 대강 눈치 챌 수 있었다.
옥녀는 내심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무의 극에 달하면 다시 우화등선으로의 길이 열릴 것이니, 다른 이의 도움을 구하기보단 본인의 힘으로 하늘에 오르라는 명이 있으셨습니다.”
“그, 그런디…… 그러려면 지가 어찌해야 하는 거라?”
그야말로 석두로서는 눈앞이 깜깜해지는 말이 아닐 수 없었다. 결국 무(武)의 극의에 달하여 선계로 돌아오란 말이 아닌가. 그렇다는 것은 앞으로 무림인들과 숱하게 엮일 것이고, 그런다면 이 신력거부를 빼앗길 일도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