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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신선 1권(16화)
제6장 내가 사람으로 만들어 줄 터인께!(3)


옥녀는 잠시 공손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그의 생각이 정리되는 듯하자 다시 입을 열었다.
“더불어 천제께서는 본인의 외동딸인 옥녀를 부선께 시집보낼 것이니 한시라도 빨리 선계로 돌아오시라 하였습니다.”
“뭐, 뭣이여? 시집? 그러니께…… 지가 장가를 간단 말이여? 그것도 형님의 딸한테?”
그 말이야말로 석두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천제에게 딸이 있었던가. 딸이 있다면 얼마나 아름답고 또 성품이 고울 것인가!
“그, 그 옥녀라는 선녀님은 아름다우셔라?”
“호호, 아주 아름답지요.”
자신이 자신에게 아름답다고 하면서도 안색조차 변하지 않는 뻔뻔함을 지닌 옥녀였다. 석두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다시 되물었다.
“지금 제 앞에 계신 선녀님만큼 아름다우셔라?”
“뭐라구요? 호호홋!”
‘순진하니 귀여운 구석이 있는 분이시네.’
옥녀는 수줍게 웃었다. 처음에는 상당히 멍청해 보인다 생각했지만, 어느새 석두의 순수함이 그리 싫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그래요. 저만큼 아름다울지, 저보다 아름다울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천제께서 명하시길, 제가 옆에서 부선을 보필하며 무의 극의를 깨닫는 데에 도움을 주라 하시었습니다.”
“그, 그러니까…… 선녀님께서 절 도와주신다고요?”
석두는 갑자기 일어난 어마어마한 일련의 사실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게다가 이리 연약하고 아름답기만 한 선녀가 자신에게 무라는 것을 가르쳐 준다 하니 또 어딘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하긴 아까 산적들을 때려잡을 때 보니 예사 솜씨가 아니던걸.’
하지만 석두의 한계는 명확했다. 이내 석연찮은 구석을 정리하고 단박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라. 제가 선녀님만을 믿고 따라야지라! 그런데…… 앞으로 무엇이라 불러야 되어라? 스승님?”
“후훗. 그냥 련화(켳華)라 불러 주시어요.”
옥녀는 수줍게 웃으며 자신이 자주 사용하는 예명을 둘러댔다. 석두는 아름다운 그녀가 하는 말이라면 마냥 좋은지 싱글벙글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옥녀가 왜 이리 마음을 먹게 된 것일까. 그녀의 이상형은 장군처럼 큰 기개를 지닌 이가 아니던가.
그것은 천제의 성격을 그녀가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이 신선과의 혼인이 싫다 해도 아버지는 내 말을 절대 들어주시지 않을 거야. 그러니 차라리 내 손으로 내 서방을 개조시킬 수밖에. 다행히 이 신선은 매우 순수하고 배운 것이 없는 상태이니 잘하면 내가 기대하는 것보다 더욱 멋진 사내가 되어 줄지도. 후훗.’
그녀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 리 없는 석두는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미소를 짓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후훗. 그럼 이제 가실까요, 부선님?”
“아, 아이구. 부선은 웬 낯간지러운 호칭이랴. 그냥 석두라 불러 주십쇼. 그, 그런데 이 야심한 시각에 어디를 가자는 거라?”
뒷목을 긁적이며 대답한 석두. 하지만 이내 그는 자신이 앞으로 결코 순탄치 않은 길을 가게 되리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후훗. 어디긴요. 산적들의 소굴이지요. 무학을 배우고 싶다 하지 않으셨던가요?”
산적들을 때려잡겠다는 이야기를 상쾌하게 늘어놓은 뒤, 몸을 돌려 산을 오르기 시작한 옥녀였다.
석두는 울상을 하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지치지도 않는지 구불구불한 산길을 사뿐사뿐하게 걷고 있었다.
“그, 그런디…… 지가 어떻게 산적들을 해치운대요? 지는 신선술을 잘 못 쓰지라.”
석두는 내심 걱정이 큰 듯 조심스레 물었다. 옥녀는 빙긋 웃으며 석두를 올려 보다가 입을 열었다.
“무학이라 함은 무림의 무인들이 흔히 말하는 무공이라든가 초식, 내공 같은 것들과는 그 길을 달리하는 것이에요. 순수한 힘. 그 힘의 사용과 그 힘을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를 배우는 것이지요.”
“헤에…….”
석두는 또다시 멍한 표정으로 옥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복잡한 이야기를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옥녀도 그런 기색을 눈치 챘는지 다시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림인들이 흔히들 말하는 초식이라든가 무공은 그들이 약하기 때문에, 약함을 보완하기 위해 만들어 낸 것들이에요. 그들의 조악한 내공으로 최대한의 힘을 내기 위한 것이죠.”
“헤에…….”
석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자신으로선 그 내공이란 것을 가지고 있는 무림인들이 대단하다 느껴지고 있었다.
“하지만 저희 같은 선녀나 부선 같은 신선들께선 그런 것이 전혀 필요 없어요. 이미 초식이라든가 무공 같은 것으로 도를 깨우칠 단계는 지난 것이지요.”
“어, 어째서라?”
무공과 초식, 내공이라 함은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여러 가지 능력들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주는 중요한 것이지 않은가. 석두는 옥녀의 설명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이미 부선의 몸속에는 인간들이 내공이라 불리는 자연의 기운이 가득 쌓여 있어요. 무인들이 보면 경악할 만큼 말이지요. 다만 부선께서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을 모르고 계실 뿐인 것이지요.”
“헤에, 나한테? 그, 그런데 선녀님은 어찌 그런 걸 그리 잘 아셔라?”
뜨끔!
옥녀는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지 않은가. 천상의 선녀인 자신이 이런 것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누구인가. 강함을 끔찍이 사랑하는 그녀가 지상에서 가장 강하다는 무인들에 대해 알아보지 않았을 리가 없지 않던가.
“호, 호호!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일단 어서 올라가 보자구요!”
그녀는 호들갑스럽게 웃고는 저만치에서 보이기 시작한 산채로 발길을 옮겼다.

석두는 벌써부터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산채로 들어서는 입구에는 거한의 산적 둘이 버티고 있었는데, 그들조차도 상대할 자신이 서질 않았던 것이다.
“서방…… 아니 부선, 잘 보세요.”
옥녀는 석두가 지나치게 긴장을 하자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보였다. 이내 그녀의 손에 희뿌연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편한 마음으로, 힘을 하나로 모은다는 생각으로 손끝에 집중하세요.”
“하, 한번 해 보겠어라.”
여전히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지만 일단 용감하게 가 보기로 한 석두였다. 선녀님이 강하니 무슨 일이 있겠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네, 네 이놈들! 이런 곳에서 힘없는 자들의 물건을 약탈하다니, 하늘이 두렵지 않느냐!”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서며 힘차게 외친 석두. 이내 저만치에서 산적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방금 그 소리, 네놈이 지껄였나?”
산적 하나가 거대한 몽둥이를 자랑이라도 하듯 내밀며 물어 왔다. 석두는 이야기도 제대로 할 수 없을 만큼 굳어 버리고 말았다.
“그, 그, 그려! 내가 했다!”
“껄껄껄! 요즘엔 별 녀석들이 다 있다니까. 오늘은 두목님도 오신 특별한 날이니 무릎 꿇고 싹싹 빌면 살려는 보내 주마.”
두 산적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웃고는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가리켰다.
‘어, 어쩌지, 정말 자신 없는디.’
이쯤 되자 정신이 혼미해지려 하는 석두였다. 그때, 머릿속에서 옥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먹 끝에 정신을 집중하세요!”
‘그, 그려! 선녀님이 하신 말씀인데 거짓말일 리가 있겄어!’
석두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주먹에 정신을 집중하려 부단히 애쓰기 시작했다. 몇 초가 지났을까, 석두는 자신의 몸속을 강처럼 흐르고 있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은 자신의 주먹 끝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뭐여, 이 녀석. 죽었나?”
산적들은 석두가 눈을 감은 채 꼼짝도 하지 않자 조금 당황한 듯했다. 그들은 석두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석두의 눈이 번쩍 뜨였다. 부릅뜬 석두의 눈에는 어느새 살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우랴아아아!”
쒜에에엑! 콰아앙!
그리고 다음 순간, 고함과 함께 석두의 주먹이 산적의 면상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들었다.
그 주먹에 담긴 힘이 어찌나 빠르고 강한지 산적은 미처 대비할 새도 없이 얼굴을 얻어맞고 뒤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콰직! 콰지직!
“으, 으메!”
석두는 깜짝 놀랐다. 주먹 끝에 참을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한 기운이 모여들어 일단 주먹을 휘두르기는 했는데 그 힘이 저만큼 강하리라곤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자신의 주먹에 얻어맞은 산적뿐 아니라 그 곁에 서 있던 산적도 권풍에 휩쓸려 산채 안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콰르르릉! 철퍽!
두 산적은 그대로 날아가 산채의 담벼락에 박혔다. 그것으로도 석두의 힘을 견디어 내지 못했던지 대나무로 만든 산채의 담벼락들이 와르르 쓰러지기 시작했다.
“내, 내가 이렇게 강했단 말이여?”
석두는 아직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자신의 주먹을 내려다보았다. 주먹에는 아직도 희뿌연 기운이 뭉실뭉실 피어오르고 있었다.
“웬 놈이냐!”
“적이다!”
하지만 석두는 자신의 힘에 더 감탄할 새가 없었다. 담벼락이 무너지고 어마어마한 굉음이 울려 퍼진 탓인지 산채 안에서 산적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잘하셨어요.”
“어, 어디에 계셨던 거라?”
어느새 석두의 옆에는 옥녀가 서 있었다. 그녀는 석두의 질문에 빙긋 웃어 주고는 답했다.
“그 이야긴 나중에 하도록 해요. 일단은 저기 나오는 산적들부터…….”
“허, 허미! 적어도 삼백 명은 될 것 같은디! 저걸 지 혼자 다 처리하라고라!”
“못하실 것도 없을 거예요. 모든 것은 부선의 의지에 달린 것이니까요.”
옥녀는 별것 아니라는 듯 말했다. 하지만 석두는 저 앞에서 까맣게 달려오는 산적들이 너무나 난감할 뿐이었다.
“두목, 담장 아래에 석쇠와 돌쇠 녀석이 떡이 되어 쓰러져 있습니다!”
산적들의 앞에 서 있는 산적 두목은 그야말로 떡대란 말이 어울리는 어마어마한 덩치를 지니고 있었다. 게다가 자기 키만 한 강철 몽둥이를 들고 있었는데, 한 손으로도 자유자재로 휘두를 수 있는 듯했다.
산적 두목은 자신의 수하가 저 눈앞의 못생긴 녀석에게 깨졌다는 사실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네놈이 이렇게 만든 거냐?”
산적 두목은 걸걸한 목소리로 물어 왔다. 석두는 침을 꿀꺽 삼키며 답했다.
“내가 그런 거여. 부, 불만 있냐?”
산적들 사이에서 술렁임이 일었다. 갑자기 나타나 동료 둘을 아작 낸 녀석에 대한 술렁임이 반이요, 그 녀석의 뒤에 서 있는 무척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술렁임이 나머지 반이었다.
“그래? 그럼 네놈을 아작 내 버릴 이유는 충분하군.”
쿠웅!
녀석의 손에 들린 몽둥이가 땅에 떨어져 내리면서 둔탁한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이 어찌나 무시무시하던지 석두는 금세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네놈 뒤에 있는 여자는……. 흐흐, 네 마누라냐?”
금방이라도 달려올 것처럼 숨을 씩씩대던 산적 두목은 그제야 석두의 뒤에 서 있는 옥녀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이내 산적 두목의 눈에 욕정의 빛이 어렸다.
“그, 그려! 그런데 그건 왜 물어보는 것이여!”
석두도 질 수 없다는 듯 맞받아쳤다. 산적 두목은 그의 대답을 듣자 혀로 입술을 스윽 훔쳤다.
“그럼 네놈을 아작 내고 나도 좀 맛봐야겠군. 큭큭.”
으득!
산적 두목의 입에서 그 말이 나온 순간, 석두는 자신의 등 뒤에서 이빨 가는 소리가 들린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다음 순간.
“어머! 서방님, 무서워요!”
후우욱!
“으메에!”
석두는 뒤에서 떠미는 어마어마한 힘에 앞으로 튕겨져 나가듯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를 뿌득 간 옥녀가 석두의 뒤에 숨는 척하면서 온 힘을 다해 석두의 등을 떠밀었던 것이다.
‘저런 녀석들쯤은 단박에 제압할 수 있어야 해요, 서방님.’
양팔을 휘저으며 달리기 시작한 석두의 뒷모습을 보며 중얼거리는 옥녀였다.
한편, 산적들은 석두의 담력에 크게 놀라고 있었다. 보통은 자신들의 숫자나 두목의 위협에 크게 위축되기 마련인데, 녀석은 오히려 주먹을 휘두르며 다가오고 있지 않는가!
“건방진 놈!”
산적 두목은 호통 치듯 외치고는 몽둥이를 크게 휘둘렀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산적 두목에게 달려들던 석두는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숙였다.
후욱!
“히익!”
뒷머리 바로 위로 몽둥이가 스쳐 지나가자 석두는 등골이 서늘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옥녀가 등을 민 힘이 어찌나 강했던지 아직도 멈춰 설 수가 없었다.
“에, 에라, 모르겄다아!”
쒜에엑!
석두는 아직 주먹에 그 기운들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는 눈을 질끈 감고 주먹을 휘둘렀다. 이내 석두의 주먹이 스스로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속도로 날아들었다.
콰지직!
“허걱!”
주먹에 무엇인가가 닿아 산산조각으로 부서지는 느낌이 들자, 석두는 살며시 눈을 떴다. 그의 눈에는 본래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구부러져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산적 두목의 강철 몽둥이와 다른 산적들의 경악한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이, 이놈……?”
씨익!
자신을 바라보는 경악한 산적 두목에게 석두는 씨익 웃어 주었다. 그 커 보이던 산적 두목이 어느새 자신의 허리춤에도 오지 않을 만큼 작아 보였던 것이다.
“이눔아! 착하게 살어어!”
빠아악!
이내 석두의 목소리와 둔탁한 타격음이 산채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