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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신선 1권(18화)
제7장 강해져야 된다면 그래야제!(2)
옥녀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나선 석두가 기특하기만 했다. 자신에게 폭언을 한 것 때문에 화가 났다고 생각하니 새삼스레 석두가 더욱 멋져 보이기도 했다.
옥녀는 팽하건이 적당히 두들겨 맞을 때까지 지켜보다가 이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서방님, 그만 하시어요. 그러다가 큰일 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석두는 그제야 자신 앞에 널브러져 바들바들 떨고 있는 팽하건을 놓아 주었다.
“이런 놈은 맞아야 쓰는데 말이지라, 후우. 선녀님은 괜찮으셔라?”
조금 열이 식자 금세 자신이 한 행동이 심했음을 깨달은 석두였다. 선녀님의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어느새 이성을 잃고 말았던 자신이 바보스러웠다.
“전 괜찮아요. 이만 위로 올라가요. 이곳에 더 있고 싶지 않으니.”
옥녀는 팽하건을 지그시 밟고 넘으며 손짓했다. 석두는 널브러진 팽하건을 자신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옥녀와 석두가 이층의 침실로 올라가자, 그제야 팽하건은 자신이 살았음을 깨달았다. 정말 지독하게 아프고, 또 빠른 주먹이었다. 무공은커녕 내공도 없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그 주먹에 담긴 내공은 결코 만만히 볼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많은 이들 앞에서 개망신을 당했다는 것이 팽하건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주고 있었다.
“개 같은 연놈들! 내 오늘의 치욕은 절대 잊지 않으리라.”
허둥지둥 문 밖으로 도망치듯 뛰쳐나가면서 이를 갈며 다짐하는 팽하건이었다.
“이거, 죄송해라. 많이 놀라셨지요. 지가 그냥 이성을 잃어버렸었네이. 하하.”
“아니에요. 오히려 저를 위해 그리 화를 내셨다 생각하니……. 부끄럽습니다.”
옥녀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석두는 그런 옥녀의 모습까지도 아름다운 듯 싱글벙글 웃었다.
“그럼 오늘은 이만 푹 쉬셔라.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터이니께.”
“네. 부선께서도…….”
석두는 옥녀의 방에서 나오면서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노릇이다. 무슨 수련을 한 적도 없고, 또 어떤 무공을 배운 적도 없는데 그 무림인을 그렇게까지 때려 눕혔다는 사실이 아직도 꿈만 같았다.
“나도 강해질 수 있다는 거여?”
순수한 강함에 대한 열망, 그리고 극한까지 강해져 우화등선해야겠다는 의지.
그것이 석두의 마음속에서 조금씩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남의 성도인 정주. 석두에게는 가장 꺼려지는 곳이 아닐 수 없었다. 바로 무림맹 본부가 위치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림사가 위치한 숭산으로 가기 위해서는 꼭 거쳐야 하는 관문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고메, 사방에 무림인들뿐이어라.”
“괜찮아요. 제가 곁에 있지 않습니까.”
옥녀는 큰 걱정 없다는 듯 석두를 안심시켰다.
무림맹 본부는 정주의 중앙에 높게 솟아 있었다. 모든 정파의 무인들이 모이는 자리이고, 또 무림맹주가 거주하고 있는 곳이니만큼 정주 안에 있는 육칠 할가량의 사람들은 모두 무인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 일단 요기부터 합시다.”
석두는 혹 자신을 알아보는 무인이 있을까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정주객잔으로 들어섰다.
각 문파의 무인들이 한 군데씩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빈자리는 주로 햇빛이 들지 않는 구석진 자리였다. 하지만 석두는 그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듯 그 자리로 다가갔다.
“무인들이라는 자들은 몰려다니는 것을 참 좋아하는군요.”
옥녀는 자리에 앉아 이곳저곳의 무인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 그녀가 보기에 한자리씩을 차지하고 먹고 떠들고 있는 무인들은 하나같이 돼먹지 않은 녀석들 같아 보였다.
천계에서 보았던 천하를 주름잡는다던 대협들은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
“강하니께요. 저들의 말이 무림에선 법이니 말이지라.”
석두는 어깨를 움찔거리며 대답했다. 옥녀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강하면 법이 될 수 있는 걸까요? 강함이 모든 것의 전부일까요?”
“그, 그건……. 으음.”
옥녀는 조심스럽게 물어 왔다. 하지만 그 질문이 참으로 난해한 것이었기에 석두로서도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다.
“그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부선께서는 무학을 깨우칠 수 있으실 것이랍니다. 그러니 모르신다고 너무 겸연쩍어 하실 필요는 없어요.”
옥녀는 쩔쩔매고 있는 석두에게 당연하다는 듯 말하고는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하지만 석두는 이미 그녀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저만치에서 객잔으로 들어서고 있는 일련의 무리를 보고 만 것이다.
갈색 도복의 무인들. 그리고 그들의 앞에 서 있는 것은 다리를 다소 절룩거리고 있는 여문아였다.
“저, 저 여자가 여기엔 어떻게 왔디야?”
믿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자신이야 신선이라 그렇다 쳐도, 그 어마어마한 폭발에 휩싸이고도 살아남았단 말인가!
사실 여문아의 부상은 몇 개월은 요양해야 할 만큼 심각했다. 그럼에도 벌써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그때 태산에 있었던 종남파 무인들 중에 그나마 몸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여문아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왜 그러셔요?”
옥녀도 석두가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을 눈치 챘는지 조용히 물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내 일련의 갈색 무인들과 여문아가 객잔 내부를 수색하기 시작하자 석두는 고개를 푸욱 숙일 수밖에 없었다.
“저분들이 부선을 찾고 계신 건가요?”
석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옥녀는 피식 웃더니 입을 열었다.
“걱정 마셔요. 저분들을 보니 꽤나 예의가 바른 분이신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없는데이…….’
석두는 옥녀의 생각이 결코 옳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을 대변하기라도 하듯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잘못했습니다, 대협! 목, 목숨만은…….”
한쪽 구석에서 끼니를 때우던 평민들이 긴장한 탓에 여문아의 옷에 음식을 흘린 모양이었다. 여문아는 허둥지둥 자신의 옷을 닦는 청년을 내려다보다가 못마땅하다는 듯 청년의 복부에 발을 휘둘렀다.
“크헉!”
사내는 배를 부여잡고 나뒹굴었다. 하지만 무공을 배우지 않은 이들이 무인들의 옷에 음식을 흘린 것은 목숨을 잃어도 누가 뭐라 하지 못할 만한 것이었기에 다른 무인들뿐 아니라 청년의 일행도 무어라 이야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뿌득!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 말이다.
“생각이 바뀌었어요.”
석두는 이를 뿌득 가는 옥녀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옥녀는 하얗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죽여야겠어요, 저분을.”
“아, 아이고! 안 되어라! 큰일 난다니께요!”
석두는 사색이 되어 옥녀의 팔을 붙잡았다. 며칠 전에 그 망나니 같은 무림인을 자신의 주먹으로 때려눕혔다 해도 그는 옥녀가 말한 것처럼 주색잡기에 빠진 삼류 무인에 불과했다. 산적들이라 해 봐야 그들은 내공이란 것조차 지니고 있지 않은 평범한 거구들일 뿐이지 않은가.
하지만 저 앞의 무인들은 달라 보였다. 여문아란 여자는 아직 부상이 회복되지 않은 것 같았지만, 그녀의 뒤를 따르는 젊은 무인들에게서는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기세가 풍겨 나오고 있었다.
혹여 그들이 선녀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천상의 법도에도 인간의 탈을 쓰고 있으나 본질이 인간답지 못하면 그것은 금수나 진배없다 하였으니, 저도 금수 대접을 해 주렵니다.”
석두로서는 이런 옥녀를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가 가끔 내려간 마을에서 듣기로도 무인들은 자신 같은 평민들과는 계급이 다른 존재라 여겨지지 않았던가.
하지만 옥녀로서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그녀가 보아 온 대협, 혹은 대장부라 불리는 무인들은 약자라 하여 함부로 대하는 일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남몰래 듣고 배운 협과 의라는 것에도 크게 어긋나는 일이지 않은가.
게다가 주위의 어떠한 무인도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녀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한편, 여문아는 자신의 발아래에 엎드려 토악질을 하고 있는 그 평민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왁자지껄하던 주위가 단박에 조용해진 데다 상대적으로 석두와 옥녀의 대화 소리가 컸기에 그녀의 주목을 끈 것이다.
“어이쿠! 들켜 버렸구먼!”
그녀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고 있음을 석두가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었다. 석두는 여차하면 옥녀를 안고 도망가기 위해 주먹에 정신을 집중했다.
“…….”
역시나 여문아는 그를 보자마자 그에게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다소 절름거리긴 했지만 방금 전까지 발길질을 했었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진중한 표정이었다.
“이, 이익……!”
석두는 이마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저 여우 같은 여자가 또 무슨 짓을 할지 모르지 않는가! 게다가 자신이 붙잡고 있는 옥녀의 팔도 그녀가 다가올수록 더욱더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처억!
이윽고 여문아는 그의 앞에 다가와 멈추어 섰다. 그에 따라 석두는 언제라도 뛰어 나갈 수 있게 옥녀의 팔을 부여잡은 채 신경을 곤두세웠다.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태산 대인!”
“으, 으잉?”
일촉즉발의 순간, 여문아는 석두에게 풀썩 고개를 숙였다. 너무나 순간적으로 일어난 일인 데다가 그녀의 말에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만한 단어가 섞여 있었기에 석두는 그대로 의자에 털썩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태, 태산 대인?”
석두가 망연자실하게 묻자 여문아는 한쪽 무릎을 꿇으며 외쳤다.
“그동안 안목이 미천하여 태산 대인을 알아 뵙지 못한 것 사죄드립니다.”
객잔 안 구석구석까지 또렷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였기에 무림인들은 자신들이 하던 일도 잊고 여문아와 석두를 번갈아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만큼이나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것은 바로 석두였다.
“그, 그래서 어쩌라는 거라?”
석두는 아직도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인들의 말투를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이미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였다.
“그동안 저의 무례는 넓으신 아량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여문아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절박함마저 묻어 나오고 있었다. 석두가 사과를 받아 주지 않으면 자결이라도 하겠다는 기세였기에 석두는 허둥지둥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아, 알았어라. 용서해 줄 테니께 일어나 보드라고.”
여문아는 석두가 생각보다 빨리 용서를 받아 주자 조금 당황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한참 만에 몸을 일으켰다. 석두는 여전히 얼이 빠진 채 그녀를 내려 보고 있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여 다시 아까처럼 죽을 기세로 용서를 빌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그런데 이제 와서 나한테 무신 용무로 그러는 것이어라?”
순간, 여문아는 일어서려던 것을 멈추고 다시 넙죽 엎드렸다. 그러자 그녀의 뒤에서 그녀를 따라 몸을 일으키던 다른 무인들까지도 다시 엎드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석두는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밖에 없었고 말이다.
“대인, 제발 저희 종남으로 왕림해 주시어요! 소녀,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뭐, 뭣이여?”
이것은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인가. 자신을 잡아 족치겠다며 뼛골 빠지게 쫓아다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태산 대인, 태산 대인 하며 추켜세우더니 자신들의 소굴로 함께 들어가자고까지 하고 있지 않은가.
“그, 그게…… 저어…….”
석두의 안색이 눈에 띄게 하얗게 변해 갔다. 석두는 식은땀을 흘리며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여문아는 석두가 주저하는 듯하자 쐐기를 박으려는 듯 다시 외쳤다.
“대인!”
‘이, 이걸 도대체 어쩌란 말이여?’
석두가 한참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앞으로 나선 것은 의외로 옥녀였다. 어느새 흥분을 가라앉힌 그녀가 석두를 대신해 입을 연 것이다.
“종남이라는 문파가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는 모르겠으나 부선, 아니 태산 대인께선 그곳에 가실 생각이 없으신 듯하니 이만 물러가 주십시오. 이곳은 많은 이들이 오가는 객잔. 그런 곳에서 이 무슨 작태입니까.”
선녀의 본모습이란 이런 것일까.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외모 속에 감추어진 굳건한 기둥은 그녀가 과연 천제의 딸임을 입증하고 있었다.
하지만 여문아는 옥녀의 말에 자존심이 크게 상한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대의명분을 목숨처럼 생각하는 무인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고인을 억지로 끌고 가려 했다는 것과 또한 많은 이들의 시간을 방해했다는 말을 하는 것은 그 자리에서 사생결단을 낸다 해도 이상치 않을 만한 것이지 않은가.
여문아의 배알이 뒤틀리게 만드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어느샌가 자신들이 노리고 있던 태산 대인과 합석하고 있었던 것뿐만 아니라 외모 또한 자신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지 않은가.
“오호라, 이제 보니 태산 대인을 미모로 꼬드긴 것이 분명하구나! 가진 것이라고는 천박한 얼굴뿐인 것이 어디서 대종남의 무인들 앞에서 언성을 높이느냐!”
여문아는 언제 석두에게 굽실거렸냐는 듯 표독스러운 작태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그 말은 옥녀의 속에 잠시 잠들었던 불씨를 다시금 불타오르게 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내 옥녀의 몸 주위에서 살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석두로서도 여문아의 폭언이 크게 화가 나지 않는 바는 아니었으나 옥녀의 기세가 워낙 무시무시했기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흐, 흐메. 선녀님께서 화가 나시니 지옥의 마두들보다도 더 무섭네. 크헉!’
콰르륵!
석두가 생각을 다 끝마치기도 전에 어마어마한 기운이 사방을 휘감았다. 옥녀의 옷깃 자락이 크게 펄럭이는가 싶더니 이내 어마어마한 내공의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 아닛!”
객잔 안의 모든 무인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자신들의 공력을 끌어 올리며 옥녀의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내공을 가진 이라면 그저 맞부딪치는 것만으로도 주화입마에 빠질 만한 어마어마한 기운이 아닌가! 정작 무공을 배우지 않은 평민들은 전혀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데 비해 사방으로 도망치듯 달려 나가는 무림인들의 모습은 처량하기 그지없었다.
“꺄악!”
적어도 이 장 이상 떨어져 있는 다른 무인들도 그럴진대 고작 오 보 앞에 있던 여문아는 오죽하겠는가. 그녀는 그대로 피를 토하며 뒤로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녀 뒤의 무인들도 다른 것은 아니어서 그들은 간신히 자신의 몸을 간수하고 있을 뿐이었다.
한편, 석두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느끼기에 옥녀가 뿜어내는 기운은 그리 고통스럽다거나 어마어마한 것 같지도 않은데, 주위 탁자들이 밀려나고 무인들이 사방으로 허겁지겁 도망치지 않는가!
“여, 역시 선녀님이신 거라!”
자신이 강한 것이 아니라 옥녀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해 버린 석두였다. 물론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옥녀와 똑같은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인이 되어 무예를 익히고 정신을 수양한다 함은 강자라 하여 고개를 숙이지 아니하고 약자라 하여 괄시해서는 안 될진대 너희들은 기본이 되지 않았구나!”
옥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상태에서도 마지막 한가닥의 위엄은 지켜 내려 노력하고 있었다. 물론 속으로는 온갖 육두문자를 퍼붓고 있었음에 틀림없을 터였다.
“크, 크으!”
여문아는 자신의 생각이 크게 틀렸음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저 여인은 단순히 얼굴만 아름다운 이가 아니었다. 태산 대인과 같은,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욱 강할지도 모르는 어마어마한 고수가 아닌가!
그야말로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린 것이나 다름없는 어마어마한 실언을 하고 말았으니, 이제 자신은 종남에 돌아간다 해도 다시 고개를 들 낯이 없을 터였다.
그보다 이번에 입은 내상을 치료하는 데에만도 어마어마한 시일이 소요될 터였다.
“네년같이 근본이 썩은 이들은 무공을 배울 자격이 없음이니, 도를 닦아 그동안 쌓은 업을 덜어 낼 지어다!”
펄럭!
옥녀는 벼락같이 외치고는 팔을 앞으로 내뻗었다. 이내 그녀의 옷소매가 펄럭이며 날아와 여문아의 몸으로 들이닥쳤다.
콰르릉!
“크허억!”
그리고 이내 복부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정신을 잃고 마는 여문아였다.
“으, 으으…….”
“정신이 드시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여문아는 손끝 하나도 까딱할 수 없을 것 같은 나른함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떴다.
이내 풍비박산이 난 객잔 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걱정과 이유 모를 난감함이 가득 찬 눈빛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일대 제자들도 그녀의 눈에 가득 들어왔다.
“여, 여긴……. 우웃!”
몸을 일으키려던 여문아는 이내 복부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고통에 다시 몸을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종남의 일대 제자 중 하나가 그녀의 허리를 부여잡으며 말했다.
“무리해선 안 되네! 천우신조로 생명은 구할 수 있었지만 단전이 파괴되었으니 조심해야 할 게야!”
“뭐, 뭐라 하시었습니까? 단전이……?”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사형들의 안타까운 눈빛뿐이었다.
“우리도 최선을 다했으나 자네의 단전이 이미 갈가리 찢겨져 어찌할 수 없었네. 련화께서 말씀하시길, 앞으로 평생 중으로서 도를 닦아 그동안의 업을 덜어내라 하시었네.”
련화라 함은 옥녀의 가명이었으니, 여문아는 그제야 자신이 기억을 잃기 전에 일어났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안 돼에에! 이건 안 돼!”
그녀의 절망 섞인 외침이 정주 가득 울려 퍼졌다. 인과응보라 하였으니, 그간 그녀가 무심히 해 온 악행의 결과가 이리 나타났다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