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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신선 1권(20화)
제8장 무식이 죄는 아니여(2)
다음 날 아침, 옥녀와 석두는 해가 뜨자마자 숭산으로 발길을 옮겼다. 숭산은 그 웅장한 자태만큼이나 오르는 것이 어려워 소림사가 위치한 소실로는 일반인들의 왕래가 매우 뜸했다. 물론 간간이 수행을 위해 산을 오르는 스님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곤 했지만 말이다.
“가까이에서 보니 정말로 높아 버려라. 후메에.”
석두는 끝없이 솟아 있는 듯한 소실의 봉우리를 올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나절을 꼬박 올라야 소림에 당도할 수 있다 하지 않던가. 하지만 옥녀는 오히려 산을 보며 의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이 산 위에 소림사가 있어요. 어서 올라가자구요!”
“아? 아, 그, 그래라. 갑시다잉.”
옥녀는 내심 잔뜩 흥분한 상태였다. 천계에서도 소림 출신의 고관들을 만난 적이 있었고, 그들은 하나같이 존경스러울 만한 인격을 지닌 이들이었다.
그런 이들을 배출해 낸 무림 문파이니, 소림에 대한 옥녀의 환상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컸다.
‘이상적인 무인!’
한 걸음 한 걸음 힘차게 내딛는 옥녀의 얼굴에는 그야말로 소림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묻어나고 있었다.
대애앵! 대애앵!
얼마나 산을 올랐을까. 산 정상에서부터 청아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그 종소리는 산의 계곡 사이사이를 울리며 퍼져 나가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만들어 주었다.
“하아―!”
석두와 옥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열심히 발을 옮겼다. 이 종소리를 종 가까운 곳에서 한 번 더 듣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어느새 정상이 한층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몇 시진을 더 올랐을까.
“우, 우와아! 이것이 소림사인 것이어라?”
“과연 대단하네요.”
석두가 탄성을 내질렀다. 옥녀도 소림사의 웅장한 자태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는지 큰 눈을 더욱 휘둥그렇게 뜨며 소림사를 살피기 시작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소림사의 자태는 그야말로 웅장하고 성스러웠다.
거대한 울타리 안에는 몇백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본관이 그 당당한 자태를 뽐냈고, 무승들이 무예를 수련한다는 상석(床石)이 그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 주위로 크고 작은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뒤로는 고묘(古墓)와 비석들이 늘어서 있었다.
“저런 곳에 가야 하는 것이여?”
얼이 빠진 듯 소림사를 바라보던 석두는 그제야 덜컥 겁이 났다. 자신이 저런 무림인들의 집단 사이에 들어가도 되는 것일까. 아무리 스님들이라곤 하나 무공을 수련한 무인들, 그런 이들에게 다가가는 것은 아직도 굉장히 겁이 나는 일이었다.
“걱정 말고 어서 가 보아요. 불심이 깊으신 스님들일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하지만 옥녀는 여전히 소림에 대한 환상에 부풀어 있었다. 석두는 여전히 걱정을 하면서도 그녀의 뒤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이보시오! 이곳에는 아무나 들어와선 안 됩니다!”
석두와 옥녀가 소림사의 대문 앞에 도착하자 두 명의 스님이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손에 나무 봉을 든 십오륙 세 정도로 보이는 그들은 엄격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본디 부처님의 도량에는 출입이 자유로울진대 어찌 앞을 막아서시는지요?”
옥녀는 속으로 피식 웃으며 한 걸음 나섰다. 그녀가 다가서자 두 스님은 흠칫 뒤로 물러섰다. 평소에 남성이 아닌 여성을 만나기가 아주 어려웠던 데다가 그 여성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옥녀였기에 자연스레 움츠러들었던 것이다.
“그, 그렇긴 하지만…….”
옥녀는 그들이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하자 피식 웃음 지었다. 두 스님이 옥녀의 앞에서 한창 식은땀을 흘리고 있을 때, 그들의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로서는 구원의 목소리나 다름없었다.
“부처님의 도량에 오시고자 하는 분들이 이런 귀하신 손님들이라면 더욱이 환영이지요.”
“사, 사숙!”
두 무승은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야말로 구원군을 만난 듯한 표정이었다.
소림의 무승인 현배(玄培)는 석두와 옥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듯 정중히 몸을 숙였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기다리고 있었어라? 우리가 올 것을 어찌 알았대요? 거참, 역시 소림은 다르구먼.”
석두는 신기하다는 듯 말하며 현배의 뒤를 따랐다. 옥녀도 그 무승의 행동이 의문스러웠지만 어차피 소림에 들어가야 했기에 잠자코 그의 뒤를 따랐다.
정문인 산문을 지나자 돌로 만든 사자상이 석두와 옥녀의 앞에 나타났다. 그 형상이 자못 무시무시해 석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저희가 올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
옥녀는 아무래도 꺼림칙했는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현배는 그저 빙긋 미소를 지을 뿐 묵묵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넓은 상석을 중심으로 주위를 감싸듯 서 있는 건물 중 하나로 석두와 옥녀를 인도한 현배는 깍듯이 고개를 숙였다.
“지객당(知客堂) 안에 방을 마련해 두었으니 들어가 쉬십시오.”
지객당이라 함은 소림에서 손님이 거처하도록 만들어 놓은 곳으로, 총 열여섯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석두와 옥녀는 두 동자승의 안내를 받아 맨 끝 두 개의 방으로 각각 들어갔다.
“어따, 생각보다 훨씬 친절들 하시네이. 화아―!”
석두는 푹신하게 깔린 이불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객당의 방은 과연 소림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깔끔했다. 사방의 구석에는 향불이 기분 좋은 냄새를 흘리고 있었고, 옆에 뚫린 창문으로는 산 아래의 절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후아암―. 그런데 도대체 언제 부르는 것이여? 날 새겄구만. 배도 고프고.”
하지만 구경을 하는 것도 한두 시진이었다. 해가 기울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석두는 절로 긴장이 풀렸다. 게다가 배에서도 먹을 것을 들이라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지금이면 슬슬 밥을 먹을 시간일 텐디……. 소림에도 요리를 하는 곳이 있지 않겠어?”
이쯤 되자 슬슬 딴 생각이 드는 석두였다. 평소였다면 절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테지만 배가 고픈 데다 긴장까지 풀어졌던 탓에 아무렇지도 않게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디, 몰래 나가 볼까이.”
간단한 요깃거리라도 찾자는 생각으로 가득한 석두는 조심스럽게 방 밖으로 몸을 돌렸다.
지객당 앞에는 두 명의 동자승이 지키고 있었다. 석두로서는 난감한 일이었지만 이내 기회가 생겼다. 두 동자승이 함께 소피를 보러 나간 것이다.
“좋아!”
석두는 그대로 지객당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러곤 바로 앞에 보이는 불당 뒤로 쏜살같이 달려 들어갔다.
“킁, 킁킁. 어따, 분명 어디서 고소한 냄새가 난단 말이지.”
석두는 코를 킁킁대며 고개를 여기저기로 돌렸다. 분명 어디서 구수하면서 약간 씁쓸한 향이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물론 그 향은 아주 미세했지만 석두의 개코를 비껴갈 수는 없었다.
“여긴가?”
냄새를 따라 조심스럽게 건물 사이사이를 헤매고 다니던 석두는 마침내 그 냄새가 흘러나올 법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백……. 여튼 구수한 냄새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니 여기가 요리를 하는 곳이 확실하겄구먼!”
건물의 간판에 쓰인 한문을 읽어 보려다 단박에 포기해 버린 석두는 배고픔을 빨리 면하고 싶은 생각에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고리를 잡을 때 왠지 느낌이 이상했지만, 그런 것에 신경 쓸 틈은 없었다. 게다가 음식을 만드는 사람들 중에 나쁜 사람은 없다는 것이 그간 여행을 하면서 석두가 깨달은 것이 아니던가.
건물 안에 들어선 석두는 생각보다 캄캄한 것에 의문을 느꼈다. 소림의 요리사들은 어두운 곳에서 음식을 만든단 말인가! 게다가 구수하고 또 한편으로는 시큼씁쓸한 냄새는 코를 찌르듯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냄새에 잔뜩 고무된 석두는 이를 악물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어따, 이상허네. 여기 어디서 분명 냄새가 나는디. 아무도 없어라?”
건물 안은 커다란 법당처럼 만들어져 있었다. 게다가 어디에서도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으니 석두로서는 의문스러울 뿐이었다.
“히익!”
고개를 든 석두는 뒤로 벌러덩 자빠지고 말았다. 흰 옷을 입은 불상이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좌백연좌상(坐白蓮座上). 그랬다. 이곳은 온갖 무공의 벽화가 그려져 있고, 일반 무승들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는 백의전이었던 것이다.
“까, 깜짝이야! 음식을 만드는 곳이 아니었나?”
석두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동서남북의 벽에 모두 각각 다른 벽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럼 도대체 이 냄새는 어디서 난당가. 혹시 여기에 누가 먹을 것을 숨겨 놓은 것인가?”
석두의 눈이 다시 번쩍 뜨였다. 조금만 깊게 생각해 보면 절대 그럴 리가 없건만, 배고프고 또 생각이 짧은 석두에게는 아주 타당하게 느껴졌다.
“숨겨 놓은 것이면 내가 먹어도 상관없겠네이! 어디랑가, 어디?”
석두는 곧장 불상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이 불전에서 음식을 숨길 만한 곳은 거기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킁, 킁킁.”
석두는 자신의 생각이 맞음을 알고 뛸 듯이 기뻐했다. 분명 불상 근처로 오자 그 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어찌나 구수한지 석두의 이성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이 냄새가 나는 거지? 거참.”
석두는 고개를 숙이고 그 냄새의 진원지를 파악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것이 실수였다.
쿠웅! 쿠르르릉!
고개를 숙이고 뒷걸음질 치다가 불상 옆의 연꽃에 엉덩이를 부딪친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이구야! 어메? 으어? 어메에에에!”
그 연꽃은 석두가 부딪친 그대로 옆으로 밀려났을 뿐만 아니라 석두의 바로 앞바닥이 풀썩 가라앉았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균형을 잃은 석두는 바닥으로 뚫린 그 구멍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으에에엑!”
쿠웅!
단말마의 비명과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말이다.
“으……. 여긴 도대체 어디여?”
한참 만에 석두는 엉덩이를 문지르며 일어섰다. 불상에 그런 장치가 되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 않은가. 게다가 떨어지면서 엉덩이부터 땅에 닿은 탓인지 양쪽 엉덩이가 다 욱신거렸다.
“도대체 여긴 어디……. 킁, 킁킁! 우왓!”
주위를 둘러보던 석두는 이내 화들짝 놀랐다. 그 구수한 냄새의 근원지가 이곳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 비밀 공간에는 크고 작은 상자들이 늘어서 있었다. 꽤 어두운 편이었음에도 석두의 눈에는 그것들이 똑똑히 들어왔다.
“허어. 무인이라 그런가, 음식을 꼬불쳐 두는 곳도 따로 만들어 놨나 보구먼. 이것 참…….”
석두는 이곳이 음식을 숨겨 놓기 위해 만든 방이라 단언했다. 물론 조금만 더 깊게 생각했더라면 절대 그렇지 않고, 이 방에 무언가 굉장한 것이 숨겨져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낼 수 있었겠지만 말이다.
석두는 구수한 냄새가 가장 짙게 배어 나오는 상자로 다가갔다. 가장 오른쪽에 있고, 가장 오래된 것 같은 상자였다.
끼이익!
“후아! 내 코는 역시 정확하다니께! 이게 뭐여?”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자 구수하고 씁쓸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석두는 자신의 코가 자랑스럽다는 듯 중얼거리다가 상자 안의 내용물을 보고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엄지손가락만 한 환단이 다섯 개 놓여 있지 않은가.
아니, 어찌 보면 환단이 아니라 검갈색의 구슬 같아 보이기도 했다.
“아하! 이것이 그러니께 그 무인들이나 먹는 벽곡단인가 하는 것인가 보네이.”
잠시 망연자실하게 환단을 내려다보던 석두는 어찌 그 생각을 못했을까 하는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벽곡단. 그 누가 이 환단을 벽곡단과 비교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이렇게 맛있는 냄새가 나는디, 먹어도 상관 없겄지?”
덥썩! 우걱!
석두는 단번에 그 다섯 개의 환단을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한입 가득 넣은 그 환단을 단번에 씹은 석두는 이내 황홀한 표정이 되어 갔다.
“어메! 역시 구수하구먼! 이런 걸 매일 먹는다니, 부럽네그려.”
소림이 자랑하는 영약, 대환단(大還丹)이 석두의 한입 요깃거리로 사라져 버리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