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9화
제3장 대신회의(大臣會議)(2)


딱. 딱. 딱.
무천은 의자에 앉아 탁자를 손으로 두들겼다. 그런 그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진지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운휘가 잔뜩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한 장난인 줄 알았습니다.”
“…….”
“하지만 이건 정말 도를 넘어섰습니다. 아마 이 일이 밝혀지면 역사에 남을 겁니다. 자기 집 폭파하고 뇌옥에 갇힌 대공자. 라고 말입니다.”
“내 집 아니야.”
“그걸 말이라고 하십니까? 지금 밖 상황이 어떤지 아십니까? 감찰이 떴습니다. 그놈들이 지금 눈을 부릅뜨고 현장을 샅샅이 뒤지고 있단 말입니다.”
운휘의 말에 무천이 표정을 풀었다.
“왜? 잡혀갈까 봐 겁나?”
“당연히 안 그렇습니까?”
“경천뢰의 위력이 예상을 빗나가긴 했지만 괜찮아. 조사는 받겠지. 그러나 뇌옥에 갇히는 일은 없을 거야.”
“예?”
운휘가 의문을 품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당당했기 때문이다. 천악비고만 터졌다면 이런 상황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것도 큰 문제이긴 하지만 천악비고의 존재는 소수만 알고 있었다. 그런 곳이 불탄다 하더라도 소수의 인물들이 묻어둔다면 역사의 뒤안길로 충분히 사라질 일이었다. 하지만 자그마치 천악각 지붕이 터져 나갔다.
소리도 좀 컸는가? 모르긴 몰라도 사마련 내부에 기거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지붕이 날아간 천악각을 보고 있을 것이다.
결코 쉬쉬하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었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절대로 흉수를 찾아야 했고 그 흉수를 공개처형해야 할 문제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은 말하고 다닐 것이다. 자기 집도 못 지키는 삼류문파라고.
이것은 사마련의 위상이 걸린 문제였다.
“단순히 누군가 천악각을 폭파시킨 거라면 그냥 범인을 찾아 잡으면 되겠지만 거기에 정치가 개입되면 문제가 달라지지. 운휘야.”
“말씀하시죠.”
“너는 본 련의 후계자가 누가 될 것 같아?”
“…….”
갑자기 난데없이 웬 후계자 타령이란 말인가.
운휘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그거야 물론 대공자님께서…….”
“훗, 뭐 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너도 알잖아? 이미 가신들의 마음은 전부 화운을 향해 있다는 것을.”
무천이 고개를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구름에 가라졌던 아침햇살이 창가로 들어와 무천을 비추었다.
“본 련의 후계자는 화운이가 될 것이야.”
“…….”
“하지만 아직 화운이는 후계자가 되기엔 너무 여려. 그런 화운이에게 천악각 같은 곳은 아군이자 적이 될 수 있는 곳이지. 알잖아? 천악각주가 어떤 사람인지.”
“그럼…… 설마 화운 공자님을 위해 천악각을 건들인 겁니까?”
“화운이를 위해서라…… 뭐 이기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 맞아. 그 아이를 위해서 천악각의 힘을 줄여 놓을 필요가 있었어. 그렇지 않으면 화운이는 천악각주의 손에 놀아나게 될 테니까. 그리고 아직은 모르겠지만 곧 천악각주는 알게 될 거야. 이 일을 저지른 사람이 나란 것을.”
무천이 다시 고개를 돌려 탁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는 분명 이 일에 대한 범인을 찾았다고 말하겠지. 그리고 그 범인은 폭발과 함께 죽었을 것이라 말할 거야. 왜냐하면 그는 내가 범인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
“어째서입니까?”
“그가 그동안 처리한 일을 보면 알아. 그는 분명 자신의 계략으로 날 죽이려 할 거야. 그는 그런 사람이거든.”
실소를 지으며 말하는 무천의 말에 운휘의 표정이 굳어졌다.
천악각주 엄태화.
잠시 잊고 있었지만 그는 자신이 생각해도 무서운 인물이었다. 무천이 이무기라면 그는 구미호였다.
분명 그는 온갖 계략을 짜 무천의 신변을 위협할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흔적은 전혀 드러내지 않은 채.
똑똑!
“공자님. 연화입니다.”
“응? 웬일이야?”
밖에서 들려오는 미성에 무천이 물었다. 그러자 겁에 질린 그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저…… 밖에…… 감찰단 무사분들이…….”
“알았어. 잠시만 기다리라고 해.”
문밖으로 말한 무천은 의자에서 일어났다. 운휘가 걱정스런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무천은 그의 표정에 웃음을 흘렸다.
“걱정 마. 이번 사건은 천악부각주의 책임으로 끝날 거야. 운이 좋다면 천악각주도 어느 정도 책임을 받겠지. 진짜 문제는 그런 천악각주로부터 살아남아야 한다는 거지만 말이야. 상처 입은 여우는 꽤나 매섭다고.”
반달처럼 휘어진 무천의 눈가가 번뜩였다.

대신회의(大臣會議).
사마련 내에 커다란 일이 생길시 련주의 명으로 각 각의 각주들은 한 명도 제외하지 않고 모두 모이게 된다. 그것은 련의 공자들에게도 해당되는 일이었다.
대청 안으로 들어서는 무천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매일 찾아가도 문전박대하던 사부님의 얼굴을 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사부가 어째서 자신을 홀대하는 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천은 그런 사부의 마음을 이해했다.
대청 끝. 태사의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는 기태천의 모습이 무천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무뚝뚝한 눈빛으로 무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천히. 하지만 당당한 걸음으로 걸어간 무천이 허리를 숙였다.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음…….”
턱을 괴고 앉아 있던 기태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천은 미소를 그리며 허리를 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 고개를 돌렸다.
기태천의 앞으로 거대한 탁자가 펼쳐져 있었고 그 양옆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착석해 있었다. 모두 사마련을 이끌어가는 각주들이었다. 그들을 훑어보며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던 무천은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바로 천악각주 엄태화였다.
그는 미소를 입에 걸고 무천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가벼운 인사였다.
무천 역시 가볍게 고개를 까딱여 그 인사를 받았다.
상석에는 어느새 도착했는지 이미 화운이 착석해 있었다. 어젯밤 그렇게 무천과 술잔을 나누고도 멀쩡한 모습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사형.”
“아아, 그래. 어젠 잘 들어갔어?”
“예.”
인사를 나누며 무천이 자리에 착석하자 기태천 옆에 서 있던 사무언이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모신 이유는 이미 알고들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사무언의 말에 장내에 무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왜 모여야 했는지 모두 알고 있었다.
오늘 새벽 폭음을 그들도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새벽. 천악각이 불탔습니다.”
“분명 무림맹의 짓일 것이오! 당장 무사들을 보내어 당한 만큼 돌려줘야 하오!”
“그렇소! 이대로 잠자코 있다가는 본 련의 위상은 바닥에 떨어지고 말 것이오!”
사무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각주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사무언은 그런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장내가 다시 조용해졌다.
사무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렇게 넘겨짚고 갈 문제가 아닙니다. 그래서 몇 가지 조사를 해야 했지요.”
사무언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그를 들여보내게.”
“예.”
허리를 숙여 대답한 이는 감찰단주 적엽이었다.
적엽은 직접 밖으로 나가 끈에 묶여 있는 중년인을 데리고 들어왔다.
“저, 저자는 천악부각주가 아니오?”
“설마!”
포박당한 채 마희운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쾅!
한 사내가 탁자를 치고 몸을 일으켰다. 붉은 머리칼에 굳게 뻗은 눈썹을 지닌 그는 사마련 삼대 세력에 속하는 지악각의 각주 종리우였다. 화기를 근원으로 한 무공을 익히고 있는 그는 무공의 영향 때문인지 상당히 다혈질로 세간에는 염화대성(炎火大聖)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군사! 설마 저자가 본 련을 배신했다는 말이오?”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사무언에게 향했다.
사무언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이것이 발견되었습니다”
사무언이 다시 적엽에게 고개를 돌리자 적엽이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적엽은 그것을 탁상 한가운데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불에 그을린 하나의 금패였다. 화기에 녹아 그 형태가 분명치는 않으나 희미하게 새겨진 천악이란 글자는 그 패가 누구 것인지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이 패는 마 부각주님의 것으로 그의 신분을 나타내 주는 패지요.”
“천악부각주! 정녕 본 련을 배신한 것이오!”
종리우가 마희운을 바라보며 외치자 마희운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모함입니다! 저 패는 분명 내 것이 맞으나 난 절대 그런 일을 벌이지 않았습니다!”
“흥! 뻔뻔하게도 뚫린 입이라고 그런 말을!”
종리우의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가 마희운을 짓눌렀다. 지금 이 자리에 기태천만 없었다면 당장에라도 출수하여 그의 목을 벨 기세였다.
짝짝!
그때 사무언이 박수를 쳐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 이끌었다.
“아직 그가 정말 본 련을 배신한 것인지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마음들 가라앉히시길 바랍니다. 일단 천악부각주의 말을 들어보지요. 마 부각주, 이 사태에 대해 할 말이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마희운은 고개를 돌려 무천을 바라보았다. 그는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무천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 모든 것이 대공자, 무천. 그의 짓입니다!”
“……!”
“……!”
사람들의 눈이 부릅떠졌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마희운은 그들의 반응에도 아랑곳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저 대공자가 나를 함정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런데 이상하군요. 어째서 대공자께서 마 부각주님을 함정에 빠트린단 말입니까?”
사무언이 묻자 마희운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나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먼저 접근한 것은 대공자였고 그에게 밀서까지 받았습니다!”
“밀서라…… 그 내용이 궁금해지는군요.”
“내 품 안에 아직 그 밀서가 들어 있습니다.”
자신의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말하는 마희운의 시선이 무천을 향했다. 그의 눈이 마치 이제 넌 끝이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사무언이 적엽에게 시선을 돌리자 적엽이 마희운의 품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한 장의 종이를 꺼냈다. 적엽은 그것을 사무언에게 가져가 건넸다.
종이를 받아든 사무언이 빠르게 그 안의 내용을 읽어 내리기 시작했다.
“대공자님. 이 서신에 적힌 내용이 사실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