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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제3장 대신회의(大臣會議)(3)


사무언이 무천을 바라보자 사람들의 시선에 그에게 쏠렸다. 무뚝뚝한 눈빛으로 조용히 장내를 내려다보던 기태천의 시선 역시 무천에게 향했다.
장내의 시선을 한 몸으로 받은 무천은 가벼운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글쎄요. 전 그에게 밀서를 보낸 적이 없습니다.”
“뭣이!”
마희운이 외쳤다.
“무슨 소리요! 어젯밤 나에게 저 밀서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천악부각주님.”
무천이 그를 부르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며 물었다.
“제가 그 밀서를 직접 전해드렸습니까?”
“그건 아니지만…… 대공자가 운휘에게 저 밀서를 전해라 하지 않았습니까?”
“운휘라…… 그때 운휘는 저와 함께 있었는데 말이죠. 그리고 정교한 인피면구라면 얼마든지 같은 사람으로 변장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건 억지입니다!”
무천이 실소를 흘렸다.
“억지요?”
“그렇습니다! 그럼 어젯밤 나와 사도객잔의 별관에서 함께 술잔을 나눈 것은 어찌 설명할 것입니까”
“술잔이라니요? 어젯밤 저는 여기 있는 사제와 함께 있었습니다만?”
“……!”
무천이 화운을 가리키며 말하자 마희운이 그를 바라보았다. 장내의 시선에 화운에게 쏠리자 화운은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사형과 함께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믿지 못하겠다면 시녀들에게 물어보면 알 것입니다. 술상을 봐온 그녀들이라면 다 알 테니까 말입니다.”
“그, 그럴 수가…….”
마희운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무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무천은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 미소를 바라보고 있던 마희운은 뒤통수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서, 설마…… 낚인 것인가!’
마희운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어제부터 일어난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 뒤집어씌우기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자 모든 게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
“그렇다는군요, 마 부각주. 이럼에도 사실을 말하지 않을 겁니까? 애초에 부각주의 말이 사실이라고 한들 대공자께서 왜 부각주에게 그러한 짓을 벌이겠습니까?”
바로 그것이었다.
대공자가 이런 일을 꾸며 자신에게 뒤집어씌운 이유가 전혀 잡히지 않았다.
심심해서?
그의 행동이 워낙 예상 불가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멍청하게 대놓고 행동할 그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말로 그때의 대공자가 다른 세력의 세작이었단 말인가!’
마희운의 얼굴이 시커멓게 물들었다.
만약 정말로 자신과 술잔을 나눈 이가 세작이었다면 자신은 그야말로 어떤 말과 행동으로도 벗어날 수 없는, 깊고 깊은 수렁에 빠진 것과 같았다.
그때 사무언이 마희운을 상념에서부터 끄집어냈다.
“이제 사실대로 말씀하시지요.”
“무엇을 말입니까?”
“아직도 발뺌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대의 입으로 말하지 않았습니까. 신분도 불분명한 사람으로 하여금 밀서를 받고 그와 술잔까지 나눴다고.”
“그, 그건…….”
“거기에 대공자님께 모든 것을 덮어씌우려고 한 죄. 결코 가볍지 않은 죄입니다.”
사무언이 말하지 않아도 마희운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대공자를 걸고넘어진 자신은 적어도 반란죄에 해당할 테니까. 그리고 반란을 저지른 죄인이 어떻게 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그 순간 가만히 자리에 앉아 있던 엄태화가 손을 들었다. 사무언이 그를 바라보자 엄태화가 입을 열었다.
“잠시 말씀 좀 드려도 되겠소?”
“그러시지요.”
사무언이 고개를 끄덕이자 엄태화가 자리에서 일어나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무천과 눈이 마주쳤다.
무천은 아무 감정이 깃들어 있지 않은 미소로 그를 마주봤다.
“사실 저희 부각주가 이런 일에 개입된 것은 내가 시켜서 한 일이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무언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렇다면 천악각이 폭발한 것도 천악비고가 날아간 것도 전부 각주님의 뜻이었다는 겁니까?”
“그렇다기 보다는 이미 본련에 세작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소. 하지만 세작의 목적과 어느 세력의 세작인지 알 수가 없어 부각주에게 그와 접선하도록 명령을 내렸었소.”
엄태화가 마희운을 바라보았다. 마희운은 그런 엄태화가 무슨 말을 하는지 갈피조차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이 수렁에서 자신을 구해주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세작이 대해 알아냈습니까?”
“아니오. 세작은 발견한 그 당시 폭발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소. 때문에 어떠한 증거도 확보하지 못했다오.”
“그렇군요. 그렇다면 각주님의 말을 증명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거기에 염천각에서는 천악각으로부터 그 어떤 언질도 받지 못했습니다.”
“물론 증거는 없소. 또한 쥐새끼 한 마리 때문에 련주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오. 그래서 본 각에서 조용히 처리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커져 버렸소. 그 점에 대해서는 사과드리오.”
엄태화가 허리를 숙여 대중에게 사과했다. 사무언은 그런 그를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해서 마 부각주의 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요. 과정이야 어떻든 간에 결과가 이렇지 않습니까?”
“그렇소. 하지만 이러한 사정이 있었으니 그에 대한 선처를 바랄 뿐이오.”
엄태화는 고개를 들어 상전을 바라보았다.
태사의에 앉아 있는 기태천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태화가 그를 바라보자 다른 이들의 시선 역시 기태천에게 쏠렸다.
사실 다른 이들에게 왈가불가 변명할 필요도 없고 자신의 말을 애써 증명할 필요도 없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 하더라도 기태천 말 한마디면 반역이 될 수가 있었다. 그것을 사무언 역시 잘 알고 있었기에 아무 말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았다. 이젠 그가 결정을 할 때였다.
그때 기태천이 입을 열었다.
“과정이야 어떻든 간에 본 련의 천악각이 불탔지. 하지만 내가 보기엔 천악부각주가 세작과 손을 잡지는 않았을 것 같군. 거기에 천악각주의 말도 있고. 하지만 말했다시피 과정은 과정이고 결과는 결과인 법. 천악부각주는 삼 개월간 근신을! 천악각주 역시 그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으니 보름간의 근신을 내린다.”
“존명!”
“그리고 감찰단주는 그 세작이 어디의 누구인지 알아내어 나에게 보고하라.”
“존명!”
기태천은 눈을 감으며 태사의에 몸을 묻었다.
“이것으로 대신회의를 마치도록 하지.”

대청을 빠져나가던 무천은 걸음을 멈추었다. 엄태화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무천이었다.
“하마터면 큰일 나실 뻔했습니다.”
“그렇지요. 그때 천악각에 있었다면 저까지 달구경하고 올 뻔했습니다.
“그것참 다행입니다. 아직은 본 련에서 천악각주께서 하실 일이 많습니다.”
무천의 말에 엄태화가 빙그레 웃었다.
“그건 그렇고 앞으로 대공자님의 호위를 강화해야겠습니다.”
그 말이 무천이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엄태화가 그의 눈동자를 직시하며 눈을 빛냈다.
“천악각까지 들어와 천악비고를 날린 쥐새끼입니다. 어느 세력의 쥐새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뛰어난 놈들이 활개 치는 이 마당에 언제 대공자님께 해를 가할지 모를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군요.”
무천은 엄태화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방긋 미소를 지었다.

“어찌 생각하는가.”
주변을 물리고 여전히 태사의에 앉아 있던 기태천이 물었다. 그의 옆에서는 사무언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아마도 대공자님의 짓일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유는 말씀드리지 않아도 주군께서 아실 겁니다. 아무리 진주가 진흙에 더럽혀진다 한들 진주는 진주지요. 대공자님이라면 능히 이런 계략쯤은 가능할 것입니다.”
“음…….”
기태천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사실 이렇게 무천을 홀대하고 있다고는 하나 그 누구보다도 무천의 진가를 잘 알고 있는 무천이었다. 내공을 잃었다고는 하나 그것만으로는 무천이 지니고 있는 재능을 감추기에 부족함 감이 있었다.
“그리고 천악각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을 겁니다.”
“그렇겠지.”
“천악각주가 대공자님을 노릴 수도 있습니다.”
“…….”
기태천이 침묵하자 사무언이 조심스레 물었다.
“대공자님의 호위를 강화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필요는 없네. 그 아이 역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알고 있겠지. 그리고 자네도 알지 않는가. 지금 무림은 예전의 무림이 아니야. 옛날 같았으면 분명 무천 그 아이는 훌륭한 후계자가 되었겠지. 하지만 그들과 약조한 지금. 본 련의 후계자는 고강한 무공을 지녀야 한다네.”
“…….”
기태천이 눈을 살며시 뜨며 몸을 일으켰다.
“이곳은 그 아이의 세상이 아니야.”



제4장 그녀는 예뻤다(1)


햇볕이 내리쬐는 창살 아래 마희운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무척이나 초췌한 모습이 상당히 지쳐 보였다.
“괜찮나?”
엄태화의 물음에 마희운이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괜찮아 보이십니까?”
마희운의 눈은 퀭했고 기운조차 없어 보였다.
완벽한 패배자의 모습. 사실 그로서는 아직도 자신이 처한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일인지라 어디서부터 생각해야 할지 갈피도 잡히지 않았다. 하지만 직감은 대공자의 짓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것을 증명할 단서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건지 자세히 말해보게.”
“알고 계셨던 것 아닙니까?”
“뭘?”
“사건의 전말.”
엄태화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렇게 갑작스레 일어난 일까지 알 수는 없다네. 하지만 누가 자네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는 알고 있지.”
엄태화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마희운이 눈을 빛냈다.
“대공자 무천.”
엄태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주겠나? 어떻게 된 것인지.”
“대신회의에서 말했던 그대로입니다. 그가 먼저 저에게 밀서를 보내 접선을 시도했고 사도객잔에서 만나 술잔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잠들었고 깨어나 보니 이 지경이 되어 있더군요.”
“어리석게도 당했군.”
“예. 아주 보기 좋게 당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