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12화
제4장 그녀는 예뻤다(3)
꽈득! 꽈지직!
혈맥이 찢겨져 나오고 그럼에도 그 기세를 잃지 않은 기운이 무천의 온몸을 유린했다.
우득! 우드득!
뼈가 뒤틀리고 피부가 찢어져 새하얀 속살이 드러났다.
몸을 유린하던 두 기운은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함인지 더 이상 싸우지 않고 침범해 오는 검은빛에 대항했다.
세 개의 기운이 똬리를 틀어 무천의 몸을 관통하고 찢어발겼다. 좁은 그의 몸에서 싸우기에는 그 기운들이 너무도 강력하고 거대했다. 그리고 그 싸움이 절정에 도달한 순간.
꽝!
무천은 온몸이 산산조각 나는 것을 느끼며 정신을 놓았다.
제5장 모사재인(謀事在人)(1)
삐익!
매 한 마리가 창공을 가로질렀다. 하늘의 제왕이라고도 불리는 매는 사마련의 위를 한 바퀴 돌고는 속도를 줄였다. 그리고 그 매가 고도를 낮춰 들어간 곳은 사마련의 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암영각(暗影閣)이었다.
암영각 내에는 수십 마리의 전서응이 있었고 들락날락하는 전서응만 하루에 백 마리가 넘었다.
작은 창으로 들어온 전서응은 마치 자기 집을 찾아가듯 십이(十二)라고 적힌 새집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 사내가 그곳으로 다가갔다.
사내는 전서응의 다리에 묶인 전서를 풀어 빠르게 펼쳤다.
간편하고 빠르게 연락하기 위해 간단한 암호로 적혀 있는 전서였지만 사내는 익숙하게 읽어 나갔다.
“음!”
마지막 대목까지 훑어본 사내의 눈이 크게 떠졌다.
하루에 백 개 이상씩 날아오는 정보에는 휴지 조각이 될 만한 정보부터 만금의 값어치를 하는 것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정보는 적어도 수백금의 값어치가 있다고 그는 판단했다.
사내는 전서를 접고는 재빨리 몸을 날렸다.
이런 정보는 시간이 생명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암영각주에게 이 정보를 전달해야 했다.
* * *
“헉!”
당혹성과 함께 무천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엄청난 악취였다.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자 땀 때문인지 온몸이 흠뻑 젖어 있었다. 악취의 근원은 바로 그것이었다.
잠옷은 물론 이불까지 모조리 젖어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조화더냐.’
창으로 들어온 바람으로 인해 몸이 식는 것을 느낀 무천은 몸을 한 차례 떨고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
몸이 이상하게 가벼웠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면 몸이 나른하던가 혹은 무거워야 했는데 오히려 상쾌하고 활력이 솟아났다.
무천은 일단 옷을 벗기 위해 상의를 집어 갔다. 그때 다시 그의 움직임이 멈추고 말았다. 손등에 희미하지만 붉은 빛으로 그려진 문양을 본 탓이었다.
‘이, 이건 설마……?’
손등을 들어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던 무천의 눈이 점점 커져 갔다.
간밤에 펼쳐진 꿈. 그리고 악취를 풍기는 땀. 거기에 자고 일어나니 생겨 버린 화염구처럼 생긴 작은 문양.
분명 이러한 현상을 알고 있었다. 알고 있다기 보다는 본 적이 있었다. 그것도 어느 서적에서 말이다.
‘뭐였지. 그러니까…….’
기억이 날 듯 말 듯 서적의 내용이 무천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순간 무천의 눈동자가 이채를 발했다.
‘그래! 맞아! 이건 기연의 징조였어!’
무천이 손바닥을 내려치며 탄성을 터트렸다. 그러고 보니 서적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면 그 현상을 겪은 인물은 엄청난 내공과 함께 경천동지할 무공을 얻게 되었다.
‘그, 그렇다면 설마 나도?’
무천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몸에서 광채가 흘러나오는 것 같았다. 거기에 오늘따라 유난히 피부가 고아 보였다.
털썩!
무천은 곧바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몇 년 만에 해보는 가부좌인지 허벅지가 당겨오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무천은 몸을 꿈틀거리지도 않았다.
곧 의식을 집중하자 몸 내부가 눈앞에 펼쳐지듯 느껴지기 시작했다.
기경팔맥(寄經八脈)을 살피고 혈맥(血脈)과 세맥(細脈)을 살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의식이 단전에 집중되었다.
무엇이든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던 그의 단전에는 지금까지 텅텅 비어 있던 상태였다.
임맥(任脈)과 독맥(督脈)을 타통하여 가만히 잠만 잔다고 해도 저절로 내공이 쌓여야 했건만 이유 모를 원인 때문에 그 내공은 쌓이지 않고 다시 빠져나갔다.
물론 지금까지는 그랬다.
단전을 살피는 무천은 그런 현상이 사라졌기를 바라며 더욱 의식을 집중했다.
무천은 곧 무아지경에 빠져들었다.
워낙 집중하다 보니 절로 빠져든 것이었다.
그렇게 일다경이 지나고 이 다경이 지나 어느새 한 시진이나 흘렀다.
번뜩!
그 순간.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 같았던 명상에서 무천이 눈을 떴다. 그런 그의 눈은 형형한 빛을 뿌리고 있었고 놀라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럴 수가……!’
무천은 자신의 손을 들어 다시 손등에 새겨진 문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의 입에서 맥 빠진 음성이 흘러나왔다.
“왜 단 한 줌의 내력도 존재하지 않는 거지?”
운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앞에 앉아 있는 무천은 뭐 때문인지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운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눈이 마주쳤다.
“뭘 봐?”
“아닙니다. 아무것도.”
무천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묻자 고개를 저은 운휘는 다시 고개를 돌리려다 무엇을 발견한 듯 그곳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것은 바로 그의 손등이었다.
본래라면 여성의 그것처럼 깨끗한 손등이어야 했다.
무천의 손등을 유심히 바라보던 운휘의 입술이 순간 뒤틀렸다. 손등에 새겨진 문양을 본 것이다.
붉은빛으로 새겨진 문양이 마치 꽃과도 닮아 있었다.
참 그와는 어울리지 않는 문양이라 생각했다.
“그건 뭡니까? 그새 새로운 취미라도 생겼습니까?”
“왜? 너도 그려줄까?”
“정중히 사양하겠습니다.”
운휘가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자 무천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도 마라. 자고 일어났는데 누가 그려놓은 건지 아무리 박박 문질러도 지워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진해지더라.”
“혹시 연화가 장난친 거 아닙니까? 요새 통 연화랑 놀아주지도 않았지 않습니까?”
“걔가? 에이 설마…….”
무천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그녀가 아무리 자신을 편하게 여긴다고는 하나 공과 사는 확실히 구분 지을 줄 아는 여자였다. 결코 그녀가 이런 장난을 칠 리는 없었다.
거기에 오늘 아침에는 손등의 문양을 보여주자 오히려 예쁘다는 둥 자신도 그려달라는 둥 하지 않았던가. 정말 그녀가 그랬다면 그러한 반응을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됐고 슬슬 준비나 하지.”
“또 어디 가십니까?”
“잠깐 들를 곳이 있어.”
그의 말에 운휘가 아미를 구겼다.
불안한 기운이 엄습한 탓이었다.
“설마 또 이상한 계획이라도 짜놓은 겁니까?”
“그렇다면?”
“지금에라도 도망가려고요.”
“오! 정말? 그럼 나야 좋지. 이번엔 어여쁜 여자를 호위로 삼아야겠어. 이거 만날 남자랑 붙어 다니니 여간 칙칙한 게 아냐.”
무천의 얼굴이 눈에 띄게 좋아지자 운휘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그런 적도 있었다.
무천이 내공을 잃기 전. 한동안 바빴던 운휘가 며칠간 무천을 보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무천은 호위무사랍시고 십 수 명의 여성을 대동하고 있었다.
“거짓말입니다. 공자님께서 그런 꽃밭에서 지낼 수 있도록 제가 도와드릴 순 없지요.”
“하하하! 그럼 슬슬 가보자고.”
무천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운휘가 그를 따랐다.
“그런데 어딜 가십니까?”
“아무리 자네가 내 곁에 있다고는 하지만 나도 호신병기 한 가지쯤은 지니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래야 잘 때라도 마음 편히 자지.”
“예?”
운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의문에 무천은 그저 웃어 보일 뿐이었다.
이각이 지난 후 무천이 도착한 곳은 바로 괴공 견자생의 거처였다. 무천은 마치 자신의 집처럼 자연스레 마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런 그의 손에는 강호 사대명주인 취야주(取夜酒)가 들려 있었다.
견자생이 특히 좋아하는 술이기도 하였다.
무천은 이 술로 지난 일을 넘어갈 속셈이었다.
“여긴 괴공 어르신의 집이잖습니까?”
마당을 둘러보던 운휘가 낯익은 환경에 물었다.
“응.”
“그분이 다신 찾아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랬지.”
“그런데 왜……?”
무천은 그 말에 실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원래 그런 분이야. 말씀이 좀 사납긴 하지만 정이 많으신 분이지. 말은 그렇게 했어도 내가 언제 올까 기다리고 있을걸?”
“…….”
경천뢰를 얻을 당시 나눴던 무천과 견자생의 대화를 떠올린 운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운휘가 생각할 때 견자생의 말에는 진심이 묻어 있었다.
“그건 그렇고…… 아무도 없나?”
평범한 초가집에는 농기구가 한쪽 구석에 쌓여 있었고 마당에는 곡식들이 널려 있었다. 하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안 계신 거 아닙니까?”
“흠…….”
신음을 흘린 무천은 다시 주변을 둘러보고는 한 발 앞으로 내밀었다.
“공자님?”
“괜찮아. 괜찮아.”
운휘가 그를 잡았지만 무천은 손사래 치며 초가집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방문을 거침없이 열었다. 그러자 매캐한 홀아비 냄새가 풍겨져 나왔다.
견자생이 이곳에 자리 잡은 지 꽤나 오래된 걸로 무천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누군가와 함께 있는 것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만큼 사람들과의 거리를 철저히 지키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몰려 있는 마을에 거처를 잡은 것을 보면 사람을 그리워하는 것 같았다.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무천은 견자생을 떠올리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주인도 없는데 그냥 들어가도 됩니까?”
“괜찮다니까. 난 그분에게 손자 같은 사람이야.”
“세상에 할아버지 물건을 뺏어가는 손자가 어디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