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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제5장 모사재인(謀事在人)(2)


전에 경천뢰를 받아 갔을 때를 떠올리며 운휘가 물었다.
무천은 걸음을 멈추고 손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여기.”
“…….”
그 당당함에 운휘가 한숨을 내쉬었다. 무천은 그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방 안을 훑어보았다.
바닥에는 기이한 물건들이 흩어져 있었다.
평범한 방이지만 그러한 물건들 때문인지 뭔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어?”
그때 무언가가 무천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벽지가 약간 뜯어져 있었다.
얼핏 보면 모르고 지나칠 만한 작은 흔적이었다.
무천은 자신의 감각을 간질이는 느낌이 그곳으로 향했다. 작은 벽지에 손을 뻗은 그는 그것을 조심스레 떼어냈다. 그러자 한 자(一尺) 정도의 너비에 반 자 정도 높이의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는 공간을 가득 메울 정도의 목합이 놓여 있었다.
그것을 꺼내든 무천은 바닥에 내려놓았다.
운휘 역시 호기심이 이는지 그것을 바라보았다.
목합에는 폭뢰비(爆雷飛)라고 적혀 있었다.
“폭뢰비가 뭐지?”
“그렇게 숨겨 놓은 거 보면 꽤 귀중한 거 아닙니까?”
“그렇겠지?”
“나중에 걸리면 그분 성격상 절대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겁니다.”
“그렇지?”
“그냥 두죠.”
“흠…….”
무천은 턱을 괴고 신음을 흘렸다.
운휘의 말대로 함부로 이것을 꺼낸 것을 견자생이 알아차린다면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누구나 소중한 것이 있고 이렇게 숨겨 놓을 정도면 이 물건은 틀림없이 견자생에게 귀중한 것일 테니까.
아무리 친한 사이라고는 하나 허락도 없이 함부로 보는 건 큰 실례였다.
고민에 고민을 한 끝에 무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잠깐 뭐가 들었는지 만 보고 돌려 놓지 뭐.”
딸깍!
운휘는 갑작스런 무천의 행동에 숨을 들이켰다.
말릴 시간도 없을 정도로 그의 손놀림을 재빨랐다.
“고, 공자님!”
운휘가 그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무천은 멍하니 열려 있는 목합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모습에 운휘가 자신도 모르게 목합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 이건…….”
목합 안에 들어 있는 것은 한 짝의 수갑(手甲)이었다. 하지만 생김새가 일반적인 수갑과는 달랐다.
전체적으로 검은색의 수갑은 손부터 팔뚝까지 전체적으로 감쌀 정도로 크기가 적당했고 수갑의 손등 부의에는 구멍이 다섯 개가 뚫린 널찍한 막대가 달려 있었다.
막대의 길이는 약 세 치 정도의 길이. 그리고 그중 가운데에 뚫린 구멍은 반 치 정도 되는 다른 구멍보다 크게 한 치 정도는 되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용의 형상이 덮고 있었다.
“뭡니까. 이건?”
무천을 말리려던 운휘 역시 호기심에 그것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의 물음에 무천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 역시 이것이 무엇인지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생긴 건 수갑인데…….”
무천은 수갑을 꺼내 들었다. 보이는 것과는 달리 꽤나 묵직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수갑을 드러내자 그 밑에 깔려 있던 또 다른 물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치 정도의 길이를 지닌 얇은 쇳덩이였다. 그것이 총 십여 개가 도열해 있었다. 그 옆에는 그보다 얇은 쇳덩이 수십 개가 놓여 있었다.
“이건 또 뭐야?”
무천은 그중 한 개를 집어 들었다.
역시 보이는 대로 쇳덩이였는지 무게가 느껴졌다.
그것을 한동안 살펴보던 그는 다시 내려놓고 수갑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번 착용해 볼까?”
“…….”
이번에는 운휘도 말리지 못했다. 그 역시 궁금했던 것이다.
무천은 수갑을 자신의 오른손을 끼워 넣었다.
철컥!
“오!”
무천과 운휘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손이 수갑 속으로 모습을 감추자 수갑의 손목 윗 부위에서 철판이 튀어나와 팔뚝을 감쌌다. 그럼에도 움직임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이상하지만 뭔가 멋있어.”
무천의 말에 운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갑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살펴보던 무천은 손을 쥐었다 피기를 반복했다. 손이 수갑에 딱 맞게 들어갔는지 느낌이 좋았다.
“그런데 이건 뭐에 쓰는 거야?”
무천이 구멍을 바라보며 의문을 품었다.
“아!”
그때 운휘가 손바닥을 때렸다.
“혹시 그거 암기 아닙니까?”
“응?”
무천이 고개를 돌리자 운휘가 목합 밑바닥에 깔려 있는 쇳덩이를 가리켰다.
“수전통(手箭桶) 같은 거 말입니다. 아마 그 구멍에 이게 들어가는 거 같은데 한 번 넣어보시죠.”
수전통이 뭔지는 무천도 알고 있었다.
암기의 대가인 사천당문에서 만든 수전통은 사정거리가 십 수 장이나 되고 엄청난 위력을 지니고 있다고 들었다. 거기에 만들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라서 당문에서조차 지니고 있는 수전통은 고작 열이 넘어가지 않는다고 들었다.
“흠…….”
운휘의 말에 따라 쇳덩이를 하나 집어 든 무천은 구멍에 넣기 위해 그것을 수갑으로 가져갔다.
“아, 이건 가운데 구멍에 넣는 건가 보군.”
다른 네 개의 구멍보다 유독 큰 가운데 구멍이 쇳덩이와 맞게 제작되어 있었다. 그것을 확인한 무천은 곧바로 그 구멍에 쇳덩이를 집어넣었다.
턱!
쇳덩이가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며 모습을 감췄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쏘는 거지?”
“그러고 보니 수전통은 뒤에 달린 줄을 잡아 당겨서 쏜다고 들었습니다. 뭐 줄 같은 거 없습니까?”
“흐음…… 없는데?”
수갑을 이리저리 살펴보던 무천은 손을 들어 뒷부분을 살폈다. 그 순간 더 잘 보기 위해 손을 하늘 높이 뻗은 무천이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쾅!
“헉!”
강렬한 폭음에 화들짝 놀란 무천과 운휘가 고개를 들어 서로를 바라보다 천천히 수갑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조금 전 쇳덩이를 넣었던 구멍에서는 매캐한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 천장에는 손바닥만 한 구멍이 뻥하니 뚫려 있었다.

“후우. 이제 여름이구나.”
점점 더워지는 날씨를 실감한 견자생은 대나무로 만든 부채를 부치며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드디어 오늘이 그동안 고생하고 고생한 발명품이 완성되는 날이었다. 그러한 날에 술이 빠지면 안 된다고 여겼던 견자생은 장터에 나가 잘 익은 오리 두 마리와 술병 하나를 샀다.
오늘은 아무 생각 없이 술잔을 기울이며 추억이나 되새겨 볼 생각이었다. 물론 발명품을 눈앞에 두고 말이다.
“응?”
자신의 집 앞에 도달한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문을 닫고 간 것 같은데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나이를 먹긴 먹었나 보군.”
마당으로 들어가며 한숨을 내쉰 그는 문을 닫고 집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그의 눈이 부릅떠지며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어떤 괘씸한 놈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신의 방 안에 들어가 있는 사내의 모습이 확연하게 보인 탓이었다.
“웬 놈이냐!”
견자생의 입에서 거친 음성이 튀어나왔다. 그러자 등을 돌리고 앉아 있던 사내가 그를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견자생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 녀석은…… 분명 대공자의 호위가 아니더냐?”
그의 얼굴을 확인한 견자생의 노기가 한풀 꺾였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적당한 이유를 대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죄를 묻겠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
운휘는 그의 모습에 맨발로 뛰어나와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어르신.”
“인사는 됐고. 어째서 네 녀석이 내 방에…….”
말하던 견자생이 입을 닫았다. 운휘의 뒤로 나타난 무천의 얼굴을 본 것이다.
양손을 뒤로 돌린 무천은 활짝 웃음을 피우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어르신?”
“네놈. 이젠 다시는 내 앞에 얼씬거리지 말라고 하지 않았더냐?”
“하하,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무천이 조심스레 방에서 나와 운휘 옆에 섰다. 견자생은 그런 그의 능글맞음에 아미를 구기며 코웃음 쳤다.
“일없다!”
“너무 그러지 마시지요. 안 그래도 죄송스러워서 이렇게 선물도 준비해 왔습니다.”
“선물?”
무천이 고개를 끄덕이며 턱으로 마룻바닥을 가리켰다. 그곳을 바라보자 술 한 동이가 놓여 있었다.
“뭐냐 저건?”
“취야주입니다.”
“……!”
견자생의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그게 어떤 술인지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술이지 않는가.
“정말 취야주더냐?”
“하하! 물론입니다. 그렇게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니 저로서는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큼! 흠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견자생은 헛기침을 내뱉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는 마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 기이한 향이 그의 코를 간질였다.
“킁킁! 그런데 이게 뭔 냄새더냐.”
견자생은 개처럼 코를 벌렁거리며 냄새를 들이켰다.
“하하! 무슨 냄새 말입니까? 취야주의 주향 아닙니까?”
“그런가?”
“예. 그럴 겁니다. 틀림없이. 참, 그건 그렇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어르신.”
“응? 가려고?”
이미 무천에 대한 노기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차피 인연을 끊자는 말도 그때 홧김에 했던 말인지라 길게 물고 늘어지고 싶지 않았다. 거기에 생각지도 못한 취야주까지 먹게 생겼으니 그로서는 상당히 기분이 풀린 상태였다.
“같이 먹지 그러냐?”
그의 제안에 뜨끔한 무천은 재빨리 핑계거리를 찾아 입을 열었다.
“저도 그러고 싶지만 사부님께서 찾으셔서 말입니다. 가는 길에 취야주나 드리고 가려고 이렇게 들른 거였습니다.”
“그렇군. 알았다. 이놈아! 안 그래도 천악각 지붕 날아가는 거 봤다. 아주 훨훨 날아오르더구나. 무슨 일인지 대충 짐작은 가나 나머지는 조심히 사용하여라.”
“하, 하하…… 물론입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러려무나.”
견자생이 고개를 끄덕이자 무천은 뒷짐 진 손을 풀지 않고 허리를 숙였다. 그리곤 운휘와 눈빛을 교환을 한 후 재빨리 총총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견자생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
사파 종주의 제자라고는 하나 성정은 참 착한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경천뢰를 줬던 것도 그런 그를 믿어서였다. 거기에 티격태격해도 적적한 자신을 자주 찾아와 주는 것이 손자가 있었으면 저랬을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 그런지 경천뢰를 건넨 것도 아깝지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의 손을 떠난 물건이었고 집착도 없었다.
무천과 운휘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고개를 돌린 견자생은 취야주를 바라보며 웃음을 흘렸다.
“그럼 오늘은 한껏 취해보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