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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第二章 해남검법(海南劍法)(3)
“이번이 네 번째 살행(殺行)인가? 보고하도록.”
“예. 우선 비마대에서 넘겨준 정보를 외운 후 청룡문 부문주 박성이 지나갈 만한 길의 객잔마다 모두 예약을 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첫 번째로 준비했던 곳을 박성이 숙소로 정하였고, 그가 자리를 비웠을 때 침대 아래로 들어가 기를 숨기고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박성이 침대에 누웠을 때 뽑아 놓았던 검으로 이마를 꿰뚫었습니다. 그런 후 곧바로 검을 뽑고는 금창약으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리고 객잔을 빠져나와 무공 수련 후 귀환하였습니다.”
조용히 보고를 듣던 암형대주(暗形隊主) 관준(管俊)이 독고천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독고천은 조용히 부복한 채 명령을 기다렸다.
관준이 피식 웃었다.
“무공 수련?”
“예.”
“쉬라고 기껏 휴가를 주었더니, 무공 수련을 하고 왔단 말이지? 그 볼 거 많은 절강성에서 말이야?”
“예.”
“그래, 보고는 잘 들었다. 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나?”
“없었습니다.”
“그래, 수고했다. 이만 물러가라.”
독고천이 정중히 고개를 숙이고는 문밖으로 나섰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관준이 눈을 빛냈다.
‘이놈, 어떤 기연을 얻은 것이냐.’
그 이후로 독고천에게 임무는 없었다.
암형대주의 명을 받고 암형대에서 벗어나 소속이 없어진 탓이었다.
본래 천마신교의 고수들은 강해질수록 마기가 짙어지기 때문에 마공을 기초로 익힌 살수는 드물었다.
그리고 보통 살수들은 소모용으로 많이 쓰이기 때문에 강한 마기를 뿜어내는 고수도 드물었다.
그러나 독고천은 마공을 기초로 성장한 인물인데다 짙은 마기를 뿜어내게 되었기에 더 이상 살수로 사용할 수 없었다.
하여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보고에서 서적들을 읽거나 홀로 수련하는 것이 다였다.
상부에 보고가 되었는지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않았고, 두 번째 무고인 용마무고(龍魔武庫)에 들어갈 수 있도록 허가까지 해 주었다.
그로 인해 독고천은 용마무고에서 더욱 질 좋은 마공들을 익힐 수 있었고, 그의 명상이 길어질수록 그의 마기도 한층 짙어져 갔다.
그것은 독고천의 천성이었다.
할 것이 없으면 무공을 수련했고, 자는 시간도 줄여 가며 무공을 수련했다.
그의 성격 자체가 쉬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이미 남해삼십육검은 천마삼십육마검이라 불릴 만큼 다른 모습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하루에 잠을 자는 시간은 두 시진도 채 되지 않았다.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워 끼니를 거를 때도 많았다.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명상을 하거나 검을 휘두르는 것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가 독고천을 찾아왔다.
명상에 잠겨 있던 독고천이 조용히 눈을 떴다.
상대는 흑의를 입은 무인이었는데, 매서운 눈빛과 숨 막힐 듯 짙은 마기를 흘리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독고천 맞나?”
“예, 맞습니다.”
“따라와라.”
흑의무인의 뒤를 쫓아 전각에 도착한 독고천은 단상에 앉아 있는 중년인을 볼 수 있었다.
깔끔한 청의에 고고한 모습이 마치 학을 연상케 했다.
“오랜만이군. 나를 기억하나?”
“예, 외총관님.”
외총관(外總管) 청혈마검(靑血魔劍) 주용천(珠龍闡).
그는 항상 청의를 즐겨 입었고 그 위로 적들의 피가 흩날렸기에 청혈이라는 명호마저 생길 정도였다.
거기다 그의 검은 마검이라는 명호답게 정말로 매섭고 자비가 없었기에 청혈마검이란 명호를 얻게 되었다.
주용천이 강호를 주유할 당시, 그의 청의에는 피가 마를 날이 없을 정도였다.
때문에 청의를 입은 사내들은 모두 정도인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악마대에서 암형대로 차출되더니 어느새 이렇게 고수가 되어 내 앞에 나타났구만.”
주용천은 천천히 미소 짓더니 곧 말을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본 교에서 표국 일을 맡게 되었네. 요즘 본 교의 재정이 많이 힘들어서 말이야. 물론 사람들 모르게 뒤로 몰래 하고 있지. 별거 아닌 표국 일이지만, 그래도 체면상 고수 냄새가 나는 인물 한 명 정도는 파견해야 본 교에서 체면이 살지 않겠나? 그리고 마침 소속이 없는 자네가 뽑혔네.”
“예.”
“그냥 표물 운송의 호위 정도이니 별 어려움이 없을 걸세. 쓸 만한 부하 서너 명을 붙여 줄 테니 여유롭게 유람이나 하고 오게나.”
“존명.”
* * *
말 한 필이 여유롭게 수레를 끌고 가고 있었다.
양쪽으로는 두 명씩 무사들이 호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서는 독고천이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독고천의 옆에는 짧게 수염을 기른, 몸집이 두터운 중년인이 연신 땀을 흘리고 있었다.
여름이 지나 가을이 다가오고 있건만, 중년인은 연신 땀을 흘리며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냈다.
“저, 무사히 도착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오.”
“하, 하지만 대인이 있으시다지만 겨우 네 명뿐인데……. 이건 정말 중요한 물품입니다, 대인.”
중년인은 연신 독고천의 눈치를 살폈다.
온몸에서 자색 마기를 뿜어내는 독고천이 무표정으로 있으니 무서운 것이 당연했다.
“잘 알고 있소. 그래서 내가 파견된 것이오. 걱정하지 마시오. 표국 일은 신뢰가 중요하다고 들었소. 최악의 상황이 일어난다면 내가 상자를 들고 도망가면 되오. 그럼 최악의 경우라도 물건은 빼앗기지 않을 수 있소.”
큰 수레 위에는 많은 상자들이 실려 있었다.
그러나 그중 단 한 상자만이 진짜 물품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중년인은 걱정이 되는지 수레에 있는 상자를 연신 힐끗거리며 땀을 닦아 내렸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 서서히 목적지에 다다를 때였다.
슈육.
난데없는 파공성과 함께 수하 한 명이 쓰러졌다.
“암습이다! 모두 검을 뽑아라!”
독고천의 외침에 수하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곧 엄청난 수의 암기가 날아왔다.
날카로운 암기가 말의 목을 꿰뚫었다.
말이 옆으로 넘어지며 수레에 담겨져 있던 상자들이 모두 뒤집어졌다.
중년인도 암기에 맞아 숨이 끊어졌고, 다른 수하들도 성한 곳이 없어 보였다.
상대는 일대일 대결을 한다 해도 승산이 없을 정도로 하나하나가 고수들이었다.
그리고 독특하게도 그들은 팔목에 검은 팔찌를 차고 있었다.
독고천은 주위를 훑으며 상황을 판단했다.
잠시 고민하던 독고천이 널려 있는 상자 중 하나를 품 안에 집어넣고는 몸을 날렸다.
암기를 날리던 복면인들 중 우두머리가 독고천을 가리키며 급히 외쳤다.
“잡아라! 놓쳐서는 안 된다!”
“존명!”
복면인들이 몸을 날리며 독고천의 뒤를 쫓았다. 독고천은 연신 몸을 숨겨 가며 경신술로 그들을 따돌렸다.
‘적의 수는 대충 열 명. 그중 뛰어난 고수는 없지만 또 다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독고천은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엄청난 속도로 수풀 속을 꿰뚫었다.
그 뒤를 복면인들이 바짝 뒤쫓고 있었다.
‘분명 상자 안에는 단순히 금 따위의 보석 같은 것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이 들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리 가벼울 수가 없고, 아까 그 중년인이 그리 신경 쓸 이유가 없겠지.’
본래 표국 일이란 중요한 물품이냐 아니냐에 따라서 가격이 달라진다.
중년인은 구두쇠였고, 자신의 물품의 정체가 밝혀지면 호위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것임을 알고 거짓말을 해 왔던 것이다.
그러니 천마신교에서도 그에 걸맞은 고수가 아닌, 적당한 자신을 파견했고 말이다.
결국 중년인의 잘못된 판단이 최악의 상황을 불러온 셈이었다.
그러니 사이, 독고천과 복면인들의 거리가 좁혀지고 있었다.
슬쩍 뒤를 힐끗거린 독고천이 청각에 집중했다. 그러자 곧 물소리가 들려왔다.
‘강이다!’
독고천이 곧바로 강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복면인들도 그에 질세라 그 뒤를 쫓았다.
복면인들이 암기를 내던지며 쫓아왔지만, 독고천은 이리저리 나무 뒤로 피해 가며 신형을 움직였다.
독고천은 품 안에 있는 상자를 품속에 단단히 고정하고는 강으로 주저없이 뛰어들었다.
첨벙.
그러고는 거친 물살을 따라 헤엄쳐 나갔다.
복면인들도 곧바로 강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독고천은 살수 교육을 받으며 잡다한 기술을 익혀 온 몸이었다.
특히 수영이나 잠수 분야는 독고천이 개인적으로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기도 했다.
독고천은 살짝 내공을 흘려 물살에 몸을 맡기며 잠수를 했다. 복면인들도 독고천의 뒤를 쫓아 열심히 헤엄을 쳤지만, 거리는 점점 벌어질 뿐이었다.
결국 쫓다 지친 복면인들이 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푸하, 이런 빌어먹을 놈. 엄청 빠르군.”
“강 하류 쪽으로 쫓아가자!”
“존명!”
고요하지만 거센 물살이 흐르던 강가에서 독고천이 솟구쳤다.
촤악.
땅 위로 나온 독고천이 몸에 묻은 물을 털어 냈다.
의복에 기름을 발라 놓은 듯 물이 튕겨져 땅에 떨어졌다.
독고천은 품속을 뒤적이더니 상자를 꺼내 들었다.
“멀쩡하군.”
순간, 독고천의 뇌리에 품속에 숨겨 놓았던 비급이 떠올랐다. 마음이 급해진 독고천은 급히 비급을 꺼내 보았다.
다행히 전과 마찬가지로 비급은 젖지 않은 상태였다.
‘기름칠을 아주 잘해 놓은 모양이군.’
한데 무언가 달라진 점이 느껴졌다.
해남검법이라 적혀 있던 앞부분이 다른 글자로 흐리게 바뀌어져 있는 것이었다.
‘이게 뭐지?’
혈남검법(血南劍法).
혹시나 하는 마음에 비급을 강물에 넣고는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다시 꺼내 툭툭 털었다.
아니나 다를까.
쓰여 있는 문구가 어느새 전혀 다른 내용으로 바뀌어 있었다.
혈마심득(血魔心得).
혈마(血魔)!
백여 년 전, 강호무림(江湖武林)을 공포에 떨게 했던 그 이름!
천마신교가 배출한 최강의 고수로서, 가공할 무공과 잔인한 수법으로 정도인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천마신교 최강의 고수.
이후 심마(心魔)에 빠져 미치광이가 되어 천마신교에서 축출당한 후 모습을 감추었다는 존재였다.
혈마의 마공은 그야말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정도였으며, 핏빛으로 물든 그의 주먹은 세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거기다 천마신교의 마공이 아니었기에 혈마가 실종됨과 동시에 혈마의 마공은 절전되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혈마의 심득이 바로 독고천의 손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이었다.
독고천의 손이 떨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독고천은 급히 주위를 살폈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순간, 독고천의 신형이 튕겨져 나갔다.
작고 아담한 동굴을 찾은 독고천은 그곳으로 몸을 숨겼다. 동굴은 그냥 지나쳐도 모를 정도로 수풀에 교묘히 숨겨져 있었다.
사람의 손길은 전혀 닿지 않은 듯 보였다.
햇빛도 잘 들고 통풍도 잘되는 동굴이었기에 비급의 글씨를 문제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비급을 살펴보려던 독고천이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상자를 만지작거렸다.
‘도대체 이게 무엇이기에.’
상자를 밀봉하고 있던 것을 조심히 뜯어냈다. 도망치다가 박살 났다고 하면 상부에서도 이해해 줄 것 같았다.
상자를 조심스레 열자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크윽.”
독고천이 손바닥으로 빛을 가리며 슬쩍 내려다보았다.